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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다만 섬의 소년> 겉그림. 자이 휘태커 지음. 조연숙 옮김. 달리, 2009.
<안다만 섬의 소년>겉그림. 자이 휘태커 지음. 조연숙 옮김. 달리, 2009. ⓒ 민종원
그다지 중요하다 여길 만한 것은 아닌데, 이 책이 소설인지 아닌지 그것부터 생각해봐야지 싶었다. 인도 태생의 작가이자 교사인 자이 휘태커가 전하는 안다만 섬 사람들 이야기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이야기 배경이 되는 안다만 섬은 인도에 소속한 실제로 있는 섬이다.  괜한 고민으로 적잖은 시간을 무의미하게 보내는가 싶었지만 눈길은 어느새 이야기 흐름을 따라가고 있었다. 열 살 남짓 된 남자아이 아리프가 그 10년을 긴 세월이라 여기며 자기 삶, 가족, 세상을 돌아보는 태도를 보고 있자니 그 모습이 아무래도 그 나이 때 어린이들과는 달라보였다.

<안다만 섬의 소년>(달리 펴냄, 2009)을 쓴 지은이 자이 휘태커는 뭄바이 자연사협회 소속의 박물학자였던 부모님 덕분인지 늘 자연과 더불어 살았다 했다. 그런 배경이 이 책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인공 아리프를 만들어내는 토대가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은행에서 10여 년이나 일했던 그는 교사가 된 뒤 지금은 항구도시 첸나이(Chennai)의 아바쿠스 몬테소리 학교에서 교장 선생님으로 일하고 있다 한다. (아리프는 첸나이 항구에서 안다만 섬으로 향하는 배를 타게 된다.)

문명을 모르는 안다만 섬과 그곳에 간 고아 아리프는 불행한 건가?

인도 본토에서 한참 떨어진 섬이라는 것은 단순히 거리상 멀리 있다는 것뿐 아니라 그 섬 사람들이 멀고도 먼 뭍사람들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독립한 삶을 살고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 그런 섬에 고아 아리프가 가게 된 이야기는 우리가 익히 들어온 문명 대 반문명의 뜻을 다시 생각하게 해준다. 열 살 남짓 되었지만 어른보다 더 사려 깊은 소년 아리프 시선을 따라 바라보는 안다만 섬은 미개한 어떤 곳이 아니라 자연스런 행복이 절로 피어나는 곳이다.

어찌 된 사연인지 아리프는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차차 아저씨와 차치 아주머니 집에서 살게 되었다. 아리프가 물려받았을지 모를 많은 유산은 또 어찌 된 사연인지 이들 부부 주머니에 들어갔고, 그 때문에라도 아리프는 사랑이라고는 털끝만큼도 없어 보이는 두 어른 틈바구니에 끼여 살아야했다.

모든 게 우울했을 시간들을 용케도 참아내며 밝게 지내던 아리프는 어느 날 갑자기 집이라고도 할 수 없는 차차 아저씨 집을 몰래 떠났다. 그리고는 첸나이 항구로 향했고 거기서 안다만 섬으로 가는 배를 탔다. 이야기는 그렇게 한순간 안다만 섬 이야기가 된 것이다.

싫으나 좋으나 차차 아저씨 밑에서 계속 살았다면 아리프는 맘껏 도시 풍경을 보았을 테고 어른이 되어서는 어느 정도 마음껏 도시 문화를 누렸을 것이다. 그러나, 도시도 돈도 아무 것도 필요 없고 오직 자연스럽고 끈끈한 값없는 사랑이 절실했던 아리프는 생전 가본 적이 없는 안다만 섬으로 무작정 가게 되었다. 게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 아이는 점점 안다만 섬 식구가 되어갔다. 뭍사람들이 각종 문명 도구들과 생필품들을 쏟아부으며 이주정책의 발판을 마련해가는 사이 아리프는 이를 알고 섬사람 편에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이는 어렸지만 사려깊었고 가진 것은 없었지만 지켜야 할 사람들이 생겼다. 의미 있는 변화였다.

사람들은 안다만 섬 사람들을 미개인으로 여겼다. 그 섬 사람들이 아니면 보이는 즉시 사정없이 화살을 쏘아대며 무참히 죽이는 나쁜 사람들이라 했다. 그런 안다만 섬 사람들을 뭍사람들은 멀리 했고 한편으론 문명의 빛을 전해주어야 할 땅으로 여겼다. 아리프가 제 발로 찾아들어간(?) 안다만 섬은 그런 곳이었다. 미개하고 무자비하다고 소문 난 곳.

인도와 인도차이나 반도 사이 벵골 만의 넓은 바다 한쪽에 있는 안다만 제도(諸島)는 200개가 넘는 크고 작은 섬들로 이루어져 있다 한다. 안다만 족, 옹게 족, 자라와 족 같은 여러 토착 부족이 조용히 살고 있었던 이곳은 인도가 영국 지배를 받던 시절 이후 점점 '바깥 사람들'이 무작정 쏘아대는 문명의 포화에 시달려야 했다고 한다. 이 책에 나오는 '자라와 홈'과 '안다만 홈' 같은 곳들이 바로 문명의 포화가 만들어낸 상처들인 셈이다.

도시와 문명을 버린 고아 아리프... 행복한 아리프는 지금 어디에

아이는 왜 그렇게 성숙한 모습으로 그려졌을까. 아이는 왜 섬 생활을 그렇게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어느 순간부터는 어른들보다 더 열심히 섬을 지키려했을까. 뭍사람들은 왜 안다만 섬 사람들이 그저 자기 삶터를 지키려는 노력을 무시한 채 그들을 그저 무식하고 무자비한 사람들로 여겼을까. 아리프는 이런 뒷이야기에 숨은 의미를 어찌 그리 잘 파악할 수 있었을까. 궁금한 것 많은 열 살 꼬마처럼 머리 속에 떠오르는 질문들이 많았다.

조금은 지나치게 성숙한 아이로 그려진 것은 아닌가 싶었다. 그러면 그럴수록 문명의 시선을 너무 당연히 여기며 사는 우리 자신을 더 많이 돌아봐야겠거니 했다. 무자비하고 무식하다 하던 안다만 섬 사람들에게서 아리프는 삶을 배우고 사랑을 경험했다. 그들과 어우러져 지내는 사이 아리프는  이웃, 가족, 행복이 무엇인지를 새로 배우게 되었다.

오랫동안 이어져온 삶을 문명이 빛이 들어가지 못한 미개한 곳으로 여기며 무작정 개발과 이주 정책을 들이대는 행동은 이 책 <안다만 섬의 소년>에서는 철퇴를 맞을 일이다. 마천루에서나 필요할지 모를 거만한 시선은 '안다만 섬'에서는 아무 쓸 데 없다. 좋은 일도 슬픈 일도 함께 나누는 '안다만 섬'은 결코 마천루 인생을 우러러보지 않으며 애초부터 알지도 못한다.

그들은 전혀 불행하지 않다. 복잡한 이익 다툼도 없고 나와 다른 삶을 함부로 얕잡아보는 무례함도 모른다. 오로지 '같이' 살아야 한다. 한 사람이 위험에 빠지면 모두가 그 위험에 빠지는 것과 같다고 여기는 사람들이다. 그런 그들에게 사사로운 이익, 무례한 개발과 이주 정책은 그 자체가 죽음일 뿐이다. 그러고 보면, 고아 아리프가 어느새 진정한 안다만 섬 사람이 된 것은 뭍으로 그리고 도시로 돌아가지 못하게 된 아쉬운 결말이 아니라 의미 있는 반전으로 보아야 한다. 아리프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덧붙이는 글 | <안다만 섬의 소년> 자이 휘태커 지음. 조연숙 옮김. 달리, 2009.

Andamans Boy by Zai Whitaker & illustarated by Ashok Rajagopalan and Indraneil Das(Tulika Publishers, Chennai, India, 1998)

* 이 서평은 제 파란블로그(blog.paran.com/mindlemin)에도 싣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작성한 글에 한하여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안다만 섬의 소년

자이 휘태커 지음, 아쇼크 라자고팔란 외 그림, 조연숙 옮김, 달리(2009)


#안다만 섬의 소년#자이 휘태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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