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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토),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지리산에 다녀왔다. 입구에서 성삼재로 가는 길을 묻자 아무런 제지없이 친절하게 가르쳐주는 직원에 말을 듣고 얼마 쯤 차로 올라갔을까. 눈 내린 양이 보통이 아니라고 말하던 가족들의 걱정이 이내 현실이 되버리고 말았다. 차는 산 중턱에서 서버리고 만 것이다.

 

4륜구동 차나 SUV 차는 그러저럭 성삼재로 갈 수 있었던 것 같은데, 일반 승용차는 여간 힘든게 아니었다. 모래사낭을 찾아 이리저리 해맸지만 이미 근처 모래사낭 통은 비어있었고, 위로 조금 올라가자 다른 차 몇 몇 대도 올라가지 못하고 제멋대로 서 있었다.

 

"직원들이 제지도 안 하고, 모래도 안 뿌려져 있고, 이러다가 차 내려오거나 올라오면 다 꼬여서 큰일나는디..."

 

 

지리산국립공원 이름을 들먹이며 화풀이 하는 것도 잠시, 몇몇 사람이 올라가 모래사낭을 가져오고 틀어진 차를 바로잡고 한 쪽으로 가지런히 주차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옆 벽에 살짝 박은 차가 한 대, 아무리 밀어도 헛바퀴만 도는 차가 두 대. 그래도 눈꽃 핀 지리산이 절경인지라 사람들은 도와가며 차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렇게 차를 정리하고, 우리는 일단 성삼재로 발걸음을 향했다. 성삼재는 노고단 가는 길에 있는 큰 휴게소, 해발 1050M에 위치하고 있다. 지금 이 곳이 대략 800M 지점이고, 길로는 5㎞ 정도 남았다. 얼마 전 허리 수술로 무리하면 안되는 아버지의 상태를 고려하여 오늘의 산행은 성삼재까지가 될 듯 싶었다.

 

생각해보니 산에 온다고 하면서 제대로 준비해온 것이 없었다. 눈이 왔을거란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발 편하라고 조깅화를 신고와버린 것이다. 제법 되는 적설량 탓에 내 신발은 이내 젖어버렸다. 그래도 햇볕이 제법 따사로워서 내려올 때 쯤이면 도로가 제법 녹을 듯 싶었다.

 

 

올라가는 길, 새벽에 눈이 내릴 땐 정말 미끄러웠는지 지나치는 마을에도 휴게소에도 주차된 차 한 대를 볼 수 없었다. 토요일인데도 휴게소는 문을 열지 않았고, 사람들의 발자국조차 없었다. 위쪽으로 올라갈수록 제설함에 모래사낭도 수북히 들어있었다.

 

햇볕이 산등성이를 비추자 눈꽃이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바람이 살짝 불자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고, 걸음이 조금 빠른 내가 먼저 올라가는 탓에 주변에는 인적이 전혀 보이질 않았다. 천왕봉부터 산등성이를 타고 내려다보이는 눈꽃의 향연, 눈 덕분에 처음엔 헤맸지만 언젠가는 눈 내린 지리산을 일주하고 말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한 시간 반여를 오르자 성삼재에 도착했다. 이미 반대편으로 올라오는 길은 차량 출입이 통제되어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산중턱 쯤에서 '야호'라는 소리가 들렸다. 거기까지 올라오고 내려간단 소리였다.

 

햇볕이 제법 따사로워서였을까? 약간 땀이 난 듯 싶었는데 휴게소 앉아 있으니 바로 식었다. 곧 가족들이 따라올라오고 우리는 우동 한 그릇을 먹게 되었다.

 

그나저나 앞 쪽에서 우동을 먹는 사람들은 휴게소 아주머니와도 친해보이고 장비도 전문적으로 보였다. 전문산악동호횐가 생각하는 순간, 이내 그들이 이 곳을 관리하는 직원들임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새벽에 눈이 많이 와서 산을 순찰하는 중이었다. 노고단 가는 길이 제법 미끄러워 등산객들이 고생한단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우리가족은 욕심을 부리지 않고 차를 세워놓은 산 중턱으로 다시 내려가기로 생각했다. 눈 탓에 이렇게 해도 한나절은 걸리는 산행이 돼버렸다. 내려가기전 성삼재 끝자락으로 남원인지, 구례인지, 함양인지 모르는 동네를 내려다보았다. 그래도 차가 다니고 인적이 있는 곳은 이내 눈이 녹았는지 저 쪽 산은 하얀데, 마을은 평소 때와 다름 없는 색이었다.

 

내려가는 길, 제법 눈이 녹았지만 여전히 올라오는 차 중 몇 대는 산 중턱에서 힘들어하고 있었다. 몇 대의 차에게는 모래사낭을 선물하고, 한 번은 차를 열심히 밀어주었다. 그러다보니 고마움의 표시로 캔커피 하나가 손에 쥐어지게 되었다. 참 집주변에도 산이 많은데 지리산에 기를 쓰고 올라오려는 사람들, 그리고 그 중에 한 명이었던 나. 아마도 그 웅장한 산세와 기막힌 눈꽃이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또 자극했을는지 모르는 일이다.

 

그렇게 지리산의 엉뚱한(?) 산행이 막을 내렸다. 내려오는 길에 인월면에 있는 아주 작은 목욕탕에서 목욕을 하고 인근 콘도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다음날, 대지를 적시는 단비가 지리산을 뒤덮었다. 가뭄으로 고생한단 문구가 여기저기 써붙어 있었는데, 나의 산행을 방해했던 눈과, 촉촉한 이 비가 더해져 대지의 목마름이 해결되길 빌며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casto와 푸타파타의 세상바라보기(http://blog.daum.net/casto)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지리산, #눈꽃, #성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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