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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는 벼와 함께 우리민족의 삶에서 결코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소를 이용하여 논을 갈아 벼농사를 지었으며, 그 논에서 나온 볏짚으로 소를 키웠습니다. 소는 다시 퇴비를 만들어 돌려 주었지요. 그래서 소 한 마리만 있어도 부자가 되었고, 소 한 마리만 있어도 자식을 대학에 보낼 수 있었으며, 한 해 농사도 거뜬하게 지을 수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에 꿈에 소가 나타나면 조상이 나타난 것이라며 어머니는 좋은 일이 생길 거라고 하셨습니다. 얼굴도 모르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자를 지켜주려고 나타난 것이라고 하셨지요. 그런 이유로 소는 집안에서 제일가는 재산이었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소에게 먹일 꼴을 베어야 했고, 겨울이면 쇠죽을 끓여야 했지요. 더운 여름날이면 소를 산에 풀어 두기도 하였습니다. 풀을 뜯어 먹다 쉴 참이면 소는 언제나 무덤 곁에 누워 되새김질을 하곤 하였는데, 나 역시 그런 소를 바라보는 것이 좋았습니다.

 

소는 우리의 삶에 아주 중요하지만, 또한 귀한 존재였습니다. 송아지를 낳으면 어머니는 정화수를 떠놓고 두 손을 곱게 비비며 빌었습니다. 그 송아지가 자라 팔려가는 날에는 어머니도 울고, 어미소도 울었습니다. 밤새 울어대는 어미소의 울음에 잠을 설쳐도 가족들은 아무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겨울이면 어머니는 시장에서 사골을 사 오셨습니다. 어떤 해에는 소머리를 통째로 사 오기도 하셨지요. 하지만 집에서 키우는 소에게는 절대 들키지 않았습니다. 곰국을 담았던 그릇은 따로 씼었으며, 소가 보는 데서는 곰국을 먹는 것조차 들키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겨우내 사골을 달여 먹으면 겨울이 지나갔습니다. 덕분에 나는 건강하게 잘 자랐지요. 꼬리, 머리, 뼈, 발, 심지어 내장까지도 소는 모두를 사람에게 주고 떠나는 것입니다.

 

그렇게 키우던 소에게도 '워낭'은 있었습니다. 이름을 몰라 그냥 '방울'로 불렀지만, 십 년 여를 키우다 새끼를 낳지 못하면 아무리 일을 잘 해도 팔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워낭'은 꼭 떼어두었습니다. 늙은 소가 나가고 젊은 소가 들어오면 닳고 닳은 워낭을 젊은 소의 목에 걸어 주었습니다.

 

규칙적으로 들리는 워낭 소리가 이상하게 들리면 새끼를 낳을 때였고, 아플 때였습니다. 잠을 자다가도 목에 매달린 워낭 소리만으로 소의 상태를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모든 소에게 다 워낭을 달아주지는 않았습니다.

 

과속하면 사고가 날 수 밖에 없겠지요

 

 

대통령에 당선이 되고 '잃어버린 10년'이라고 주장하던 분께선 10년이 아니라 30년을 되돌아가는 엄청난 과속을 하였으니 이는 분명한 스캔들입니다. 과속이라 하면 엄청난 속도로 나아감을 뜻합니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께선 어찌된 영문인지 후진하는 기어를 넣고 과속페달을 밟았으니 이도 과속이라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더구나 거리마다 있는 과속단속카메라에는 왜 찍히지도 않는 것인지, 과속단속경찰은 왜 단속조차 하지 않는 것인지요.

 

영화에서는 대를 이어 과속을 하였는데, 현실에서는 제발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랄뿐입니다. 아니 때로는 과속이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과속하는 자동차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함께 과속을 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용산참사가 일어나고 화왕산 참사가 일어난 것일까요? 수 십만명이 모여 촛불을 들었더니 '석기시대'를 마감하는 행사로 용산참사를 일으켰는가요? 말 그대로 불로써 응징하는 석기시대로 되돌아간 것인가요?

 

더구나 석기시대의 종점은 가뭄과 불로 마감을 하고 있으니 이 또한 엄청난 과속이 아닐까요? 지난 여름부터 가뭄은 시작되었지요. 그리고 촛불 하나만 들고 거리로 나온 시민들에게 무수한 물을 뿌려 대더니 수돗물조차 나오지 않는 국민들에게는 물 한방울 뿌려 주지 않고 있습니다. 농업용수마저 없어 내년 농사가 걱정인데, "큰불의 뫼"로 이름을 떨쳐온 화왕산(火旺山)의 유래에 맞춰 산에 불기운이 들어야 풍년이 들고 재앙이 물러간다는 속설에 따라 '큰불'을 일으켰으니 대통령은 아마도 재앙이 물러갔기를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원망소리'가 되지 않기를...

 

대통령도 '워낭소리'를 보셨다지요? 그럼 거짓이나 술수, 잔꾀를 모르는 정직한 노동만을 하는 늙은 농부와 말 못하는 짐승인 소는 대통령에게 어떻게 다가오는지요?

 

농사만 짓기에도 바쁘고 힘든데, 해마다 가을이면 여의도 공원에 모여야 하는 농민들이 있습니다. 새벽부터 아픈 몸 하나로 인력시장으로 나서는 노동자도 있습니다. 일자리가 없어 고개를 들지 못하는 젊은이가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1조 2천억이라는 엄청난 돈을 들여 전국에 자전거 도로를 만들어준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워낭소리는 어린아이의 주먹보다 작은 크기입니다. 그래서 소리 역시 작게 들리지요. 도시에서 살다 시골에 온 사람들은 웬만해서는 듣지 못하는 소리입니다. 하지만 농부의 귀에는 보신각 종소리보다 크게 들립니다. 그렇다고 하여 농부의 귀에 자동차의 엔진소리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지 못한다고 나무라지 마세요. 누구에게나 잘 하는 것이 있을테니까요.

 

그렇다면 정치인은 국민의 소리를 잘 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국민들의 워낭소리가 '원망소리'가 되지 않길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이명박 대통령 취임1주년을 맞이하여 몇 마디 부탁해 봅니다.


태그:#워낭소리, #과속스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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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에 말이 적어야 하고, 뱃속에 밥이 적어야 하고, 머리에 생각이 적어야 한다. 현주(玄酒)처럼 살고 싶은 '날마다 우는 남자'가 바로 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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