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호(55) 민주공원 관장. '참교육'과 '민족예술' 운동에 앞장섰던 그가 지난해 3월부터 민주공원을 이끌고 있다. 부마민주항쟁 30년과 민주공원 10년을 맞은 올해 부산에서는 민주시민교육센터가 만들어진다.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가 교육센터 설립을 추진하는데, 이 관장은 민주시민교육센터 추진위원회 집행위원장을 맡았다. 25일 저녁 8시 민주공원 큰방에서는 민주시민교육센터 추진위원회 발족식이 열린다.
추진위는 이날 발족식을 가진 뒤 오는 3월 센터 이름 공모를 통해 명칭을 확정하고, 부마민주항쟁 30년이 되는 오는 10월에 맞춰 센터의 문을 열 예정이다.
추진위는 "민주시민교육에 관한 기획, 조사·연구, 내용과 방법을 제공 할 지역 거점이 필요하고, 공교육과 평생교육을 직접 수행할 수 있고, 접근성이 용이하며 민주주의에 대한 시대정신을 담아낼 수 있는 학습공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추진위 발족식에 앞서 지난 21일 저녁 경남 함안의 한 농가에서 이광호 관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늦음의 미학'이란?
- 민주공원 10년을 평가한다면?
"부산의 정신적 브랜드로 민주공원을 상징화해냈다.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민주주의 교육과 체험을 하도록 했다. 민주공원은 시민들에게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하는데, 그런 측면에서 미진한 부분은 있다. 특히 시민들이 편안하게 산책할 수 있는 공원을 어떻게 만들까 고민하고 있다."
- 최근 다른 지역에도 보면 비슷한 공간들이 생겨났던데.
"민주항쟁을 기념하는 기념관으로, 부산에서 처음 만들어졌는데, 의미가 크다. 광주에는 5․18문화관이 들어섰고, 제주에는 4․3사료관이 지어졌으며, 지난해에는 마산에 3․15아트센터가 들어섰다. 이런 것들은 산업화 이후 민주화라는 주제를 갖고, 한국사회가 역동적으로 이루어져 온 부분을 보여주는 것이다. 특히 지역에 그런 기념관들이 생겨나 더 의미가 크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이어서 더 좋다는 생각이 든다."
- 민주공원은 산 위에 있어 시민들의 접근성이 어렵다는 지적이 있는데?
"접근성이 떨어지는 부분은 있다. 하지만 민주공원은 그 이미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시민의 '삶의 질'과 '여유 공간', '늦음의 미학'으로 봐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앞으로 민주공원을 걷는 여행지로 만들 필요가 있다. 느끼고 성찰하고 내면을 돌아보는 의미있는 공간으로 말이다. 지금은 민주공원 둘레가 순환도로이고, 그 공간이 마치 주차장화 되어 있는데 그 공간을 시민들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차라리 조금은 불편하더라도, 자기의 내면을 돌아보면서 삶의 여유를 되찾는 공간으로 상징화될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의 경쟁, 즉 바쁘게 움직이는 시대에 민주공원에 오면 여유와 성찰의 시각을 가진다면, 지금도 별로 불편함이 없을 것이다."
이 관장은 "다소 땀도 흘려야 한다"면서 "민주공원에 걷는 공간을 만들어 여유와 성찰하는 시간을 갖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하나의 사례로 시민들을 모아 '골목길 체험'을 할 수도 있다는 것.
민주시민교육센터가 왜 필요?
- 민주시민교육센터는 왜 필요한지?
"지금은 모든 분야가 중앙집중화다. 지식 세계도 그렇다. 서울에 보면 철학아카데미나 한겨레문화센터 같은 시민교육 기회가 많다. 그런 기회를 통해 민주사회에서 자기를 되돌아보고 문화적․예술적 감성을 느끼는 것이라 본다. 그런데 그런 기회가 서울을 제외한 지역에서는 찾기가 힘들고 없다. 부산에는 그런 틀이 없다. 70년대, 80년대가 민주주의 가치를 갖고 쟁취하는 투쟁의 시기였다면, 2000년대는 형식적 민주주의가 발전된 시기라 본다. 그런데 형식적 민주주의만으로 삶이 아름다워지는 것은 아니다. 민주시민을 양성하고 민주적 가치를 인식하고 삶과 연결시켜내는, 성숙한 자세가 필요하다. 자그마한 교육공간을 통해 학습하고, 서로 지식을 나누는 공간으로 센터를 만들려고 한다. 그것이 우리 시민사회를 성숙하게 하는 터전이 될 것이다."
"시민의 힘으로 민주시민교육센터를 운영할 것"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중앙이나 지방정부의 재정 지원이 없이 시민의 힘으로 할 필요가 있다"는 것.
이 관장은 "처음에는 성인 위주로 가겠지만 연구개발이 활성화되면 어릴 때부터 민주시민성을 담보할 수 있는 공간으로 가야 할 것"이라고 제시했다. 그러면서 그는 "부산에서 먼저 방점을 찍게 되면 대구나 광주, 대전에도 비슷한 공간이 생겨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시민모금으로 운영되는 센터가 될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가 지원하고, 발전적으로는 독자 운영 체제다. 홀로서기를 하기까지 3년 정도 걸릴 것이라 본다. 교육과정 속에서 수강생과 강좌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참여하고, 거기다가 일반시민들의 후원체계를 갖추면 가능할 것이다. 시민에 의해, 시민을 위해, 시민을 위한 교육센터가 될 것이라 본다."
이 관장은 "올해는 부마민주항쟁이 일어난 지 30년, 민주공원이 개관한지 10년이다"며 "많은 시민들이 민주시민교육센터에 함께 어깨를 걸어 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 부산은 정치적으로 한나라당 성향이 강하다고 하는데, 그런 정서 속에서 민주시민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다고 보는지?
"지금은 글로벌 시대다. 부산도 세계 속의 도시로 나아가고 있다. 그런데 진보고 보수고 가릴 게 어디 있나. 부산하면 영화산업이나 바다축제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하지만 역사가 중요하다. 부산 역사에서 정신적으로 중요한 두 곳을 꼽는다면 충렬사와 민주공원이다. 충렬사는 외세침략에 저항한 임진왜란을 기념한 공간으로, 저항성이 담겨 있다. 민족과 국토를 수호하기 위한 싸움의 상징이다. 그리고 20세기 부산에서 가장 활발하게 일어났던 민주투쟁이 있었고, 그 중심 공간이 민주공원이다. 물론 민주화운동과 배치되는 부분도 있겠지만, 서로를 인정하면서 긍정적인 부분을 키워나가는 것이 성숙한 자세일 것이다."
"경제 난국도 성찰의 계기로 삼아야"
- 최근 이명박정부 들어 국가인권위원회 축소 등이 거론되고 있는데, 민주공원은 중앙․지방정부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는데 있어 축소 움직임은 없는지?
"현재까지는 재정지원 축소는 없다. 현재까지는 국비나 시비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전체 예산에서 10% 정도 줄어든 부분은 있다. 현 정부도 민주공원의 중요성은 어느 정도 인정하는 것 같다. 아무리 경제가 어렵다고 하더라도 민주공원이나 5․18문화관, 3․15아트센터 등의 예산을 줄이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만약 재정지원을 줄인다면 우리의 정신적 가치를 훼손하게 될 것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그런 부분은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현 정부 속에서 지속적 지원이 되면 그것은 우리 사회의 자산이 될 것이다."
- 요즘 경제위기 속에 먹고 사는 것에 힘들다 보니 '민주'나 '인권' 등의 가치가 중요하게 여겨 지지 않는 것 같은데.
"경제적 풍요만으로 자기 삶을 규정할 수 없다. 물질적 풍요나 먹고 사는 문제가 아닌 정신적 가치를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경제적 풍요도 중요하지만, 이런 기회에 오히려 우리를 돌아보게 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세계와 국내 경제의 어려움 속에서 우리 스스로 가난해 지려고 하는 생각을 해야 한다. 그렇다면 오히려 경제 난국 속에서 민주주의를 진전시킬 수 있을 것이며, 삶의 질을 높이는 전환점이 되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경제상황을 난국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성찰과 미래 사회를 위한 준비의 계기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는 "경제적 가난이더라도 마음의 가난이 되어서는 안된다"면서 "경제적 풍요만 찾는다면 지금 우리가 국민소득 5만불이 된다고 해도 모자란다고 여길 것 아니냐"고 말했다.
"재화보다 삶의 가치를 생각해야 한다. 국민소득 100불도 안되는 나라에서 오히려 행복지수가 높다. 경제난국 속에 스스로 가난해 지면서, 사랑도 나누고, 조그마한 것까지 나눈다면 마음의 여유를 찾게 될 것이다. 돈에 모든 가치를 둔다면 우리는 영원히 어려울 것이다."
"민주공원이, 민주시민교육센터가 어떻게 나누고, 섬기고, 배려하는가를 시민정신으로 정착시켜 나가도록 하겠다. 나눔을 시민사회에서 생활화하도록 하겠다. 더구나 민주시민교육센터의 교육철학은 섬김과 배품, 나눔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런 가치들을 정리된 개념으로 시민들에게 어떻게 제시할 것인지 고민하고 있다."
이광호 관장은? |
이광호(55) 관장은 부산의 사회․문화․교육운동 분야에서 잘 알려져 있다. 교사였던 그는 '참교육'운동에도 앞장섰고, 민족예술운동에도 발 벗고 나섰다.
1981년 동아대를 졸업한 그는 22년간 교단에서 도덕을 가르쳤다. 1987년 부산교사협의회 초대 회장을 맡았던 그는 전교조 부산지부 부지부장을 지내면서 참교육과 전교조 결성 운동을 주도했다. 그로 인해 1989년 해직됐다가 4년8개월만에 복직됐다.
1997년 부산교육연구소를 설립해 소장을 맡았는데, 이 연구소에는 현장 교사 500여 명이 회원으로 가입해 활동하고 있다. 그는 2001년 부산민족예술인총연합(부산민예총) 설립에도 깊이 참여해 사무처장과 부회장을 지냈다.
오는 25일 열리는 민주시민교육센터 추진위원회 발족식 때 박원순 변호사 초청강연한다. 추진위 위원장은 이규정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이사장이 맡았고, 송기인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명예이사장과 함세웅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윤광장 5·18기념재단 이사장이 명예추진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추진위는 "학습하는 사회의 출현으로 인한 인문·사회학적 강좌를 중심으로 민주주의 가치를 전달함으로써 참여와 실천을 담아내는 평생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이 필요하다"며 그 역할을 할 것이라 다짐하고 있다.
|
마지막으로 이명박정부 1년을 어떻게 평가하느냐고 물었다. 조금 뜸을 들인다 싶더니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지난 대선 때 국민들은 경제를 살릴 CEO를 선택한다고 했고, 이 대통령 스스로 CEO라고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CEO가 아니라 어른의 모습을 보여 주었으면 한다. 현 정부에 불만이 있는 사람이거나 고통에 신음하는 국민들을 포용하는 어른의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한다. 시민을 따뜻하게 품을 수 있는 어른의 모습 말이다.
용산 참사만 보다라도 그렇다. 왜 그렇게 급한가. 서울시 또한 왜 그렇게 급하게 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언론법도 마찬가지다. 급하게 하지 않아도 되는데 말이다. 회사 경영에는 속도와 경쟁이 필요하나 국가는 다르다. 가슴 넓은 어른으로 폭 넓게 품어준다면 정말 고맙겠다는 생각이 든다."
"녹색성장을 이야기 하면서 얼마 전에는 전국적으로 자전거도로를 만들겠다고 했다. 대통령이 자동차 타고 씽씽 달리듯 할 게 아니라 자전거 타듯이 사람들을 만나서 웃음 짓고 넉넉한 모습을 보여 주었으면 한다. '영어몰입적'으로 말해서 슬로우 시티의 아놀로그 대통령이 녹색성장시대의 진정한 대통령이라는 생각이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