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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아슬아슬한 장면입니다. 차들이 쌩쌩 달리는데도 불구하고 현지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잘도 지나다니는데 그 광경이 참 불안해 보였습니다.
 정말 아슬아슬한 장면입니다. 차들이 쌩쌩 달리는데도 불구하고 현지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잘도 지나다니는데 그 광경이 참 불안해 보였습니다.
ⓒ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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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행자, '나 살려라' 하고 도망쳐야

지하철에서 내려 테헤란 바자르를 찾아다니다가 샤흐르 공원을 발견했습니다. 테헤란 사람들이 휴일 날 즐겨 찾는 공원으로 테헤란 남부 최대 공원입니다. 안내 책자에도 나오는 곳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우리는 공원 안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습니다.

샤흐르 공원으로 가기 위해서는 횡단보도를 건너야 했습니다. 횡단보도 건너가기가 이렇게 어려운 일인지 이란 와서 처음 알았습니다. 신호등이 없고 차들이 결코 멈추지 않는 횡단보도를 건너가는 일은 목숨을 담보로 뛰어드는 일처럼 어려웠지요.

좀 이상했습니다. 시내 한복판에 있는 도로에서 그것도 횡단보도가 분명 존재하는 도로인데도 불구하고 차들이 끊임없이 달려온다는 게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갔습니다. 결론은 딱 한 가지뿐입니다. 운전자 그 누구도 신호등을 안 지킨다는 것이지요.

거리에서 스쳐간  사람을 제외하고 직접 대면한 이란 남자들은 절대로 성격이 급하거나 난폭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공항에서 픽업해준 기사와 어젯밤 묵은 마샤드 호텔 매니저, 그리고 비행기 승무원, 이들은 모두 성격이 느긋하고 여유가 있어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운전대만 잡으면 야수로 , 스피드광으로 돌변하는 모양입니다.

우리나라 같으면 사람이 도로를 건너가고 있으면 차들이 사람을 치지 않기 위해 감속하고, 달려오다가도 사람을 보면 멈추는데 도대체 이 나라의 차는 술이라도 취한 것인지 아니면 도로에 서있는 사람이 미워서 죽이겠다는 것인지 사람을 아랑곳하지 않고 달려들었습니다. 그러니까 보행자가 나 살려라, 하고 도망쳐야 했습니다.

우리 작은 애는 이미 건너가 있는데 큰애와 나는 반대쪽에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습니다. 미친 듯 달려드는 차를 보면서 도저히 건너갈 엄두가 안 났습니다. 차가 멈추기를 기다리며 소비한 시간이 거의 반시간은 될 것입니다.

천신만고 끝에 건너 샤흐르 공원으로 들어가서야 여행사 안내 책자에서 읽은 말이 생각났습니다. 지금 우리가 들어선 샤흐르 공원이 '목숨을 걸고 길을 건너야 하는 테헤란의 복잡한 교통 걱정은 하지 않고 편하게 앉아 쉴 수 있는 곳'이라나요. 공원 안으로 들어왔으니 차에 치일 건 걱정은 안 해도 된다는 뜻입니다.

이란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세 가지

이란의 공원. 나무와 새와 물을 좋아하는 이란인들은 휴일이면 공원을 즐겨 찾습니다.
 이란의 공원. 나무와 새와 물을 좋아하는 이란인들은 휴일이면 공원을 즐겨 찾습니다.
ⓒ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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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흐르 공원은 겨울이라 좀 삭막했습니다. 나뭇잎은 떨어졌고, 꽃은 져버렸고, 회색 빛 공간을 오직 새들이 푸드득 날아올랐습니다. 그래도 공원으로 소풍 나오는 가족들이 보였습니다. 우리나라 초봄 같은 날씨라 가족들은 양탄자와 먹을 걸 챙겨서 나무가 있고, 햇볕이 있는 공원으로 나와 휴일을 즐기는 것이었습니다.

오늘은 10일간 계속되는 아슈라 애도기간의 8일째이자 연휴 첫날입니다. 테헤란 사람들은 긴 연휴동안 장거리 버스를 타고 다른 지역을 찾기도 합니다. 오늘 길거리에서는 아슈라 기념행사의 하나인 퍼레이드가 있을 건데 거리로 나와서 구경하는 사람도 있을 테고,  이들처럼 공원으로 소풍을 나온 가족들도 있습니다.

공원에 소풍 나온 가족 중 한 팀은 친구인지 형제인지 모르겠는데 두 가족이 함께 나왔습니다. 이들이 나무 아래 햇볕 잘 드는 곳을 찾아서 양탄자를 깔고 있을 때 다가가서 우리 가족이랑 사진을 함께 찍자고 했습니다. 차도르를 입은 아줌마는 거리낌 없이 환대하는 표정인데 아저씨는 좀 겁먹은 표정이었습니다. 낯선 사람에 대한 긴장이 느껴지는 모습이었지요. 그는 약간 머뭇거리더니 승낙하더군요.

그들과 사진을 찍고 정말 안내 책자에서 본 것처럼 차에 치일 것 걱정 안 하면서 마음 놓고 돌아다녔습니다. 샤흐르 공원에는 이란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나무와 물과 새지요.

나무 한 그루 안 자라는 벌거숭이산이 대부분이고 여름이면 기온이 50도까지 올라가는 더운 나라다보니까 물과 나무에 집착하는 것은 이해가 갑니다. 그런데 새는 왜 좋아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뱀을 애완동물로 키우는 사람도 있으니 개인의 기호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국민 대부분이 좋아한다면 무언가 연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역시 이곳 샤흐르 공원에도 새가 많습니다. 새가 많다는 건 누군가가 지속적으로 먹이를 주고 있다는 뜻이겠지요. 새들이 싸놓은 똥이 바닥에 추상화처럼 얼룩져 있습니다.

꽃 피는 봄에 샤흐르 공원을 거닐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겨울도 그리 나쁘지 않았습니다. 가디건만 걸쳐도 되는 포근한 날씨라서 걷기에 좋았습니다. 벤치에는 노인 둘이 토론이라도 즐기는 것처럼 대화에 몰입해 있는데 그 모습이 참 보기 좋았습니다. 좀전에 지옥의 횡단보도를 건너와서 그런지 천국의 한 장면처럼 편안해 보이더군요.


태그:#이란, #이란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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