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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한 통의 메일이 왔다. 높은 담의 청주여자교도소에서 보내온 글이다.

담 안의 개나리들도 봉오리가 맺히고 있고 담 안에서도 담 밖에서와 같이 계절과 일상은 어김없이 변화되고 그 흐름은 빠르다고 한다. 그 메일로 해서 함께 8개월 동안 손잡고 교육을 했던, 외모상으로는 그냥 평범한 우리들과 같았던 그들이 떠오른다.

 

새로운 만남은 늘 가슴을 설레이게 한다.

그것도 쉽게 접할 수 없는 사람들과의 만남은 두려움과 함께 하는 설레임을 갖게 한다.

대기실에서 신분증을 내고 기다리는 동안 여러번 심호흡을 하며 뛰는 가슴을 진정시켰고, 손목에 인식을 위한 투명전자도장을 찍고 처음으로 들어선 높은 담장 안은 부서지는 햇살에 눈이 부셨다. 교도관이 한 사람씩 일일이 방에서 데리고 나와 기다리고 있던 그들은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고 그렇게 해서 연극수업은 시작되었다.

 

헤어질 시간들을 앞두고 뭔가 서운해서 발길이 참 안 돌려지던 종강날.

다시 올해 새로운 강의를 의뢰받으면서 문득 여학생들처럼 수업에 열중하던 그들.

실명을 부를 수도 없고 그렇다고 푸른 수인복에 새겨진 번호를 교도관처럼 부를 수도 없기에 다양한 애칭을 지어 불렀다. 늘 몸을 사리지 않고 웃겨주며 재미난 이야기로 분위기를 돋워 주던 반장인 안개를 위시하여 맏언니같은 포근한 미소의 푸르메, 무뚝뚝하고 거칠지만 따스한 마음을 읽을 수 있었던 풍뎅이, 뭐든 열심히 그리고 신나게 최선을 다하던 재일교포 도라에몽, 늘 조용히 수업을 하고 수줍어하던 목련, 시원시원하고 화끈한 비아, 연습만 하고 정작 공연에 함께 하지 못하는 사랑이와 태희 등등...

 

처음엔 정말 막막했다.

아니 무서웠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 같다. 하지만 한 번 두 번 수업이 진행되어 가면서 서로 마음의 문이 열리는 것을 경험했다.

순간의 실수로 마약사범이 되거나, 아니면 사랑에 배신당한 게 억울해서 복수를 하거나, 인터넷으로 한 밑천 벌어보자고 벌린 사업 부도 나... 그들의 심신은 모두 자유롭지 않았고 그만큼 연극 안에서는 자유로워지기를 원했다.

 

풍뎅이 - "오해라는 것은 듣는 사람이 준비해야만 풀린다고 느꼈어요. 반대편에서 들을 준비가 안 되어 있으면 아무리 이야기 해도 소용없었어요."

태희 - "눈을 감고 시각장애인의 역할극을 해보니 눈을 차마 감지 못하는 나 자신을 느끼면서 모든 것을 내려놓지 못하는 아집 속의 나를 볼 수 있었어요."

비아 -  "삶 자체가 억울하다고 느꼈는데... 내가 한 것을 연극으로 보니 모든 게 미안하게 느껴져요."

도라에몽 - "비난과 변명 프로그램을 하면서 이게 내 속마음이구나 하고 느꼈어요."

사랑이 - "치매역할과 연극놀이를 하면서 나도 몰랐던 성격이 나와 움찔해졌어요."

 

경제사범으로 들어온 어떤 교육생은 현재의 자신의 위치를 깨닫거나 인정하지 않고 계속 지난 날 잘 살았던 기억에 의존하여 잘난 척한다고 소문이 났었다. 연극교육을 하면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상황극을 통해 다른 사람들이 줄줄이 자기 자신에 대한 반성과 겸손의 마음을 열자 그 분위기에 동화되어 자신의 현재가 너무도 마음에 안 들어서 잘난 척했다고 성찰하고 겸손해지기도 했다.

 

발표회 때. 아리랑을 공연하면서 힘들게 구한 기모노와 게다, 그리고 일본헌병옷과 제복들을 모두 입고, 분장을 했을 때 너무나 진지한 그들에 비해서 참관객들이 거의 없어 쓸쓸했다. 비록 우리들만의 행복한 시간들이었지만 이 시간들이 거름이 되어 사회에 출소하면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고 각자의 소망을 이루면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데 보탬이 되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올해는 더 많은 전국의 재소자들이 다양한 문화예술교육을 받고 마음치료의 계기가 되기를...


#수용생문화예술교육확산#여자교도소#연극교육#교육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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