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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비 기자는 중학교 2학년 학생입니다. [편집자말]
이명박 대통령 취임1년 맞은 2월 25일 오전 서울 청와대 부근 청운동 동사무소 앞에서 청소년단체 '무한경쟁교육, 일제고사에 반대하는 청소년모임 세이노(Say-no)'가 기자회견을 열고 이명박 정부의 일제고사 부활 및 무한경쟁교육을 비판하는 피켓을 들어보이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1년 맞은 2월 25일 오전 서울 청와대 부근 청운동 동사무소 앞에서 청소년단체 '무한경쟁교육, 일제고사에 반대하는 청소년모임 세이노(Say-no)'가 기자회견을 열고 이명박 정부의 일제고사 부활 및 무한경쟁교육을 비판하는 피켓을 들어보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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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듯하게 쭉쭉 자라야 할 나무를 가져다가 분재로 만들 수는 없다. 또 분재로 키워야 할 나무를 굵고 반듯하게 키울 수도 없는 노릇이다. 분재가 아름답다고 모든 나무를 분재로 키울 수 없고, 쭉쭉 뻗은 나무가 보기 좋다고 또 그렇게 할 수도 없다. 곧은 나무는 곧게, 분재는 분재로 키워야 제 가치를 하는 것이다.

우리 사람도 마찬가지다. 특히 한참 자라고 있는 우리 학생들은 더 그렇다. 반듯한 나무로 자라 목재로 쓰일 애들이 있고, 분재로 자라 작품으로 만들어질 애들이 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떻게 자라서 어디에 쓰일지 아무도 모른다. 다음에 커서 정치인이 될 사람도 있고, 과학자가 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가수나 탤런트, 개그맨, 화가가 될 사람도 있다.

어렸을 때 말도 안 되는 엉뚱한 상상만을 한 아인슈타인, 만유인력을 발견한 뉴턴,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증명한 갈릴레이도 그랬다. 그들이 어렸을 때는 한낱 말썽꾸러기에 지나지 않았지만 훗날 훌륭한 과학자가 됐다. 그들에게 똑같은 조건을 갖다대고 공부만을 강요했다면 훌륭한 과학자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 문제아라고 해서 나중에도 문제아가 되고, 지금 공부를 잘한다고 해서 나중에 훌륭한 사람이 된다는 보장은 없다. 학교 다닐 때 과학을 좋아했던 학생이 나중에 훌륭한 가수가 될 수 있고, 그림을 잘 그리던 학생이 훌륭한 정치인이 될지도 모른다. 어른들이 조금 인내심을 갖고 우리 학생들을 지켜보면 안 되나?

허무한 일제고사, 차라리 그 시간에 다른 공부 했더라면...

일제고사가 치러진 작년 10월 8일 오전 서울 미동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시험 시작 전 배포된 문제지를 보고 있다.
 일제고사가 치러진 작년 10월 8일 오전 서울 미동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시험 시작 전 배포된 문제지를 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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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학기가 시작됐다. 우리는 학교에서 일년에 네 번씩 정기적인 시험을 본다. 선생님에 따라 보는 과목별 시험도 있다. 여기에다 수행평가다 뭐다 해서 또 시험을 본다. 학원에서 보는 시험도 있다. 중학생인데도 불구하고 일주일이 멀다하고 크고 작은 시험을 보고 있다. '시험지옥'에서 살고 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게다가 올해는 일제고사까지 본다. 10일에 본다던 시험이 31일로 연기됐다. 이 시험은 문제가 참 많다. 교육청에서 성적 조작을 하고, 시험에 반대하는 선생님들을 잘라버렸다. 뭐가 그렇게 대단한 시험인지 모르겠다.

작년에도 일제고사를 본 적이 있는데 한마디로 시험 같지도 않은 시험이었다. 평소 학교성적이 상위권이 아닌 내가 보기에도 너무 쉬웠다. 다른 친구들은 학원에서 보강까지 해가며 일제고사 준비를 했다는데 정말 허무하다고 했다. 시간낭비를 했다는 친구도 있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차라리 그 시간에 다른 공부를 하든지 아니면 취미생활을 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우리가 시험을 보는 것은 그동안 배운 것을 점검하는 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시험 결과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노력을 한다. 그런 의미의 시험은 학교에서 보는 네 번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일제고사는 등수를 매길 만큼 어렵지도 않고, 시험 본래의 목적과도 동떨어져 있다. 괜히 시간만 낭비하고 스트레스만 받을 뿐이다.

시험 같지도 않은 시험 가지고 우리들의 등수를 매기고, 학교를 평가한다는 데 정말 화가 난다. 또 여러 학교에서 갈등을 빚고 있다. 일제고사를 봐야 한다고 주장하는 어른들의 생각을 정말 이해할 수가 없다. 우리 학생들을 모두 반듯한 나무로 키우겠다는 것인지, 분재로 키우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자라는 가지를 꺾어버리거나 나무를 아예 베어내 버리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우리 학생들은 공장에서 만들어내는 물건이 아니다. 모든 학생들을 똑같이 만들겠다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여러 가지 모양의 나무로 커갈 수 있는데 모두 똑같이 가지를 쳐버려서는 안 된다. 나중에 어떤 꽃을 피워낼지 지금은 아무도 알 수 없다. 매화처럼 작고 예쁜 꽃을 피울지 아니면 연꽃처럼 큰 꽃을 피울지, 또 빨강색 꽃을 피울지 노란색 꽃을 피울지, 그것도 아니면 하얀색, 분홍색, 연두색, 파란색 아니면 무지개색깔?

나는 꿈이 많다. 애니메이션 작가도 되고 싶고 화가도 되고 싶기도 하다. 소설가가 되고 싶기도 하다. 아직은 잘 모르겠다. 아빠가 옛날에 그랬던 것처럼 내 꿈도 계속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나중에 지금 내가 생각하지 못한 전혀 다른 길을 가게 될지도 모른다. 나도 내 나무의 모양이 궁금하고 거기서 어떤 꽃을 피울지 궁금하다. 아름답게 자라 산뜻한 향기가 나는 예쁜 꽃을 피우고 싶다는 꿈을 꾸고 있고, 노력할 뿐이다. 그 꿈을 위해서….


태그:#일제고사, #시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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