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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 비용

주택도 해결하고 예물 예단도 끝내고 이제 막바지로 접어드는 결혼 준비. 그러나 그것으로 모든 준비가 끝났다고 생각하면 크나큰 오산이었다. 당장 결혼식 그 자체에 드는 비용이 큰 산으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우리의 결혼문화가 얼마나 뻥튀기 되었던가. 결혼이 일생에 한 번 있는 일임을 강조하며 마케팅을 펼친 결과 대부분의 결혼 과정, 특히 결혼식과 관련된 모든 관례는 허례허식과 낭비로 얼룩져 있었다.

나중에 잘 보지도 않는 웨딩사진을 거금 들여 찍어야 하고, 한 번 입고 말 웨딩드레스는 꼭 청담동의 유명한 웨딩숍에서 거금을 주고 빌려야 하며, 자신의 인맥을 과시하기 위해 결혼식 손님 아르바이트까지 고용해야 하는 우리 사회.

물론 경제위기의 여파로 인해 현재 거품이 빠지고 그 모든 비용이 많이 떨어지고는 있었지만 그럼에도 결혼식 비용이 턱없이 비싼 건 매한가지였다. 정화수 한 사발 소반에 올려놓고 맞절해도 된다는 결혼식이 왜 이리 비싼 건지….

한참을 고민하다가 여자 친구와 나는 웨딩촬영을 안 하기로 결정했다. 1백만원이 훌쩍 넘는 비싼 가격도 가격이었지만, 찍고 나서 몇 번 보지도 않을 사진이 낭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많은 이들이 평생 후회할지도 모른다고 협박 아닌 협박을 했지만 그날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여자 친구가 과감히 웨딩촬영을 거부한 덕에 우리는 위 과정을 생략할 수 있었다.

대신 우리의 경우 예식장이 비싼 편이었다. 우리는 아버지가 10여 년 전부터 점찍어둔 나의 모교 동문회관을 예식장으로 사용하기로 했었는데, 학벌을 따지는 이 사회의 풍토에 힘입은 탓인지 그곳은 최근 경기에 맞추어 가격을 내리는 다른 곳과 달리 예전 그 가격을 유지하고 있었으며, 오히려 여러 가지 옵션을 끼워 넣어 더 비싼 편에 속했다.

별로 예쁘지도 않건만 '우라지게' 비싼 꽃 장식에, 자신이 원치 않아도 지정된 스튜디오에서 원판 사진을 꼭 찍어야 하고, 연결을 시켜주어도 청담동에 있는 비싼 웨딩숍을 소개시켜주던 그곳.

그러나 오랜 시간 동안 간직해온 아버지의 바람을 저버리기는 쉽지 않았다. 비록 비싼 금액에 불편한 교통편과 이른 시각이 마음에 걸렸지만, 학연·지연·혈연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는 이 사회에서 학벌이라는 자산을 과시하고픈 아버지의 바람을 마냥 천박하다며 무시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그 학벌을 얻기 위해 현재 많은 이들이 미친 듯이 주행하고 있는 이 사회이지 않은가. 어쩌면 무의식적으로 나 역시 그와 같은 욕망에 길들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결정이었을 것이다.

결혼식 준비의 마지막 뻘쭘한 뒷모습들. 결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결혼식 준비의 마지막뻘쭘한 뒷모습들. 결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 이희동

신혼여행 결정하기

결혼식장 결정부터 웨딩드레스, 메이크업 및 헤어, 뷔페 음식, 음료수 등 상상을 초월하는 결혼 준비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뛰어넘는 또 하나의 관문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신혼여행'이었다.

처음 여자 친구와 나는 신혼여행 비용에 관해서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결혼식 자체에 드는 비용을 늦게 산출한 이유도 있었지만, 우선 웨딩촬영을 하지 않은 만큼 아껴둔 비용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평생에 한 번 있는 신혼여행이지 않은가. 평생에 한 번.

'그래도 일생에 한 번뿐인 결혼인데…'

정말이지 위의 주문은 매우 큰 힘을 지니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은행 잔고를 보면서 실용적으로 결혼 계획을 짜다가도 일생의 한 번뿐이라는 이야기만 들으면 앞뒤 재지 않고 무조건 지르고 보기 때문이다. 결혼식이든 신혼여행이든 가리지 않고 적용되는 저 마술의 주문. 결혼과 관련된 모든 업체들이 그 마케팅의 기본으로 저 주문을 읊조리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알면서도 속는 신혼부부들.

우리에게 신혼 여행지를 선택하는 문제는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비용도 비용이었지만 그보다는 서로 취향이 너무도 달랐고, 또 각자 고집이 매우 셌기 때문이다. 신혼여행을 가면 조용하고 아늑한 우리만의 공간에서 줄창 휴양을 하겠다는 여자 친구와 일단 유적지를 찾아, 시장과 묘지를 찾아 발발거리며 돌아다니자던 나.

고민과 타협을 병행하던 우리가 신혼 여행지로 결정한 곳은 이집트였다. 그곳이 우리 둘의 취향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자 친구는 나일 강 크루즈를 타거나 홍해에서 휴양을 즐기고, 난 이집트 곳곳에 산재해 있는 유적지를 보며 또다시 어렸을 때부터 꾸었던 고고학자의 꿈을 되새기고.

그러나 이와 같은 우리의 계획은 금세 틀어졌다. 이집트를 여행하기에는 나의 결혼휴가로 주어지는 1주일이 너무 짧기도 짧았지만, 그보다는 11월부터 불거진 경제위기 이후 끝 간 데 모르고 치솟는 달러가 큰 압박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평생에 한 번 있는 신혼여행이라지만 폭등하는 환율을 보며 어찌 이집트를 계속 고집할 수 있겠는가. 비행기를 타고 10시간 넘게 간다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결국 경제 위기는 나의 청첩은 물론 금값까지 올려놓아 예물 마련도 힘들게 하더니, 신혼여행까지 힘들게 만들었다. 시절이 이렇게 하수상하니 많은 이들이 결혼을 뒤로 미룰 수밖에. 그런데도 최근 대통령은 출산율 운운했다 하니 참으로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쨌든 우리는 이집트를 포기하고 말았다. 그곳은 나중에 세계 일주를 할 기회가 생긴다면 들르기로 마음먹고 우리는 대신 둘의 취향을 만족시킬 수 있는 곳을 가까운 곳부터 훑기 시작했다. 어디를 갈까.

오랜 고민 끝에 우리가 최종적으로 선택한 곳은 베트남이었다. 여자 친구는 베트남의 나트랑이 휴양지로서 매우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했고, 내게 베트남은 학부 시절 동아시아 역사를 공부하면서 꼭 한번 가고 싶었던 곳이었다. 하노이에 누워 있는 호치민을 보며 자신을 벼리고 싶었던 나의 20대여. 게다가 그곳에는 맛있는 쌀국수와 풍부한 해산물이 있다지 않은가.

물론 베트남을 선택한 이후에도 환율은 계속 올랐고, 잔금까지 다 치렀음에도 요 며칠 전에는 여행사에서 전화가 오더니 환율 차 때문에 돈을 더 내라고 했다. 별 수 있는가. 이젠 결혼식이 바로 눈앞인 걸.

이로써 지난했던 5개월에 간의 결혼 준비가 끝내고 이제 식장에 들어가는 일만 남았다. 아직까지 너무 오랜만에 연락하기 민망하여 결혼식을 알리지 못한 친구들이 마음에 걸리지만, 그들에 대한 미안함은 결혼 이후 소주 한 잔으로 털어버리기로 하고, 이 글을 끝으로 결혼식 준비를 끝내려 한다.

모든 예비 신혼부부들 힘내시기를.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유포터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결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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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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