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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학년 새 학기가 되었습니다.
3월 2일부터 아이들은 바뀐 학년, 학급, 교실에서 새 담임과 새 친구들과 새 교과서로 공부합니다. 아직 새롭게 만날 친구들과 새 담임 선생님이 누구인지 새 교실이 어디인지 모르는 아이들, 그리고 그 아이들을 지켜보는 부모들도 모두 마음이 편치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렇잖아도 불안한 아이들을 더욱 불안하게 재촉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부모님이 아이한테 거는 기대입니다. 부모들은 누구나 새 학년 새 학기가 되어서 아이들이 좀 더 학교생활을 잘하고 공부도 잘했으면 하고 바랍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다짐하곤 하는 말이,

"1등 하면 ○○ 사 줄게."
"상 타면 △△ 사 줄게."
"100점 맞으면 □□ 사 줄게."

같은 약속을 많이 합니다. 하나 더 있다면 반장이나 전교 어린이회장이 되라고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이들 학교생활에서 부모가 아이들에게 1등 하기, 상 타기, 100점 맞기를 간절히 바라면 바랄수록 아이들과 학부모는 다 함께 불행하기 시작합니다. 왜냐구요?

아이를 망치는 말 "1등 하면 00 사 줄게"

 고학년 어느 교실에서 올해 자신의 약속을 써서 책상 위에 붙여놓고 있습니다.
▲ 새 학년 아이들의 약속 고학년 어느 교실에서 올해 자신의 약속을 써서 책상 위에 붙여놓고 있습니다.
ⓒ 이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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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은 아이에게 열심히 하게 하려고 그렇게 말한 것이지만, 이런 약속을 하게 되면 아이는 과정이야 어떻든 1등과 상이라는 결과에 집착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이 1등을 하기 위해서나 상을 받기 위해서 열심히 하기보다는 나보다 잘하는 경쟁 상대 아이를 미워하고 그 아이가 전학 가길 바랍니다. 크게 다쳐서 학교에 오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고, 심지어 죽었으면 좋겠다고도 합니다.

새 학년 새 학기에 아이들이 하고 있는 약속을 보면서, '무엇'이 되겠다는 결과 중심 약속보다는 '어떻게' 하겠다는 과정 중심의 약속이 더 필요하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 새 학년 아이들의 약속 새 학년 새 학기에 아이들이 하고 있는 약속을 보면서, '무엇'이 되겠다는 결과 중심 약속보다는 '어떻게' 하겠다는 과정 중심의 약속이 더 필요하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 이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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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을 하거나 100점을 맞기 위해 커닝을 하거나 잘못 쓴 답안지를 슬쩍 고쳐서는 선생님이 채점을 잘못했다고 거짓말도 합니다. 상을 받기 위해 남의 것을 베껴오거나 잘하는 아이 것에 몰래 이름을 써서 내기도 합니다.

1학년 아이들도 부모가 '받아쓰기 100점'을 요구하면 요구할수록 실력보다는 선생님 눈을 속여 커닝하는 방법을 익힙니다. 커닝하는 방법도 고학년을 뺨칩니다. 언제부턴가 간단한 쪽지시험을 볼 때도 커닝하는 아이들이 많아서 엄하게 감독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답안지 채점을 할 때는 채점한 답안지를 고쳐와서 잘못 채점했다고 하는 일이 많아서 4가 답인데 1로 쓴 경우에는 색연필로 1자 위에 4를 써주거나, 빈칸을 남겨두었을 때는 정답을 써 주기도 합니다.

물론 교사가 잘못 채점하는 일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답안지를 살펴보고 교사가 실수를 한 경우에는 사과하고 점수를 올려주기도 합니다. 교사가  채점을 잘못한 경우 점수가 낮아지기도 하고 높아지기도 할 텐데, 채점을 잘못했다고 가지고 나오는 것을 보면, 대부분 점수가 높아지는 경우가 많지 점수가 낮아지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1등이 되기 위한 집착이 가져온 '커닝'과 '거짓말'

분명히 교사가 잘못 채점한 것이 아니고, 답안지를 보면 연필 색깔도 다르고 답안지 뒷면에 새로 덧쓴 자국이 뚜렷해도 아이가 끝까지 아니라고 우기면 교사는 별 수 없이 점수를 올려줄 수밖에 없습니다. 이럴 때는 교사가 억울하기도 해서 아이 답안지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의뢰해서 진실을 밝혔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동안 채점을 할 때 잘못 채점했다고 점수를 올려달라고 하는 아이들을 보면 대부분 1, 2등을 다투거나 상을 받을 수 있는 경계 점수에 있는 아이들이었습니다.

부모님과 약속한 1등을 하기 위해서, 상을 타기 위해서 아이들도 별방법을 다 쓰게 되지만, 우리 아이 1등 만들고, 상을 타기 위해서 부모님들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일이 많습니다. 아이들 숙제도 부모님이 다 해주고, 그림도 다 그려주고 독후감도 다 써 주십니다. 심지어 일기까지 써 주는 부모도 있습니다. 부모가 한 걸 들키지 않으려고 아이들 글씨처럼 쓰기 위해 왼손으로 삐뚤 빼뚤 쓰면서요. 교사는 감쪽같이 속일 수 있었을 지 모르지만, 아이는 이미 다 알고 있습니다.

부모가 해 준 것으로 상을 받은 아이들은 이미 모든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때 부모는 아이가 상을 받는 당장의 목표는 달성했을지 모르지만, 아이들에게 결코 가르쳐주지 말아야 할 것을 가르쳐주고 말았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려면 이렇게 편법을 써야 한다."
"정직하게 살면 안 된다."

상을 받은 대신에 아주 큰 것을 잃고 만 셈입니다. 그 뒤로 아이들은 부모를 우습게 보면서, 부모가 아이들에게 하는 '거짓말 하지 말아라' '정직해야 한다'는 말은 씨도 먹히지 않게 됩니다.

새 학년을 맞아 아이들과 해야 할 약속은 '1등을 꼭 해야 한다'나 '상을 꼭 타야 한다'가 아니라, '1등을 하지 않아도 되고 상을 타지 않아도 좋으니, 네가 할 수 있는 만큼만 최선을 다 하거라' 입니다.


태그:#새학년새학기, #아이들의약속, #부모의바람, #1등하기, #초등교육, #불행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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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만에 독립한 프리랜서 초등교사. 일놀이공부연구소 대표, 경기마을교육공동체 일놀이공부꿈의학교장, 서울특별시교육청 시민감사관(학사), 교육연구자, 농부, 작가, 강사. 단독저서, '서울형혁신학교 이야기' 외 열세 권, 공저 '혁신학교, 한국 교육의 미래를 열다.'외 이십여 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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