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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 신장에 의지하며 살아야 하는 아내가 신우신염(腎盂腎炎)으로 병원에 일주일 동안 입원했다 집에 돌아와 안정을 취하고 있는데 장인어른이 위독하다는 전화연락이 왔습니다.

 

비보를 받고 평촌에 위치한 H대학병원 중환자실을 급히 찾았더니 장인어른은 의식불명 상태였습니다. 병원에는 장모님과 두 처남, 처제 등 가족과 장인어른의 동생인 두 작은아버지 내외분이 침통한 표정으로 중환자실 앞에 모여 있었습니다.

 

항암치료 중인 장인어른께서 오늘(2일) 병원에 다녀오는 도중 버스정류장 앞에서 넘어졌는데, 머리를 심하게 다치면서 뇌출혈을 일으키는 사고가 발생한 것입니다. 병원 측은 수술을 해도 회복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설명하면서 가족들이 수술 여부를 결정할 것을 요청한 상태였습니다. 장녀인 아내를 애타게 기다린 것은 이러한 결정을 서둘러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버님을 저 상태로 어떻게 놔둘 수 있느냐. 어쨌든 수술해야 하는 것 아니냐!"

"가망이 없다는데, 아버지만 고통스럽게 하는 수술을 해드리는게 자식 된 도리냐!"

 

난감한 상태였습니다. 아내는 가망 없는 수술을 반대했고, 주변 노인들이 수술의 고통은 고통대로 받다가 결국 돌아가신 것을 수차례 본 장모님도 반대했습니다. 큰처남과 작은처남은 그야말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막내처제는 계속 눈물 흘리고 있었고. 두 작은아버지 내외는 묵묵히 지켜봤습니다.

 

죽음을 수용하면 불효자로 낙인찍는 풍토와 죽음이 최선의 선택인 줄 알면서도 자식의 도리를 다하지 않고 포기하는 데 따른 죄의식이 어떤 판단도 쉽게 내리지 못하게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선 결국 가망 없는 줄 알면서도 수술을 요구하게 되고, 환자는 죽지도 살지도 못한 채 연명치료에 의해 억지로 숨을 쉬게 됩니다.

 

병원은 두 가지 입장에 서게 됩니다. 환자가 사망하면 진료에 실패했다는 생각에서 과잉진료를 하는 경우와 가족의 오해나 원성을 피하기 위해 최소한의 설명과 함께 가족에게 판단을 맡기는 경우입니다. 최근 모 대학병원이 법원의 존엄사 판결에 불복해 상고했는데 이러한 법적 대응 또한 현행 법률의 맹점과 사회적, 도덕적, 종교적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존엄사에 대한 원칙과 사회적 합의가 부재한 상태에서 최근 선종하신 김수환 추기경께서 바람직한 해법을 주셨습니다. 김 추기경께서는 지난해 말 병세가 악화되자 기계에 의한 연명치료를 거부하셨고, 스스로 호흡할 의사를 의사에게 밝히면서 존엄사를 선택하셨습니다. 삶뿐 아니라 죽음에 대해서 가르침을 남기신 것입니다.

 

수술포기각서 쓰자 장모님도 처제도 울음바다

 

아내가 중재안을 제시했습니다. '의식을 잠시라도 찾게 돼 가족들과 마지막 인사라도 나눌 수 있다면 수술하자! 그러나 의식은 찾지 못한 채 고통만 겪게 되는 수술이라면 하지 말자!' 라고 정리한 뒤, 당직의사의 의견을 듣고 최종판단을 내리기로 했습니다.

 

"회복 가능성이 있는 환자라면 가족들이 반대한다 해도 저희들이 설득해서라도 수술을 합니다. 환자는 이미 항암투병 중인데다 뇌출혈 증세도 심해서 수술한다고 해도 회복 가능성에 대해서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잠깐이라도 의식을 찾으셔서 가족들에게 유언을 남긴다면 어찌됐든 수술을 해볼 텐데 그럴 가능성이 높지 않습니다."

 

의사의 설명은 두 차례 이어진 것이었습니다. 우리 부부가 병원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했던 설명을 반복한 것이었습니다. 아내는 장모님 및 처제와 전화통화를 통해 마음의 준비를 했던 것입니다. 의사의 부연 설명에 따라 수술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러자 담당 의사는 잠시 난처한 표정을 짓더니 어렵게 입을 열었습니다.

 

"죄송하지만 수술포기각서를 써야 합니다!"

 

무거운 침묵이 잠깐 흘렀습니다. 장남인 큰처남이 의사의 안내에 따라 중환자실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수술포기각서를 쓰고 나온 큰처남이 눈물을 머금은 채 병원복도 끝으로 혼자 걸어갔습니다. 장남의 위치 때문에 무거운 짐을 진 큰처남은 아버지의 생명을 포기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릴지도 모릅니다. 상황에 차분하게 대처하던 장모님이 참았던 울음을 터트리자 막내처제는 더욱 서글프게 울었고 이에 아내가 어깨를 다독이며 위로했습니다.

 

"죽음은 끝이 아니야. 너무 울지 마. 병원에 오면서 하나님께 '우리 아버지를 받아주세요. 천국에서 편히 쉬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는데, 그렇게 해주시겠다고 응답해주셨어. 의료장비에 매달려 억지로 생명을 연장하면서 아버지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보다는 편히 떠나서 하늘나라에서 쉬게 해드리는 것이 아버지를 위한 길이니 너무 울지 마!"

 

존엄한 죽음을 누릴 권리

 

올해 81세인 장인어른은 군인정신(6.25)이 투철한 국가유공자입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소주 1.5병(더욱 건강할 때는 2~3병)을 꼬박 마시지만 그 이상은 결코 마시지 않는, 밤 10시에 정확히 취침하고 새벽 6시에 일어나 운동하는 등 당신의 건강을 매우 잘 챙기는 어른이었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연말 직장암 판명을 받으면서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았습니다. 하지만 수술이 매우 잘됐고 항암치료도 매우 잘 받으셔서 회복단계에 이를 것이란 믿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도둑처럼 찾아온다는 그 죽음이 기습하고야 말았습니다. 돌아가신다면 암이 원인일 것이라고 생각했지 뇌출혈 사고는 전혀 상상도 못했는데, 죽음은 늘 예측불허의 방법으로 찾아옵니다.

 

우리 부부는 죽음에 대한 원칙을 정했는데 그것은 기계에 의한 연명치료에 죽음의 존엄한 권리를 뺏기지 말자는 것입니다. 그날이 오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으므로 유언 작성으로 명문화해 놓아야겠습니다. 그런 뒤, 이 세상에서 받은 것은 이 세상에 돌려드린 뒤 영원한 안식이 있는 하늘나라로 이민 갈 계획을 세워 놓았습니다.

 

우리 부부는 장기기증 및 시신기증을 약속했고 두 아들과 딸, 어머님도 서약하면서 죽음 계획을 합의했습니다. 결코 그런 일은 일어나선 안 되겠지만 죽음엔 순서가 없기 때문에 대비한 것입니다. 시인 로버트 테스트의 '나의 침상을 죽은 자의 것으로 만들지 말고 산 자의 것으로 만들어 달라'는 시처럼 한 생애를 죽음으로 끝맺지 말고 생명의 순환으로 매듭짓자는 가족문화를 형성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죽음을 눈앞에 둔 상태에서 죽음을 말하고 결정하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가족 한 사람만 반대해도 존엄한 죽음은커녕 갈등의 불씨가 되고, 가슴에 응어리로 남아서 한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최선의 결정을 이끌어 낸 아내와 장모님, 형제자매에게 존경의 인사를 드립니다. 경각에 달린 장인어른의 뜻은 어떤지 알 수 없으나 여든 한 살의 생애를 접고 편히 떠날 수 있도록 손 모으겠습니다.

 

죽음공부를 했던 아내는 '지구상에 최대 불가사의가 있는데 그것은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그래서 웰다잉(Well-dying) 혹은 웰엔딩(Well-ending) 없는 웰빙(well-being)이란 성립될 수 없다면서 '잘 살아야 잘 죽고, 잘 죽어야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그렇게 살다 그렇게 죽는 게 우리 부부의 소망인데, 그게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인생 경주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 같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존엄사, #웰다잉, #죽음, #수술포기각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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