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녘의 봄 오는 소리를 피해, 겨울의 마지막 떨림 소리를 듣고 싶었습니다. 지난 달 28일, 가족과 함께 발걸음을 멈춘 곳은 백제의 마지막 숨소리가 묻어나는 왕도 부여였습니다. 이곳은 대학 3학년 때, 후배들과 함께 찾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25년여의 세월이 훌쩍 지났군요. 다시 보니 펄펄 날았던 젊은 시절로 되돌아가는군요. 세월의 뒤안길에서 가족과 거니는 감회가 남다르네요.
나당 연합군에 패해 멸망의 길을 걸어야 했던 비운의 왕조 백제. 백제의 처절했던 마지막 숨결이 방울방울 피멍으로 맺혀있는 곳 '낙화암(落花岩)'.
천년고송 "세월은 그저 한 순간인 것을…." 말하는 듯
백제 700여년의 왕조가 무너지던 날, 의자왕 궁녀들이 "차라리 자결할지언정 남의 손에 죽지 않겠다."고 강에 몸을 던졌다는 '낙화암'.
낙화암(문화재자료 제110호)은 후세 사람들이 궁녀들의 절의(節義)을 기리기 위해 아름다운 꽃이 떨어지는 것에 비유하여 붙인 이름이라 합니다. 후세들은 1929년 이곳 바위에 백화정(百花亭, 문화재자료 제 108호)을 세워 궁녀들의 넋을 기린다 합니다.
낙화암 입구에는 천년고송(千年古松)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소나무는 세월 흐름 속에서 궁녀들의 비장한 결심을 지켜보았겠지요? 천년고송은 그 꽃송이처럼 떨어지는 모습을 보며 뭐라 했을까요? 혹, 이러지는 않았을까요?
"세월은 그저 한 순간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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