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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드라마 속 악인들을 보면서 문득 드는 생각, '과연 저렇게 악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 있을까?'. 물론 저렇게 나쁜 사람은 없을 거야 라고 생각하지만 드라마 속 인물에는 악녀, 악인이 꼭 등장하기 마련.

 

사실 만일 그들이 없다면 갈등도, 위기도, 절정도 없을 터. 한 마디로 말하자면 '앙꼬 없는 찐빵'이 아닐까. 가령 그러한 존재가 아닐까. 홈드라마에서 주인공들의 사랑과 결혼에는 꼭 아주 고약한 시어머니가 등장한다. 이를 테면 <너는 내 운명>의 새벽의 시어머니와 같은 존재 말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자. 도가 넘치지 않는 이상, 그러한 시어머니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캔디 같은 주인공이 빛을 발하지 못한다. 즉 드라마 속에서 악인은 없어서는 안 되는 필요악과도 같은 존재이다. 단,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시어머니의 비뚤어진 자식 사랑을 악의 축으로 몰지는 말자.

 

신씨 남매 국가대표급 악인 쌍두마차 인기 견인

 

그래서일까, 요즘 들어 드라마 속에서는 쉽게 악인을 만날 수 있고, 모두가 단골 캐릭터여서 그런지 악의 강도는 나날이 성숙해지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인물이 <에덴의 동쪽>의 신태환(조민기)과 <아내의 유혹>의 신애리(김서영)이다.

 

조민기와 김서영은 각각 대한민국 대표 남녀 악인의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다. 둘의 만남을 가상으로 생각해 본다면 그야말로 세기의 대결이다. 맞수로서 명승부를 펼칠 그들. 우열을 가릴 수 없는 그들은 사실상 드라마의 인기 숨은 주역이다.

 

사실 어느덧 꽃남의 큰 형님이 되어버린 송승헌 한류 스타의 등장은 어느 정도 <에덴의 동쪽>의 인기를 예측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제 아무리 잘생긴 송승헌이 나온다 해도 인기는 장담할 수 없는 법. 물론 송승헌 때문에 새로운 꽃남이 등장해도 배신할 수 없어 보는 마음이 없지 않지만 그래도 역시 신태환을 연기하는 조민기의 카리스마를 무시할 수 없다.

 

그는 첫 회부터 악인으로서의 면모를 다했다. 신태환은 야망에 사로잡힌 남자로 동철(송승헌), 동욱(연정훈)의 아버지를 이기철(이종원)을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이미 사랑하던 여자를 배신하고 재력의 딸과 결혼을 한 신태환이다. 그는 그렇게 남을 짓밟으며 태성그룹을 창업한다. 물론 그 댓가로 자신의 아이가 이기철의 아이와 바뀐 것을 모른 채 살아왔다.

 

하지만 아이가 바뀐 것을 알게 된 후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검사인 동욱을 이용한다. 정말 뼛속까지 악으로 가득찬 듯한 그의 모습에 아들도, 아내도 두 손 두발을 든 지 오래이다. 이처럼 냉철한 카리스마가 뿜어지는 신태환이라는 인물은 더욱 악할수록 상대역인 이동철의 터프함과 원수를 향한 눈빛에 매력이 더해진다.

 

솔직히 말하자면 외모로 만점이지만 아직은 연기를 만점이라 부를 수 없는 송승헌은 신태환이라는 캐릭터에 감사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이와 함께 공교롭게도 여자국가대표 선수인 <아내의 유혹>의 신애리도 같은 성씨를 지닌 이 여인의 악행의 힘도 만만치 않은 내공을 가지고 있다.

 

물론 신태환처럼 뼛속까지 악으로 똘똘 뭉친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나지는 않았다. 워낙 질투심이 강한 성격에 부모를 여의고 혼자 살아가면서 점차 이기적인 성격으로 변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친자매처럼 지낸 구은재(장서희)를 배반하고 은재의 남편을 빼앗아 자신이 원하는 가정을 만드는 일련의 모습 속에서 그녀가 행한 범행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친구의 남편을 빼앗는 비양심적인 도덕적인 윤리부터 간통죄, 교빈이 은재를 살해하려는 모습을 방관한 살인 방조죄, 금괴를 훔친 절도죄, 은재를 강재납치를 사주한 납치죄 등등 그녀의 범죄를 날이 갈수록 더해졌다.

 

시쳇말로 별을 달아도 몇 개를 달아 영영 햇빛을 보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그러한 몰염치하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은재에게 '사랑에는 유통기한이 있는 거야. 그게 썩지 않게 냉장고에 넣어뒀든 방부제를 뿌리든 했어야'하는 거라며 충고까지 잊지 않는다.

 

더 나아가 시아버지와 시어머니에게는 한술 더 떠 돈으로 마음을 사려하고 그러지 않자 자신이 원하는 대로 소리를 지르는 등 끊임없는 악행이 펼쳐진다. 오죽했으면 시청자들이 그녀를 두고 '버럭 애리'라는 칭호를 하사했겠는가.

 

물론 요즘 들어서는 구은재의 복수에 처절하게 집에서 쫓겨나 정교빈(변우민)에게 버림 받고 처절하게 살아가며 자신의 위치를 만회하려고 또 다른 음모를 꾸미고는 있지만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아 몸살을 앓고 있다. 

 

모범답안지로 그려내 필요가 있는가?

 

그런데 문제는 지금부터다. 신태환과 신애리 모두 주인공들의 복수에 나락을 빠져들고 있는 지금, 그들의 결말이 어떨지 예측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일단 이제껏 드라마 속 악인들의 몰락은 인과응보로 당연한 결과처럼 그려졌다.

 

악행이 더하면 더할수록 그들의 결말은 처절하다. 물론 이 세상사람 모두 인과응보의 법칙에 의해 살아야 하고, 그래야만 악행을 저지르지 않는 것이 사실이고, 그래야만 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다.

 

이들의 결말이 그렇지 않다면 세상이 불공평함을 시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사족을 달자면 영악하고 영리할수록 잘 사는 세상이 된 지 오래이니. 그럼에도 드라마 속에서 인과응보 법칙을 따르는 것은 아직도 착한 심성을 가진 이들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참혹한 그들의 결말이 아닌, 때늦은 후회와 미련으로 회한의 삶을 마감하는 그 순간, 어느새 악한 눈빛은 온데 간데 사라져버리고 교화가 되어버린다는 사실이다. 이전 모든 드라마가 그러했다.

 

세상의 모든 영화 속, 드라마 속 악인들은 그러했다. 단 한 번도 자신의 삶을 후회하지 않고 작렬하게 최후를 맞이하는 이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특히 선악구도가 극대화된 트렌디 드라마에서는 신데렐라 법칙에 따라서 악녀의 모든 악행이 등장하고, 결말은 참흑했으나 교화로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금 태어났다. 그리고 신데렐라와 백마 탄 왕자를 오래오래 행복했다.

 

그 결론은 이제 너무 시시하다. 물론 인과응보 법칙을 따라야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지만 신태환을 연기한 조민기가 어느 인터뷰에서 말한 것처럼 "꼭 모범 답안지를 제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의견에 적극 동감한다.

 

사실 이들의 악행이 도를 넘지 않은 선에서 이루어졌다면 "그래. 인간에게는 양면성이 있는 것이니"라고 받아들이기 쉽겠지만 이들의 악행은 인간이길 포기할 만큼 극단적인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즉, 이들의 캐릭터는 주연을 빛나게 하기 위해 악행이 더욱더 심화될 운명을 타고난 캐릭터였다.

 

그런데 그렇게 나쁜 사람들이 최후의 결말이 되었을 때 그리 쉽게 교화될 수 있었다면 극중에서 좀 더 일찍  착한 사람으로 환골탈태를 했어야 한다. 오히려 교화되는 모범 답안지는 정답이겠지만 억지스러운 전개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오히려 <하얀거탑>의 장준혁(김영민)과 <내 남자의 여자>에서의 화영(김희애)와 같은 캐릭터였다면 신태환과 신애리의 교화도 나쁘지 않았을 법한 결말이다. 장준혁은 자신의 야망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았고 그의 최후도 참흑했다.

 

그렇지만 그의 야망을 바라보는 시청자들은 함께 아파했고, 최고의 캐릭터라는 찬사를 보냈다. 더 나아가 화영이라는 캐릭터는 신애리처럼 친구의 남편을 빼앗았지만 그녀의 모습에 시청자들은 '죽일 XX'라고 말하면서도 한편으로 동정과 연민을 보냈다.

 

그것은 그녀가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충분히 납득할 만큼 심리적인 묘사를 보여주었기에 가능했다. 그래서 그녀를 두고 우리는 악녀라고만 지칭하지 않는다. 이것이 김수현 작가의 내공이라는 사실을 차치하고도 신애리와 화영이의 캐릭터는 비슷한 성격과 행동을 취하고 있지만 다르다.

 

특히 화영이는 극중에서 친구의 남편을 빼앗은 죄에 대해 용서를 구하면서도 당당했다. 그 남자를 사랑하고 자신의 것을 만들었지만 끝까지 자신이 선택한 사랑에 대해 후회하지 않았다. 다만 전부를 가질 수 없음을 깨닫고 떠났다. 교화라고 하기보다는 쿨한 결말이었다.

 

즉, 신태환과 신애리가 어느 정도 악인으로서의 합당한 이유가 있었다면, 그들의 교화는 시청자들로부터 설득력을 얻을 수 있었을 테고, 그렇지 않다고 해도 동정과 연민을 시청자들로부터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은 그들을 연기한 조민기와 김서영의 연기가 그러한 허점을 커버할 만한 충분한 연기력을 보여주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지금 결말로 향하고 있는 두 캐릭터에게 때늦은 참회, 교화 따위는 이루어지지 않고, 끝까지 악인으로 남으면 어떨까, 싶다.


#드라마 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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