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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주민들이 전통방식 그대로 메주를 만들어 팔고 거기서 얻은 수익금으로 주민들의 사랑방인 마을회관과 운동시설인 게이트볼 경기장을 짓는 등 마을 공동의 시설을 건립, 인근 마을 주민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화제의 마을은 전라남도 함평군 나산면 초포2리 입석마을.

 

17가구, 35명이 살고 있는 입석마을은 '메주·된장마을'로 널리 알려져 있다. 마을로 들어서니 돌담 안에 조성된 장독대와 '메주·된장'이라고 새겨진 항아리 안내판이 눈에 띈다. 마을회관도 여느 시골마을과 달리 호화판(?)이다. 텔레비전은 물론 운동기구들까지 즐비하다.

 

"메주 팔아서 얻은 이익금으로 게이트볼장도 만들고, 마을회관도 짓고, 마을 정화사업도 하고 그랬어. 다 메주 덕분이지. 메주가 돈을 만들어 줬거든…."

 

게이트볼 게임을 하다가 뒤쫓아 온 이형채(78) 마을 노인회장의 얘기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아직도 가시지 않은 메주 냄새가 코끝을 간질인다.

 

지난 겨울 마을 주민들이 만든 메주는 3800여 개. 콩 40㎏들이 200여 가마를 삶아 만들었다. 이 메주는 개당 1만 원씩 모두 팔았다. 3800여만 원의 수익을 올린 셈이다. 뿐만 아니다. 지난해 봄 된장과 간장으로 만들어 놓았다가 판 것까지 합하면 수입은 이보다 훨씬 많다.

 

"올해는 메주 주문이 많이 들어와서 된장도 담그지 못했어라. 된장은 ㎏당 7000원 하는디, 지금 팔고 있는 것은 작년 것이여. 내년에는 메주를 더 많이 만들어야겄소."

 

이 노인회장의 마을자랑이 이어진다. 마을주민들은 이렇게 메주를 팔아 얻은 이익금을 마을 공동 운영비로 썼다. 나들이도 하고, 집집마다 조금씩 나누기도 했다. 지역의 혼자 사는 노인과 결손가정 등을 돕는 일도 빼먹지 않는다. 몇 년 전 강원도에 수해피해가 났을 땐 된장과 간장을 위문품으로 보내기도 했다.

 

입석마을 주민들이 메주를 만들기 시작한 건 지난 1997년. 농협과 콩 계약 재배를 한 주민들은 남아도는 콩을 어떻게 처리할까 궁리하다가 메주를 만들어 팔 생각을 했다. 이익금은 마을 공동의 자금으로 쓰기로 의견도 모았다. 메주 만드는 기간도 농한기여서 부담이 없었다.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메주 공장이 없던 시절이어서 겨울이면 집집마다 메주 만드느라 온 동네가 콩 삶는 냄새로 진동을 했네. 방에다 메주를 말리느라 잠자리도 불편하고, 방안 온도도 다르니까 메주 품질도 제각각이었제."

 

김재일(70) 할아버지의 회고다. 주민들은 이렇게 만든 메주를 직접 싸들고 도시로 팔러 나갔다. 시장도 가고, 아파트에도 갔다. 주택가 골목을 누비기도 했다. 평생 농사만 지어온 주민들에겐 쉽지 않는 일이었다. 잡상인 취급을 받으며 쫓겨날 때도 있었다. 포기하고픈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주민들은 서로 격려하며 이겨냈다.

 

이런 세월을 2∼3년 보내자 서서히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들이 가지고 다니면서 파는 메주와 된장이 진짜 토종이라고. 주문도 들어왔다. 하나 둘씩 단골이 생기고 주문량도 늘었다. 멀리 강원도에서, 제주도에서도 주문이 들어왔다.

 

수익금도 불었다. 본격적인 메주 만들기에 나서기로 하고 땅을 사들여 마을 공동의 메주공장을 만들었다. 커다란 무쇠 솥을 내걸고 황토로 숙성방도 만들었다. 건조장도 만들었더니 어엿한 공장이 됐다.

 

하지만 마을 뒷산에서 채취한 장작으로 콩을 삶아 메주 만드는 방식만은 바꾸지 않았다. 소금도 신안에서 생산된 천일염을 가져다가 마을창고에 켜켜이 재놓고 3년 이상 간수를 뺐다. 지난번 메주를 만들 때 쓴 것도 생산된 지 5년 된 천일염이었다. '소금만 따로 살 수 없냐'고 물어오는 소비자가 있을 정도라고.

 

"기름으로 불을 지피고 아무 소금이나 사다 만들면 편하고 좋지라. 근디 그렇게 만들면 맛이 안 나. 이왕 만들 거면 맛있게 만들어야 하지 않것소."

 

마을사람들의 순박함은 된장과 간장을 담는 항아리에도 담겨있다. 장독대를 가득 메우고 있는 옹기도 50년이 넘은 것이다. 100년 된 항아리도 있다. 함평 구석구석을 헤집고 돌아다니며 구한 것들이다. 옛날 만든 항아리에 장을 담가야 제 맛이 난다는 믿음 때문이다.

 

"개인의 이익을 생각한다면 할 수 없는 일이여. 지금까지 아무런 잡음 없이 이렇게 해올 수 있었던 것은 주민들이 공동으로 해왔기 때문이제."

 

이성환(68) 할아버지의 말이다. 처음 메주를 만들 땐 인근 마을까지 포함해 3개 마을에서 시작했지만 다 중도에 포기하고 입석마을만 남았단다. 마을주민들의 메주 만드는 작업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관심 갖고 지켜볼 일이다.

 


태그:#입석마을, #메주마을, #함평, #이형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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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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