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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겨울바람이 날을 세우던 20여년전 3월 어느날. 원주시 반곡동 치악산자락에 자리잡은 성냥갑 만큼 작은 봉대초등학교에 작업복 차림의 낯선 청년이 쭈뼛거리며 교무실로 들어섰다.

학교 졸업생이라면서 별 말 없이 계면쩍은 웃음만 흘리던 그가 한보따리 보자기를 내밀고 갔다.  그가 두고 간 보자기 속에는 공책 200권이 들어 있었다.  그 날부터 그는 한해도 거르지 않고 이 학교를 찾아와 또 그렇게 계면쩍은 웃음만 흘리며 봉투를 남기고 돌아간다.

 강헌씨는 원주 봉대초교 16회 졸업생이다. 그는 누가 있든 없든 늘 그렇게 계면쩍은 듯 엷은 미소를 흘린다. 그의 미소는 바라보는 사람을 편안하게 하면서도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게 하는 묘한 구석이 있다.
▲ 20여년간 후배들에게 장학금 건넨 강헌씨 강헌씨는 원주 봉대초교 16회 졸업생이다. 그는 누가 있든 없든 늘 그렇게 계면쩍은 듯 엷은 미소를 흘린다. 그의 미소는 바라보는 사람을 편안하게 하면서도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게 하는 묘한 구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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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시 단계초등학교 옆 골목에서 구멍가게를 하는 강헌(55)씨. 그는 지금까지 차를 산 적이 없다. 휴대전화도 없다.  20여년전 그때 그는 자전거 우유배달원이었다. 보릿고개 넘기기가 죽기보다 고통스러웠던 지난 60년대 그는 6.25사변통에 월남한 부모님 밑에서 2남3녀의 남매들과 함께 굶기를 밥 먹듯하면서 이 학교를 다녔다.

아버지가 집을 나간 뒤 강씨 가족은 길거리로 내몰렸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누구보다도 더 든든한 이웃이 있었다. 살 터를 내놓고 허름하지만 살 집을 지어주고 끼니를 때울 쌀과 찬거리를 갖다줬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감사해서 눈물이 났어요. 어른이 되면 꼭 갚겠다고 생각했구요. 그냥 그때 생각하면서 은혜를 갚고 있을 뿐인데 ..."

66년 이 학교를 졸업하고 원주중학교에 입학했지만 가난한 집안 사정은 나아지지 않자 강씨는 결국 1학년을 마친 뒤 학교를 그만두고 서울로 가게 된다.  15세의 어린 나이에 닥치는 대로 일을 하던 그는 쌀가게 점원으로 취직해 악착같이 일해 돈을 모았다.

그로부터 군대를 갈 때까지 8년 동안 강씨는 종잣돈 60만원을 들고 고향인 원주로 내려와 자신이 다니던 봉대학교 근처에 자그마한 산을 하나 사고, 지금 사는 단계동 골목에 집을 장만해 석유가게를 냈다.

그러나 주유소가 많이 생겨나면서 생각만큼 장사가 잘 안 되자 석유가게를 접고 우유대리점 배달원으로 취직을 해 새벽에는 배달하고 낮에는 판매활동하며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날 "이렇게 살다간 돈 벌어 은혜갚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든 그는 무작정 공책 200권을 사가지고 학교로 갔고, 그 날을 시작으로 매년 10만원 20만원 70만원씩 장학금을 늘려가던 그는 지난해에는 120만원을 내놓았다. 학교측에서 감사하다며 졸업식에 초청해 참석한 적도 있지만 생색내는 것 같기도 하고 쑥스러워 가지 않는다.

인터뷰하는 내내 그는 이렇게 두손을 모아 쥐고 있었다. 목소리도 조용조용했다.그를 만나는 순간 좋은 사람이란 걸 느꼈다.
▲ 그의 앉아 있는 자세에서도 근면함이 느껴졌다. 인터뷰하는 내내 그는 이렇게 두손을 모아 쥐고 있었다. 목소리도 조용조용했다.그를 만나는 순간 좋은 사람이란 걸 느꼈다.
ⓒ 배형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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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일 하는 게 아니에요. 그냥 은혜를 갚고 있을 뿐인 데 모르는 사이에 또 은혜를 입고 있더라구요. 아이들 얘기에요. 두 딸이 있는 데 공부를 잘해서 둘 다 장학생으로 대학을 졸업했어요. 갚은 은혜보다 받는 은혜가 더 크기 마련인가 봐요"

쑥스러운 얼굴로 툭툭 던지는 그의 말 속엔 그만의 삶의 철학이 배어있었다. 그런 그의 선행이 입소문을 타고 동문들에게 알려지면서 올해 봉대학교엔 장학금 봇물이 터졌다.

이 학교 정대인 교장 선생님은 "19회 졸업생들이 힘을 보태겠다면서 300만원을 내놓는가 하면 어려운 아이들 도와주라면서 너도 나도 봉투를 내놓아 이 작은 학교에 순식간에 760만원의 장학금이 모였다. 그 덕분에 올해 졸업한 15명 전원에게 40만원씩 장학금을 전달했다"면서 "내색도 안 하시면서 좋은 일 많이 하시는 정말 배울 점이 많은 분"이라고 했다.

그는 차를 산적이 없다. 휴대전화도 없다. 고물이 다된 88오토바이가 그의 유일한 삶의 수단이자 도구이다.
▲ 봉대초교 장학금 배달부 강헌씨 그는 차를 산적이 없다. 휴대전화도 없다. 고물이 다된 88오토바이가 그의 유일한 삶의 수단이자 도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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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이 다 된 88오토바이가 그의 유일한 삶의 수단이자 도구이다. 그는 오늘도 자신이 내놓은 장학금으로 웃으며 공부하고 있을 아이들을 생각하며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을 다닌다. 그런 그를 소개한 원주시 행구동사무소 김태엽(55)동장은 "돈 부자는 아니지만 마음 만큼은 누구보다 넉넉한 속 부자"라고 했다.


태그:#글로벌경제위기, #휴대전화, #장학금, #원주, #봉대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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