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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이 턱 막히면서 답답해져 훌쩍 차를 몰고 혼자서 동해안을 향해 달렸다.
 숨이 턱 막히면서 답답해져 훌쩍 차를 몰고 혼자서 동해안을 향해 달렸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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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못 자고 식사 잘 못하는 게 갱년기 증상?

설날이 지난 뒤, 잠이 잘 안 오고 음식도 잘 먹히질 않았다. 밤 한 두 시에 자도 서너 시에 깨서 낮에는 피곤하고 졸렸다. 비몽사몽이랄까? 입맛도 달아났다. 먹는 것도 하루에 많으면 두 끼 아니면 한 끼가 고작이었다. 당연히 몸무게는 두어 달 사이에 4~5킬로그램이 빠졌고 몸은 피곤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자다가도 갑자기 울컥울컥 치밀어 오르는 것이 있었다. 이 생각 저 생각으로 잠이 안 오기도 하고, 가슴 한편이 답답하기도 하고 구멍난 것처럼 허하기도 하였다. 뭐라고 정의를 내릴 수가 없었다.

좋아하던 등산도 자전거 타기도 시들해지고, 매번 친구를 불러내 하소연할 수도 없었다. 드라이브도 당기지 않았다. 어느 날은 딸아이하고 둘이 집에 있는데, 숨이 턱 막히면서 답답해져 훌쩍 차를 몰고 혼자서 동해안을 향해 달렸다. 평일이라 길은 잘 뚫렸다. 

파도 부서지는 소리와 끝없는 푸른 바다를 보며 시원함을 느껴보기도 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남애항 해안도로가에 있는 예쁜 카페에 앉아 아침 겸 늦은 점심을 시켜먹고 차를 마시며 바다를 실컷 바라보았다.

답답한 마음, 노래방에 가서 질러대다

혼자 노래방 가기는 남 괴롭히지 않고, 식구들이나 주변 사람들 괴롭히지 않고 내 나름 최고(?)의 비결이다.
 혼자 노래방 가기는 남 괴롭히지 않고, 식구들이나 주변 사람들 괴롭히지 않고 내 나름 최고(?)의 비결이다.
ⓒ 홍경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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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 돌아오자 금방 답답해졌다. 노래방에 들렀다. 처음엔 굉장히 쑥스러웠다. 맨정신에 혼자 간다는 것이. 그러나 이젠 몇 번 가다 보니 그런 것도 없어졌다. 이젠 서비스 시간을 많이 주는 집으로 아예 고정을 했다. 어느 날은 30분 신청을 했는데 서비스로 30분씩 두 번 아니 세 번을 주는 경우도 있었다.

아는 노래, 모르는 노래 마구 눌러서 불러 제꼈다. 30분에 1만 원이란다. 그래도 마음껏 소리를 지를 수 있어 좋았다. 노래를 못해도 창피하지 않았다. 혼잔데 뭐 어때? 어디 가서 돈 1만 원에 이렇게 시원하게 속을 풀어보랴!

친구는 혼자 노래방에 가지 말라고 성화다. 궁상맞고 이상하다나? 그래도 어쩌나. 한편으론 다행 아닌가? 비싼 모피 사느라고 돈 지르지 않고, 명품에 지르지 않고, 값비싼 보석에 지르지 않고, 저렴한 돈으로 해결하는 이 방법이 오히려  건강하지 않은가. 남 괴롭히지 않고 식구들, 주변 사람들 괴롭히지 않고, 내 나름 최고(?)의 비결이 아닌가 한다.

끝나지 않는 가장 역할에 진저리가 나고 이사 갈 돈을 빌려야 하는 상황도 싫다. 나도 다소곳이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살림하고 남편에게 고마워하며 살고 싶다. 머리 복잡하게 계산해 가며 살고 싶지 않다. 얼마 후 이사를 가야 하는데, 모자라는 전세값 3천만 원을 이리저리 알아본다. 빌려야 한다. 좀 더 싼 이자를 찾아야 한다. 상환기간, 거치기간 따져야 한다. 난 이렇게 안 살면 안 되나?

이젠 눈물도 나지 않는다. 말라 버렸는지. 감정은 끓어도, 눈물이 나올 듯 나올 듯하다가 멈춰 버린다. 원래는 울보였는데, 40이 넘어서도 아무데서나 주책없이 흐르던 눈물이었는데….

우울증엔 가족의 사랑이 묘약

바빠지면 나아지려나? 시간 여유가 있던 2월엔 정말 미칠 지경이었다. 낮엔 그런대로 다른데 신경을 쓰면서 지낼 수 있었는데, 밤이 되면 허전함과 울컥함, 가족들에 대한 서운함, 외로움 등이 서로 엉키면서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고문이었다. 이대로 아침에 깨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잠자리에 드는 날도 있었다.

3월이 되면서 따뜻한 봄볕과 살랑거리는 봄바람을 쐬면 좀 나아질까? 다행히 가족들은 자기 자리를 조용히 지키면서, 내가 제자리로 돌아올 날만 기다리는 눈치다. 딸은 "엄마, 갱년기는 누구나 다 오는 거래. 호르몬 변화 때문이라는데 약 먹어보면 어때?"라고 했고, 남편도 "김 원장(한의원 하는 남편 친구)한테 말해서 한약 한 재 지어달라고 할까?" 한다.

"됐어."

약이 문젤까? 가족들의 따뜻한 위로를 받고 싶다. 그동안 20년 넘게 너무 앞만 보고 열심히 살아 왔다. 등 떠밀린 가장으로. 경제 문제 때문에 다른 쪽에 신경쓸 겨를이 없었고, 남편 도움 없이(?) 아이 둘 키우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 나 자신에게 보상 한 번 제대로 못하고 살아온 것 같다. 이젠 모든 짐을 내려놓고 좀 쉬고 싶다. 숨 가쁘게 달려온 길. 속도를 줄이며 주변을 돌아보고 싶다.

가족들로부터도 벗어나고 싶다. 차려줘야 할 저녁밥상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 거실에 누워 TV를 보고 있을 식구들이 보기 싫어 집에 늦게 들어간다. 노래방에 들러 가슴속에 쌓인 한숨을 털어내고 들어간다. 굳이 다음날 해도 될 일거리를 붙잡고 씨름하며 귀가시간을 늦추기도 하였다.

어느 날엔 집에 가는 길을 굳이 한참을 돌아서 타박타박 걸어 가기도 하였다. 퇴근하고 집에 들어섰을 때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아이를 보면, 출근 안 하는 토요일 TV를 보고 있는 남편을 보면 숨이 턱 막힌다.

가족들은 내가 너무 씩씩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가족들, 나 기다리지 말고 밥 잘 챙겨 먹고, 빨래가 쌓이면 세탁기 돌려 빨래 널어 말리고, 애정 어린 요리 만들어 나에게도 한 접시 챙겨주고 가끔은 사랑한다고 문자도 보내주면 안 되겠니?

힘겨운 발걸음으로 집에 들어서는 날  반갑게 안아주면 안 되겠니? 엄마는 늘 강한 철의 여인이라고만 생각하지 말고 성인이 된 너희들이 보호해줘야 할 중년이라고 생각해주면 안 되겠니?

엄마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안 되겠니?

나 기다리지 말고 밥 잘 챙겨 먹고, 빨래가 쌓이면 세탁기 돌려  빨래 널어 말리면 안 되겠니.
 나 기다리지 말고 밥 잘 챙겨 먹고, 빨래가 쌓이면 세탁기 돌려 빨래 널어 말리면 안 되겠니.
ⓒ 오마이뉴스 박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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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년기
갱년기는 폐경기라고도 하는데, 난소의 기능으로 보아 여성으로서 성숙기에서 노년기로 이행하는 시기를 말한다.

갱년기 연령은, 체질·영양상태·분만 횟수 등에 따라 개인차가 있으나, 통계적으로 40~55세로 본다. 일과성열감(一過性熱感)·동계(動悸:심장의 고동이 보통 때보다 심하여 가슴이 울렁거리는 일)·현기증·이명(耳鳴)·고혈압 ·소화기장애·두통·기억력 감퇴·우울증 등이 나타난다.

증세의 정도에는 개인차가 심하여,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을 정도의 가벼운 것에서 아주 자리에 눕게 될 정도의 중증까지 각양각색이다. 약 30%가 치료를 받고 있으나 대개는 1~2년 동안에 저절로 낫고, 치료는 주로 호르몬을 보충한다. (네이버 백과사전)
이젠 힘이 드는구나. 이제 나이 먹고 기력 떨어지고 총기도 떨어져 예전의 날렵하고 민첩하던 내가 아니다. 무엇을 듣고도 들었다는 기억이 전혀 없이 처음 듣는 얘기 같고 뭔가를 하려고 했다가도 돌아서면 잊어버리고 냉장고 문을 열고 뭣을 꺼내려 했는지 기억을 못하는 나이가 되었다.

말귀를 잘 못 알아듣는다고 핀잔하지 말아라. 설거지 잘 안 되었다고 짜증내지 말아라. 나, 이 나이 되어보니, 너희 외할머니 외할아버지한테 가끔 짜증 섞인 말을 했던 거, 핀잔 주었던 거 후회되는구나. 이미 때는 늦었고. 그분들은 안 계시고.

어떤 땐 느닷없이 서글퍼지고 괜스레 눈물이 흐른다. 친구들은 갱년기 우울증이 호르몬의 변화 때문이라며 칡즙을 먹어보란다. 자기들은 그것으로 효과를 봤다며.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리라 믿으며 하루하루 지낸다. 지금은 새 학기가 되어 분주하다. 몸은 힘들지만 오히려 정신적으론 마음 줄 데가 있어 더 나은 것 같기도 하다.

날씨도 따뜻해졌으니 자전거를 다시 타야겠다. 자전거를 타며 다가오는 바람에 정면으로 맞서며 다시 힘을 추스르고 당당하게 나를 걸 수 있는 일을 찾아 도전해야겠다. 언제까지 무기력하게 주저앉아 시간만 죽일 수는 없지. 이제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점점 빨리 흘러갈 것이고 건강도 장담할 수만은 없지 않은가.


태그:#갱년기, #우울증, #여성호르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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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수성과 감동은 늙지 않는다"라는 말을 신조로 삼으며 오늘도 즐겁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에 주저앉지 않고 새로움이 주는 설레임을 추구하고 무디어지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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