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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리 뜯어봐도 합격의 당락이 뒤바뀐 것 같은 이런 사례들에 대해 고려대는 명확하게 해명 하지 않았다.
아무리 뜯어봐도 합격의 당락이 뒤바뀐 것 같은 이런 사례들에 대해 고려대는 명확하게 해명 하지 않았다. ⓒ 화면캡쳐

한 편의 코미디를 보고 있는 기분이다. 그런데 썩 유쾌하지만은 않다. 보고 나서 어이없음에 실소를 짓게 만드는 코미디랄까? 왜 종종 그런 게 있지 않나. 하는 개그맨은 웃기다고 하는데 보는 관객들은 어디서 웃어야 할지 포인트를 못 잡겠는, 뭐 그런 것 말이다. 이런 기분을 느껴보고 싶다면 지금 당장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고려대 수시모집 의혹'으로 검색해 보면 된다. 정말 실컷 느낄 수 있다.

고려대 2-2학기 수시모집 부정 의혹에 대해 지난 2월 26일 한국대학교육협의회(이하 대교협)가 고려대의 손을 들어줬다. 대교협 윤리위원회가 조사한 결과 고려대는 일각에서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고교등급제 및 입시부정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고려대에서도 같은 날 기자회견을 열고 고교등급제와 입시부정은 절대 없었다고 해명했다.

이번 고려대 수시모집에 관한 의혹은 크게 두 가지다. 고려대가 외국어고등학교를 비롯한 특목고를 우대하기 위해 고교등급제를 시행했다는 것, 그리고 그러한 고교등급제 시행 과정 중 어떤 '실수'나 '사고'가 발생하여 학생들 간의 합·불합격의 당락이 바뀌어버렸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고려대의 해명은 다음과 같다. 일단 특목고를 특별히 우대한 적이 없단다. 실제 전형 결과 일반고 학생들의 합격률과 특목고 학생들의 합격률이 각각 52.4%, 57.5%로 비슷하고, 내신 등급이 낮은 외고학생들이 무더기로 합격한 것처럼 등급이 높은 외고학생들도 상당수 떨어졌다는 것이다. 또 일반고에서 내신 등급이 높은 학생이 떨어진 것과 동일 학교 내에서 등급이 높은 학생은 떨어지고 반대로 등급이 낮은 학생이 합격한 것은 전형에서 10%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비교과 영역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고려대의 해명은 개운하지가 않다. 일단 그 해명으로 납득할 수 없는 게 너무 많다. 동일 학교 내에서 내신 등급이 낮은 학생이 합격하고 높은 학생이 떨어진 게 비교과 영역 때문이라고? 그렇다면 내신 등급도 낮고 비교과 영역도 뒤지는 학생이 높은 학생을 제치고 합격한 건 어떻게 설명되어야 할까? 또 비교과 영역이랄 게 별로 없는 두 학생 중 내신 등급이 낮은 학생이 높은 학생을 제치고 합격한 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미 지난 2월 1일 방영된 MBC <시사매거진 2580>에서 그런 사례들을 소개한 바 있지 않던가?

고려대가 해명해야 할 건 바로 이 점이다. 지금 내신에서 낮은 등급을 받은 학생이 비교과 영역에서 역전할 수 있다는 얘기를 하라는 게 아니다. 그건 이번 의혹과 관련해서 아무런 대답이 못 된다. 단순히 봉사활동 시간이 많다든가 상을 많이 받았다고 해서 비교과 영역 점수가 높은 게 아니라고? 그럼 그 평가기준도 공개해야 한다. 그게 의혹을 풀고 소위 '해명'을 하겠다는 측의 기본적인 자세 아닌가?

 논란의 중심인 상수값 알파(α)값과 케이(k)값 역시 고려대는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다.
논란의 중심인 상수값 알파(α)값과 케이(k)값 역시 고려대는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다. ⓒ 고려대학교

비교과 영역을 점수로 정확히 환산하기 어렵다는 것까진 수긍할 수 있다. 그렇지만 '상식적인' 수준에서 볼 때, 전반적으로 비교과 영역에서 뒤처지는 학생이 높은 학생을 제치고 합격한 케이스가 이미 여러 곳에서 나타났다. 해당 학생들의 지도 교사도, 입시 전문가도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심지어 합격한 당사자까지도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하는데, 이게 카오스(Chaos)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또한 고려대는 의혹의 중심에 서 있는 상수값 알파(α)값, 케이(k)값은 왜 밝히지 못하는가? 고려대가 이번 해명 기자회견에서 밝혔어야 하는 건 다름 아닌 이 두 상수값이 내신 보정 공식과정에서 어떻게 쓰여 지느냐는 것이었다. 이 과정이 복잡해서 밝힐 수가 없다고? 그러니까 지금 사람들이 고려대만의 그 복잡한 보정과정을 이해하기 어려우니까 안 밝히겠다는 건가? 걱정도 사서 한다. 대한민국에 입시전문가가 어디 한 둘인가? 고려대가 자세한 걸 공개하기만을 목을 빼고 기다리는 입시전문가들 수두룩하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서태열 고려대 입학처장이 기자회견 도중 이 엉터리 해명에 항의하는 몇몇 기자들에게 "이미 반증 자료를 제시했고 이 자료를 부정하면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논리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해명을 먼저 해놓고 그것에 대해 항의하는 사람에게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하니, 대체 누가 누구한테 '논리' 운운하는 건지 모르겠다.

대한민국 명문사학 '민족고대'여, 제발 더 이상 낯부끄러운 짓 좀 하지 마라. 지나가는 멍멍이도 웃을 엉터리 해명을 해명이랍시고 하고, 가재는 게 편이라고 대교협은 혐의 없다고 손 들어주고, 아주 둘이 죽이 척척 맞는다. 아니지, 둘이 아니라 셋이다. MB정권은 대학을 '자율화'한다고 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눈 딱 감아주는 대교협에 입시전권을 이양하고 대학 자율화한다는 정부까지, 정말 세트로 죽이 척척 맞는다.

작년에 고려대 경영학과가 한 가지 빼고 서울대보다 좋다는 고려대의 도발적인 광고가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그 한 가지가 이명박 대통령이다 뭐다 해서 누리꾼들 사이에서 말이 많았는데, 이제야 그 한 가지가 뭔지 알 것 같다. 고려대여, 서울대보다 잘나고 싶으면 기자회견부터 다시 해라.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면 모든 걸 공개하고 온갖 의혹에 정면대응하면 된다. 대교협도 면죄부 줬겠다, 나름 해명도 했겠다, 이런 식으로 입 싹 닦고 스리슬쩍 넘어가려고? 그딴 식으로 하다간 평생 가야 서울대 못 이긴다.


#고려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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