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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숲은 텅 비어있고, 나무는 아직 옷을 입지 아니하였습니다.

작은 풀꽃들 어서어서 피어나라고, 그 작은 것들이 숲의 가장 낮은 곳에서 잔치를 벌이고나면 피어날 터이니 어서어서 빈 숲 채우라고, 숲은 텅 비어있습니다.

 

텅 비어있는 듯하지만 가까이 가면 숲 속에는 이미 작은 혁명이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열이 많은 작은 들꽃들은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피어났으며, 푸릇푸릇한 기운이 물기머금은 나뭇가지마다 가득합니다.

 

밑둥만 남겨진 나무, 나이테를 가늠할 수 없는 모습으로 남아있습니다.

저만큼의 세월의 사계를 그도 충실히 살아냈을 터인데 베어져 말라버린 삶의 시간이 더 길어진 지금 생명의 기운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베어져서도 나무 밑둥만으로도 생명의 끈을 붙잡고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을까요?

사람들의 편리를 위해 베어지는 생명, 사라지는 생명에 대한 조의를 표하지 않는 만큼 우리 사람들의 마음도 강퍅해진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도 봄입니다.

초록의 봄빛깔을 시샘하는 서리, 그 둘이 만날 날도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아나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그가 있어 내가, 내가 있어 그가 아름다운 것이 자연입니다.

요란을 떨지 않고, 급하게 서두르지 않고, 아주 작은 것부터,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봄은 옵니다.

 

오는 봄 바라보며 우리네 삶도 평안하기 위해서는 오는 봄 닮아야하지 않겠는가 마음에 담습니다.

 

 

아침 햇살에 낙엽을 타고 어름이 녹아 물방울이 되어 낙엽을 타고 떨어집니다.

그리고 작은 물방울들이 작은 실개천을 만들어 계곡으로 향하고, 맑은 계곡물에는 아직 살얼음이 남아 '아직도 겨울!'이라고 외치지만 작은 송사리떼가 물 속을 유영하며 '이미 봄!'이라고 춤을 춥니다.

 

 

빈 숲에는 무엇이 있을까?

등산로를 따라가지 않고 산을 가로질러 올라가며 이런저런 흔적들을 보니 청설모가 까먹고 버린 잣에서 새 생명이 시작되었습니다.

 

맨 처음은 이런 것이구나, 저 큰 잣나무도 맨 처음에는 작은 풀의 새싹처럼 그렇게 작은 것이구나 가슴이 저며 옵니다.

 

 
몇 해전 만나고 싶었던 앉은부채를 우여곡절 끝에 만나고, 노랑앉은부채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희귀종이었습니다. 그와 눈맞춤을 하려면 행운이 따라줘야 합니다.
 
봄맞이하러 나간 오늘, 그 행운이 제게도 왔습니다.
이외의 장소에서 그들을 만났습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이리도 가까운 곳에 있었는데 먼 곳으로만 싸돌아다녔구나 싶기도 하고, 너무 가까운 곳에 있어 또 훼손이 되면 어쩌나 걱정도 됩니다.
 
봄은 너무 작은 모습으로 옵니다. 그래도 봄입니다.
그 작은 시작이 빈 숲을 채우고, 사람의 발길도 막는 울창한 숲을 이룰 것입니다.
 
우리의 역사도 그렇습니다.
절망할 필요없이 작은 외침 외치면 그 소리가 공명이 되어 큰 소리가 되고, 벽을 허무는 소리가 될 것입니다. 봄처럼.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카페<김민수 목사님의 들꽃교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봄, #노랑앉은부채, #잣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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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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