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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일(1월 9일)

히말라야 발자국
09 : 15   페리체(PHERICHE, 4280m)
12 : 15   두글라(DUGLHA) 
16 : 10   로부체(LOBUCHE, 4940m)

'최초'와 '최고'를 추구하는 문명의 이기주의자들!

늦은 밤까지 이어지는 잡념에 잠을 설치고 새벽 2시가 되어서야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깨어보니 혹한의 추위가 방을 지배하고 있었다. 한 시간여 동안 침낭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몸을 뒤척이다가 커튼을 열어본다. Perfect weather! 구름 한 점 없는 너무도 아름다운 하늘이다. 식당에 나오니, 자칭 클라이머라 불리길 원하던 순다르 개띠 일행은 벌써 떠나고 그 빈자리에 온기가 흐른다.

지금 머물고 있는 페리체의 히말라얀 롯지는 다른 롯지와 다른 두 가지 좋은 점이 있다. 하나는 일정을 마치고 오후에 롯지에 들어오면 팔팔 끓인 물수건을 준다는 것이다. 다른 롯지에서는 한 번도 받아 본 적이 없는 놀라운 서비스이다. 한 겨울 추위에 제대로 세면도 못하는 트레커의 아픈 사정을 정곡으로 꿰뚫은 전략이다. 나 또한 물수건 덕분에 몸 구석구석을 씻을 수 있었다. 또 하나는 대부분의 롯지가 땔감 및 야크똥을 아끼기 위해 저녁에만 난로를 피고 아침에는 난로를 피지 않는다. 그러나 이 롯지만은 아침에도 일찍부터 난로를 지펴 놓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 두 가지만으로도 히말라야 최고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롯지이다. 별 다섯 개를 주어도 아깝지 않으리라. 밤새도록 추위에, 불면증에, 외로움에 지친 트레커에게 이보다 큰 선물이 어디에 있을까.

이 롯지의 사우지(남자 주인)는 젊은 20대 초반의 남자였는데, 계속 나의 옷과 장비를 보며 질문을 던진다. 특히, 디카와 캠코더의 상표를 보더니, 역시 디지털 제품은 소니가 최고라며 엄지손을 치켜세운다. 자기도 결혼할 때 꼭 구입해서 해외로 신혼여행을 가겠다고 한다. 문제는 'money!'라고 하며 씩 웃는다. 그의 특기는 라면 요리 전문가라는 것이다. 한국에서 분식집을 차려도 될 성 싶을 정도로 라면을 잘 끓인다. 기가 막히다. 일급 호텔의 일급 요리가 부럽지 않다.

끝이 없는 돌무더기 너덜길이 펼쳐진다.
▲ 페리체에서 두글라고 향하는 돌길! 끝이 없는 돌무더기 너덜길이 펼쳐진다.
ⓒ 윤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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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도, 담도, 집도 모두 돌이다! 살아 있는 것은 돌뿐인가?
▲ 돌담과 돌집 길도, 담도, 집도 모두 돌이다! 살아 있는 것은 돌뿐인가?
ⓒ 윤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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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리체에서 두글라 가는 길의 절반은 평탄하고 지루한 너덜길이고, 너덜길이 끝나면 두글라까지 자갈길이 이어지는 오르막의 연속이다. 페리체 마을 옆으로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물들이 천(川)을 이루어 흐르고, 그 위로 아침 구름이 자욱하게 끼여 있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아무도 없었다. 오직 나란과 단 둘이서 적막의 길을 걸어갔다. No see! No sound! Nobody!

고산병 치료제, 갈리는 마늘이었다!

두글라에 도착해 점심으로 삶은 감자를 주문한다. 고도가 높아지며 달밧이 입에 맞지 않아 그때부터 줄곧 감자를 주문해 먹었다. 두글라를 방문할 때까지는 몸이 가벼웠는데, 갑자기 감자 두 개를 먹자마다 가슴이 꽉 막히고 현기증과 메쓰꺼움이 일기 시작했다. 고쿄에서 고산 적응이 완전히 된 줄 알았는데, 다시 고산증세가 나타난 것이다. 그것도 아주 지독한 증상이다. 가지고 있던 복통약을 먹고, 롯지에 함께 있는 미국인에게 두통약을 빌려 먹었는데도 별 차도가 보이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네팔 현지인이 추천하는 '갈리 수프'라는 것을 시켜 먹었다. 고쿄리에서 고소 증세가 왔을 때도 나란이 먹으라고 했던 것을 극구 사양했는데, 오늘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느끼할 것이라는 선입견으로 그동안 멀리한 것인데, 입에 닿는 첫 느낌이 달짝지근하고 괜찮은 것이 아닌가. 도대체 '갈리'라는 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나란에게 물어보았다. 이런저런 말로 열심히 답변하는데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나란이 답답한지 부엌으로 들어가 뭔가를 들고 나오는데, 바로 '마늘'이었다. 갈리 수프는 마늘 수프였던 것이다. 갈릭 수프의 강력한 효능 덕분에 3시간 정도 쉰 후, 다시 원기를 회복해서 롯지 문을 나설 수 있었다. 고소 증세가 눈에 띄게 좋아졌는데, 어떤 분의 말이 생각났다.

'한국인이 그래도 고소에 아주 잘 적응합니다. 왜냐하면 마늘을 많이 먹기 때문이죠.'

왼쪽 위로 두글라의 롯지가 보인다.
▲ 을씨년스러운 두글라 마을 왼쪽 위로 두글라의 롯지가 보인다.
ⓒ 윤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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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빼고 살아 있는 생명체를 처음 본다.
▲ 두글라 롯지의 야크! 사람 빼고 살아 있는 생명체를 처음 본다.
ⓒ 윤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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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글라에서 출발하자마자 눈발이 날리기 시작하더니, 로부체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 눈이 내렸다. 결국 오늘 걸었던 페리체에서 로부체까지의 길은 안개와 구름만 벗삼아 걸어야 했던 명상과 수행의 길이었다.

다만, 두글라에서 로부체로 가다가 1시간 넘겨 올라가는 큰 고개에 이르게 되는데, 고개 위에 수많은 스투파가 1열로 길게 늘어 서 있는 흥미로운 풍경이 보였다. 나란에게 '스투파'가 많다고 하니, 그것은 스투파가 아니고 산에 오르다 죽은 자를 위한 '추모의 비(碑)'라는 것이다. 추모비의 주인공은 대부분 현지에서 고용된 현지 네팔인들이었다. 항상 '최초'와 '최고'를 좇아 살아가는 문명 사회의 정복욕과 승부욕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히말라야에 묻었을까 생각한다. 슬픈 풍경이다.

구름이 걷히자 일렬로 도열해 있는 죽음의 추모탑이 서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에베레스트 등반을 위해 현지에서 고용된 셰르파들이었다.
▲ 죽음을 추도하는 탑들! 구름이 걷히자 일렬로 도열해 있는 죽음의 추모탑이 서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에베레스트 등반을 위해 현지에서 고용된 셰르파들이었다.
ⓒ 윤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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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대부분은 현지에서 고용된 셰르파들이었다. 에레베레스를 만나기 전에 그들을 먼저 만난다.
▲ 죽은 이를 추모하는 스투파! 그들 대부분은 현지에서 고용된 셰르파들이었다. 에레베레스를 만나기 전에 그들을 먼저 만난다.
ⓒ 윤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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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는 어떨까? 중학교 아이들이 졸업할 즈음이면 학생들의 진학 결과를 놓고 학교의 1년 사업을 평가한다. 기준은 하나! '특목고를 몇 명이나 보냈느냐?'이다. 그리고 그들의 자랑스런 이름을 학교 교문에 내건다. 경~축~ 과고 몇명, 외고 몇명! 고등학교로 올라가면 이름이 특목고에서 서울대로 바뀔 뿐 1등의 법칙은 그대로 이어진다. 그럼 나머지 애들은 무엇일까? 자신의 소질과 적성에 따라, 특기에 따라 진로를 선택한 아이들은 박수 받을 자격이 없는 것일까? 일렬로 쭉 아이들을 줄세워놓은 세상에 그건 사치일뿐이자, 현실 물정 모르는 동정심일까? 작금의 교육 현실이라면 그들이 살아갈 사회 뿐 아니라 학교에서조차 승자독식주의가 벌어질 것이다. Winner takes all! 1등한 자여, 이긴 자여 모든 것을 가져라! 1등만을 고집하는 사회이다.

학교의 공교육이 붕괴되었다고 한다. 아이를 일렬로 세우는 자본주의적 교육 이데올로의 변화가 없는 이상 공교육은 더 처절하게 떨어질 것이다. 아무리 공교육에서 양질의 수업을 한다고 한들 서울대의 문은 좁고 그 문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똑같은 교육'에서 벗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적자생존! 현 사회는 살아 꿈틀거리는 인간에게 생산, 경쟁, 효율성의 경제적 가치를 들이대며 생의 의지와 욕망을 부정하라고 한다. 생의 의지와 욕망이 터질듯이 솟구치는 아이들 앞에서 수업을 하고 싶다. 그리고 나 또한 그런 열정과 온정을 가진 교사가 되고 싶다. 삶에는 1등과 꼴찌가 없다. 비교하지 말고 있는 그 자체를 아이들의 삶에 박수를 쳐 주는 따뜻한 세상을 꿈꾼다.

줄 세우지 마라! 비교하지 마라! 그냥 있는 그대로 바라보자!   

아무런 경고도 없이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들이 라다크에 들이닥쳤다. ... 하루에 관광객 한 사람이 쓰는 것은 라다크의 한 가족이 일년 동안에 쓰는 양이다. 라다크 사람들은 외국인들에게는 돈이 완전히 다른 역할을 한다는 것, 즉 집에 돌아가면 살아남기 위해서 돈이 필요하다는 것을, 음식이며, 옷, 거처에 모두 돈, 그것도 많은 돈이 든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이 이방인들과 비교하여 그들은 갑자기 가난하게 느꼈다. 내가 라다크에 온 첫 해에는 번에 본 일도 없는 어린아이들이 내게 달려와서 살구를 손에 쥐여주곤 했다. 지금은 낡은 서양옷을 입은, 디킨스 소설에 나옴직한 초라한 어린아이들이 외국인들에게 빈 손을 내밀며 인사를 한다. 그들은 이제 라다크 아이들에게 새로운 주문처럼 된 '한 닢만, 한 닢만'이라는 말을 하며 졸라댄다.

외국인들은 하루에 겨우 2달러를 버는 라다크 사람을 만나면 경악을 금치 못한다. 분명하게든 암시적으로든 그들은 '아이구, 가엾어라. 당신에게 큰 팁을 주어야겠군'이라고 말한다. 서구인의 눈에 라다크 사람들은 가난해 보인다. 관광객들은 오직 그 문화의 물질적인 면(낡은 모직옷, 쟁기를 끄는 '조', 헐벗은 땅)만 볼 수 있을 뿐이다. 그들은 마음의 평화나 가족 관계와 공동체의 관계의 질을 보지 못한다. 그들은 라다크 사람들의 심리적, 사회적, 정신적 부를 보지 못한다....

서구의 갑작스런 유입으로 일부 라다크 사람들(특히, 젊은이)은 열등감을 갖게 되었다. 그들은 자신의 문화를 도매금으로 거부하고 동시에 새로운 문화를 열렬히 받아들인다. 그들은 현대성의 상징들, 선글래스, 워크맨 카세트 플레이어, 지나치게 작은 치수의 청바지 등을 정신 없이 쫓아다닌다. 청바지가 더 매력적이고 편안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현대적인 삶의 상징(미국문화)이기 때문이다. 현대적 상징들은 또한 라다크의 공격성의 증가를 초래하는데 기여하였다. 이제 소년들은 폭력이 영화 속에서 멋지게 미화되는 것을 본다. 서구 스타일의 영화를 보고 그들은, 현대적으로 되려면 줄담배를 피우고, 빠른 차를 갖고, 이쪽저쪽으로 사람들에게 총을 쏘아대며 시골길을 마구 달려야 된다는 인상을 쉽게 갖게 된다. 라다크 사람들은 모두가 난폭해지지는 않지만 쉽게 화를 내고 안정감을 잃게 되었다.

'나는 이해할 수가 없어요. 수도에서 살고 있는 나의 언니는 일을 더 빨리 해주는 온갖 것을 가지고 있어요. 옷은 상점에서 사기만 하면 되고, 지프차, 전화를 가지고 있어요. 이 모든 것이 그토록 시간을 절약해 주는데도 언니를 만나러 가면 나하고 이야기할 시간이 없대요.'

현대 세계의 도구와 기계들이 그 자체는 시간을 절약하는 것들이지만, 새로운 삶의 방식이 전체적으로 시간을 빼앗는다는 것이다.
<오래된 미래> 중에서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에베레스트를 최초로 오른 사람은 힐러리라는 양봉업자 겸 탐험가인 뉴질랜드인이다. 그는 영국 원정대의 일원으로 셰르파인 텐징과 함께 1953년 5월 29일 오전 11시30분 인류 최초로 에베레스트 정상을 밟는다. 에베레스트는 1865년 영국 정부가 식민지였던 인도 북부 히말라야 지역을 측량사업을 하던 중 P15란 기호를 가진 산이 8848m로 가장 높은 산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당시 셰르파와 티벳인들은 이 산을 초모룽마(Chomolungma)라는 이름으로 불렀는데, 영국이 최고봉으로 확인한 이후 측량장관이었던 조지 에베레스트 경의 이름을 따서 에베레스트산(MT. Everest)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초모룽마는 '세계의 여신'이라는 뜻이다. 히말라야인들의 삶과 정신이 담긴 참 멋진 이름이 아닌가? 하지만 우리는 에베레스트는 알아도 초모룽마는 모른다. 동해를 일본해라고 표기만 해도 전나라가 벌떼처럼 일어나는 시대이건만, 히말라야의 산은 원래 이름과 상관없이 이를 최초로 발견했거나 올랐던 정복자의 이름을 붙인다. 하지만 그 산은 계속 그곳에서 그들의 이름을 가지고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던가? 누가, 무슨 이유로 그 이름을 훔쳤을까? 정답은 '정복하라'이다. 그것도 최초로. 히말라야인들이여, 자연은 인간과 더불어 살 때가 아니라 정복할 때 인간의 산이 되는 것이다. 현재 네팔 정부는 이 산을 샹가마타(Sagarmata)라 부르는데, 이는 '하늘에 닿는 머리', '모든 것들의 위에 있는 머리' 등으로 번역된다. 산은 사람 이름이 아니라 자기 이름을 가져야 한다.

셰르파의 죽음에 대한 사연을 읽다가 몸에도, 마음에도 한기(寒氣)가 스며들어 빨리 로부체로 걸음을 옮기었다. 추모의 비를 보며, 이제 에베레스트가 멀지 않음을 예상할 수 있었다.

두글라에서 로부체로 넘어가는 고개의 추모비들

로부체에 가니 후배를 카트만두에 보내고 돌아온 가이드 쿠시가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고 있었다. 그가 안내하는 롯지에 들어가니 이미 투숙하고 있는 3명의 미국인이 카드 놀이에 열중이었다. 저녁으로 고소 증세 효과에 대단한 효능을 보인 갈릭 수프와 쌀밥(plain rice)을 먹으며, 미국인 친구들에게 김치와 참치를 주었다. 정중히 김치는 사양하고 참치만 먹는다. 녀석들! 먹는 척이라도 하지. 나란이 어디서 보았는지 내가 가지고 온 김치캔을 난로 위에 놓고 이리 저리 돌려가며 데운다. 캔을 따니 김치 국물이 침을 퉤 뱉은 후 먹음직스런 볶은 김치로 변신해 모습을 보인다. 음, 별미로다.

식사 후에는 정치에 관심이 높아 보이는 미국인과 현지 네팔리 사이에 마오이스트에 대한 논쟁이 붙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열띤 대화가 계속되었다. 미국인에게는 이 현실을 이해할 수 없다는 안타까움과 답답함이, 네팔리에게는 사회를 변혁시키고 발전시키고자 하는 열정과 의지가 대화 곳곳에 드러났다. 영어로 모든 대화가 이루어지니 자세한 내용을 알아들을 수도 끼어들을 수도 없다. 답답하지만 어이하랴. 난로의 온기가 사라질 때, 나 또한 방으로 사라진다.

내일은 이번 트레킹의 최종목적지인 칼라파타르로 향한다. 눕지 못하고 침대에 앉아 두근거리는 심장소리를 음미한다. 칼라파타르를 두 발로 밟고, 에베레스트를 대면한다. 특별함은 없으리라. 다녀온 후 주위사람들에게 거드름피울 수 있는 오만꺼리 하나 정도 만드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살과 뼈 속을 스며드는 추위와 산소 부족으로 제대로 숨마저도 쉴 수 없는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고, 에베레스트를 보았노라.'
'우와, 대단하다.'
'두 손을 올려 박수를 치거라. 두 눈 높여 올려다 보거라. 있는 힘껏 큰 목소리로 환호성을 치거라. 이 위대한 존재를.'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온다. 오늘은 거만하게 팔짱을 끼고 자리에 눕는다. 

덧붙이는 글 | 단순한 기행문이 아니라 그곳에서 느끼고 고민했던 내용과 관련된 동서양 사상가의 사상을 빌려와 철학적 채색을 하였습니다.(공자에서 샤르트르까지)



태그:#네팔, #히말라야, #쿰부, #에베레스트,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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