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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산해수욕장의 소나무 숲에 잠시 앉아 바닷바람을 맞을까 생각했지만 바람이 의외로 차 아내는 차에서 나올 생각을 안 한다. 하는 수 없이 전망대에서 바다 사진 한 컷만을 찍고 다시 달린다.
 변산해수욕장의 소나무 숲에 잠시 앉아 바닷바람을 맞을까 생각했지만 바람이 의외로 차 아내는 차에서 나올 생각을 안 한다. 하는 수 없이 전망대에서 바다 사진 한 컷만을 찍고 다시 달린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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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산반도는 참 구경거리가 많은 곳이다. 변산온천과 부안댐, 변산해수욕장과 격포해수욕장 그리고 고사포해수욕장, 모항해수욕장, 상록해수욕장, 새만금 방조제, 격포 채석강과 적벽강, 전나무 숲길이 일품인 고찰 내소사와 내변산의 직소폭포 등. 바닷가인 외변산과 산인 내변산 모두 국립공원의 위상에 맞게 아름다운 볼거리들을 제공한다.

변산반도의 명소들은 몇 번씩 가 본 곳들이고, 또 날씨가 쌀쌀해 걷기보다 드라이브 쪽으로 여행일정을 잡았다. 죽 한 사발로 점심을 먹은 후 변산온천에서 곰소 쪽으로 차를 몰았다. 첫째는 오른쪽으로 펼쳐지는 서해의 장관을 감상하기 위해서고, 둘째는 곰소항에서 젓갈을 사기 위해서다.

곰소항의 젓갈

차창으로 바람이 세차게 때리고 지나가는 소리가 '솨!'하고 들린다. 그래서 그런지 그 어느 때보다 파도가 높다. 아직은 봄기운보다 겨울기운이 센 바다 풍경은 을씨년스럽지만 그간 갇혀있던 마음속 체증이 확 뚫리는 듯하여 바다가 곰살갑다는 생각이 든다.

변산해수욕장의 소나무 숲에 잠시 앉아 바닷바람을 맞을까 생각했지만 바람이 의외로 차 아내는 차에서 나올 생각을 안 한다. 하는 수 없이 전망대에서 바다 사진 한 컷만을 찍고 다시 달린다. 잠깐씩 차창을 열어 바닷바람을 폐부로 들이쉬는 것으로 변산반도의 향기를 마시며.

곰소항은 예전과는 달리 많이 발전한 모양새다. 길가에 즐비하던 젓갈가게들도 그대로인데, 다시 해안가 쪽으로 젓갈단지를 만들어 놓았다. 그쪽으로 차를 몰았다. 환하게 웃으며 나오는 자매가 보여 그녀들의 집으로 들어갔다. 이것저것 맛있다며 소개하는 주인에게 아내가 한 말은,

"짜지 않은 젓갈은 어떤 거예요?"

우리는 좀 덜 짠 키조개젓갈과 아들 녀석이 좋아한다며 굳이 창란으로 하자는 아내의 의견을 들어 창란젓갈을 샀다.
 우리는 좀 덜 짠 키조개젓갈과 아들 녀석이 좋아한다며 굳이 창란으로 하자는 아내의 의견을 들어 창란젓갈을 샀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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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절집 위로 깎아지른 듯한 절벽산이 예술이다.
 멀리 절집 위로 깎아지른 듯한 절벽산이 예술이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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젓갈가게에 와서 짜지 않은 젓갈을 찾는 해프닝, 아마 내 아내만이 그럴 수 있을 것이다. 젓갈이 다 짠 거 아닌가. 하여튼 거기에 응수하는 주인의 넉살도 참 좋아 보인다. "키조개 젓갈이 맛있고 덜 짭니다." 그렇게 우리는 좀 덜 짠 키조개젓갈과 아들 녀석이 좋아한다며 굳이 창란으로 하자는 아내의 의견을 들어 창란젓갈을 샀다.

그리고 그리도 사기를 원했지만 지난번 통영 여행 때 못 샀던 박대도 살 요량으로 박대가 있는가 물었다. 냉동고에서 내오는 박대, 하지만 아내는 너무 비싸고 씨알도 잘다며 그냥 돌아선다. 통영에서 본 것보다 더 잘면서도 값은 더 비싸단다. 이렇게 이번에도 박대는 문전박대를 받고 만다.

곰소 젓갈단지를 지나 곰소마을로 들어서자 여기저기 소금을 파는 곳들이 있다. "소금 사 갈까?" 아내가 말을 한다. 그러더니 이내, "이곳 소금들도 중국산 아니야?" 한다. 난 그저 뜻 없이 "그럴지도 모르지"라고 대꾸했다. 그렇게 염전마을에서도 소금을 사지 못하고 지나치는 우리, 참 밉다. 하지만 이게 다 우리 부부의 믿음 부족 탓만은 아니니, 참 삭막한 세상이다.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

곰소에서 좀 지나 청림리를 경유하는 하서로 통하는 왼쪽 길로 차를 틀었다. 이미 내소사는 물론 격포 채석강은 포기한 코스다. 이번 여행은 이미 가 본 적이 있는 명소들을 과감히 포기하는 용기를 보인다. 그 이유는 아무래도 죽 한 사발 먹으려고 집에서 출발할 때부터 일어난 조짐인 듯.

정상적인 변산반도국립공원을 여행하고는 고작(?) 죽을 먹는 이상한 식사 코스서부터 틀어진 거다. 대부분의 명소들을 포기한 채 본격적으로 내변산으로 들어섰다.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정도는 아니어도 양쪽으로 전개되는 내변산의 운치가 향기로운 길이다.

실은 우리나라에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라는 길이 몇 있다. 남양주의 어느 길이나 청양에 칠갑산 주변 나선형 도로 등에 비해 이곳도 뒤지지 않는 걸 보면 굳이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가 아니라고는 말할 수 없다. 근데 우리 부부에게 이 길이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인 이유는 따로 있다.

기도원 뒤로 긴 줄기의 폭포가 떨어지고, 공사 탓인지 저수지의 물은 황톳빛이다.
 기도원 뒤로 긴 줄기의 폭포가 떨어지고, 공사 탓인지 저수지의 물은 황톳빛이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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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림리에는 새로 만든 청림제 저수지가 파란 물을 자랑하며 하늘과 조화를 이룬다.
 청림리에는 새로 만든 청림제 저수지가 파란 물을 자랑하며 하늘과 조화를 이룬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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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소로부터 하서까지 내변산을 통과하는 동안 총 3대의 차량을 만났다. 뒤에서 두 대가 추월했고, 앞에서 한 대가 지난 것 외에 다른 차량을 보지 못했다. 바로 이 한가한 점이 우리 부부에겐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의 필요충분 요소다.

"여보! 당신 운전 연수할래? 길이 너무 한가해 운전연수로는 딱인 도론데."
"싫어요! 15년간이나 안 하던 운전을 하다가 사고라도 나면 어쩌게?"
"이런 길에서 안 하면 언제 하려고? 자, 합시다. 언제까지 나만 운전기사 시키려고 해?"

한사코 손사래를 치는 아내였지만 나는 차를 세우고 나왔다. 주변의 경관도 환상이지만 이렇게 한가한 도로를 어디서 만난단 말인가. 운전석으로 아내를 밀어 넣고 난 조수석으로 바꿔 앉았다. 아내는 싫다면서도 운전석에 앉더니 백미러의 각도를 바꾸고 운전석을 당겨 자세를 잡는다.

그렇게 아내의 15년 장롱면허는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처음에는 30km를 못 내더니 후엔 꽤 속도를 높여 60~70km를 낸다. 예전에 운전한 가락이 있으니 당연하지 않겠는가. 도시에서 살면서 복잡하여 못하겠다며 내려놓았던 운전대를 참으로 오랜만에 잡았던 거다.

"여보, 길이 참 환상적이네. 저 바위 좀 봐."
"이렇게 멋진 저수지도 있네. 하늘이 너무 파란데."

내가 이런 말을 할 때마다 아내는 "여보, 정신없어요. 난 아무것도 안 보여"라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온 신경이 운전하는 데 가 있으니 무엇이 보이겠는가. 그러니까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가 내게만 해당하는 것이지 아내에겐 해당하는 것이 아닌 게다.

아내는 그렇게 하서를 지나 새만금 방조제까지 내 달렸다. 방조제에서는 80~90km까지 속도를 내기도 한다. 난 속으로 '이제 됐군' 했다. 아내의 시장보기나 병원가기에는 이제 기사로 따라가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섣부른 희망을 가져 본다. 아내는 장롱면허를 거리로 들고 나온 길, 나는 기사에서 사장님으로 자리를 옮긴 길, 이만하면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 아닌가.

이번 변산반도 여행은 아무래도 곁길로 간 여행이다. 하지만 그 어떤 경치와 풍경과도 바꿀 수 없는 특이한 경험을 한 여행이었다. 죽을 먹으러 2시간을 달린 여행, 15년 아내의 장롱면허가 거리로 나온 여행, 이만하면 괜찮지 않은가.

새만금 방조제 안쪽에 한가로운 배들이 떠있다.
 새만금 방조제 안쪽에 한가로운 배들이 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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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만금 방조제에서 아내가 한 포즈했다.
 새만금 방조제에서 아내가 한 포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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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3월 6일, 여행 후 기록한 글이며 [변산여행①]에서 이어진 기사입니다. 이번 여행은 특이한 경험을 한 여행이었습니다.
*이기사는 갓피플, 당당뉴스 등에도 송고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변산반도, #곰소항, #젓갈, #드라이브 코스, #장롱면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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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행복이라 믿는 하루가 또 찾아왔습니다. 하루하루를 행복으로 엮으며 짓는 삶을 그분과 함께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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