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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햇살 따스한 날, 깊은 산에도 봄기운이 가득하다
▲ 눈을 녹이는 낙엽들 봄햇살 따스한 날, 깊은 산에도 봄기운이 가득하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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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먼 길, 꽃을 찾아 아내와 함께 떠났습니다.
아이들도 이젠 컸다고 자기들끼리 놀겠다 하니(실은 공부 때문이긴 하지만), 결혼생활 20년만에 조금씩 부부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 것 같아 좋기도 합니다.

이미 많은 봄꽃들이 올라왔기에 나는 강원도 그 곳에도 복수초가 피었을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지난해 4월, 철 지난 복수초를 만난 그 곳이라면 아직도 잔설이 남아 있는 그 산에서 '설련화' 혹은 '얼음새꽃'으로 불리는 이유를 말해줄 복수초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봄을 기원하는 등불을 밝힌 듯 복수초가 피어나고 있는 숲
▲ 복수초 봄을 기원하는 등불을 밝힌 듯 복수초가 피어나고 있는 숲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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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지에 와서도 두어 번 만났습니다.
두어 번 만나긴 했지만 제주도에서 만나던 세복수보다 꽃이 작고 볼품이 없어서 개복수초인가 했습니다. 그런데 육지에선 그냥 그게 복수초입니다. 개복수초는 더 작은가 봅니다.

오늘은 운좋게도 설련화를 만났건만 이른 아침부터 모 방송국에서 나왔다며 자리를 비켜주지 않습니다. 1시간 전부터 찍었으며, 앞으로 두어 시간은 더 찍을 것이라는 말에 그냥 구경만하고 그 자리를 떴습니다.

제법 꽃동산도 만들어 가고 있는 중이다
▲ 복수초 제법 꽃동산도 만들어 가고 있는 중이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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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복수초는 제주도의 세복수초가 끝내준다. 여긴 너무 작은 것 같아."
"그래, 그렇지만 얘는 세복수초가 아니고 복수초잖아. 복수초니까 이렇게 핀 건데 그걸 봐야지. 얘한테 세복수초럼 피어나지 않았다고 뭐라 하면 안되지."

그냥 지나가는 말로 했는데 아내는 심각하게 대답을 합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먼 길 오는 도중 차안에서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했거든요.

'우리 아이들은 나름대로의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 단점만 확대시키면 아이들이 주눅이 든다. 예능에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들은 그걸 키워줘야 한다. 그저 국영수로 아이들의 미래를 재단하는 교육현실은 문제가 많다.'

복수초의 꽃말은 '슬픈 추억'이란다
▲ 복수초 복수초의 꽃말은 '슬픈 추억'이란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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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컷 그런 이야기들을 해놓고는 높은 산 추위를 견디며 피어난 저 고마운 복수초에게 "넌 세복수처럼 예쁘지 않아!"했으니 아내가 말을 되받은 것입니다.

"봐, 찾아보면 다른 꽃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오늘 이 곳에서 만난 것은 복수초뿐이잖아. 얼마나 고마워. 안 그랬으면 헛걸음 했겠지. 뭐, 헛걸음했어도 오랜만에 데이트 했으니 그리 나쁜 일진은 아니지..."
"맞다, 맞아. 복수초는 복수초만의 아름다움이 있는 법이지. 내가 잠시 겉모습만 봤나보다. 그나저나 이거 사진 찍으려고 낙엽을 전부 들춰놓았네. 덮어주자."

따스한 햇살, 봄마중 나온 복수초 가족
▲ 복수초 따스한 햇살, 봄마중 나온 복수초 가족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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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모든 꽃이 자기 안에 들어 있는 대로 피어나듯 우리 아이들도 그래야 하는데 획일적인 시험문제로 아이들을 줄세우고, 그것도 모자라 시험성적이 안나온 아이들의 인생을 미리 실패자라고 각인시키는 이 잔인한 짓을 우리가 하고 있구나 싶었습니다.

조화(가짜 꽃)와 생화(진짜 꽃)의 차이, 조화는 상처도 없고, 시든 곳도 없고 향기도 없지만 생화는 상처도 있고, 시든 곳도 있지만 향기가 있습니다. 우리는 어쩌면 우리의 아이들을 조화처럼 만들고 싶어하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도 모르게 자연에 나가 예쁜 꽃을 보면서 "와! 조화처럼 예쁘네!"하는지도 모릅니다. '조화처럼 예쁘네'가 아니라 '생화처럼 예쁘네'가 맞는 말이겠죠?

추위를 견디고 피어난 복수초, 다음에 만났을 때에는 제주도의 세복수초와 비교하지 말고 그만의 아름다움을 봐야겠습니다.


태그:#복수초, #봄, #일제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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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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