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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참으로 무식해서 용감한 동물

 

오후 다섯 시가 넘어서자 랑탕히말의 능선에 어둠이 깔린다. 고소에 시달린 일행 두 사람은 말을 타고 먼저 가고, 2년째 랑탕히말을 함께 걷고 있는 상게 세르파는 뒤처진 일행의 짐을 들어주겠다며 해발 약 3200m에 있는 마을 롯지에 남았다.

 

이방의 길을 어둠 속에서, 홀로 걷는다. 약 한 시간만 걸으면 랑탕마을(해발 약 3330m)에 도착할 것이란 막연한 기약이 혼자 걷는 두려움을 없애준다. 휴대용 랜턴을 켤까 하다가 그냥 걷기로 했다. 가뭇했지만 아직 돌부리 정도는 구분이 되고, 가끔씩 나타나는 사람 사는 마을의 불빛이 등대처럼 길라잡이가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호롱불처럼 깜빡거리는 불빛을 따라 한참을 걷고 있는데 한 젊은 여자가 다급하게 부른다.

 

"헤이 미스터, 지금 어디로 가는 길이에요?"

"랑탕이요."

"랑탕에 가려면 그쪽으로 가면 안돼요. 그쪽은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이에요."

 

기약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은 놀랍게도 사람을 이렇게 무모하게 만든다. 그 기약이 도착할 곳까지 거리를 계산한 것이든, 이르러야 할 곳까지 걸어야 할 시간을 추산한 것이든. 이미 기약은 깃발이 돼 버렸고, 깃발을 든 나는 자신감으로 포장돼 염려와 안전에 대한 고려를 비겁으로 뭉개버린다. 인간이란 동물, 참으로 무식해서 용감하다.

 

휴대용 랜턴을 켜고 사람 발자국, 야크 발자국이 한데로 향해 있는 길을 따라 조심조심 걷는다. 온 몸이 더듬이가 된다. 스치는 바람조차 예사롭지 않다. '이 길이 맞나...'

 

그렇게 얼마쯤 걸었을까. 익숙한 다리가 눈앞에 놓여 있다. 랑탕마을 어귀에 다다른 것이다. 그러고도 약 30분을 걸어서야 랑탕마을 롯지에 도착했다.

 

랑탕마을에서 다시 만난 라마승 수남 스링

 

롯지 화롯가에 앉아 불을 쬐고 있는데 히말의 굿판이 벌어졌다. 롯지를 운영하는 주인이 가족들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기 위해 라마승을 모셔다 굿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낯익은 얼굴이 경전을 외고 있다. 라마승인 수남 스링이다. 작년에 그는, 평생을 랑탕히말라야에서 보낸 한 노인의 장례식을 치르고 있었다.

 

그때도 나는 일행에서 뒤처져 제일 늦게 랑탕마을에 도착했었다. 나를 처음 히말라야로 이끈 심한기 네팔 엔지오 PUM 대표가 몹시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6년 동안 이곳 랑탕히말을 다녔지만 히말라야의 장례식을 보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에요. 원래 잡혀 있는 일정대로라면 내일 캉진곰빠로 바로 가야지만 쉽게 경험할 수 있는 일이 아닌 만큼 일정대로 갈 분들은 가고, 남아서 히말의 장례식에 참여할 분들은 참여했으면 좋겠습니다."

 

일행들은 잠시 술렁였지만 이내 결정을 내렸다. 누구의 말처럼 "돌아가신 분에겐 죄송한 말이지만 놓칠 수 없는 기회이자 행운"이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히말라야의 장례식에 참여하기로 했다.

 

 

망자는 누르푸 할아버지였다. 당시 향년 75세였던 누르푸 할아버지는 평생을 랑탕히말에서 사셨다고 한다. 자식들도 잘 성장해서 덕망 있는 라마승(우리로 치면 큰스님)을 세 분이나 모셔 진혼을 할 정도로 유복한 살림을 꾸리고 있었다.

 

저녁 6시 20분, 랑탕마을 곰빠에서 누르푸 할아버지의 장례식이 시작됐다. 히말의 능선에 흩어져 살고 있던 이들이 누르푸 할아버지의 부고를 듣고 하루를 걸어, 이틀을 걸어, 사흘을 걸어 와 장례식에 참석했다.

 

곰빠는 2층이었는데 나무로 만들어졌다. 곰빠 1층에선 마을 주민들과 히말의 능선에서 찾아온 조문객들이 원을 그리고 앉아 있었다. 곰빠 2층에선 라마승들이 상주와 함께 잠시 후에 시작될 진혼굿을 준비하고 있었다.

 

"누르푸 할아버지의 죽음에 왜 슬퍼해야 하지요?"

 

저녁 6시 30분, 큰북과 작은북이 동시에 둥둥거리고, 긴 고동소리피리가 붕-하고 길게 소리를 내뿜었다. 이와 동시에 경전을 외는 라마승들의 운율도 낮지만 빠르게 변했다. 마치 순식간에 낮게 깔리는 히말의 어둠 같았다. 그리고 수남 스링은 북의 리듬과 라마승들이 외는 경전의 운율에 맞춰 티베트 불교 식 승무를 췄다. 씻김굿처럼 망자의 고(苦)를 풀어주려는 의식이었다.

 

상주는 향대와 물이 든 그릇을 들고 곰빠 앞마당에 있는 돌탑으로 나갔다. 망자의 혼을 위로하는 기도를 한 뒤 상주는 향은 돌탑에 세우고, 물은 주문과 함께 탑에 뿌렸다. 한국으로 치면 '고수레(전라도 지역에선 '고시레'라 한다)' 의식이다.

 

1층에선 마을 주민들과 조문객들이 한데 어우러져 원무(圓舞)를 췄다. 서로의 어깨에 어깨를 건 이들은 처음엔 약간 느리게 발을 떼며 '에헤이이 워워오'하고 후렴구를 넣으며 박자를 맞췄다. 강강수월래같은 이 집단 추모의 춤은 점차 속도가 빨라졌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손에 손을 잡고 둥글게 원을 그리며 춤을 추는데 추모의 춤이라기보다는 축제의 춤이었다.

 

 

라마승이 진행하는 진혼제도, 마을 주민들이 연출하는 집단추모의 춤도 약 30분을 주기로 쉬었다 이어졌다. 휴식시간을 갖는 것이다. 이때 상주와 젊은 라마승, 장례를 거들어주는 마을주민은 조문객들에겐 락씨(전통술)와 음식을 나누고, 라마승들에겐 차를 나눈다.

 

아무리 호상(好喪)이라지만 조문객은 물론 상주도 울지 않았다. 울기는커녕 매우 행복한 얼굴을 하고 술과 음식을 나누며 장례식을 즐겼다. 심지어 날이 새도록 춤과 노래를 하며 살아남은 자들의 잔치를 즐겼다. 히말의 장례식을 굳이 표현하자면 '죽은 자가 마련한 산자들의 축제'였다.

 

휴식을 취하고 있던 수남 스링에게 물었다.

 

"왜 아들도, 이웃도 슬퍼하지 않나요?"

"왜 슬퍼해야 하나요? 누르푸 할아버지는 지금도 우리와 함께 있는데요."

"그는 죽었잖아요?"

"그가 죽어요? 그럼 그는 어디로 갔을까요? 저 랑탕리룽에? 아니면 저 흙 속에? 누르푸 할아버지는 지금 당신의 가슴에, 내 심장에, 아들의 가슴에 함께 있는 걸요."

 

맑게 웃으며 락씨를 권했던 수남 스링의 모습 위로 축복의 경전을 읊고 있는 수남 스링이 겹쳐진다. 그가 다시 맑은 미소를 머금고 슬쩍 손을 들어 아는 척을 한다. 그의 축복도 받았으니 내일은 더 잘 걸을 수 있을 것 같다. 누르푸 할아버지와 함께 말이다.

 

 


태그:#랑탕히말, #장례식, #굿, #씻김굿, #라마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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