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게 되는 계기에는 두 가지가 있는 것 같다. 자신이 관심을 가지고 직접 찾아서 읽는 경우가 있다면, 반면에 다른 사람에게 추천을 받아 읽게 되는 경우이다. 나오미 클라인의 책 <쇼크 독트린>은 필자에게 전형적인 후자의 경우였다.
사실 <쇼크 독트린>이라는 책의 존재는 지인으로부터 들어서 진작 알고 있었다. 전쟁과 재난을 통해 이윤을 벌어나가는 소위 '재난 자본주의(disaster capitalism)'에 대한 내용을 다뤘다는 얘기를 듣고는, '자본주의가 전쟁과 재난을 중요한 이윤 창출의 기회로 활용한다는 것은 상식 아닌가? 특별한 내용이 없겠군'이라고 나름 판단을 내리고서는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녹색평론으로부터 서평을 써보지 않겠느냐는 연락을 받고 반은 강제적(?)으로 책을 구입해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다독(多讀)과는 거리가 멀 뿐만 아니라, 책 읽는 속도가 매우 느린 나에게 700쪽에 이르는 <쇼크 독트린>은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드디어 책의 마지막 장을 다 넘기고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며 서평을 쓰고 있는 나의 머릿속에 각인이 찍힌 단어는 '재난 자본주의'가 아니다. 제목 그대로 '쇼크(Shock)'였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조지 부시, 도널드 럼스펠드, 딕 체니 등의 막가파식 신자유주의자들이 사용하는 '쇼크 전술'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오미 클라인이 <두 명의 쇼크요법 전문가>라는 내용으로 책의 1부를 시작한 것은 매우 탁월한 선택일 뿐만 아니라, 어쩌면 유일한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나오미 클라인이 소개하는 첫 번째 쇼크요법 전문가는 이웬 카메론이다.
캐나다 맥길 대학에 부속된 앨런 메모리얼 병원의 책임자인 이웬 카메론 박사는 CIA의 은밀한 지원 하에 그를 찾는 환자들의 두뇌에 전기 '쇼크'를 가했다. 주로 산후우울증, 불안, 심지어는 사소한 결혼생활 문제로 이웬 카메론 박사를 상담하러 온 사람들은 말 그대로 쇼크요법의 모르모트가 되었다.
이웬 카메론은 외부로부터 자극을 차단하고 대량의 전기쇼크를 가하게 되면 인간을 백지상태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백지로 재탄생한 사람에게 새로운 내용을 학습시키면서 기존과는 완전히 다른 인격을 형성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의 이러한 시도에 CIA는 큰 흥미를 느꼈다. 이런 쇼크요법을 세뇌기법에 사용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실험의 피해자가 되었다. 어떤 사람은 완전히 바보가 되어 버리거나 식물인간이 되기도 하고 엄청난 후유증에 평생 고생을 하게 되었다.
환자 두뇌에 전기 쇼크를 가한 이웬 카메론 박사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러한 반인륜적이고 패륜적인 만행에 분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보다 더한 '쇼크요법'이 훨씬 대규모적으로 지구상의 곳곳에서 벌어져 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인식하지 못한다.
저자 나오미 클라인은 또 한 명의 쇼크요법 전문가로 밀턴 프리드먼을 꼽는다. 신자유주의의 이론적 스승이자 시카고 학파의 대부 격인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이 쇼크요법 전문가라니? 이웬 카메론과 밀턴 프리드먼 사이에 어떤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을까?
순수한 시장주의를 꿈꾸는 밀턴 프리드먼은 뉴딜 정책 이후 당시에 전 세계적으로 만연하던 케인즈주의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 시카고 대학에서 제자들을 키워내면서 자신의 신자유주의 사상을 갈고 닦은 밀턴 프리드먼은 사상을 실천으로 옮길 모르모트를 찾고 있었다. 그러나 규제 철폐, 민영화, 사회복지 삭감으로 대표되는 밀턴 프리드먼의 사상을 추진하기에는 당시의 미국에서조차 공공서비스와 노동자 보호정책들이 너무나 인기가 있었다.
좀처럼 모르모트를 찾지 못한 밀턴 프리드먼에게 기회가 온 곳은 라틴아메리카의 칠레였다. 당시 칠레는 1970년에 사회주의를 표방한 살바도르 아옌데가 선거전선체 인민연합의 후보로 대통령에 당선되어 진보적 개혁을 추진하고 있었다. 노동자 민중이 사회의 주인이 되는 과정에서 소외된 기존의 보수 기득권 세력은 불만을 품고 반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한편 밀턴 프리드먼은 제자들을 칠레의 대학에 보내 자신의 사상을 전파시키며 칠레의 기득권 세력들과 매우 긴밀한 관계를 맺어 나가고 있었다.
이들은 살바도르 아옌데가 이끄는 사회주의 정부의 급진적 정책들을 막고 자신들의 사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쇼크 요법'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왜냐하면 많은 국민들이 구리광산 국유화 및 전 국민을 위한 복지 등을 내세운 사회주의 정부의 진보적 정책들에 지지를 보내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을 '백지상태'로 돌리지 않고서는 자신들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펴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미국 CIA가 뒤를 봐주는 가운데 칠레의 피노체트 장군은 아옌데 정부를 무너뜨리기 위한 군사적 '쇼크요법', 즉 쿠데타를 감행한다. 3200명이 행방불명 또는 처형되었으며, 최소한 8만 명이 투옥되었고, 20만 명이 정치적 이유로 망명했다. 이러한 1차 쇼크의 혼란스러운 틈을 타 프리드먼이 길러낸 '시카고 보이스'들은 칠레에서 2차 쇼크요법을 실시한다. 바로 경제적 쇼크이다. 드디어 자신들의 사상을 실천에 옮길 수 있게 된 이들은 규제 철폐, 전면적 민영화, 사회 복지 삭감 등의 과격한 전기쇼크를 동시다발적으로 실시했다.
칠레 피노체트, 아옌데 정부를 무너뜨리려 군사적 쇼크요법 동원캐나다 맥길 대학의 이웬 카메론 박사가 전기쇼크를 통해 환자들을 백지 상태로 만들고 '바람직한(?)' 인격으로 개조하려 했듯이, 프리드먼과 그의 패거리들은 칠레에서 군사적·경제적 쇼크요법으로 백지상태를 만들고 자신들의 유토피아를 건설하려 했다. 이미 신자유주의에 익숙한 우리는 그들의 유토피아가 어떤 세상인지 잘 알고 있다. 소수의 부자와 대규모의 빈민이 양산되고, 실업률과 자살률이 극적으로 증가하며 사회 공공서비스는 붕괴되고 소중한 산업 및 금융 기반들이 외국, 특히 미국 회사에 헐값에 팔려나간다.
실험을 마친 시카고의 깡패들은 '쇼크요법'이야말로 자신들의 사상을 실천할 수 있는 중요한 전술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이 쇼크요법은 여러 가지 형태로 변화하면서 전 세계를 개조하기 위한 전위부대 역할을 한다.
칠레 인근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의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에서는 칠레식 군부 독재를 통한 쇼크요법이 마치 매뉴얼처럼 사용되었다. 영국에서는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한 '포클랜드 전쟁'(아르헨티나에선 이를 '말비나스 전쟁'이라고 부른다)을 승리로 이끌며 애국주의 광풍을 이용해 광산노조를 깨부순 대처가 쇼크요법의 선지자가 되어 신자유주의를 무자비하게 도입했다.
소련과 폴란드 등의 구 사회주의 국가들이 붕괴되는 과정에서도 쇼크요법은 여지없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소련의 옐친과 폴란드의 바웬사는 시카고 깡패들의 조언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규제 철폐, 전면적 민영화, 사회 복지 축소의 '쇼크'가 흔들림 없이 전격적으로 추진되었고 반대세력에게는 무자비한 물리적 '쇼크'가 가해졌다.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시장에서는 외환위기가 중요한 '쇼크'로서 역할을 했다. 우리 기억에도 아직 선명하듯이 당시 아시아 각 나라들은 외환위기로 엄청난 쇼크를 받았다. 그리고는 너나 할 것 없이 IMF에 손을 벌렸다. 미국이 뒤에 버티고 있는 IMF는 긴급지원의 조건으로 해당 국가의 고유한 주권이 경제 정책 결정권을 넘겨받아 자신들의 유토피아인 신자유주의 세상을 건설했다.
그렇다. 어떻게 야만적인 신자유주의 정책들이 '쇼크' 상태의 혼란을 틈타지 않고서 진행될 수 있겠는가. 신자유주의를 추진하는 데 있어서 쇼크전술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으며 저자 나오미 클라인은 그러한 신자유주의 깡패들의 전술을 간파해 냈다는 점에서 탁월하다.
나오미 클라인, 신자유주의 '깡패'들의 전술을 간파이라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작전명 '충격과 공포'는 쇼크요법의 전형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말 그대로 융단폭격을 통해 이라크를 백지상태로 만든 미국은 최소한의 정부 기능마저도 미국을 중심으로 한 침략군의 기업들에게 먹잇감으로 던져준다. 민영화 수준은 상상을 초월해서 국가를 운영하는 기획 기능조차 사기업들에게 외주를 줄 정도였다. 국가는 말 그대로 사기업을 위한 현금인출기가 되어 버렸다.
혹자는 이라크의 혼란상태가 침략국 미국의 무능함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분석하지만, 나오미 클라인은 그러한 생각이야말로 순진한 생각이며 오히려 '쇼크요법'을 통해 일으킨 혼란 상태를 통해서만이 시카고 깡패들의 정책을 실현할 수 있다는 점을 놓치고 있다고 얘기한다.
이 시카고 깡패들은 자연재해조차도 자신들의 뜻을 이루기 위한 '쇼크요법'의 일환으로 만들어버린다. 동남아시아의 해안을 쓸어버린 쓰나미는 시카고 깡패들에게는 천우신조였다. 쓰나미가 쓸고 간 곳에는 호화판 리조트와 관광레저시설들이 들어섰다. 그곳에서 고기를 잡던 어부들은 강제로 이주되었다. 평상시 같으면 주민들의 엄청난 저항을 불러일으킬 이러한 조치들은 쓰나미라는 '쇼크' 한 방으로 해결되었다. 이들은 미국의 뉴올리언스를 초토화한 허리케인을 '쇼크요법'의 일환으로 이용하는 것도 절대 잊지 않았다.
이 일련의 쇼크과정들을 통해 이익을 챙기는 것은 당연히 재난과 관련된 사기업들이다. 부동산 업자들은 재난에 환호성을 지르며 고급주택들을 건설할 준비를 취하고, 학교, 병원, 대중교통 시스템도 사기업에 팔아넘겨 이윤 추구의 대상으로 넘겨준다. 심지어는 재난 구호 서비스까지도 민영화해서 돈 있는 사람들만을 위한 탈출시스템을 준비하는 회사들도 주목을 받고 있다. 일전에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퇴임 연설에서 전쟁으로 돈을 버는 '군산복합체'에 대한 주의를 줬듯이, 나오미 클라인은 '재난 자본주의 복합체'의 위험성을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음모론이 나오기 마련이다. 루이지애나의 카트리나 피해 이후, 재해민 구호소에서는 제방이 무너진 것이 아니라 사실은 몰래 파괴된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스리랑카에서는 쓰나미가 미국이 일으킨 수중 폭발 때문이라는 말이 돌았다. 나오미 클라인은 재난 자본주의 복합체를 언급하면서 굳이 음모이론까지 동원할 필요도 없다고 말한다. 이 승냥이들은 자신들이 직접 사주하든 그렇지 않든 가리지 않고 모든 기회를 '쇼크요법'으로 활용할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음모이든 그렇지 않든 상관이 없다는 뜻이다.
이 책에서 제공하는 방대한 사례를 통해 독자들은 나오미 클라인이 주장하는 신자유주의자 깡패들의 신종 전술인 '쇼크요법'에 '쇼크'를 받을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렇다면 이렇게 우울한 상태로 책을 끝맺어야 할까?
나오미 클라인은 책의 마지막에서 '쇼크 효과는 점차 누그러진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전 세계의 민중이 신자유주의자들의 '쇼크요법'에 대한 진실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진실을 알게 된 사람들은 더 이상 '쇼크요법'에 쇼크를 받지 않게 되었고, 그 이면에 숨겨진 자본주의의 더러운 이윤추구욕에 속지 않게 되었다.
특히 나오미 클라인은 '21세기 사회주의'를 내걸고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중남미 좌파세력들에게 큰 인상을 받은 듯하다. 핵심 국가산업의 국유화와 무상의료, 무상교육 등의 복지 시스템 구축 및 참여 민주주의 확대를 통해 '쇼크요법'을 극복하고 새로운 세상을 건설하고 있는 중남미의 모습에 깊은 애정을 보여준다.
이웬 카메론 박사의 쇼크요법이 결국 실패로 끝났듯이 밀턴 프리드먼의 쇼크요법도 전 세계에서 저항에 부딪히고 있다. 그리고 시카고의 깡패와 전 세계의 동조자들은 또다시 새로운 '쇼크'를 준비하고 있다. 반도의 남쪽, 우리가 사는 이 땅에서 시카고 깡패들의 동조자들은 '작고 강한 정부'를 내세우며 '쇼크요법'을 준비하고 있다. 이 엄중한 시기에 과연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녹색평론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