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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롯데월드스포츠의 폐쇄 방침에 반발, 회원 500여명이 피켓 등을 들고 롯데월드 앞에서 가두 시위를 벌이고 있다.
 지난 10일 롯데월드스포츠의 폐쇄 방침에 반발, 회원 500여명이 피켓 등을 들고 롯데월드 앞에서 가두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최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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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오후 찾아간 서울 송파구 잠실동 롯데월드 스포츠센터 4층 성인체력장. 826m²(250평) 규모에 120여 점의 각종 헬스기구가 완비돼 있다. 평소 같으면 운동기구에 올라탄 회원들이 경쾌한 음악에 맞춰 구슬땀을 흘리고 있을 테지만, 이날만큼은 분위기가 달랐다.

체력장을 가득 메운 50~60대 회원 500여 명은 운동복 대신 두터운 겨울옷을 입고, 어깨에는 빨간색 띠도 둘렀다. 체력장 내부 곳곳에는 '롯데월드의 횡포'를 규탄하는 현수막이 내걸렸다. 롯데월드 측이 영업적자를 이유로 스포츠센터를 폐쇄하기로 하자, 이곳 회원들이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롯데월드 스포츠센터 폐쇄반대 비상대책위'(이하 비대위)로부터 10여 분간 설명을 들은 회원들은 진행자의 선창에 맞춰 가두시위 때 외칠 구호도 연습했다.

"일방적인 폐쇄조치! 부도덕한 롯데는 반성하라!"
"신격호와 사장단은 롯데스포츠 폐쇄를 철회하라!"

이들은 스포츠센터 폐쇄만을 반대하는 게 아니었다. 이들의 구호와 피켓에는 "국가안보 저해하는 롯데 112층 결사반대!" 등 제2롯데월드 건축을 반대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그뿐이 아니다. 2010년 롯데의 임대 기간이 완료되는 석촌호수의 반환도 요구했다. 롯데월드의 스포츠센터 폐쇄 방침이 롯데에 대한 지역민들의 반발심을 자극한 셈이다. 구호 연습을 마친 회원들은 곧바로 피켓과 현수막을 집어 들고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손정은(54)씨는 "취득세까지 내고 산 회원권이니, 내 재산이다. 왜 롯데가 마음대로 가격을 결정해서 20년 전 가격으로 되돌려 주겠다는 것이냐"며 "롯데가 부도가 났다면 내가 이러지도 않는다, 제일 잘 나가면서 더 큰 이익을 보려고 노인들을 내쫓으려는 악덕 기업"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삼성 현대는 병원이라도 지었지... 송파에서 특혜받은 롯데는 뭐하나?"

시위대의 선두그룹이 스포츠센터 정문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롯데마트 월드점 정문까지 진출했지만, 계속 스포츠센터에서 나오고 있는 회원들로 인해 시위 대열은 300여 미터 정도 길게 늘어섰다. 현장에는 강신명 송파경찰서장이 직접 나와 정보과 형사 5~6명과 함께 시위대를 통제했다. 롯데월드 직원 20여 명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시위대 주변을 서성였다.

이들은 롯데월드 정문 앞을 지나 버스정류소에서 잠시 멈춰서 도로를 향해 피켓을 들고 홍보전을 폈다. 당초 이들은 잠실역 지하 광장으로 향할 계획이었으나, 롯데호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롯데호텔 측은 "외국 관광객들도 많은데 시위대가 이쪽으로 오면 어떻게 하느냐"며 난색을 표했다.

"악덕기업 롯데는 각성하라!"고 적힌 피켓이 롯데월드, 롯데백화점, 롯데호텔 등의 건물과 맞물리면서 묘한 대조를 이뤘다.

이경덕(64)씨는 "롯데가 MB정부 들어와서 아주 활개를 치고 있다. 5~6년 전부터 적자라고 하는데, 그럼 왜 2007년에는 폐쇄를 안 했느냐"며 "노무현 정부에게 밉보일까봐 그랬던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20년 전에 회원권 값이면 당시 이곳에 있던 주공아파트 13평짜리 한 채 값이다. 당시 그렇게 많은 돈을 주고 살 만한 사람이 흔하지 않았지만, 지난 20년 동안 우리가 유지시켜줬다. 지금 주변에 중상층 아파트가 들어오면서 상권이 형성되니까, 돈도 안 되는 스포츠센터는 남길 이유가 없다는 속셈 아니냐. 뽑아 먹을 것 다 뽑아 먹고 버리겠다는 것이다."

이경덕씨는 특히 "삼성이나 현대는 그래도 병원이라도 지어 놨다, 그게 돈 벌려고 지었겠느냐"며 "근데 롯데는 뭐냐, 돈 버는 일 말고 사회에 환원한 게 뭐가 있느냐"고 호통을 쳤다.

3년 전 정년퇴임을 하고 스포츠센터와 가까이 있으려고 일부러 잠실로 이사까지 온 박종철(65)씨도 "이사를 온 이유가 없어졌다"며 허탈해 했다. 박씨는 "다시 다른 스포츠센터로 옮기려고 해도 롯데 같은 악덕 업체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면 2년 정도는 연구를 해야 할 것 아니냐"며 "전세집을 나가라고 해도 몇 달 전에는 알려주는데, 한 마디 상의도 없이 한 달 전에 일방적으로 나가라고 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지적했다.

롯데월드스포츠의 폐쇄 방침에 반발한 회원들은 제2롯데월드 건설도 반대하고 나섰다. 사진은 지난 10일 스포츠센터 회원 500여명이 제2롯데월드 건설 부지 앞에서 항의 시위를 하는 모습.
 롯데월드스포츠의 폐쇄 방침에 반발한 회원들은 제2롯데월드 건설도 반대하고 나섰다. 사진은 지난 10일 스포츠센터 회원 500여명이 제2롯데월드 건설 부지 앞에서 항의 시위를 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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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호텔 앞을 빠져나온 시위대는 도로를 건너 곧바로 제2롯데월드 건축 현장 정문으로 향했다. 높다란 철제 담장이 드리워진 8만7770m²(2만7000평) 규모의 건축 부지에서는 본격적인 공사에 앞서 터 닦기 작업이 한창이었다. 시위대는 정문 앞에서 20여 분 동안 구호를 외치고 결의문을 낭독했다.

무엇보다 "환경공해 유발하는 제2롯데 건설 결사반대" 등의 구호가 빛을 발했다. 같은 내용의 피켓을 들고 있던 한 회원은 "제2롯데월드까지 지을 만큼 돈이 많은 대기업이 스포츠센터에서 적자 조금 났다고 폐쇄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악덕 기업 중에 악덕 기업"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김영임(60)씨는 "연회비 올려서 운영하라고 해도 무조건 문을 닫겠다는 식이다, '껌 장사' 티를 엄청 내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롯데가 송파에서 어마어마한 특혜를 누렸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안다"며 "노인복지 차원에서 센터를 새로 지어줘도 모자라는 판에 더 큰 이익 남겨먹겠다고 노인들을 내쫓는 게 할 짓이냐"고 성토했다.

시위대의 다음 행선지는 제2롯데월드 신축부지 바로 옆, 송파구청이다. 롯데월드 스포츠센터 감독관청으로서 폐쇄 결정을 막아달라는 것과 롯데가 20년 동안 임대했던 석촌호수를 주민들에게 반환해야 한다는 요구를 하기 위해서다.

시위대 뒤편에서 "(걷는) 속도를 줄여라", "조금만 쉬었다 가자"는 얘기가 자꾸 튀어나온다. 가두 행진을 시작한 지 30여 분, 1킬로미터도 채 걷지 않았지만, 이들의 평균 연령을 감안하면 불평으로만 들리지는 않는다.

비대위 간부들의 독려로 간신히 송파구청까지 도착했다. 경찰은 시위대의 행진을 인도까지만 허용했지만, 시위대는 "구민이 구청에 들어가겠다는 데 왜 막느냐"며 구청 안으로 진입을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비대위 간부인 고경식씨와 강신명 경찰서장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고씨가 "(구청 안에 있는) 화장실도 못가게 하느냐"고 반발하자, 강신명 서장이 점퍼 호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은 채 대꾸한 것이 화근이 됐다.

고씨는 "아무리 경찰서장이라고 해도 어떻게 (나이든) 시민이 얘기하는데 호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 얘기할 수 있느냐, 사람 무시하는 거냐"라고 거세게 항의했다. 결국 시위대는 구청 정문 바로 앞까지 들어와 바닥에 주저앉았고, 화가 난 강신명 서장은 "채증 요원 불러서 전부 찍어"라며 시위대에 대한 사법처리 방침을 시사했다.

정보과 형사들이 중재에 나서면서 사태는 진정됐고, 시위대는 다시 인도로 나가 구호를 외치며 집회를 이어갔다. 시위대는 송파구청 앞에서 집회를 마친 뒤, 잠실역을 거쳐 스포츠센터로 돌아왔다.

롯데측 "적자운영 계속할 기업 어딨나?"... 비대위 "인간 구조조정 하겠다는 것"

롯데월드 스포츠센터는 롯데월드와 함께 지난 1989년 개장했고, 현재 등록 회원은 1600여 명이다. 이들은 1인당 평균 1000여만원의 입회비와 보증금을 롯데월드 측에 지급했고, 매년 2인 기준 350여만원을 연회비로 내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변호사와 의사, 회계사 등 고수익 전문 직종이거나 군 퇴역장성, 전직 관료 등 고가의 회원권을 살 수 있는 '부유층'이며 60대 노년층이다.

롯데월드 측은 지난 1월 말 스포츠센터 운영위원회와 회원들에게 2월 28일자로 스포츠센터를 폐쇄하겠다고 통보했다. 경영 적자가 이유였다. 회원들은 즉시 비대위를 구성했고, 변호사 자격을 가진 회원들을 주축으로 서울동부지방법원에 '스포츠시설 사용방해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하지만 가처분 신청이 기각 당하자,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 등 4명을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지난 10일 롯데월드스포츠의 폐쇄 방침에 반발, 회원 500여명이 롯데월드 주변에서 가두 시위를 벌이고 있다.
 지난 10일 롯데월드스포츠의 폐쇄 방침에 반발, 회원 500여명이 롯데월드 주변에서 가두 시위를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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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월드 측의 입장은 단호하다. 남기선 롯데월드 홍보팀장은 "연간 20억~30억원의 적자가 계속 발생하는데, 기업 입장에서 어떻게 계속 운영을 할 수 있느냐"며 "정상적인 운영이 안 되면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회원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우리 입장은 명쾌하다"고 말했다. "기업에서 적자가 나는 사업장을 계속 운영할 의무는 없다"는 것이다.

비대위는 롯데월드 측의 '적자'라는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롯데월드가 일부 회원들의 회원권을 사들임에 따라 이에 따른 매출액 감소가 6억5000여만원이나 된다"며 "건물의 노후화에 따른 감가상각비 14억원을 지출을 수반하지 않은 비용으로 잡은 것도 그렇고 내역이 애매모호한 11억여원의 기타경비도 명분이 없다"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남기선 팀장은 "회원들 중에는 변호사나 회계사도 있다"면서 "'적자가 나서 문을 닫겠다'고 했을 때는 우리 쪽도 충분히 법적 검토를 했을 것 아니냐"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아주 어려운 분들의 생존권과 관련한 문제에 대해 기업으로서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했다면 비판을 받아야겠지만, 이분들은 지도층에 있는 분들이고, 우리는 정상적인 절차를 밟아서 진행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롯데월드 측의 설명에도 회원 대다수는 스포츠센터의 폐쇄를 정서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문해화(60)씨는 "요즘은 60세 이상 먹으면 스포츠센터에서 안 받아준다"며 "그런 식으로 다들 내쫓으면 우리는 어디로 가라는 말이냐"고 가슴을 쳤다.

"얼핏 들어보니, 우리를 내쫓고 그 건물을 리모델링해서 젊은 사람들에게 고가의 회원권을 팔기 위해 회원 구조조정을 한다고 하더라. 실버를 위한 혜택을 만들기는커녕 '인간 구조조정'을 하겠다는 것 아니냐."


태그:#롯데월드스포츠, #제2롯데월드, #회원권, #송파구청, #신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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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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