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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 호연이와 팔씨름
 동생 호연이와 팔씨름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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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년이 올라갈 때 마다 하영이는 몸살을 앓는다. 반 편성 때문이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단짝친구 승주와 같은 반이 되지 않았다고 입이 석자나 삐져나왔다. 하영이 표현을 빌리면 '올해는 절망' 이다. 지난4년 동안 단짝은 아니더라도 그런대로 가깝게 지냈던 친구조차 단 한 명도 없단다. 

축 처진 어깨, 시무룩한 표정을 보면 안쓰럽기도 하다. 반 편성을 하기 전, 하영이는 매일 주문을 외웠다. '단짝 친구 승주와 같은 반이 되게 해 달라' 고. 그 모습을 보며 나도 옆에서 함께 주문을 외웠다. 하영이가 단짝 친구와 같은 반이 되게 해 달라고. 하지만 그동안 없던 신통력이 갑자기 생길 리는 만무, 신통력 없는 아빠와 딸 주문은 역시 통하지 않았다.

축 처진 어깨 너머에 있는 고민이 무엇인지 알기에 더 안쓰럽다. 어디를 가던 지 어떤 환경에 맞닥뜨리던지 처음이 제일 힘들다. 그 힘든 시기를 넘어갈 때 친한 친구가 옆에 있어주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 기대가 무너졌으니 어깨가 처질 수밖에.

지난 학창시절을 되짚어 보니 나 역시도 친한 친구와 새 학년을 시작한 기억이 거의 없다. 초등학교 6년 동안 단짝친구와 친해질만 하면 이별이었다. 중학교도 고등학교도 거의 마찬 가지였다. 단짝 친구들과 헤어질 때마다 나 또한 어깨가 축 늘어졌다.

만나면 계속 이별, 군 경계선에 살았던 탓

유년기 때, 옆집에 살던 배꼽친구 녀석과 딱지치기를 하며 형제처럼 지냈다. 하지만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그 녀석과는 6년 동안 '안녕'이었다.

그 녀석과 우리 집 과의 거리는 불과 50m 정도였다. 하지만 학교는 서로 달랐다. 그 녀석은 충남 예산군에 있는'상장초등학교' 난 당진군에 있는'신촌 초등학교'였다. 불과 몇 미터 차이로 학교 배정이 달랐던 것이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는 그동안 친했던 친구들과 한꺼번에 '안녕'해야 했다. 몇 백미터 차이로 학교 배정이 달랐기 때문이다. 함께 졸업한 친구들 중 달랑 네 명만 예산군에 있는 중학교에 입학했다. 나머지는 모두 당진군에 있는 학교를 배정 받았다. 다행인 것은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헤어졌던 '배꼽친구'를 다시 만났다는 것이다.

입학식 날 출신 학교 별로 운동장에 입장했다. 신촌 초등학교 출신 졸업생 4명이 입장하자 전교생이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에 얼마나 기가 죽었는지... 지금도 기억 속에 선명하다.  당진군과 예산군 접경 지역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갈 때도 마찬가지, 단짝 친구 세 명 중 나 혼자만 멀리 떠나 기숙사 생활을 했다. 모처럼 집에 와서 주말을 보내고 돌아가는 버스를 탈 적에 단짝 친구 녀석들이 읍내까지 따라와서 손을 흔들어 주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난 학년이 바뀌면 어째서 반 편성을 다시 하는지 늘 궁금했다. 호기심 많은 성격 탓에 중학교 때인가는 선생님에게 질문을 한 적도 있다. "왜 매년 반 편성을 다시 하느냐" 고. 당시 선생님은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서 사귀어야 다양한 경험을 하고 다양한 추억을 만들 수 있지 않겠느냐" 는 대답을 했던 것으로 어렴풋이 기억된다.

이 대답에 만족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더 이상 질문하지는 않았다. 이미 그 선생님에게 들을 수 있는 대답은 모두 들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학창시절이 끝나면서 이 궁금증은 모두 잊혀졌다.

새로운 환경을 부여하기 위해 매년 새로운 반 편성

입학식 장면
 입학식 장면
ⓒ 장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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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영이가 매년 반 편성 문제로 '몸살'을 앓으면서 다시 궁금증이 고개를 들었다. '왜 매년 반 편성을 다시 하는지'를. 중학교 때처럼 다시 질문을 던지기로 했다. 이번엔 전직교사와 현직교사들에게 물었다.

김지수(여, 가명)씨는 20년 동안 고등학교 영어 선생님이었다. "성적별로 반 편성을 했어요, 각 반에 공부 못하는 아이들과 잘 하는 아이들을 골고루 배정 했어요. 초등학교요? 글쎄, 잘 모르겠는데... 아마 친구들을 여럿 사귀게 하려는 배려 아닐까요?"

황치석(남, 가명)씨는 현직 초등학교 교감선생님이다. "새로운 환경을 부여해 주기 위해서 그런 겁니다. 1년 생활하다 보면 모든 것이 정형화 되거든요. 교우관계 등이. 한번 반장이면 영원한 반장이고 한번 왕따면 영원한 왕따가 되고. 한번 앙숙이면 영원한 앙숙이 되고."

시범적으로 반 편성 하지 않고 새 학기를 시작하는 초등학교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학부모들 반응이 별로였다. 모든 곳이 정형화 된 채 새 학기가 시작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는 것. 

들어보니 일리 있는 말이었다. 1년 동안 앙숙이었던 녀석을 새 학기에 다시 만나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또, 한번 반장을 했던 아이가 새 학기에 다시 반장을 할 확률이 훨씬 더 높은 것도 사실이다. 

동유럽 일부국가는 새로운 반 편성 없이 '쭉'

혼자 걷는 길
 혼자 걷는 길
ⓒ 이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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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검색을 해 보니 초등학교 내내 새로운 반 편성이 없는 나라도 있다. 사회주의 국가 였던 동유럽 쪽 일부 국가들이 그렇다. 1학년 때 처음 만났던 친구들과 졸업할 때까지 같은 반이다. 

매년 반이 바뀌는 것이 좋은지 동 유럽 일부 국가들처럼 반이 바뀌지 않은 채 졸업하는 것이 좋은 것인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우리는 그동안 매년 반 편성이 다시 이루어지는 것을 기정사실로 알고 있었고 별다른 논란이 없는 것을 보니 꽤 효율적인 시스템인 듯하다.

하지만 난 아직 잘 모르겠다. 매년 반 편성을 다시 하는 것이 좋은 것인지 1학년 때 만난 친구와 졸업 할 때까지 함께 지내는 것이 좋은지. 아이들 수가 적은 시골 학교에는 1학년때 만난 친구와 졸업할 때까지 함께 지내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 친구들은 어른이 돼서도 가족처럼 지낸다. 동창회를 하면 가족 모임처럼 화기애애하다. 내 배꼽친구가 다닌 예산군에 있는 상장초등학교가 그렇다. 그 학교는 전교생이 150명 안팎이었고 한 학년이 스물 몇 명이었다.

하영이는 팔씨름 부장

농삿일을 돕고 있는 하영이
 농삿일을 돕고 있는 하영이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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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그렇듯 하영이는 새로운 환경에 씩씩하게 잘 적응할 것이라 믿는다. 며칠 전에는 팔씨름 부장이 됐다며 하얗게 웃었다. 여자 아이가 웬 팔씨름 부장이냐고 궁금해 하시는 분이 있을 터. 하영이는 여자 아이지만 범상치 않은 완력을 지녔다. 범상치 않은 이력 한 가지만 소개한다. 태어날 때 4.2kg이나 되는 우량아였다.

"선생님이 남자애들 팔씨름을 시켜서 1등이 결정 됐어 그런데 애들이 내 이름을 연호하는 거야 '이하영' '이하영' 하면서 그래서 그 애하고 팔씨름을 했는데 내가 이겼어. 그래서 하하하."

이 얘기를 들으면서 하영이가 잘 적응하고 있다고 짐작했다. 이제 한 달 정도 지나면 단짝친구라며 누군가를 집에 데려올 것이다. 매년 그렇듯이.

아이들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잘 하기 때문에 매년 새롭게 반 편성 하는 것에 불만은 없다. 하지만 한번쯤 생각해 볼만한 문제이기도 하다. 제도는 상황에 맞게 시대에 맞게 변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러분 생각은 과연 어떤지?

덧붙이는 글 | 안양뉴스, 유포터 뉴스



태그:#새 학기, #하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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