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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돈 없고 힘없는 한 개인이 거대 권력 앞에서 무참히 짓밟히는 것을 종종 목격하게 된다. 재개발을 반대하다 공권력에 의해 세상을 떠난 사람들, 부자들만 혜택받는 감세 정책,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절규. 이런 것들은 약자들이 편안히 살 수 없는 사회 분위기를 반영한다.

 

한창 엄마 아빠와 함께 뉴스 보기에 맛을 들인 다섯 살 딸아이는 이 험한 세상이 궁금하다.

 

"아빠, 저 건물에 왜 불이 났어요? 경찰 아저씨가 왜 저렇게 많아요? 왜 싸우는 거예요?"

 

용산 참사 현장이 보도되는 방송을 볼 때마다 엄마 아빠는 마음이 불편했다. 뭐라고 설명해 주어야 할까? 경찰은 나쁜 사람을 혼내주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경찰 때문에 불이 났다고 말하면 아이는 혼란스러울 것이다. 차라리 저 건물에 올라간 사람들이 나쁘다고 말해야 하는 걸까?

 

"음, 저 건물에 올라간 사람들은 돈이 없고 힘없는 사람들이야. 나쁜 사람은 아니야. 경찰 아저씨들이랑 좀 싸우고 있는데, 경찰 아저씨들이 너무 많아서 저렇게 미운 행동을 하는 거란다. 너도 친구들이 괴롭히면 화가 날 때가 있지? 저 아저씨들도 화가 나서 그래."

 

대충 이렇게 설명을 했지만, 아이는 잘 이해가 안 되는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약자와 거대 권력의 힘겨운 싸움을 다섯 살 아이가 어떻게 쉽게 이해하겠는가!

 

<으뜸 헤엄이>는 이럴 때 읽어주면 좋을 만한 책이다. 네덜란드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이탈리아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특이한 이력의 레오 리오니는 손자들에게 이야기를 지어준 것을 계기로 그림책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 책 또한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내용 전개가 펼쳐진다. 대충 물감을 찍어낸 듯한 그림이 인상적인데, 전문 화가의 잘 다듬어진 그림과는 무척 다르지만 아이들이 그린 것처럼 비뚤어지고 엉성한 모양이 시선을 끈다.

 

바다 속 한구석에 작은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행복하게 살고 있다. 모두 빨간색 물고기인데, 그 가운데 한 마리만 새까만 색, 그 이름은 '으뜸 헤엄이'다. 헤엄을 잘 쳐서 붙여진 별명이다.

 

어느 날, 무섭고 날쌘 다랑어 한 마리가 물결을 헤치고 쏜살같이 헤엄쳐 와 빨간 물고기 떼를 한입에 꿀꺽 삼켜 버린다. 으뜸 헤엄이만 겨우 도망을 쳤다. 으뜸 헤엄이는 깊은 바닷속에서 무섭고 외롭고 몹시 슬프다.

 

하지만 바닷속은 신기한 것들로 가득 차 있었다. 무지개빛 해파리도 보고, 가재도 보고 뱀장어도 보면서 으뜸 헤엄이는 다시 행복해졌다. 그런데 어느 날 바위와 물풀 사이에 으뜸 헤엄이와 똑같이 작은 물고기 떼가 숨어 있는 걸 발견한다.

 

"얘들아, 함께 헤엄치면서 놀고 구경도 다니자!"

 

으뜸 헤엄이는 기뻐서 소리치지만, 작은 물고기들은 큰 물고기한테 몽땅 잡아먹힌다고 두려워한다. 그렇다고 숨어 있을 수만은 없다고 궁리를 하는 으뜸 헤엄이. 생각하고 또 생각한 으뜸 헤엄이는 이렇게 말한다.

 

"좋은 수가 있어! 우리가 함께 바닷속에서 제일 큰 물고기 모양을 만들어서 헤엄치는 거야!"

 

으뜸 헤엄이는 빨간 물고기들에게 서로 가까이 붙어 자기 자리에서 헤엄을 치면 된다고 가르쳐 준다. 빨간 물고기들이 커다란 물고기 모양을 이루면서 헤엄칠 수 있게 되자, 검은색의 으뜸 헤엄이는 물고기 모양의 눈이 되었다. 큰 물고기들은 이제 무서워서 빨간 물고기 떼를 피해다니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작은 한 개인은 힘이 없지만 이들이 모였을 때 커다란 물고기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주제를 잔잔한 동화 속에 담아 표현하고 있다. 아이는 책의 내용을 이해하면서 자기도 친구들과 힘을 합치면 나쁜 사람도 쫓아낼 수 있다고 주먹을 불끈 쥔다. 어린이집에서 힘을 합치면 뭐든지 이길 수 있다고 배웠나 보다.

 

아이다운 순진한 사고지만, 엄마가 보기에는 불합리한 힘의 논리에 맞설 용기를 품고 있는 것만 같아 기특하다. 저 혼자만 끙끙거리고 살 게 아니라 다른 친구들과 함께 힘을 합쳐 긍정적인 세상을 만드는 사람으로 자라면 얼마나 좋을까.

 

아이에게 책은 하나의 놀잇감이다. 이 책을 보면서 특히 우리 아이가 좋아하는 것은 각 장에 숨어 있는 조그만 으뜸 헤엄이를 찾아내는 일이다. 다른 물고기나 해초, 바다생물은 모두 물감 찍기로 표현되었는데, 으뜸 헤엄이만 선명한 검정으로 조그맣고 도드라지게 인쇄되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아이는 "여기 으뜸 헤엄이 있다!"라고 외치며 행복해 한다. 아이의 웃는 얼굴처럼, 이 세상은 작고 조그만 사람들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긍정적 에너지 덕분에 발전하는 것이리라.


으뜸 헤엄이

레오 리오니 지음, 이명희 옮김, 마루벌(2000)


#어린이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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