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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초등학교 시절은 어떠했을까?

물론 나와 평생을 같이 해 온 가족들은 어린시절 나의 모습을 잘 기억하고 있고, 지금까지 함께 지내 온 죽마고우들 또한 그 시절의 내 모습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학교에서, 그것도 초등학교 어린시절의 내 학창시절 모습은 어떻게 비추어졌을까? 문득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특히, 요즘 인기 정상을 달리고 있는 모 방송국의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패밀리가 떴다'의 최근 내용 중 멤버들이 폐교를 찾아가 교실안에서 초등학교 시절 생활기록부에 기록된 내용을 바탕으로 서로의 성격을 알아맞히기 게임을 하는 것은 나의 궁금점을 더욱 증폭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리하여 TV 프로그램을 시청하던 중 앨범속에 고이 간직하고 있던 초등학교 시절 통지표를 꺼내 보았다.

꺼내본 통지표는 초등학교 4학년 시절의 것으로 통지표를 꺼내든 난 가장 먼저 성적보다도 담임선생님이 날 어떻게 평가했을까 하는 내용을 먼저 살펴보았다.

안 좋은 내용이 있으면 공개하지 않으려했는데 다행히 그 공간에는 좋은 내용만 적혀 있었다.

"솔선수범하여 학급일에 충실하고 발표력 및 사고력이 뛰어납니다" (1학기)
"맡은바 일에 솔선하며 발표력이 뛰어나고 과학의 탐구력이 뛰어나 모범적입니다" (2학기)


발표력, 사고력, 탐구력이 뛰어나다는 담임선생님의 평가. 벌써 20년이 훨씬 넘은 어린시절의 기록이었지만 지금봐도 흐뭇해지는 대목이다. 일단 긍정적인 평가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다시 앞부분부터 차근차근 통지표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4학년때의 통지표 통지표를 보고 있노라니 초등학교 시절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초등학교 4학년때의 통지표통지표를 보고 있노라니 초등학교 시절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 김동이

'교훈 : 참되고 알차게 자라는 어린이'

지금은 폐교가 되어버린 나의 모교 '금석초등학교'. 교훈이 새삼스럽게 느껴졌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교훈의 영향 때문이었는지 그 당시에 같이 학교를 다니던 동창생들이건, 후배들이건간에 140명밖에 되지 않았던 전교생 모두가 꾸밈없고 거짓없는 맑고 티없는 아이들이었던 같다.

그리고, 통지표 맨 앞표지 하단에 적혀있는 학교장의 안내말씀은 그 당시 교육의 목표와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는 지금 치열한 교육경쟁의 시대에 살고 있읍니다. 본교에서는 우리 어린이들을 2천년대의 고도 산업사회의 주역으로 키우고자, 탐구적 자율학습으로 창의와 개척과 진취가 넘치는 교실개혁운동에 힘쓰고 있읍니다. 또한 이제까지의 지식위주, 점수위주의 그릇된 학력관을 과감히 씻고, 전인교육의 입장에서 평가방법을 개선하고 이에 따라 통지표도 개혁하였읍니다. 귀여운 자녀들의 참된 학력이 무엇인가를 잘 살피시고 많은 이해와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이 글에서도 나타나듯이 '고도 산업사회의 주역'이라든가, '교실개혁운동'이라든가하는 말은 지금은 상당히 낯선 말들이다.

그리고 '이제까지의 지식위주, 점수위주의 그릇된 학력관을 과감히 씻고, 전인교육의 입장에서 평가방법을 개선하고 이에 따라 통지표도 개혁하였읍니다'라는 말처럼 이 이전까지만 해도 점수는 물론 반 석차까지 통지표에 기록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통지표 안에는? 성적과 행동발달상황을 평가하는 항목이 들어있다. 이 중 특이한 것은 근면성 평가에 '자기몸을 깨끗이 한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통지표 안에는?성적과 행동발달상황을 평가하는 항목이 들어있다. 이 중 특이한 것은 근면성 평가에 '자기몸을 깨끗이 한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 김동이

통지표를 펼쳐 다음쪽을 보니 성적을 한눈에 알 수 있는 '교과학습 발달상황'과 근면성, 책임감, 협동성, 자주성, 준법성 등 5대 항목을 평가하는 '행동 발달상황'이 나온다.

이 평가 항목 중에서 재미있는 점은 이(이)가 많고 회충 등 기생충이 많았던 그 당시의 시대상황을 잘 반영하듯 근면성 평가항목에 '주위 청소를 잘하고 자기몸을 깨끗이 한다'는 내용도 있다는 것이다.

통지표의 맨 뒷장 특별활동 상황에 '새마을부'라는 부서가 적혀있다. 그리고 맨 아래에 있는 '확인'란에는 부모님 도장을 찍어와야 했다. 당당하게 보여줄 수 없는 학생들에게는 큰 고민거리 중 하나였다.
통지표의 맨 뒷장특별활동 상황에 '새마을부'라는 부서가 적혀있다. 그리고 맨 아래에 있는 '확인'란에는 부모님 도장을 찍어와야 했다. 당당하게 보여줄 수 없는 학생들에게는 큰 고민거리 중 하나였다. ⓒ 김동이

또 하나의 재미있는 것이 마지막 쪽에 나와 있었다. '특별활동 상황'에 나와 있는 부서명 '새마을부'가 그것이다.

지금은 이러한 부서가 있지도 않겠지만 그 당시에는 매일 아침 '새마을노래' 방송에 맞추어 일어나서 마을사람들이 싸리빗자루와 갈퀴 등을 들고 나와서 마을을 가꾸자는 새마을운동을 하고 있던 시기여서 학교에서도 '새마을부'라는 부서를 만들어서 활동을 했던 것 같다.

통지표 맨 뒷장 하단에 보이는 '확인'란은 성적이 잘 나오지 않은 학생들에게는 크나큰 고민거리 중 하나였다.

직접 부모님께 통지표를 보여드리고 도장을 찍어와야 했기 때문에 부모님께 당당하게 통지표를 보여주지 못하는 학생들은 부모님 몰래 도장을 찍어서 제출하는 사례가 많았다.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사례가 빈번해지자 담임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정직한 대답을 듣기 위해 "진짜로 부모님한테 직접 도장을 받아왔는지 선생님이 집집마다 다 전화해본다"며 아이들에게 협박(?) 아닌 협박을 하기도 했다.

물론 효과는 100%였다. 자진납세하는 아이들이 생겨났고 이 아이들은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다시 통지표를 집으로 가지고 가서 순진하게 부모님께 보여드리고는 혼줄이 난다.

몰래 도장찍었다고 혼나고, 성적 안 나왔다고 혼나고... 결국 몰래 도장을 찍은 죄로 더 호되게 혼줄이 난다.

비록 TV프로그램을 보다가 생각이 나서 20여 년도 넘은 통지표를 들쳐보았지만 순수하고 순진했던 그 시절로 다시 되돌아가고싶은 생각도 들고, 또 그 시절을 함께 했던 친구들도 만나보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유포터에도 송고합니다.



#통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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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의 지역신문인 태안신문 기자입니다.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밝은 빛이 되고자 펜을 들었습니다. 행동하는 양심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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