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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 나이, 그 동안 삼십년 동안을 도시에서 살다가 팔년 째 시골에서 살고 있다. 그 이유는 농투성이의 아들로 태어나 중학교 때 도회지로 유학을 갔던 때문이다. 세상이 넓다는 것을 읍내 장터밖에 모르고 살았던 유년시절, 갓 사춘기에 만난 도시생활은 그야말로 선망의 대상이었을 만큼 좋았다.

 

그런 까닭에 중․고등학교 대학을 거쳐 4년의 거제도 새내기교사 시절을 보낸 것을 제외하면 다시 시골로 돌아오기까지 꼬박 15년을 마산 창원에서 살았다. 근무했던 학교는 모두 오륙십 학급이 넘는 공룡과 같은 거대학교였다. 하지만 내 청춘을 오롯이 다 보낸 큰 학교에 대한 추억은 마치 몸에 옷을 입은 것처럼 늘 껄끄러웠다. 그 생활이 익숙한 듯 하면서도 사사로운 부대낌이 많았다는 얘기다.

 

사는 것도 그랬다. 언제나 닭장(아파트, 그러나 아파트생활 자체를 폄하하려는 말은 아니다)에 드는 삶은 내게 수구초심만 잦아낼 뿐이었다. 산토끼는 결코 집토끼가 될 수 없는 노릇, 하여 아이가 중학교에 진학할 무렵 고향으로 돌아왔다. 다들 아이 교육을 위해서 도회지로 향하는 즈음 나는 되레 시류에 역행을 한 셈이다. 학교 근무자체도 그렇다. 농촌학교 근무를 삼사년만 해도 도시학교로 향하는 데 결코 쉽지 않은 결심이었다.

 

그렇지만 팔년 여 시골학교에서 아이들과 더불어 사는 지금 행복하다. 물론 작은 단급학교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 외에도 부수적인 업무가 많아 힘은 들지만 이제야 내 몸에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하루하루가 편안하다. 고작해야 제 반 아이들과 같은 학년 아이들 몇몇을 기억하였던 것에 비해, 시골학교는 덩치가 단출해서 갓 입학한 아이들부터 6학년에 이르기까지 150 여 명의 아이들의 얼굴 생김새나 행동 특성, 이름하나까지 죄다 꼽을 수 있으니 하루의 일상이 친근타.

 

시골학교 아이들과 더불어 사는 즐거움은 많다

 

시골학교의 하루는 전체 아이들을 두루 만나는 것으로 시작된다. 어느 누구가 결석을 하고, 몸이 아픈지 머리를 깎았는지 새옷을 입고 왔는지가 곧장 눈에 띤다. 그만큼 학년을 가릴 것 없이 모든 아이들이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아이들 역시 그렇다. 아이들이라면 마땅히 제 반 담임선생님이 최고다. 하지만 시골학교는 그렇지 않다. 움직임이 작은 만큼 자연 아이들의 시선도 모든 선생님들이 내 반 선생님같이 느껴지는 일상이다.

 

 

어느 선생님이고 간에 시골학교에 부임해서 단 몇 달만 근무하면 굳이 관심을 갖지 않아도 전체 아이들에게 눈길이 간다. 그것은 마치 한 동네에 사는 사람들끼리 누구네 밥숟가락이 몇 개인지를 훤히 꿰뚫고 사는 것과 같다. 그러니 단지 교과서로만 배우는 머리 굴리는 얘기보다는 인간적인 정이 따사롭게 묻어드는 것이다. 그래서 선생님의 따듯한 손길이 한번  더 가고, 미더운 눈길이 시나브로 마주친다.

 

그런데도 요즘 시골학교는 배가 고프다. 단순히 생리적인 문제가 아니다. 갈수록 아이들이 줄어들어 학교의 몸집이 작아진다. 안타깝게도 인근의 학교는 올해 신입생이 없는 실정을 생각하면 그나마 올해 신입생이 열여덟이나 들어와서 여간 다행스러운 게 아니다. 시골에서 아이들의 웃음이 사라지고 있다는 얘기는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닐진대 2000년 초입에 비하면 창녕의 경우 초등학교 세 곳과 중학교 하나가 문을 닫았다. 더구나 중학교는 일개면 일개 중학교라는 교육당국의 원칙에도 아이들이 없어 급기야 폐교의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었다.   

 

윤구병 교수는 변산공동체를 꾸리면서 '작은 학교는 아름답다'고 했다. 맞는 이야기다. 작은 학교는 모든 생활 그 자체가 아름답다. 시골에서 학교는 교육 본연의 일만 수행하는 것이 아니다. 학교는 지역사회의 문화공동체를 향유하는 또 다른 공간이다. 그런데 단지 학교를 자본주의 경제논리만의 잣대로 쉬 없앤다는 것은 지역주민들이 마땅히 누려야할 공동체의 함유권리를 빼앗아 버리는 것이다. 학교는 자본의 논리로 재단되어야할 대상이 아니다. 일본의 경우 전교생이 단 한 명뿐인 산골학교라도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는 얘기는 무얼 말하는 것일까?

 

작은 학교는 모든 생활 그 자체가 아름답다

 

통계청이 발표한 2008년 출생 통계 잠정 집계에 따르면 2008년 한 해 동안 태어난 출생아 수는 약 46만 6천 명으로, 지난해보다 2만 7천 명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합계 출산율 역시 지난해 1.15명보다 0.06명이 줄어든 1.19명이었다. 당연히 지난해 창녕군의 출생아 수는 200여 명에 지나지 않았다. 이로 보면 향후 십년 후쯤이면 지역에 초등학교라고는 불과 몇몇 학교밖에 존재할 수 없다는 게 불 보듯 명확해진다.

 

사태가 이러한데도 교육당국은 소규모의 학교의 통폐합을 지속적으로 계획하고 있으며, 정부마저도 작은 학교를 살려내는 데는 '내몰라'라 하고, 지나치게 낮은 출산율에 대한 대처방안이 '자녀를 세 명 이상 둔 다자녀 가구에 주택분양 우선권을 주고, 분양가도 낮춰주며, 임대주택도 우선 공급하는 방안을 검토한다.'는 게 고작이다. 문제는 딴 데 있다. 주택을 통한 출산 장려가 결코 바람직한 처방전이 아니라는 얘기다.

 

사실 인구감소가 심각한 문제다. 하지만 저출산이 꼭 문제의 단초인 것만은 아니다. 예컨대 출산율이 낮더라도 평균 결혼 연령이 낮아지고 부부의 출산 시기가 앞당겨지면 인구는 증가할 수 있다. 현재의 인구 문제는 출산율보다는 평균 결혼 연령의 문제에서 기인하는 바가 크다. 우리나라의 평균 결혼 연령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대략 다섯 살 정도 높아졌다.

 

이렇듯 결혼 연령이 높아진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졸업이 곧 실업'이라는 말이 유행어가 될 정도로 졸업 직후 취업이 어려워진 현실과 그나마 가까스로 일자리를 잡더라도 비정규직이 대부분이라는 것 때문이다. 그래서 이러한 비정규직은 불안감은 젊은 세대로 하여금 결혼과 출산이라는 여유를 잃게 만드는 것이다. 더구나 여성들의 경우 한층 더 심한 비정규직의 딜레마에 빠져 있다. 또한 여성들은 결혼과 임신, 출산으로 인한 실직의 위험에 곧바로 노출되어 있어 쉽게 결혼할 수 없는 실정이다.

 

더구나 결혼 적령기의 여성들이 결혼을 하더라도 자녀의 보육시설이나 탁아시설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현실 앞에 출산을 주저하게 되는 것이다. 갈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엄청난 사교육비 부담도 출산을 옭죄고 있다. 때문에 주택 혜택을 통한 정부의 저출산 대책은 단지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을뿐더러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일 따름이다.

 

주택을 통한 출산 장려가 결코 바람직한 처방전이 아니다

 

작은 학교 이야기를 하다가 다소 사족에 빠졌다. 정부가 진정으로 저출산 문제에 관심이 있다면 단순히 수치적으로 관망하는 주택정책이 아니라 젊은이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주어야 한다. 특히 젊은 여성들에게 정규직 일자리를 만들어 주어야한다. 그게 담보가 된다면 저출산 문제는 해결된다. 그러면 농촌의 작은 학교는 어떻게 살려낼까? 당연히 깡그리 사라져 가는 농촌 경제를 살려내는 길밖에 없다.

 

아이들의 웃음이 사라진 농촌 현실은 암담하다. 자꾸만 농촌학교가 텅 비어간다. 그렇다고 강 건너 불구경 하듯 손놓고 지켜볼 수만은 없는 일이다. 아무리 지금의 경제가 어렵다지만 농촌 경제를 살려내는 특단의 조처를 강구해야한다. 그게 작은 농촌 학교를 건강하게 살려내는 바로메타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귀농현상이 반가운 일이었지만 요즘은 그마져도 시들해졌다. 때문에 농촌학교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이들로 배가 고프다.

 

필자는 올해 교과전담을 맡았다. 작은 학교라 전담 규정시간을 맡다보니 2학년부터 6학년까지 세 과목을 맡았다. 달랑 한 교과목만 맡는 도회지 전담교사에 비해 힘이 든다. 그렇지만 새내기 아이들을 제외하고는 학교 전체의 아이들을 두루 만날 수 있어 즐겁다. 그런 까닭에 매 시간 수업을 통해서 농촌에 사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애써 부추기고 있다. 비단 나 혼자만의 관심일까 마는 요즘 아이들의 표정이 유다르게 해맑다. 그래서 농촌 학교가 오고 싶은 학교, 머물고 싶은 학교, 다시 오고 싶은 학교로 거듭났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다음 미디어 제 블로그 '배꾸마당 밟는 소리(http://blog.daum.net/jongkuk600)'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태그:#부곡초, #출산율, #작은학교가 아름답다, #농촌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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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국기자는 2000년 <경남작가>로 작품활동을 시작하여 한국작가회의회원, 수필가, 칼럼니스트로, 수필집 <제 빛깔 제 모습으로>과 <하심>을 펴냈으며, 다음블로그 '박종국의 일상이야기'를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김해 진영중앙초등학교 교감으로, 아이들과 함께하고 생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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