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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주시 부석면 북지리의 태백산 자락인 봉황산(鳳凰山) 중턱에 위치하고 있는 부석사(浮石寺), http://www.pusoksa.org)는 지역을 찾는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다. 오죽하면 '영주는 몰라도 부석사는 안다.'고 하겠는가? 

부석사  부석사
▲ 부석사 부석사
ⓒ 부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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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 시절 문화재청장을 지낸 유홍준 교수는 그의 저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부석사를 두고 '무량수전 앞에 서서 바라보는 산세와 풍광을 나는 국보 제로(0)라고 부르고 싶다.'라고 극찬을 하지 않았던가? 가히 절경이다.

부석사  부석사 안양루
▲ 부석사 부석사 안양루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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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지 부석사는 볼 것이 많은 절이다. 신라의 고승 의상대사가 창건한 이래 절을 지켜온 무량수전이 그렇고, 조사당, 소조여래좌상, 조사당 벽화, 무량수전 앞 석등 등의 국보와 3층 석탑, 석조여래좌상, 당간지주 등의 보물, 원융국사비, 불사리탑 등의 지방문화재를 비롯하여 삼성각, 취현암, 범종루, 안양문, 응향각, 대석단, 부석 등등 너무나 볼거리가 많은 곳이다. 

부석사  부석사 부석
▲ 부석사 부석사 부석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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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종의 근본도량인 부석사는 서기 676년(신라 문무왕 16년) 의상대사가 왕명을 받들어 창건했다. 창건에 얽힌 의상과 선묘(善妙) 아가씨의 애틋한 사랑 설화는 유명하다. 의상은 부석사를 창건하면서 자리를 잡은 뒤 입적할 때까지 절을 떠나지 않았다.

부석사  부석사에서 바라본 풍경이 과히 국보 제로이다. 그런데 축서사의 풍광과 너무나 흡사하다
▲ 부석사 부석사에서 바라본 풍경이 과히 국보 제로이다. 그런데 축서사의 풍광과 너무나 흡사하다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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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영주시와 이웃한 봉화군 물야면 개단리 문수산(文殊山)에 있는 축서사(鷲棲寺),http://www.chooksersa.org)도 서기 673년(신라 문무왕 13년) 의상대사가 창건했다.

축서사  축서사
▲ 축서사 축서사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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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건 설화에 의하면, 당시 인근 지림사(智林寺) 주지가 산 쪽에서 상서로운 빛이 나오는 것을 보고 의상에게 알렸다. 의상이 그곳으로 가보니 비로자나불이 광채를 발하고 있어 그 자리에 이 절을 짓고 불상을 모셨다.

축서사  축서사 가는 길
▲ 축서사 축서사 가는 길
ⓒ 축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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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7년(경문왕 7)에 부처사리 10과를 가져와 사리탑을 조성하여, 현재 우리나라에서 부처의 진신사리가 가장 많은 사찰 중에 하나이다. 축서사는 또한 참선 수행 도량으로 유명하다. 

축서사(鷲棲寺)란 이름은 독수리 축(鷲, 부처님께서 설법을 하시던 영축산의 '축') 깃들 서(棲, 즉 독수리 사는 절이라는 뜻으로 독수리는 지혜를 뜻하며, 지혜는 바로 큰 지혜를 가진 문수보살을 뜻함)에서 따왔다는 설이 있고, 한편으로는 험준한 산세가 풍수지리학적으로 독수리 형국이므로 축서라 명명했다고 보는 이도 있다.

축서사  축서사
▲ 축서사 축서사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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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서사를 창건한 의상은 3년 뒤 축서사에서 40여리 떨어진 봉황산 중턱에 대찰을 세웠으니 이 절이 바로 동국화엄제일도량인 부석사이다. 흔히 축서사를 부석사의 형님 절, 혹은 큰 집이라고 하는 연유가 여기 있다.

축서사  축서사
▲ 축서사 축서사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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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0년을 넘게 이어오던 축서사는 구한말 을사보호조약(서기 1905년)과 정미 7조약(서기 1907년)으로 일제가 조선침략야욕을 드러내자 백성들이 분개하여 의병으로 뭉쳐 무장 투쟁을 할 때, 일본군들이 의병토벌을 위해 방화하여 대웅전만 남기고 전소시켰다. 이 때문에 축서사는 하루아침에 잿더미가 되었고, 오랫동안 전해 내려오던 수많은 유물들이 없어지고 말았다.

그 후 한동안 폐사로 있다가 일제 말에 삼성각과 한국전쟁 직후 요사채를 신축하여 사찰의 체모를 유지하다가, 1980년 전후에 요사채와 토굴 2동을 신축하였다. 이후 제대로 된 절의 모습을 갖춘 것은 최근의 일이다.

문화재급 보물로는 대웅전의 석조비로자나불로, 높이 108cm의 이 석불은 창건 당시 의상이 봉안한 것으로 통일신라 말기의 불상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이외에도 석등 및 석탑이 있다. 이밖에 잘 다듬었던 흔적이 보이는 맷돌, 주춧돌, 석축 등 석재들이 사찰 주변 곳곳에 흩어져있다.

또 하나의 자랑거리는 괘불이다. 서기 1768년에 점안한 괘불로서 크기는 가로 550cm, 세로 880cm, 면적 48.4제곱미터로 대형이다. 입상 아미타불로서 성스러운 존안과 특이한 육계, 풍만한 가슴과 부처상으로 보기 드물게 화려한 의상 및 특이한 후광배는 불자들을 놀라게 한다. 큰 회화이면서도 적당한 구도와 섬세하고 뛰어난 솜씨는 관람자를 감탄케 한다.

실재로 문수산 아래 축서사를 가보면 부석사를 방문했을 때의 감탄사 이상의 경탄사가 나온다. 독수리를 닮은 절 뒤의 산세도 놀랍고, 대웅전 앞에서 바라본 정면의 풍광도 부석사와 비등하다. 

봉화군을 찾는 많은 관광객들이 청량산과 청량사를 주로 방문하지만, 사실 문수산의 축서사를 찾지 않고 봉화를 보았다고 말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좋은 곳이다. 

축서사  축서사
▲ 축서사 축서사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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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부석사에서 축서사까지 가는 길을 '의상대사 길'이라고 이름을 정한 이유는 두 절이 의상대사가 창건한 형제 절이며, 부석사를 창건할 당시 '축서사의 스님들이 부석사를 오가며 절 창건을 도왔고, 축서사에서 밥을 해와 인부들에게 먹였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실재로 의상대사는 부석사를 창건하면서 두 절을 수백 번 왔다 갔다 하면서 공을 들였을 것 이다. 따라서 이번 도보여행 길은 의상대사를 생각하면서 부석사에서 축서사로 가는 길을 택했다. 동생이 형님에게 인사를 드리기 위해 간다는 마음으로 부석사에서 출발을 했고, 의상대사가 걸었던 길을 걸으며, 그의 철학과 사상, 불심을 생각해보는 기회로 삼고자 한다.

단, 길은 1,400년 전의 길과 현재의 길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을 것이다. 당시에는 산길이 있었을 것이고, 수레를 이용하여 간다고 해도 지금과 약간은 달랐을 것 이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부석에서 물야까지 가는 길의 생명과 지혜는 동일하다고 보고, 현재의 도로를 중심으로 길을 잡는다.

부석사는 경내를 대충 둘러보는 데만 1시간이 넘는 시간이 걸린다. 매표소에서부터 길을 오르면 은행나무 길에 길옆에 있는 과수원이며, 인삼 밭이 좋다. 여름과 가을 사과가 익거나 단풍이 들면 걷기에 너무 좋은 길이 된다. 혹자는 이 길이 좋아 부석사를 찾는다고도 한다.

부석사  부석사
▲ 부석사 부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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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문을 지나 당간지주를 보고서 경내로 들어서면 안양루, 범종루, 조사당, 3층석탑, 무량수전, 삼성각, 부석 등등 너무 볼 것이 많다. 감탄사를 자아낸다는 절 앞 풍경을 살펴보면서 나도 감탄사를 연발하다가 길을 나선다.

부석사  부석사
▲ 부석사 부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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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사 주차장을 나서면 바로 봉화, 물야 방면을 알리는 안내판이 나온다. 이내 방동을 지나 다시 좌회전을 하면 봉화군 물야면에 들어서게 된다. 931번 지방도를 따라서 계속가면 물야면 소재지가 나온다. 중간에 당골의 운부암이 멀리 보이고, 압작골이라 불리는 압동리를 지나면 양지마, 음지마, 사골이 나오고, 이내 면 소재지다.

축서사 가는 길  축서사 가는 길
▲ 축서사 가는 길 축서사 가는 길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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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시골마을이 이곳에는 초, 중학교가 있고, 면사무소, 주유소, 농협 등이 보인다. 사실 면 소재지까지 가지 않고 직전에 우회도로를 따라가면 되지만, 둘러보는 재미에 면소재지를 보고 간다. 이곳에서 길을 북쪽으로 잡으면 그 유명한 오전약수터가 나오고, 남쪽으로 길을 잡으면 봉화읍과 축서사로 가는 길이다. 면소재지까지는 부석사에서 1시간이 조금 넘게 걸리는 거리다.

축서사 가는 길  축서사 가는 길
▲ 축서사 가는 길 축서사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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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빠른 길을 택한다면 면소 직전에서 915번 지방도 방향으로 우회전 하면서 길을 틀어 서리까지 가면 된다. 서리 버스정거장이 보이면 좌측에 축서사 안내판이 보인다. 이곳에서 좌회전을 하여 내성천을 건너면 바로 다시 축서사를 가르키는 안내판이 보인다.

개단리 물야초등학교 개단분교
▲ 개단리 물야초등학교 개단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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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좌회전을 하면 여기서부터는 계속 직진을 하면 된다. 이곳까지도 대략 1시간 정도가 걸린다. 이곳에서는 내성천 물길을 따라 문수산 방향으로 계속가면 된다. 중간에 옛 축서사 사하촌(寺下村)의 맨 아래에 위치한 개단리, 물야초등학교 개단분교가 나온다.

학교를 잠시 둘러 본 이후 길을 다시 나서면 결단교와 개단보건소 등이 눈에 들어온다. 사실 이곳까지는 포장도로에 평지를 걷는 길이라 지루함만 있지 힘이 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가파른 길이 시작된다.

월계마을 월계마을
▲ 월계마을 월계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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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거리가 나오고, 월계교회가 보이면 그 길을 따라 계속 올라가게 된다. 길이 가파르고 힘이 든다. 길옆에는 간간히 집과 과수원들이 있고, 송이버섯과 산양삼 재배를 하는 곳이 많은지 곳곳에 출입금지 안내판이 보인다.

산양삼 재배지 산양삼
▲ 산양삼 재배지 산양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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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이 차도록 가파른 산길을 오르다 보면 문수산 정상부에 축서사가 보인다. '어떻게 이런 깊은 산골에 절을 세울 수 있었을까? 인부들은 엄청나게 고생을 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길이 높고 험하지만 힘들게 올라온 보람은 금방 느낄 수 있다.

축서사  축서사
▲ 축서사 축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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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이 자리를 잡고 있는 문수산의 풍광이 과히 장관이다. 독수리를 닮은 형상도 형상이지만, 소나무들이 너무 좋고 방문객을 반기듯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대부분 최근에 지어진 건물들이라 부석사와 같은 고풍스러운 맛은 없지만, 나름대로 웅장하고 산세와 지형과 어울리는 배치도 뛰어나다.

축서사  축서사
▲ 축서사 축서사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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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 앞에 서서 풍광을 바라보니 감탄이 절로 난다. 새롭게 조성된 것 같은 석탑도, 맛있지는 않지만 느낌은 좋다. 경내를 이리저리 둘러본다. 공양간 앞에 장독대가 좋고, 좌우 산에 위치한 소나무들은 더욱 좋다. 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모아서 만들어 놓은 샘터에서 물을 한잔 마시면서 잠시 쉰다.

축서사  축서사
▲ 축서사 축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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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되어 보이는 것은 석탑과 석축 정도지만 운치가 있는 것이 가족들과 다시 한 번 찾고 싶은 절이다. 의상대사를 생각하면서 대웅전에 들어가 큰절을 한번 하고서 다시 '의상대사 길'을 되돌아 영주로 돌아간다. 다음에 올 때는 불교서적과 의상대사에 관한 책을 여러 권 더 읽고서 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축서사  축서사 대웅전 앞에서 본 산하이다. 부석사의 무량수전에서 바라 본 산세랑 너무 흡사하다. 나는 이 곳도 국보 제로로 만들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축서사 축서사 대웅전 앞에서 본 산하이다. 부석사의 무량수전에서 바라 본 산세랑 너무 흡사하다. 나는 이 곳도 국보 제로로 만들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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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 길안내: 서울에서 영주까지 버스를 타고 2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영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는 부석사까지 가는 버스가 40-50분마다 한 대씩 있다. 부석사까지는 30분 정도 걸린다. 부석사를 1시간 정도 둘러 본 후, 축서사로 가면 된다. 아스팔트 길이기는 하지만 차량 통행이 많지 않은 곳이라 걷기에 불편은 없다. 중간 중간 마을도 있고 쉴 곳도 있어서 천천히 길을 가도 4시간 정도면 가능하다. 축서사를 둘러보고 다시 영주로 나오거나 봉화로 가서 추가적으로 여행이 가능하다. 봉화와 영주에는 사과, 인삼, 송이, 한우 등의 농특산물이 유명하며, 산과 절을 둘러보는 여행지로 적당하다. 하루 일정이면 충분히 부석사와 축서사를 둘러보고 귀경하는 가능하다.



태그:#부석사 , #축서사 , #의상대사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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榴林 김수종입니다. 사람 이야기를 주로 쓰고 있으며, 간혹 독후감(서평), 여행기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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