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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산을 쪼개고 논밭을 밀어낸 도로가 나고 택지개발이 되기 전, 마을에는 참새가 그냥 지나치지 않는 방앗간이 있었습니다. 인천의 진산이라는 계양산 아래 자리한 전형적인 농촌마을로, 가족과 친척, 이웃들은 한데 어울려 땅을 일구며 불편하고 부족한게 있지만 알콩달콩 평화롭게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개발이란 무서운 이름에 방앗간도 마을도 이웃들도 순식간에 사라져갔습니다. 그러다보니 농사짓기가 더 어려워졌습니다. 농사는 사람 손이 많이 가는 일인데 마을에는 함께 일할 사람도 땅도 얼마남지 않게 되었습니다.

농사짓기뿐만 아니라 힘겹게 수확한 쌀이나 수수도 마을 주변에 방앗간이 없어, 저멀리 검단이나 강화까지 차에 싣고 가서 곡식을 찧고 빻아와야 합니다. 농촌과 농업을 배려하지 않는 급격한 도시화와 개발은 농부들에게 편리보다는 불편함만 더욱 가중시켰다는 말입니다. 그나마 그린벨트로 묶여 있는 땅에서 먹고 살아왔지만, 이제 모두 인천아시안게임 때문에 평생 천직으로 삼아온 농사일을 접어야 할 판입니다.

 인천아시안게임 선수촌 때문에 논밭을 빼앗기면, 매해 벼농사를 지어온 우리집은 쌀도 사먹어야 할 처지다.
인천아시안게임 선수촌 때문에 논밭을 빼앗기면, 매해 벼농사를 지어온 우리집은 쌀도 사먹어야 할 처지다. ⓒ 이장연

"쌀 팔 때는 18만원, 사먹을 때는 20만원"

그렇게 이제는 쌀도 사먹어야 할 처지에 놓인 우리집에는, 가을걷이 전까지 먹을 쌀이 옥상 계단통로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아침 저녁마다 어머니는 꺼내 압력밥솥으로 밥을 짓습니다.

그런데 점심께 그 쌀을 어머니는 둥근 플라스틱 통에 옮겨담아 집안으로 옮기고 있었습니다. 무거운 통을 혼자서 들려고 하는 것을 보고는 달려가 받아들었습니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어머니는 쌀을 작년 김장을 앞두고 새로 산 김치냉장고에 큰 비닐봉투를 넣고 옮기려 하셨습니다.

 김치냉장고 한칸에 옮겨담은 우리쌀
김치냉장고 한칸에 옮겨담은 우리쌀 ⓒ 이장연

 쌀포대에 남은 쌀도 옮겨담았다.
쌀포대에 남은 쌀도 옮겨담았다. ⓒ 이장연

그래서 쌀통을 번쩍 들어 김치냉장고에 쌀을 조심스레 퍼붓고는, 현관 문 앞에 있는 쌀부대에 든 나머지 쌀들도 바가지로 옮겨 담았습니다. 쌀을 퍼넣으며 김치냉장고에 왜 쌀을 넣어두냐고 여쭈었더니, "오늘 아침도 무지 더운데 매해 여름마다 쌀에서 쌀벌레가 많이나서 이렇게 보관을 해야 추수하기 전까지 잘 먹을 수 있다"고 하시더군요.

예전에는 마을에 방앗간이 있어 벼가마를 쌓아두었다가 그때 그때 필요한 만큼 쪄먹었지만, 이제는 방앗간이 멀리 있어 한 번에 쌀을 정미해 오랜동안 먹으니 이렇게 쌀을 보관할 수 밖에 없다 합니다. 그래서 발품을 팔아가며 가장 싼 김치냉장고를 사셨다 하네요. 옛날 쌀독과 뒤주가 했던 일을, 이제는 우리집 김치냉장고가 대신하고 있습니다. 

 여름철 쌀벌레가 극성을 부려 어머니는 김치냉장고에 쌀을 보관하기로 했다.
여름철 쌀벌레가 극성을 부려 어머니는 김치냉장고에 쌀을 보관하기로 했다. ⓒ 이장연

 우리에게 쌀은 피와 살이다.
우리에게 쌀은 피와 살이다. ⓒ 이장연

 쌀을 담은 비닐을 동여맸다.
쌀을 담은 비닐을 동여맸다. ⓒ 이장연

 쌀을 담아둔 김치냉장고
쌀을 담아둔 김치냉장고 ⓒ 이장연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U포터뉴스와 블로거뉴스에도 송고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쌀#어머니#김치냉장고#쌀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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