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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환 한나라당 의원은 지난 2006년에 이어 지난해 10월 전쟁관련 혼혈인 지원법을 발의했다.
 김충환 한나라당 의원은 지난 2006년에 이어 지난해 10월 전쟁관련 혼혈인 지원법을 발의했다.
ⓒ 오마이뉴스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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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환 한나라당 의원이 강아무개씨를 만난 것은 서울시 강동구청장 시절이었다. 강씨는 백인 미군 병사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1세대 혼혈인'이었다. 유흥업소 무명가수로 전전했던 그는 술 취한 손님들에게 자주 맞았다고 한다. '튀기'라는 경멸적 용어로 그들을 부르던 때였다.

"항상 다친 상태였다. 호소할 데도 없었다. 산에서 내려온 노루가 사람들에 의해 다리가 부러져 돌아다니는 것과 같은 처지였다. 일종의 이지메(따돌림)를 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한국 사회가 참 잔인하다. 워낙 (혈통적으로) 동질화된 사회다 보니 이렇게 이질적인 사람을 돌봐주지 않는다."

"이주여성 등에는 관심이 많은데..."

강씨를 비롯해 서울 강동구에 살던 몇몇 혼혈인들을 만나면서 김 의원은 그들의 현실에 눈을 떴다.

"그분들은 생활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무시받으며 살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들이 이렇게 적응하지 못한 것은 우리 사회가 가진 (지나친 혈통의) 동질성 때문 아닌가? 이들이 누구 때문에 불행하고 어려운 삶을 살고 있나? 민족간 전쟁이 일어났고, 그 이후 미군 등 연합군이 참전하면서 전쟁 중 원치 않거나 그들을 위해 봉사하는 과정에서 임신을 한 여성들이 생겼다. 이들과 그 자녀들이 (한국전쟁이라는 현대사의) 짐을 다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방치하는 것은 옳지 않다."

1995년부터 내리 세 번에 걸쳐 강동구청장으로 선출된 김 의원은 2004년 17대 총선을 통해 국회에 입성했다. 국회 여성가족위에서 활동하던 그는 2006년 '혼혈인가족 지원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하인스 워드법'으로 불릴 만한 이 법안은 제대로 심사조차 받지 못한 채 자동폐기됐다.

"당시 여성가족위에서 활동했던 여성 의원들은 (동남아 이주여성 등) 다문화가족에 관심이 많았다. 반면 1세대 혼혈인은 조금 어두운 이미지가 있다고 느껴서인지 법안을 심사하는 데 소극적이었다. 또 여러 가지 법안이 쌓여 있다 보니까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1세대 혼혈인이 다문화가족보다 열세이지 않나. 결국 17대 국회가 끝날 즈음 다문화가족지원법만 통과됐다."

김 의원은 18대 국회가 열리면서 지난해 10월 같은 법안을 '특별법' 형식으로 다시 발의했다. 일각에서는 지난 17대 국회에서 통과된 '다문화가족지원법'의 '다문화가족' 대상을 확대해 '전쟁혼혈인'을 여기에 포함시키는 것을 현실적인 대안으로 내놓기도 했다.

"법의 기능적 측면에서 보면 그것이 맞고 편리한 측면도 있다. 하지만 현재 우리 사회는 1세대 혼혈인에 부정적인 분위기가 남아 있다. 이주여성이 결혼 이주한 농촌에서도 1세대 혼혈인과 함께 섞이는 것을 거부하는 경향이 있다. 또 엄밀히 보면 1세대 혼혈인들은 다문화가족이 아니다. 피부색만 흑백일 뿐이지 한국인이다. 게다가 이주여성의 경우 대체로 자발적으로 국제가족이 됐지만, 혼혈인들은 전쟁과 미군 주둔 과정에서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태어났다. 그런 점들을 고려해 특별법을 통해 따로 지원하는 게 맞다."

지난 17일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전쟁관련 혼혈인 지원' 공청회.
 지난 17일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전쟁관련 혼혈인 지원' 공청회.
ⓒ 김충환 의원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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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관련 혼혈인을 지원하는 일은 인권의 문제"

김 의원이 주최한 지난 17일 공청회에서는 김통원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가 '1·2세대 혼혈인의 욕구 및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여기에는 '한국 하인스 워드들의 막막한 현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전날(16일) <오마이뉴스>가 입수해 보도한 이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1·2세대 혼혈인들의 월 평균 개인소득은 86만5400원에 불과하고, 10명 중 6명은 시간제 아르바이트 등 비정규직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생활고에다 심각한 고용불안의 처지에 놓인 것이다.

특히 이러한 현실 때문에 조사대상의 55.64%는 어떤 형태의 치료도 못 받고 있었다. 이와 함께 사회적 학대와 차별로 인해 10명 중 6명이 우울증을 앓았고(59.60%), 심지어 10명 중 한 명은 자살까지 시도한 적이 있다(10.29%)고 응답했다.

김 의원은 이러한 막막한 현실에 놓인 혼혈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일로 '사회적 시선의 변화'를 꼽았다. 

"우리 사회가 그분들을 따뜻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홍보하고 교육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들 들어 혼혈인 가수가 나오면 그가 피부색이나 외모가 아니라 능력을 인정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얘기다. 한국에서도 하인스 워드와 같은 이들이 나올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자신을 불필요한 존재로 여기며 살지 않고 대한민국을 긍정하고 자부심을 갖고 살 수 있다."

물론 경제적 지원도 중요하다. 김 의원은 "정부가 원호가족들을 지원해주고 있듯 그들과 똑같은 수준으로 명예뿐만 아니라 혼혈인들이 살 만한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며 "최저생계비와 주택 등 기본 복지를 보장해주고 직장도 알선해주는 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독일과 미국이 맺은 SOFA협정을 보면 미군과 독일인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의 경우 학비 등 양국이 각각 50%씩 부담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렇게 혼혈인을 배려하는 규정은 없다. 1세대 혼혈인들에게는 자신들을 지켜줄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는 경제력이 없다. 이들을 지켜줄 법과 제도가 전무하다. 사회공동체로부터 완전히 소외된 집단인 셈이다."

김 의원은 "혼혈인 지원법이 보건복지가족위에 상정되면 의원들이 가볍게 처리하지 않을 것"이라고 18대 국회 통과에 자신감을 보인 뒤 이렇게 말했다.

"혼혈인들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고독, 외로움, 불안, 궁핍, 고립감, 슬픔, 공포 등이다. 그걸 해소해주는 것은 어찌 보면 인권의 문제이자 인간 본질의 문제다. 또 국가의 도덕이나 윤리를 강화하는 데도 중요하다."


태그:#김충환, #전쟁혼혈인지원법, #하인스 워드, #혼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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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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