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오전 천안시 백석동의 수정지역아동센터. 지역아동센터를 방문한 두 명의 손님에겐 빵 꾸러미가 들려 있다. 이날 수정지역아동센터에 한 꾸러미의 빵을 전해 준 사람들은 천안기초푸드뱅크(대표 조응주)의 종사자들. 천안기초푸드뱅크는 2006년 중반부터 매주 한차례씩 수정지역아동센터에 빵을 전달하고 있다. 빵은 푸드뱅크가 천안의 빵 가게들에게 기부받아 조달한다.
수정지역아동센터에는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자녀와 한부모 가정 자녀 등 저소득층 가정 자녀 20여명이 이용하고 있다. 이지영 수정지역아동센터 교사는 푸드뱅크의 빵 전달이 센터 운영에 큰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수요일마다 아이들에게 간식으로 빵을 나눠줘요. 푸드뱅크가 없다면 돈을 주고 직접 빵을 사야죠. 센터 운영비도 늘 부족한데, 간식용 빵마저 구입해야 하면 센터 운영의 어려움이 가중됩니다. 푸드뱅크의 도움을 톡톡히 보고 있는 셈이죠." 식품기부의 베이스캠프, 푸드뱅크
푸드뱅크는 개인이나 기업들로부터 여유식품을 무상으로 기탁받아 음식이 부족해 굶거나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무료로 나눠주는 식품기부 운동이다. 1967년 미국에서 자선사업으로 처음 시작됐다. 우리나라에는 지난 1997년 외환위기 발생 이후 결식계층을 위한 대책의 일환으로 선보였다.
현재 천안에는 천안기초푸드뱅크와 천안서부푸드뱅크 2곳이 운영중이다. 천안기초푸드뱅크는 천안지역자활센터, 천안서부푸드뱅크는 구세군천안교회가 각각 운영한다. 식품기부의 베이스캠프 역할을 수행하는 푸드뱅크. 등장 배경도 그렇듯 푸드뱅크의 가치는 경제적인 이유로 먹을거리 장만이 어려워지는 시절에 더욱 돋보인다.
2000년부터 운영을 시작한 천안기초푸드뱅크는 3월 현재 지역아동센터와 사회복지시설 등 43개소에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기부식품을 전달한다. 43개소 가운데 30.2%인 13개소는 올해부터 신규로 푸드뱅크에서 기부식품을 제공받고 있다.
푸드뱅크에 기부된 식품을 이용하는 곳이 올해 들어 크게 늘어난 까닭은 어려운 경제여건이 첫 번째로 꼽힌다. 불황의 골이 깊어지고 지역아동센터 등 각 복지시설마다 후원의 손길이 줄어들며 운영난에 직면하자 푸드뱅크에 식품만이라도 요청하는 상황. 실제로 천안기초푸드뱅크의 2009년 신규 이용자의 절반은 저소득층 아동들의 돌봄 역할을 맡고 있지만 후원 구조가 취약한 지역아동센터들이다.
푸드뱅크 운영단체들은 기부식품을 원하는 곳은 증가하지만 정작 기부식품의 물량이나 제공처는 사실상 줄어들어 울상을 짓고 있다.
푸드뱅크, 기부식품 제공자 줄고 이용자 늘고 천안기초푸드뱅크에는 현재 35개소가 정기적으로 식품을 기부하고 있다. 작년 말 22개소에 비해 13개소가 많아졌다. 외형상 기부식품 제공자가 증가했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반길 만한 사정은 아니다.
올해 들어 늘어난 기부식품 제공자 13개소 가운데 11개소는 학교. 현재 푸드뱅크에 식품이나 음식을 기탁하는 35개소 가운데 학교가 24개소를 차지한다. 빵이나 떡을 기부하는 가게와 점포는 11개소. 2008년 말보다 2개소 증가에 그쳤다. 푸드뱅크의 기부식품을 이용하는 곳은 지역아동센터 등 복지시설이 많은 만큼 완전 조리된 음식보다 빵 등 간식류와 식자재를 선호한다.
하지만 빵 가게의 경우 원재료인 밀가루 가격 상승으로 푸드뱅크에 기부되는 빵의 물량이 작년 하반기부터 감소 추세에 있다.
천안기초푸드뱅크 김희정 팀장은 "예전에는 빵 가게나 떡집에서 기부 물량까지 감안해 넉넉히 빵과 떡을 만들었다. 요즘은 판매량에 맞추거나 조금 적게 만들면서 기부가 없는 날도 종동 있다"고 말했다.
부정기적으로 식자재를 기부하는 발길도 줄었다. 지난해는 식자재 유통업체들이 푸드뱅크에 기부하는 사례가 한달에 몇 건 있었다. 올해는 업체들의 경영난이 커지며 식자재 기부 사례가 눈에 띄게 드물어졌다.
기부식품을 이용하는 시설과 단체의 수요를 충족하기에 어려움을 겪기는 천안의 또 다른 푸드뱅크도 마찬가지.
천안지역 10여개 복지시설에 기부식품을 전달하고 있는 천안서부푸드뱅크. 강봉구 천안서부푸드뱅크 담당자는 "푸드뱅크의 기부식품을 이용할 수 없느냐는 문의전화가 1주일에 적을 때는 2~3건, 많을 때는 5~6건씩 걸려 온다"고 말했다. 강봉구씨는 "경제난의 여파로 기부 물량이 줄어 새로운 곳에 기부식품 전달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며 "기존 이용자들에게 기부식품을 전달하는 횟수도 주 1회에서, 2주에 한번으로 조정했다"고 말했다.
푸드뱅크 활성화 시책 필요 기부식품 제공사업 지원 조례 제정 필요성 대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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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뱅크 활성화와 식품기부 운동의 지속적인 추진을 위해 조례 제정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정부는 식품기부를 활성화하고 기부된 식품을 생활이 어려운 이들에게 지원하기 위해 2006년 9월부터 '식품기부 활성화에 관한 법률'을 제정.시행하고 있다. 식품기부 활성화 법률 7조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는 식품기부 및 기부식품제공사업을 지원.장려하기 위해 필요한 시책을 강구해야 한다.
또한 지방자치단체는 기부식품 제공자 또는 사업자에게 필요 경비의 일부를 보조할 수 있으며 필요한 경우 지방자치단체 보유식품 중 일부를 제공자 및 사업자에게 제공할 수 있다.
같은 법 시행령에는 식품기부 활성화를 위한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이 더욱 명확히 규정되어 있다. 시행령 7조는 기부식품 제공사업의 지원.장려 및 이용자 보호를 위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기부식품의 지역 내 적재적소 제공, 그 밖에 식품기부 활성화를 위해 필요한 사항 등이 포함된 시책을 수립.시행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현재 천안시는 별도로 수립된 식품기부 활성화 시책이 없다. 시책의 부재는 푸드뱅크 운영단체의 지원 현실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천안기초푸드뱅크는 푸드뱅크 운영 인력 4명과 기부식품의 수거와 운반을 위한 1톤 냉동탑차의 유지비용을 자활사업에서 지원받는다. 자활사업외에 푸드뱅크 명목으로 천안시가 지원하는 사항은 없다. 천안서부푸드뱅크는 전담 인력 1명의 인건비와 1톤 냉동탑차의 유지비용 일체를 구세군천안교회가 충당한다. 자체 예산에 의존하다보니 새로운 식품 기부자 물색이나 원거리 이용자에게 기부식품 전달은 제약을 받는다.
장기수 천안시의회 의원은 "관련 조례 제정 등을 통해 천안시가 기부식품 제공사업을 활성화하고 푸드뱅크 지원사업을 적극 강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천안시 서비스연계팀 관계자는 "조례가 만들어지면 푸드뱅크 지원이 좀 더 수월하겠지만 현재 조례제정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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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천안지역 주간신문인 천안신문 519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윤평호 기자의 블로그 주소는 http://blog.naver.com/cnsis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