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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 카메라 플래시에 놀란 모습. "저 무척 귀엽죠"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 카메라 플래시에 놀란 모습. "저 무척 귀엽죠" ⓒ 박도

봄은 건너뛰고 여름이 온 듯

강원 산골은 겨울이 긴데도 요즘 날씨는 어찌된 셈인지 봄은 건너뛰고 여름이 온 듯하다. 지난 주초에는 겨우내 껴입었던 내복도 벗어버렸고, 그동안 실내에 두었던 화초와 유자나무도 마당에 꺼내 물을 듬뿍 주고 일광욕도 시켰다. 말 못하는 식물이지만 얼마나 상쾌했으랴.

간밤에는 제 집에서 잠자던 카사란 놈이 칭얼거렸다. 아마도 이제는 날씨도 따뜻해졌으니 밤에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게 문을 잠그지 말라는 하소연 같았다.

삼년 전 이 녀석을 밖에다 기르기로 한 뒤 늦가을부터 늦은 봄까지 밤에는 그래도 제 집에 가둬 길렀다. 카사는 심야 보일러실을 제 집으로 쓰기에 문을 열어두면 저도 추울 테고, 보일러실도 보온이 되지 않기 때문에, 저녁밥을 챙겨준 뒤부터 이튿날 아침밥을 줄 때까지는 제 집 문을 잠갔다. 

오늘은 날씨가 완연히 풀린 듯하여 저녁밥을 주고는 문을 닫지 않았다. 이제 카사는 다시 24시간 자유의 몸이 된 거다. 늦은 밤 이 녀석이 제 집에서 자는지 궁금하여 가서 살피자 꼴이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옆집 노씨네 곳간을 드나드는 쥐를 잡으러 갔는지, 아니면 뒷산 다람쥐를 잡으러 갔는지, 오랜만에 즐거운 밤마을을 간 모양으로 짐작했다. 

 내 방에 몰래 들어와 폐지함에 자리를 잡은 카사
내 방에 몰래 들어와 폐지함에 자리를 잡은 카사 ⓒ 박도

내 방으로 돌아와 요즘 집필 중인 원고를 '불러오기'로 화면에 띄워 자판을 두들기고 있는데, 책상 아래쪽에서 벽을 갉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순간 쥐들이 오늘 저녁부터 카사 집 문을 열어준지도 모르고 '겁도 없이 설치는구나'라고 생각하고는 소리 나는 곳을 내려다보았다. 그런데 천만 뜻밖에도 카사란 놈이 신문이나 폐지를 담는 종이박스에 둥지를 틀고 누워서 매우 행복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는 앞발로 나에게 장난기 어린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아까 내가 잠깐 방문을 열어둔 새 이놈이 내 글방에 슬그머니 들어온 모양이다. 그러고는 제 딴에 가장 나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장소를 찾아 -제 몸의 털이 흩어지지 않는 장소- 임시 둥지를 틀고는 내가 일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밤의 시간을 즐기는 것이었다.

놀라면서도 한편은 반가운 마음에 제 놈의 목덜미를 긁어주자 곧 드렁드렁 골면서 아예 눈을 감았다. 내 일이 끝날 때까지 두어 시간 내버려두었다. 그놈이 얼마나 외로웠으면 내 방을 찾아왔을까? 일을 끝낸 뒤 안아다가 제 집으로 돌려보냈다. 밤새 그놈이 내 방에다 대소변을 본다면 피차 얼굴 찌푸릴 일이 아닌가. 

 저를 이 방에서 하룻밤 재워주세요
저를 이 방에서 하룻밤 재워주세요 ⓒ 박도

짐승들은 사랑을 준만큼 따른다

카사는 부모로부터 떨어진 뒤에는 가족이 없다. 사람들은 자기들 위주로 반려동물을 기르기에 수컷들은 어릴 때부터 거세를 시켜버린다고 한다. 원래 이놈을 데려온 아들의 말에 따르면, 거세를 시키지 않으면 집에서 기르기가 매우 힘들다고 했다. 아마도 밤낮으로 여자 친구를 쫓아다닐 테니까 여간 성가시지 않을 게다. 거기다가 가족이 수시로 불어나면 그 뒤치다꺼리도 조련치 않을 거다. 생각할수록 평생 독신으로 지내는 이 놈이 아주 불쌍하다.

 오랜만에 저를 우리 집에 데려온 아들에게 안겨 행복해 하고 있다.
오랜만에 저를 우리 집에 데려온 아들에게 안겨 행복해 하고 있다. ⓒ 박도
지난날 서양 사람들이 반려동물인 개나 고양이에게 당신 유산을 물려주었다는 해외 토픽을 보고서는 별미친 사람도 다 있다고 여겼다. 그런데 막상 내가 카사를 길러보니까, 그네들의 마음 씀과 동물애호정신이 이해가 되었다. 

짐승들은 사랑을 준만큼 따른다. 그들은 사람에게 거짓말을 하거나 사람을 배신하지 않는다. 무료할 때는 말벗이 되어주고, 내가 저를 돌본 보상으로 밤새도록 내 집 언저리를 맴돌며 나를 지켜준다. 자식은 크면 내 곁을 떠나지만 그는 내가 버리지 않는 한 내 언저리를 맴돈다.

우리 부부는 일찍이 이놈이 제 스스로 우리 집을 떠나지 않는 한, 저를 지켜주기로 다짐했다. 다행히 제 놈이 우리보다 먼저 천수를 다한다면 뒷산 양지 바른 곳에 깊이 묻어줄 테지만, 누가 저나 나의 앞일을 미리 장담할 수 있겠는가.

요즘 들어 나는 나이 탓인지 죽음이 멀지 않음을 느낀다. 사실 죽음도 별 거 아닌, 삶의 과정이리라. 불교의 윤회설이 참말이라면 카사의 전생과 나의 전생이 무엇이었기에 이생에서 서로 만나 5년 남짓 한 지붕아래 사는 것일까.

문득 김광섭 선생의 <저녁에>라는 시구 한 구절이 떠오른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저는 당신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저는 당신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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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카사, 너의 세상살이도 녹록치 않구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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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네이버카페 '박도글방'에 오시면 더 많은 산골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카사(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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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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