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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검찰조사를 받고 나온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모습.
 지난해 12월, 검찰조사를 받고 나온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모습.
ⓒ 이경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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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새벽 검찰이 추부길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을 전격 체포함에 따라 '박연차 태풍'이 여권까지 사정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검찰은 22일 추 전 홍보기획비서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추 전 비서관은 청와대를 나온 직후인 지난해 9월 박연차(구속 기소)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세무조사를 무마시켜 달라"는 청탁을 받고 1~2억원을 건네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추 전 비서관의 이름은 그동안 소문으로만 떠돌던 '박연차 리스트'에 올라와 있지 않았다. 따라서 이번 일이 청와대와 한나라당 등 여권으로서는 충격적일 수 밖에 없다. 옛 열린우리당계와 친노 진영을 겨냥한 검찰의 칼이 언제 자신들을 향할 지 모르기 때문이다.

지난 20일 기자들을 만난 이인규 대검 중앙수사부장이 "차라리 겨울이 따뜻했다",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표현한 것도 검찰의 사정바람이 여야를 막론하고 불어닥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추부길 체포가 여권 시련의 '신호탄'이 될 수도 있다.

여의도 정가 "박연차, 한나라당 텃밭에 물 안 줬겠나"

사실 여의도 정가에서는 "박 회장이 구속되면 야권보다 여권이 더 많이 다칠 것"이라는 소문이 암암리에 돌고 있었다. PK를 중심으로 오랫동안 사업을 해 온 박 회장이 '한나라당의 텃밭(PK)에 물(돈)을 주지 않았을리는 만무하다'는 게 소문을 뒷받침하는 근거다.

실제로 지난 20일 검찰에 구속된 송은복 전 김해시장도 한나라당 출신이다. 송 전 시장은 지난 2008년 4·9 총선에 김해을 지역구에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하면서 백양터널 앞에서 박 회장측으로부터 정치자금 5억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송 전 시장 외에도 한나라당 중진급 정치인들의 이름이 연일 신문지면을 오르내리고 있다. 허태열(3선, 부산 북강서을)·권경석(재선, 경남 창원갑) 의원은 물론 한나라당 출신 박관용 전 국회의장도 박 회장과 인연을 맺었던 것으로 구설수에 올랐다. 이 밖에 PK 거물급 의원 K씨에 대한 소문도 나온다.

하지만 이들은 한결같이 박 회장과 "만난 적도 없다"고 펄쩍 뛰고 있다. 한나라당 최고위원인 허태열 의원은 공식 해명서를 통해 "지난 10년 동안 박 회장이나 그의 대리인도 만난 적이 없고, 어떤 금전 거래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권경석 의원도 "박 회장으로부터 단 한푼의 돈도 받은 일이 없다"고 부인했다. 박 전 국회의장의 경우 퇴임 후 자신이 세운 '21세기발전연구소'에 박 회장이 후원금을 낸 적이 있다고 밝혔지만, 민간연구소 후원금이라 법적으로 문제 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지역 정가의 시각은 다르다. 이 지역의 한 한나라당 의원은 최근 "박 회장이 워낙 발이 넓은 인물이고 경남 지역 모임마다 마주쳤던 정치인도 꽤 많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PK가 전통적인 한나라당 텃밭이고, 부산(18석 중17석)과경남(17석 중 14석) 지역구의원 대부분이 한나라당 소속인 것도 박 회장과 여권 의원들이 '엮였을' 개연성을 충분히 높여주고 있다.

문제는 여권 내에서 이름이 거론되는 인물들이 대부분 '친박 계열'이라는 점이다. 이 때문에 친박 쪽에서는 '음모론'도 나온다. 친박 계열의 한 의원은 <세계일보>와 인터뷰에서 "검찰이 이제 와서 연말·연초에 루머로 나돌던 리스트를 거론하고 나선 배경에 의구심이 든다"며 "혹시 검찰이 4·29 재보선을 앞두고 친이명박계 후보들을 측면지원하기 위해 친박 진영의 도덕성에 타격을 주려는 것이 아니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광재 '17시간 조사'... 혐의 전면 부인

추부길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
 추부길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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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정권 출범 이후부터 '박연차 리스트' 악몽에 시달려 온 야권(민주당, 옛 열린우리당)도 이번 사태를 불안하게 바라보기는 마찬가지다. 민주당에선 이광재(강원 태백·영월·평창)·서갑원(전남 순천)·최철국(경남 김해을) 의원이 검찰 수사선상에 올라있다. 민주당 원로인 K의원과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수석급 L씨, 김혁규 전 경남도지사도 불법 정치자금 수수 리스트에 올라 있다는 소문이 났다.

추 전 비서관이 전격 체포된 21일 민주당 이광재 의원은 검찰에 소환돼 17시간 강도 높은 조사를 받고 귀가했다. 이 의원은 박 회장으로부터 지난해 총선을 전후해 정치자금 5만 달러(한화 5000만원 가량)를 불법으로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친노' 핵심으로 평가받는 이 의원은 박 전 회장이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수사를 받을 때마다 제일 먼저 이름이 오르내리곤 했다.

하지만 이 의원은 모든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이 의원은 오늘(22일) 새벽 귀가하면서도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5만불이든 그 이상이든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일이 없다"면서 "시간이 지나면 밝혀질 것"이라고 억울한 심경을 토로하기도 했다.

서갑원 의원도 혐의를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서 의원은 지난 19일 공식 보도자료를 내고 "지난 2006년 태광실업으로부터 영수증 처리한 합법적 후원금 이외에는 다른 정치자금을 제공 받은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지난 2006년 5월 당시 태광실업 최규성 상무 명의로 500만원의 후원금을 받았지만, 영수증 처리를 거친 합법적 후원금이라는 얘기다.

최철국 의원은 "2005년 박 회장 측근 정아무개씨로부터 전세보증금 공탁을 위해 7000만원을 수표로 빌린 뒤 2007년 이자를 더해 돌려준 사실은 있지만 불법 정치자금을 받지는 않았다"라고 해명한 바 있다.

그러나 검찰 수사로 박 회장과 옛 열린우리당계 정치인들의 커넥션은 일부 드러나고 있다. 앞서 검찰은 이정욱(60) 전 한국해양수산개발원장을 구속했다. 이 전 원장은 지난 2005년 4.30 재보선 직전 옛 열린우리당 후보로 경남 김해갑 지역구에 출마한 바 있다. 이 전 원장 역시 박 회장으로부터 정치자금 5억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전 원장에게 돈을 전달한 사람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친형 노건평씨로 검찰 수사 결과 드러났다.  

검찰 "현직 고검장급 금품수수" 당혹

한편 검찰 고위 간부도 박 회장으로부터 금품을 수수했다는 의혹이 나와 검찰을 당혹스럽게 하고 있다.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검찰이 박 회장으로부터 현직 고검장급 간부 1명에게 10만 달러를 건넸다는 진술을 받아냈다고 한다. 이외에도 2~3명의 전·현직 검찰간부가 박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얘기가 나온다. L씨, P씨 등 구체적인 이니셜도 떠돈다. 이들은 대부분 PK 근무 시절 박 회장과 연을 맺고, 금품을 수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검찰은 이같은 의혹을 부인했다. 조은석 대검찰청 대변인은 지난 20일 보도자료를 통해 "현직 고검장은 물론 고검장급 간부 그 누구도 관련이 없는 전혀 사실과 다른 명백한 오보"라고 해명했다.


태그:#박연차, #추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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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오마이뉴스 입사 후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편집부를 거쳐 정치팀장, 사회 2팀장으로 일했다. 지난 2006년 군 의료체계 문제점을 고발한 고 노충국 병장 사망 사건 연속 보도로 언론인권재단이 주는 언론인권상 본상, 인터넷기자협회 올해의 보도 대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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