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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장자연씨가 자살한 지 22일로 15일이 지났지만 경찰의 수사는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경찰은 장씨의 유족들이 일명 '장자연 문건'에 거론된 4명을 고소했음에도 불구하고 전 매니저 유장호씨의 소환조사에만 초점을 두고 있다. 문건의 유출 경위가 우선으로 밝혀져야 한다는 경찰의 수사 방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작 경찰은 중요한 인물의 수사는 진행하고 있지 않다. 현재 경찰은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소속사 대표 김아무개씨의 소재 파악도 제대로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또 관심을 받고 있는 '장자연 리스트'에 언급된 인물들의 수사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매일 오전 10시 30분에 열리는 브리핑에서 경찰은 유씨와 관련된 질문에 적극적으로 대답하는 반면, 문건의 인물과 관련된 질문에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이와 같이 경찰은 핵심적인 수사를 뒤로 한 채 '장자연 리스트' 유포 관련 사이버 수사 등 사건의 본질과 거리가 먼 수사만 진행하고 있다.


언론이 '수사'하면 경찰은 '보도'?... 답답한 경찰수사

 

22일 새벽 1시 경찰은 삼성동에 위치한 장씨의 전 소속사 건물을 압수수색했다. 전 소속사 건물에서 '성상납'이 이루어졌으며 3층에는 침실과 샤워시설이 갖춰져 있다는 몇몇 언론의 기사가 나온 뒤였다. 전형적인 늦장 수사였다.

 

기자들이 22일 브리핑에서 "왜 이제야 소속사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나. 너무 늦은거 아닌가"라고 묻자 분당경찰서 오지용 형사과장은 "소속사 사무실이 이사했고, 전 사무실에 압수수색을 해야 하는 물품이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고 변명했다.

 

전 소속사 건물이 위치한 삼성동 이웃 주민의 말에 따르면 압수수색하기 몇일 전 사무실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와서 짐을 챙겨갔다. 경찰은 전 소속사 건물 압수수색에서 컴퓨터 1대 등 44개 품목에 201점을 압수했다고 밝히고 있지만, 김씨 측이 중요한 증거품들을 미리 빼돌렸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중요한 물증이 나오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또한 경찰은 김씨의 소재 파악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수사를 진행 중이다. 작년 12월 일본으로 출국한 뒤 돌아오지 않고 있는 김씨는 사건의 해결을 위한 중요한 인물이다. 그러나 경찰은 도쿄 주재관에 협조를 요청했을 뿐 어떠한 대처도 하고 있지 않다.

 

반면 김씨는 일부 언론과 수차례 연락을 주고받으며 TV에까지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에 경찰은 "그가 경찰의 전화는 받지 않는다" , "소재 파악이 안된다"라는 궁색한 변명만 늘어놓고 있다.

 

또 지난 21일 SBS <8뉴스>를 통해 장자연씨가 지난해 5월 16일 소속사 대표 김씨, 드라마PD 등과 함께 '골프 접대'를 위해 태국으로 출국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같은 사실이 보도된 다음날(22일) 열린 브리핑에서 오 과장에게 기자들이 '태국 골프 접대'에 대한 수사 상황을 물어보자 그는 당황한 모습을 보이며 대답을 피했다. 출입국관리소를 통해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사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수사하지 않은 것이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장씨가 자살한 7일에도 경찰은 수사에 문제점을 드러냈다. 경찰은 장씨가 자살한 다음날인 8일 수사 하루만에 '우울증에 의한 자살'로 결론을 내리고 수사를 종결했다. 그러나 지난 13일 KBS의 문건 공개로 인해 경찰은 다시 수사 전담반을 꾸리는 웃지 못할 모습까지 보였다.

 

이번 사건에서 경찰은 ▲'장자연 문건' 입수 ▲소속사 대표 김씨의 소재 파악 ▲전 소속사 건물의 뒤늦은 압수수색 ▲장씨의 '태국 골프 접대' 등을 언론보다 한 발 늦게 파악하며 수사력에 허점을 보이고 있다.

 

경찰, 유씨를 제외한 피고소인 조사에는 '나 몰라라'

 

 

지난 17일 장씨의 유족들은 '장자연 문건' 관련자 7명을 고소했다. 지금까지 확인된 바로는 피고소인 3명은 KBS가 보도한 '장자연 문건'과 관련해서, 4명은 문건에 담긴 내용과 관련해서 경찰 수사를 받아야 한다.

 

전자인 3명은 생전의 장씨로부터 문건을 넘겨받았다는 전 매니저 유장호씨, KBS 보도국 간부 그리고 문건을 처음 입수한 것으로 알려진 KBS 기자로 밝혀졌다. 또 후자 4명은 일본에 머물고 있는 전 소속사 대표 김모씨를 포함한 '저명인사 그룹'에 속하는 인물들로 알려졌다.

 

그러나 7명의 피고소인 중 유씨에 대한 수사만 유일하게 진행되고 있다. 특히 경찰은 문건에 담긴 내용과 관련해 고소당한 4명 중 김씨를 제외한 3명의 수사 과정에 대해서는 굳게 입을 다물며 소환 의지가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일부 언론들은 피고소인들이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어 수사를 꺼리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22일에는 경찰이 '타당한 이유 없이 소환조사에 응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YTN 노종면 노조위원장 등 4명을 긴급 체포하는 일이 있었는데, 이들은 26일 경찰출두를 약속한 상태에서 구속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경찰이 장씨의 문건과 관련해 고소당한 유력인사 3명의 소환을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꺼리고 있다.

 

"특별한 이유 없이 긴급 체포된 YTN 노조의 사례에 비추어 보면 유력인사 3명의 소환도 문제될 게 없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만하다. 그러나 경찰은 여전히 고소당한 유력인사 3명과 관련된 기자들의 질문에는 입을 닫고 있고, 이들의 수사에 소극적인 모습으로 일관하고 있다.

 

27명->41명 수사 인원 확대, 사이버 수사만 활발

 

"사건을 진행할수록 확인 사항이 늘어나서 27명으로 운영하던 수사 전담팀을 41명으로 증원했다. 문건 내용을 제대로 수사해 죄가 있는 사람에게 벌을 주고, 관련 없는 무고한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

 

지난 20일 조현오 경기경찰청장이 분당경찰서를 방문해 기자들 앞에서 한 말이다. 이는 '장자연 리스트' 자체는 물론이고, 진위가 가려지지 않은 리스트에 대한 사이버 수사도 강도 높게 진행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수사는 진척 없이 답보 상태에 머물고 있다. 경찰은 피고소인들의 소환조사를 여전히 진행하지 않고 있고, 장씨의 전 소속사 건물을 뒤늦게 압수수색하는 등 소극적인 수사로 일관하고 있다.

 

반면 '장자연 리스트' 유포자 관련 사이버 수사는 활기를 띄고 있다. 경찰은 지난 20일과 21일 브리핑을 통해 "싸이월드 등 주요 사이트에 '장자연 리스트'를 올린 누리꾼들을 수사하겠다"며 "장자연 리스트 관련 실명을 거론한 50여개 글 중 비방목적이 내포된 글에 대해 해당 사이트에 통신자료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또 22일 브리핑에서는 "'장자연 리스트'를 작성해 인터넷에 유포한 사람들을 추적하기 위해 사이버 모니터링과 채증 활동을 벌이고 있다. 계속해서 수사할 계획"이라며 사이버 수사에 강력한 의지를 밝혔다.

 

경찰은 27명에서 41명으로 수사 인원을 증가한 이유를 '장자연 문건'을 빠르고 정확하게 수사하기 위해서라고 밝히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사이버 수사에서만 효과가 나타날 뿐이다.

 

또 사건의 중요도를 고려해 봤을 때, 41명의 인원은 얼마 전 발생한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 폭행사건에 50명의 수사 인원이 투입된 것에 비해 터무니없이 부족한 인원이다. 

 

핵심을 피해가는 수사, 언론보다 느린 수사로 사건을 더욱 미궁에 빠지게 하는 경찰.

 

시간을 지체하는 수사는 피고소인들에게 증거인멸의 시간을 주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경찰이 장자연씨 사건의 본질을 흐리지 않고 의혹을 풀어낼 수 있을 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들이 차츰 늘어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김환 기자는 <오마이뉴스> 인턴기자입니다.


태그:#장자연, #유장호, #성상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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