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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그룹 젝스키스 출신의 이재진이 20여일 동안 자대에 미복귀 중이라고 합니다. 미복귀 이유를 놓고 외부에서 여러가지 말들이 오가고 있지만 지금까지 가장 설득력을 얻는 내용이 '군대에서의 부적응'쪽에 초점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이재진은 재입대 3개월 전인 지난해 5월 모친상까지 당했는데 그 후유증 때문에 군에 잘 적응하지 못했고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다고 합니다. 부모님까지 돌아가시고 병역 특례비리로 재입대 처분까지 받았으니 아마도 군에 있기 싫었던 모양입니다.

 

솔직히 말이 재입대이지, 실제로는 재입대 자체가 대한민국 남자들이 겪고 싶지 않은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군대가 좋아서 혹은 군대 시절의 추억을 다시 느끼고 싶어서, 사회에서 이렇다할 길을 찾지 못해 재입대를 택하는 케이스를 제외하면 군대에 다시 들어가는 기분이 마음 속으로 내키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군대에 다녀오면 앞으로의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얻을 것(특히 강한 인내력)이 있지만 재입대를 비롯 입대 그 자체만으로도 쉽지 않은 선택이지요. 누구나 일상 생활에서 하고 싶은 것들이 많은 데다 나름 꿈과 희망이 있기 때문에 군에 입대하는 것이 어쩌면 부담스러울 수 있습니다.

 

사실은 저도 군대에 가기 싫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원래 입영 연기를 계속 하려고 했다가 부모님이 제발 군대 가라며 끈질기게 타이른 끝에 남들보다 1년 늦게 군에 입대했지요. 일상 생활에서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았지만 군대에 대한 안 좋은 이야기들이(구타 및 가혹행위 등등) 매스컴과 제 주변에서 계속 나돌았기 때문에 국방색 전투복을 입기가 싫었습니다. 군대에서 온갖 안 좋은 일을 겪으면서 2년을 보내기에는 정말 두렵고 공포스러웠으니까요. 그 시절에 심신과 의지가 나약했고 걱정이 많았고, 항상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밖에 몰랐던 저에게는 '군대'라는 이름만 들어도 기분이 오싹했습니다.

 

그러다가 군 입대하기 직전이었던 2005년 1월말에 논산 훈련소(현 육군 훈련소)에서 '더 이상 있어선 안될' 인분 사건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제가 논산 훈련소에 입대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그곳뿐만이 아니라 자대에서 온갖 안 좋은 일들을 겪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하루하루 밤잠을 설치고 마음 속으로 끙끙 앓았습니다.

 

훈련소 인분 사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짝사랑했던' 누나가 위암으로 하늘나라에 가는 바람에 마음 속의 혼란을 겪게 되었습니다. 누나가 평소에 저를 많이 아껴주다보니 애정이 가지 않을 수 없었지요. 제 이상형이 연상이어서 누나와 연인 관계로 발전하기를 바랐는데 야속하게도 제 뜻대로 되지 않았던 겁니다. 그래서 어떤 날에는 평소에 먹지도 않던 술을 3000cc(맥주) 먹기도 했고 또 어떤 날에는 인분 사건 관련 이야기들을 매스컴에서 들으면서 울먹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부담감 때문에 폭식으로 스트레스를 풀더니 60kg 정도 되던 몸무게가 72kg으로 불었고 온갖 안 좋은 생각들만 하면서 제 자신을 잃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어려움 겪었을 이재진씨의 마음, 이해가 갑니다

 

그러던 어느날 '자살'이라는 단어가 제 머릿속을 떠도는 것이었습니다. '자살하면 군대가지 않겠지?'라는 단순한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죠. 그때는 인생이 한 번뿐이라는(군대 시절을 통해 받던 교육 내용임) 개념이 쌓여 있지 않았기 때문에 자살이라는 어리석은 생각을 하고 말았던 겁니다. 자살뿐만은 아니었습니다. 그 시절이 트렌스젠더 연예인이 뜨던 시기였기 때문에 저도 트렌스젠더로 변신하고 싶었죠. 사회에서 제가 하고 싶은 것 그대로 다 하고 싶었고 누구보다 더 아름답게 살고 싶었기 때문에 '온갖 고통을 겪을지 모를' 군대에서의 2년이 정말 부담스러웠기 때문입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때의 제 자신이 정말 한심하기 그지 없었지요.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틀 동안 '자살할까?'라는 마음 속 생각을 하다가 '어떻게 자살할까?'라는 생각으로 발전(?)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더니 아무런 해답을 찾지 못하고 '그래. 시간이 해결해주겠지. 군대 다녀오면 내가 사회에서 꽃 피울 날이 분명히 있겠지'라며 마음 속의 우울했던 기분을 거두고 말았죠. 제가 자살을 하게 된다면 저를 알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큰 충격에 빠지기 때문에 그들에게 아무런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결국 자살이라는 쓸데없는 생각만 하고 시간을 보낸 셈입니다. 지금의 제 성격 같았으면 '자살? 웃기구 있네. 대한민국 남자로 태어났으면 군대 가야지 뭔 자살이야. 그런 건 패배자들이 하는 생각일 뿐이야!'라고 생각했을 텐데 그때의 나약했던 제 성격에서는 답답한 구석이 있었죠.

 

지금 와서 생각하면 사람들이 인생의 기로를 이겨내지 못하고 자살하는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나 자신이 자살이라는 충동을 이기느냐 또는 못 이기느냐에 따라 갈라지는 것이죠. 만약 제가 한없이 나약했던 사람이라면 자살 시도를 했을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그게 아니었던 겁니다. 제가 다른 누구보다 약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을 그때 깨닫고 말았던 것이죠. 남들보다 능력이 없다고 생각했던 저였지만 '열심히 하다 보면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치 그런 기분이었죠. 실제로 기업에서 쓰이는 오리엔테이션 중에 일부로 알고 있는데(요즘에 쓰이는지 모르겠지만) 자신의 유서를 작성해서 비장하게 살겠다는 마음 속 다짐을 하는 것이죠. 저는 유서가 아니었습니다만 그런 생각을 하게 되면서 인생을 헛되이 보내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얼마 전에 '고종수가 5년 전에 서울 한남대교에서 자살을 시도하려고 했다'는 이야기를 올린 적이 있었습니다. 고종수가 2년 전 어느 모 스포츠 주간 잡지를 통해 직접 고백한 내용인데, 굳이 저뿐만이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들도 자살이라는 생각을 한 번쯤은 떠올리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웃긴 것은, 제가 그런 마음을 품고 있던 시절을 기점으로 군대에서의 경험까지 더해지면서 일상 생활을 아름답고 풍요롭게 잘 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군대에서 누구보다 더 열심히 임무에 충실했고 끈기와 인내를 배웠기 때문에 그런 것이 단련이 되어 지금도 부지런히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군대에서의 적응은 남들보다 '조금' 힘들었습니다. 사람의 성격이 한순간에 완전히 뒤바뀔 수는 없었기 때문에 나약했던 제 성격이 달라지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다행히 주위에 있던 선후임 그리고 동기들이 많이 도와주고 믿어주었기 때문에 지금의 제 자신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겁니다. 그런 사람 냄새가 있었기 때문에 제가 군대 시절을 인생의 터닝 포인트로 여길 수 있었던 것이죠. 예비역 출신의 남자들이 군대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군대에서 인생의 소중함 깨달았습니다

 

특히 논산훈련소 시절의 추억이 저에게는 여전히 뜻깊습니다. 제가 있던 소대에 상무(국군체육부대) 선수들이 있어서 정말 재미있게 보냈습니다. 제가 프로농구 전자랜드 광팬이라 당시 전자랜드에서 붙박이 주전 포인트 가드로 뛰었던 박상률 선수(현 KTF)와 잘 붙어다녔죠. 상률이형도 그랬고 모비스에 있는 (김)두현이 형과 KCC의 (이)동준이 형도 저를 많이 챙겨줬습니다. 제가 다른 누구보다 많이 긴장하고 얼어 있다 보니 형들이 저를 많이 도와주고 아껴주었습니다. 그때는 저에게 말대꾸라는 아주 나쁜 습관이 있었는데 이것도 형들이 고쳐주었습니다. 역시 프로 스포츠 선수는 정말 다르더군요. 그 형들이 있었기에 군 생활까지 보람차게 잘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논산훈련소에 입대했을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인분 사건 때문에 많은 걱정을 했는데 실제로는 유일하게 힘든 것이 감기뿐이었습니다. 제가 구막사에 있다 보니(지금은 제가 있던 구막사가 없어졌다고 하더군요.) 감기 때문에 많이 고생했지요. 그것 빼고는 상무 형들이 저를 많이 도와주어서 충분히 잘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얼차려야 합법적으로 잘 이루어졌고 힘든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훈련 난이도 또한 걱정할 것도 없었고요. 자대에서는 구타 및 그외 부적절한 행위가 없어지던 시기여서 입대 전에 가졌던 부정적인 생각들이 그저 기우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GOD의 김태우씨가 얼마 전에 전역하면서 이러한 인터뷰를 하더군요. "나 또한 이등병 당시 입대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했지만, 생각의 전환으로 군 생활을 통해 제2 인생의 도약대로 여길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 군대는 나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하고 생활할 수 있는 공간이 한정되어 있어 좀 힘들었지만 긍정적인 사고를 하다 보니까 쉽게 적응할 수 있었다. 군 생활을 통해 진실한 사람으로 거듭난 것 같다"고 말입니다. 군대에 다녀오신 분들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저 또한 마찬가지고요.

 

혹시나 군대 때문에 자살하고 싶은 분들이 있다면 절대로 시도조차 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대한민국 남자의 평균 수명은 77세이며(제가 군대에 있을 때의 기준) 군 입대 하는 시기는 대략 20~22세 정도입니다. 만약 자살을 하면 인생의 3분의 2 이상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군 입대 전까지 그런 것을 잘 몰랐지만 군대에서 사람의 인생이 얼마나 귀한것인지를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한번뿐인 인생을 아름답게 보내고 싶다면 자살이라는 생각보다는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는 말처럼 즐기시기 바랍니다. 남자의 진정한 가치는 군대에서 만들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저의 블로그(http://bluesoccer.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군대, #훈련소, #이재진, #자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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