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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따뜻해진 날씨 덕분에 장롱정리를 했다. 겨울옷을 넣고, 봄옷을 꺼내는데 아무리 봐도 봄옷이 없다. 작년에 뭘 입었는지 기억도 안 난다. 면티를 사러 옷가게에 갔다가 입을 탁 다물고 조용히 나왔다. 웬만큼 이쁘다 싶으면 3만원이나 한다. 그것도 세일해서. 

 

가난에 당당하라더니, 정작 너는?

 

고민했다. 날씨는 내게 옷을 갈아입으라 하는데 지갑사정은 영 신통찮다. 그때 내 머릿속에 떠오른 곳이 '아름다운 가게'였다. 양재동에도 있단 소릴 듣긴 했지만 한 번도 가볼 생각을 안했다. 왠지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입던 옷이나 물건을 쓰는 게 싫었다. 겉으로 말은 안했지만 내 속마음은 재활용을 사서 쓴다는 것이 궁상맞게 느껴지기도 하고, 삶의 질이 확 떨어지는 것도 같다고 말한다. 이런 내 자신에게 피식 웃음이 난다. '아이고, 이 인간아. 가난에 당당하라고 누누이 말하고 다니더만 정작 너 자신은 당당하지 못하구나.'

 

어릴적 나는 한번도 옷을 사입어 보지 못했다. 5남매 중에 넷째인 난, 늘 언니 옷이나 오빠 옷을 물려입었고, 잘사는 친척 집 또래 옷을 얻어 입었다. 그 때문인지 나는 내 스타일을 잘 모른다. 기껏 옷을 고르고 골라서 사오면 산 돈과 비례해서 옷이 형편없다는 소릴 자주 듣는다. 그러면? 열 받는다. 

 

그곳에 가면 10만원을 1만원에 산다.

 

그래서 어짜피 비싼 돈주고 사도 내가 입으면 전혀 비싼 티가 안난다는 말을 떠올리며 얇아진 지갑을 들고 아름다운 가게를 찾았다. 솔직히 강남인데 누가 '아름다운 가게에 와서 사겠어', 라고 생각했는데 내 예상을 깨고 사람들이 많았다. 몇 가지 옷을 골랐다. 같이 간 딸은 자기가 입을 옷은 없다며 투덜댔지만 나는 내 옷을 몇 개 산 것에 무척 만족했다. 옷도 옷이지만 가격이 참 착하다. 티 2,500원, 바지 3,500원, 신발 3,500원. 만약 그냥 옷가게에서 샀다면 적어도 10만원을 써야 했을 상황에서 1만원으로 해결한 것이 어찌나 자랑스럽던지 신났다. 돌아오는 내내 좋아서 웃는 내게 딸이 "그렇게 좋아?" 라고 묻는다. "응, 짱 좋아" 생각할 것도 없이 내 대답이 새처럼 가볍다.

 

"사람들이 다 그렇게 생각해요. '혹시 이런 것도 되나요?'라고 묻는 경우가 많은데 괜찮아요. 저희가 일단 물건을 받아서 진열하고, 필리핀에도 보내고, 아주 쓰기 곤란한 것은 침대 커버 등으로 재활용해요. 절대 그냥 버리지 않으니까 부담 갖지 마시고 들고 오세요."

 

두 번째 아름다운 가게를 갈 때는 집에 있는 물건을 정리해서 들고 갔다. 그러나 물건을 정리하면서 약간의 망설임이 있었다. '괜히 이거 주면 욕먹는 거 아닐까' 싶어 추리고 추려서 나름대로 좋은 것만 들고 갔다. 그러나 그런 나의 생각은 빗나갔다. 어떤 것도 버리지 않으니까 걱정 말라는 자원봉사자의 말을 들으면서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미루어 짐작하는 병'이 한방 얻어 맞는다.

 

작은 실천으로 세상을 바꾸는 문화운동

 

아름다운 가게는 올해 7년를 맞고 있다. 순환을 통해 세상의 생명을 연장하는 되살림정신, 관계라는 눈으로 세상을 보는 그물코정신, 작은 실천으로 세상을 바꾸는 참여와 나눔의 세가지 운동 철학을 가지고 현재 96호점까지 문을 여는 놀라운 성과가 있었다. 물론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시민들의 참여와 각 기관, 기업, 단체들의 참여가 있어 가능했다. 특히 강남지역에 문여는 것을 두고 논란이 많았다고 한다. 다른 지역은 몰라도 강남은 안될 것이다, 라는 추측이 많았는데 오히려 다른 지역보다 기증도 자유롭고, 구매활동도 활발하단다.

 

"앞으로 아름다운 가게는 군 단위까지 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250군데 매장을 낼 계획이에요. 다시 말해 지역 밀착형이라고 보시면 되요. 이것은 단순히 아나바다 운동을 넘어 시민들의 정신적 운동, 정신개혁의 운동으로 승화되는 것 같아요."

<양재 아름다운 가게 간사 이진님 >

 

난 오늘도 아름다운 가게로 쇼핑간다~

 

요즘 초등학교를 가보면 멀쩡히 쓸 수 있는 물건도 다 버려지는 것을 본다. 예전에는 몽땅 연필을 볼펜깍지에 끼어서까지 썼는데 요즘은 조금 쓰다가 디자인이 맘에 안들어도 버리고 새로 산다. 또 새학기에 엄청 들어오는 크레파스와 색연필은 주인 찾을 길이 없다.

 

내 아이는 특별하기에 풍족하게, 부족함이 없게 키우고 싶은 부모들의 밑바닥에는 자신들이 그렇게 크지 않았음이 작용한다. 아름다운 가게 양재점 '이진' 간사의 말을 빌어보면 매장마다 다르지만 어느 지역의 매장같은 경우는 물건을 찾는 고객 층의 많은 분들이 재활용보다 새것만 찾는다고 한다. 어릴적 형제간들에게든, 다른 누구에게든 물려받기만 한 것이 지긋지긋해 재활용을 터부시 하는 분들이 많다고 한다. 그러고보니 나도 아름다운 가게에 선뜻 발을 들여놓기 꺼려했던 것 중 하나가 '맨날 얻어만 입냐, 어릴 때도 그랬는데 커서까지 그러네'라는 밑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유럽이나, 미국이나 선진국이라고 하는 나라에서는 이런 재활용 가게들이 많고, 이들은 어릴 때부터 이사를 갈 때 사고 파는 것에 익숙하다. 또 국가에서 그랬을 때 주는 세제혜택 또한 크다고 한다. 물건을 오래도록 아끼고 쓰는 것. 함부로 버리지 않는 것이야말로 선진문화가 아닐까.

 

경제가 어렵고, 나라가 어렵다. 화폐가치는 하루가 다르게 떨어진다. 또한 우리의 지갑도 더욱 얇아졌다. 이제 아이들에게, 또 그동안 풍족하게 살았던 우리 자신들에게 한번 삶을 되돌아 보라 한다. 대형할인마트의 상술에 속아 필요하지 않은데도 세일이라고 왕창 물건을 구매했다가 나중에 버리게 되는 그런 일은 관두자.  우리가 모르는 대형할인마트의 상술에는 영세한 생산자들에게 강요되는 원가낮춤의 횡포가 있다.

 

일요일, 가족들이 모여 집안을 비우자. 그동안 자신들이 잘 썼지만 이제는 더이상 쓰지 않는 물건을 모아서 필요로 하는 누군가를 위해 기증하면 어떨까? 또 내가 필요한 물건을 싸게 구입해서 온다면 아이들에게 정말 좋은 산교육이 될 것이다.

 

백날 아이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말하는 것은 입만 아프다. 아이들은 속으로 '너나 잘해라'하기 때문에 부모가 먼저 몸으로 행하면 아이는 절로 따라온다.

오늘도 난 아름다운 가게에 간다. 기증도 하고, 쇼핑도 하고~~.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아름다운 가게, #경제위축, #나눔과 실천, #재활용, #산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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