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한 병의 와인에는 세상의 어떤 책보다 더 많은 철학이 있다."

 

루이 파스퇴르의 말이다. <와인 읽는 CEO>의 저자 안준범은 '와인은 인생'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는 와인 이전에는 유럽의 40-50년대 영화의 매력이 빠져 지내던 사람이었고 영화는 그의 인생 대부분을 채운 절대적인 과거였다고 고백한다.

 

영화를 더 잘 알기 위해 프랑스어를 전공하고 예술의 도시 파리로 유학을 떠났다. 그 곳에서 동시에 세 대학을 다니며 미친듯이 공부했다던 그는 맥주처럼 일상적으로 마시던 와인에 대해 호기심을 갖게 되었고 지독한 지적 편력에 몰두하던 인생에 전환을 맞이한다. 와인전문가로 변신한 그는 40대에 쓰게 된 인생의 첫 이야기가 와인이 될 줄은 정말 몰랐다며 와인을 통해 배우는 생의 지혜를 지적 편력의 흔적이 넘쳐나는 글로  맛깔나게 풀어내고 있다.

 

하지만 와인에 대한 이야기라고 해서 그저 단순히 와인의 품질을 감별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글이 아니다. 오히려 한 병의 와인이 탄생되기까지 자연과 인간이 어떻게 그 유기적인 생명체를 길러내고 또 새로운 생명을 지닌 것으로 재탄생 시키는지 대한 이야기들, 즉  자연에서 배우는 지혜,  때를 기다리는 것, 땀 흘리며 수고하는 것. 수많은 우연들 속에서 필연을 만들어 가는 필사적인 노력, 역경을 이겨내고 성숙하는 지혜 등 오랜 세월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며 쌓인 경험들을 가득  글 속에 녹여 내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어쩌면 누구든 고집스럽게 빈티지(생산연도)를 따지거나 유명 와인 산지를 따지는 일 없이 모든 와인과 사랑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저자가 바라는 것이며 그는 한 잔의 와인에 녹아 있는 삶의 향기와 땀과 사랑을 볼 줄 아는 혜안을 와인을 즐기는 모든 이들과 와인을 만들어 내는 모든 이들이 지닐 수 있기를 바라는 것 같다.

 

 제 1부 테루아르, 하늘과 땅의 지혜를 기억하라. 제 2부 포도에서 와인으로 , 그 가치 창조의 비밀. 제 3부 와인의 숲에서 인생을 만나다, 등 총 3부로 이루어진 책의  큰 제목들만 봐도 자연과 인간에 대한 사랑과 외경이 가득 들어 있음을 알게 된다.

 

테루아르(terroir)라는 것은 프랑스어로 '토양'을 의미하지만 와인에 관해서는 좋은 포도로 성장하게 도와주는 토양의 특성이나 비, 바람, 일조량과 같은 조건을 포함하는 넓은 개념으로 쓰이며 포도가 자라나는 환경 전체를 의미한다고 한다. 포도는 포도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있는 토양과 물, 햇볕과 비, 바람과 하늘의 이치를 따른다. 그 과정은 인간에게도 다를 바 없이 적용된다고 봐야 한다. 그래서 하나의 생명을 키워내는데 땀과 눈물과 수고와 기다림이라는 오랜 인고의 세월이 필요한 것이다. 그는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고유한 향기를 잃지 않은 와인이 탄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인간이 자신이 태어난 토양의 풍토 안에서 성숙하다가 자연으로 돌아가듯 와인 역시 대지와 태양으로부터 받은 은택을 붉고 흰 액체 속에 고스란히 녹여내며 시간 속에서 색과 빛이 바래가며 노년의 향취로 변해간다. 그래서 와인과 인생은 닮은꼴이며 같은 운명을 살아내는 것처럼 보인다.

 

와인과의 만남을 자연과 교감을 일으키는 매개체로 여기는 것은 순환의 고리 속에 지혜를 더해가며 자연에 순응하는 모습 때문이 아닐까. 페르시아의 위대한 시인 오마르 하이얌은 와인을 통해 자연과 교감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가 와인을 마시는 것은 개인적인 만족을 위해서가 아니다. 개인이 아닌 자연의 순간으로서의 나를 호흡하기 위해서이다."

 

저자는 포도나무가 묵묵히 수행해 온 사계절을 음미하며 그가 전해주는 천.지.인의 조화를 경험한다고 했다. 와인의 탄생과정을 상기하며 한잔의 와인을 마신다면 역사 속에 면면히 흐르는 자연과 삶 사람과 아름다움에 대한 인고의 시간들이 자신의 혈류 속에 함께 흐르는 경이로움을 맛 볼 것이다. 더불어  누구든 자신의 생애를 훨씬 더 사랑하는 마음도 생겨날 것이다.

 

"올림푸스든, 에덴동산이든, 아니면 발할 궁전이든, 와인을 마신다는 것은 날아가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신을 만나기 위해 그의 높이로 날아가는 것이다."

 

자, 신을 만나기 위해 그의 높이로 비상할 준비가 되었는가? 그렇다면 잔을 높이 들고  그 향기에 먼저 취할 일이다.

덧붙이는 글 | <와인 읽는 CEO>는 안준범이 지었고 21세기 북스에서 출간되었습니다.


와인 읽는 CEO - 한 잔의 와인에서 배우는 천ㆍ지ㆍ인의 지혜

안준범 지음, 21세기북스(2009)


태그:#와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