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경기 악화로 인해 주요 공단들의 고용사정도 더욱 악화되고 있다. 사진은 시화공단 모습
▲ 시화공단 경기 악화로 인해 주요 공단들의 고용사정도 더욱 악화되고 있다. 사진은 시화공단 모습
ⓒ 성하훈

관련사진보기


'따르릉~~'


이른 아침부터 전화기가 울렸다. 예전부터 잘 알고 지내던 업체 관계자다. 그는 형식적인 안부 인사를 전하더니 바로 본론을 꺼냈다. 

"저 회사 잘렸어요. 1주일 넘게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는데 마땅한 자리가 안 나오네요. 주야 2교대라도 할 생각인데, 어디 자리 있으면 좀 소개해 주세요."

공단 근처에서 그를 만났다. 한숨부터 내쉰다. 정리해고의 불똥이 자신에게 튄 것이 못내 착잡한 표정이었다. 의왕의 금형업체에서 근무하던 그가 실업의 터널에 들어선 것은 지난 3월 16일. 생산설비도 증설하고 해서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구조조정을 하면서 45명 중 남녀 4명씩 8명을 감축했다고 했다. 그는 대리였는데 대리 이하로만 정리됐단다.

여러 곳을 옮겨 다니기는 했지만 경기 악화로 일자리 구하기가 더욱 어려워지니 마음이 다급해진 모양이다. 예전에는 거들떠도 안 보던 주야 2교대 근무 업체라도 마다하지 않을 작정인가 보다. 찬밥 더운밥 가릴 형편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듯했다. 생산현장에서 일한 지 15년이 넘는 경력자. 그가 원하는 급여는 180~200만원 선. 그럼에도 채용하려는 곳이 없단다. 사실 당연한 이야기다.

불황으로 인한 실업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는데, 주요 공단에서 느끼는 체감 강도는 이미 심각함을 넘어선 상태다. 아는 사람들끼리 만나면 '회사에 잘 다니고 있지요?'라고 묻는 것이 일상화될 만큼 '고용안정'은 아득한 이야기가 됐고 중소기업에서는 자르지 않고는 버틸 수 없다는 위기감에 실업자를 양산하고 있다. 정리대상에는 사무직이나 생산직의 구분도 존재하지 않는다.

"저 잘렸어요, 어디 일자리 좀 없을까요?"

내가 하는 일은 제조업체들을 돌아다니는 영업 관련 업무다. 지난 10년간 이렇게 어려운 적은 처음일 만큼 내가 느끼는 체감 강도도 무척 크다. 요즘 업체를 찾아다니면 다들 내게 이렇게 말한다.

"돌아다니면 기름 값이나 나와? 거래 성사되는 것도 없을 텐데, 뭐 하러 그렇게 열심히 돌아다녀?"

다 마찬가지 상황인데 나라고 무슨 뾰족한 수가 있겠는가. 뻔히 알고 묻는 그들의 말에 그냥 웃고 말 뿐이다. '다른 곳 사정은 어떠냐, 좋은 자리 나온 것 없냐, 나아질 기미가 보이는 것 같냐' 등도 물어보지만 딱히 할 말이 없다. 투자한다는 곳은 없고 다들 사람 줄이느니 회사 문 닫느니 하고 있으니 나에게도 역시 몇 달째 일이 안 들어온다.

연말에 일손을 놓고 1월부터 실업자 대열에 들어선 인천의 김기복(42·가명)씨는 작년까지만 해도 한국과 중국의 공장을 오가며 바쁜 나날을 보냈었다. '한번 보자고' 전화하면 '중국에 있다'며 '전화비 나오니 빨리 전화 끊자던' 그도 몇 달 사이 실업자 신세로 돌변했다. 중국 사정이 나빠지며 갑작스레 한국 공장으로 다시 들어왔는데, 일이 없기는 마찬가지. 회사는 무기한 휴업에 들어갔고, 결국 그는 회사를 그만뒀다. 고용보험이라도 타기 위해서는 그 방법밖에 없었다.

사정이 나아지면 다시 부른다고 했다지만, 분위기가 분위기인지라 그도 다시 돌아갈 가능성이 낮을 거라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그 때문에 요즘 줄담배만 늘었단다. "고용보험으로 버티고 있는데 이도 얼마 안 남아 걱정입니다. 빨리 일자리를 구해야 하는데…, 혹 좋은 일자리 없냐"는 그의 목소리엔 힘이 없었다.

듣던 나 역시도 답답했다. 사실 예전 일자리도 내가 소개시켜 줬던 것이었다. 나한테 좋은 곳 소개시켜줘서 고맙다고 인사했었는데, 갑자기 실업자가 된 그를 보니 답답할 수밖에. 기업들이 경영의 어려움을 인원 정리로 해결하려 드니 실직자가 양산될 수밖에 없다. 특히 영세 중소기업은 회사 존망이 달려있는 문제라 인원감축 바람이 더욱 거세다.

기계도, 사람도 모두 멈춰버렸다

공장 가동률이 저하되면서 구조조정으로 생산 인력이 빠져나간 한 중소기업 생산현장. 기계와 금형만 보인다.
▲ 중소기업 공장 가동률이 저하되면서 구조조정으로 생산 인력이 빠져나간 한 중소기업 생산현장. 기계와 금형만 보인다.
ⓒ 성하훈

관련사진보기


자동차부품 생산업체 S테크는 올해 들어 직원 11명 중 3명을 정리했다. 자동차산업 위축으로 월급은커녕 운영비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계속 고용을 유지하기 어려웠던 탓. S테크는 이미 지난해 12월~1월 사이 한 달 동안 기본임금의 60%정도만 지급하는 조건으로 유급휴직을 실시했지만 사정이 나아지지 않아 설 이후부터 다시 교대로 휴직에 들어갔다. 석 달 가까이 제대로 월급을 받지 못하니, 직원들이 견디지 못하는 것은 당연했을 게다.

바쁠 땐 일용직까지 고용해 정신없이 돌아가던 공장이었는데, 요즘은 대부분의 기계가 서 있고 공장 분위기가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업체의 생산부장은 "일단 회사가 살아야 하는 상황이라 어쩔 수 없이 인원 정리를 한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도 맘이 편치 않은 듯했다. 

사정은 지방도 엇비슷한 모습. 서울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고 한다. 대전에서 통신설비공사 관련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후배에게 전화를 걸어 봤더니 그곳도 별반 차이가 없단다.

그는 "일부 업체들이 휴직을 통해 인원을 정리하고 있다"며 "몇 달씩 휴직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생계 압박이 오면서 다른 일을 찾아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나도 사정이 어려워져 6명의 직원 중 2명을 줄였다"면서 "근근이 사업을 유지하고 있지만 이달부터 적자가 나는 상황인데 마땅한 활로가 보이지 않아 매우 근심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최근에 진행된 입찰공고를 예로 들었다.

"대전의 정부기관에서 2000만 원 공사 입찰이 공고됐는데, 5억 원 미만 소액공사인 경우 예전에는 입찰 대상을 주로 지역 업체로 한정했거든요. 그런데 이번에는 입찰 대상이 전국으로 공지되는 거예요. 그만큼 상황이 어렵다는 건데 지역 업체들이 지역 공사에도 전혀 혜택을 받을 수 없을 정도로 지방은 더 심하다고 봐야 할 거예요."

그는 이어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인원을 줄이지 않으면 견뎌낼 재간이 없다"며 "정부가 대책을 마련하려 애쓰는 것 같지만 밑에서는 전혀 체감되지 않는다"고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회사 형편 나아져도 신규채용은 못해요

잔업이 사라진 인천 부평구 청천동 GM대우 부평공장을 인근 아파트에서 바라본 모습. 공장의 모습이 불빛을 내뿜고 있는 주변 아파트와 달리 매우 어두운 모습이다.
 잔업이 사라진 인천 부평구 청천동 GM대우 부평공장을 인근 아파트에서 바라본 모습. 공장의 모습이 불빛을 내뿜고 있는 주변 아파트와 달리 매우 어두운 모습이다.
ⓒ 선대식

관련사진보기


돌아다니다보면 개중에는 조금씩 형편이 나아지는 곳들도 생겨나고는 있지만, 경기 전망이 어두운 데다 누적된 적자도 많고 하니 신규고용은 엄두도 못 내고 있는 형편이다.

이 때문에 인천 C테크의 ㅊ이사는 요즘 현장에서 생산직으로 일하기 바쁘다. 일이 부분적으로 늘고 있지만 요즘 같이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서 사람을 새로 쓰기는 힘들고 그러다보니 자신이라도 부족한 생산인력을 대신해야 해서다. C테크는 자동차부품 협력 업체인데 지난해 자동차산업에 위기가 닥쳐오면서 구조조정 차원에서 4명을 줄였다. 최근 일부 차종의 생산이 증가하면서 일이 늘어났으나 그간 손실이 너무 컸던 탓에 인원 보충은 엄두를 못 내고 있는 것이다.

"일이 버거운 것 같아 사람을 쓰고 싶어도 사무실에서 계속 적자라고 하니 어쩌겠습니까. 더구나 계속 적자가 누적돼 이번 달은 그 규모가 크다는데. 그래서 나도 현장에 나와 일을 하는 것이고. 회사가 사느냐 죽느냐의 기로에 있는 상황이라 사람 쓰기가 쉽지가 않아요. 마음 같아서는 놀고 있는 이전 직원을 1~2명 불러들이고 싶지만 일이 꾸준히 간다는 보장이 없어 당분간은 있는 사람으로 버텨야 할 것 같습니다."

구조조정을 통해 흑자를 보고 있는 업체들도 신규채용에는 소극적이다. 앞날이 불확실한 데가 분위기가 안 좋으니 다들 몸 사리는 것이 당연하다는 반응이다. 인원 줄인 지 얼마 안 돼 다시 인원을 늘리기도 그렇다는 것이고.

지난해 구조조정을 단행한 군포의 ㅎ정밀은 최근 직원들에게 성과급까지 지급했다. 전자부품을 제조해 수출하는데 높은 환율 덕을 톡톡히 봤기 때문이다. 일이 줄어들면서 가동률은 절반 정도에 불과했다. 그런데 '1달러=930원'일 때 대금을 달러로 받기로 하고 수출계약을 체결한 것이, 환율이 1600원 선까지 폭등하면서 큰 이익을 안겨줬다는 것.

분위기 안 좋은데 자랑하듯 떠들 수는 없고, 그저 슬며시 회사 상황을 전하던 생산부장은 "지난해 30명이던 인원을 21명으로 줄였는데 보너스를 받으면서 정리된 동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많이 들더라"고 했다. 누구는 일자리 잃고 누구는 보너스 받고. 보너스 받은 사람들도 그리 편한 기분은 아니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새로 충원할 계획은 없단다. 경기가 언제 풀릴지 알 수 없는 데다 가동률이 높아진 것도 아니기 때문에 당분간은 이 기조로 갈 예정이라고 했다.

제조업체를 상대로 영업 업무를 하고 있는 내게 '일자리를 주선해 달라'는 현장 관계자들의 요청이 요즘 들어 부쩍 늘었다. 모두 회사 사정이 어려워져 내몰린 사람들이고 이 중에는 임금이 제때 나오지 않아 회사를 옮기려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전화를 받을 때마다 나는 "월급 잘 나오나요? 밀린 임금은 없지요? 그럼 괜찮은 회사니까 자르기 전까지는 가급적 그대로 있으세요"라고 말한다. 상황이 너무 안 좋아서다.

"3개월간 이력서만 20통... 이젠 지친다"

사실상 '한반도 대운하' 사업으로 주목받고 있는 '4대강 정비사업'이 연말부터 첫 삽을 뜨는 가운데 지난해 12월 29일 오전 '낙동강 안동지구 생태하천 조성사업 착공식'이 열릴 예정인 경북 안동시 낙동강 일대의 모습이다.
 사실상 '한반도 대운하' 사업으로 주목받고 있는 '4대강 정비사업'이 연말부터 첫 삽을 뜨는 가운데 지난해 12월 29일 오전 '낙동강 안동지구 생태하천 조성사업 착공식'이 열릴 예정인 경북 안동시 낙동강 일대의 모습이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한 업체 관계자는 "요즘 워낙 실업 문제가 심각한지라 공구상가나 술집 등에서 아는 사람을 보게 되면 계속 회사에 다니고 있는지부터 확인하게 된다"며 "영세 업체들에 다니던 사람들은 월급도 많지 않았던 데다 동종 업체들도 비슷한 형편이라 일자리 구하기도 힘들어 어려움이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이 그렇다. 조건을 낮춰서 일자리를 찾는다고 해도 상당수 업체들이 고용을 꺼리는 분위기여서 마땅한 일을 찾기가 쉽지 않는 데다, 임금이 많이 깎인 채 일을 한다고 해도 결국 오래 버티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그저 위기를 피하는 임시방편일 뿐.

이런 이들과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데, 가장 답답한 것은 이들이 품을 수 있는 희망조차 없다는 데 있다. 막연히 "곧 좋아질 거예요"라고 말하지만 누구도 믿지 않는다.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불안한 현실 앞에 이들의 암담함은 가중되는 실정이다.

앞에서 언급한 인천의 김기복씨는 "3개월 동안 20군데 넘게 이력서를 넣었는데 출근하라는 곳이 한 곳도 없었다"며 "이제는 이력서 넣기도 지친다"고 말했다. 생산책임자까지 지낸 사람이니 어느 곳도 쉽게 오라고 하지 못하는 것 같고, 나오는 자리는 아주 열악한 곳뿐이니, 지칠 만도 할 것이다. 그럼에도 마땅한 방안이 없으니 근심이 더욱 깊어질 밖에. 정부가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지만 다들 와 닿는 것은 없다고 한다.

광주에서 건설업체 현장 책임자로 일하는 후배도 "공사 수주된 것이 없어 현장이 마무리되는 7월부터는 백수 신세가 될 것 같다"며 "좋은 방안이 없겠냐"고 물어왔다. 내가 "정부가 공사판 많이 벌이는 것 같던데"라고 했더니 자신들과는 관계없다고 한다.

후배는 "4대강 유역 및 운하 공사 등도 토목 업자들 배는 불릴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일반 서민들을 위한 정책은 아니"라며 "정부의 대책이 주로 대기업이나 특정한 세력을 대상으로 한 것으로 보인다"고 꼬집었다. 주택이나 아파트 등이 들어설 경우 유리나 창틀, 가전제품 등 서민들의 삶과 직결된 부분들에까지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지만 대규모 토목 공사는 서민들에게 끼치는 영향이 적다는 지적이다.

"밀린 월급 받아오기 전엔 집에 들어오지 말라는데..."

밀린 월급을 못 받아 회사 그만두고 부부싸움 끝에 집에서도 나와 일자리 찾아다니고 있다는, 예전 거래처 생산차장은 이렇게 푸념했다.

"대기업 고학력 청년 실업 문제가 더 주목을 받던데, 사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기 바쁜 우리 같은 서민들 삶은 붕괴 위협에 직면해 있다 봐야 해요. 그런데 지금 정부가 어디 우리 같은 사람들 제대로 신경 쓰겠습니까? 강남 땅부자들 눈치나 보는 사람들인 것을…."

며칠 전 전화했더니 일자리 구했다면서 컨테이너 기숙사 생활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그런데 집에 들어갈 엄두는 못 내고 있었다. 물론 출퇴근하기 힘들만큼 거리가 멀어서기도 하지만 집사람이 밀린 월급 받아오기 전까지는 집에 들어오지 말라고 했단다.

들어간 회사는 괜찮은지 물어보니 시간이 지나봐야 알 것 같다면서 확실히 장담하지 못했다. 지난번 회사도 월급 잘 나오다가 몇 달씩 밀려 그만뒀는데, 지금 같은 분위기에서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어느 누군들 장담할 수 있겠는가.


태그:#실업, #공단, #중소기업, #경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