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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1억여 원을 받은 혐의로 26일 구속된 이광재 민주당 의원이 이미 지난 25일 밤 의원직 사퇴를 결심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의원은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전인 25일 밤 지역주민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정상에 오를 때를 마음 속에 늘 염두에 두었지만, 언제 내려갈지를 항상 생각하고 있었다"며 "이제는 내려가려 한다, 여러분의 애정으로 만들어 주신 국회의원직을 사퇴하려 한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다음날(26일) 영장실질심사 과정에서 "재판결과든 실체적 진실이든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상관없이 의원직을 사퇴하겠다"며 "새 인생을 위해 정치를 떠날 것이고, 인생을 걸고 정치를 버리겠다"고 의원직 사퇴와 함께 정계 은퇴까지 선언했다. 

 

"재판에서 평범한 사람으로 진실을 가려내겠다"

 

지난 2004년 17대 국회에 입성했던 이 의원은 "말로만 하는 정치를 끝내고 싶었다"며 "지지고 볶고 싸우는 정치가 아니라, 국민들은 어떻게 사는지, 서민의 꿈은 무엇인지 살피는 정치를 저는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말'이 아닌 '일의 결과'로 말하는 정치의 문을 열고 싶었다"며 "이제는 그 모든 꿈을 접으려 한다"고 사실상 정계은퇴 의사를 피력했다.

 

이 의원은 "(오는) 10월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절대 당에 휘둘리지 말고 가난을 아는 사람, 교육을 살릴 사람, 경로당을 지킬 사람, 무엇보다 마을회관에서 여러분과 울고 웃을 진실한 사람을 만나시길 기원 드린다"고 당부했다.

 

이 의원은 내년 지방선거에서 강원도지사에 도전하는 꿈을 품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인지 이 편지에서도 2018년 동계올림픽을 꼭 유치하겠다는 포부가 언급돼 있다.  이 의원은 그러나 "이제는 그 모든 꿈을 접으려 한다"라고 덧붙였다.

 

또한 이 의원은 "재판에서 국회의원의 기득권을 모두 버리고 평범한 사람으로 진실을 가려내겠다"며 "여러분이 사랑했던 젊은이가 그렇게 막 살지는 않았다는 것을 밝히도록 하겠다"고 거듭 결백을 주장했다.

 

검찰은 이 의원이 박연차 회장측으로부터 총 네 차례에 걸쳐 국내와 미국 뉴욕 한인식당, 베트남 등에서 미화 12만 달러와 현금 2000만 원, 정대근 전 농협 회장으로부터 총 세 차례에 걸쳐 미화 3만 달러를 받았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이 의원은 26일 "뉴욕 한인식당에 간 적도 없고 박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은 적도 없다"고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이 의원은 "꺾여서 죽는 길을 택하지 부정하게 살지는 않을 것"이라며 "빈 들에서, 외롭지만 태백산 주목처럼 견뎌낼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물처럼 항상 흘러서 썩지 않고, 웅덩이가 있으면 웅덩이 다 채운 뒤 흘러가는 기다림도 알고, 쏟아질 때 당당한 물처럼 살아가겠다"로 말로 편지를 마무리했다.

 

25일 밤에 썼던 이 편지는 27일 아침 이 의원의 블로그에 올라왔다.

 

다음은 그 편지의 전문이다.

 

여러분 사랑합니다. 죄송합니다. 여러분과 함께했던 시간, 제겐 가장 행복한 시간들이었습니다.

 

정상에 오를 때를 마음속에 늘 염두에 두었지만, 언제 내려갈지를 항상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내려가려 합니다. 여러분의 애정으로 만들어 주신 국회의원직을 사퇴하려 합니다

 

눈물이 쏟아져 글을 써 내려 갈수가 없습니다. 지역구는 제게 표밭이 아닌 일터였습니다. "태.영.평.정을 땀으로 적시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정말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제 꿈은 국회의원 몇 번 더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1. 저는 가난을 여러분과 함께 이겨내고 싶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시절 태현실이 나오는 [여로]라는 드라마가 인기였습니다. TV가 없던 우리는 누나랑 부잣집에 TV를 보러 갔습니다. 그 집에서는 우리 남매를 개를 풀어 내 쫓은 기억이 있습니다. 누나와 저는 울면서 집으로 왔습니다.

 

그 때 기억은 "가난은 죄가 아니며 극복의 대상"이란 신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지역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려 했습니다. 이제 희망이 보이기 시작하고, 공사도 시작되었는데…. 참 안타까운 마음 이루 어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2. 교육에 모든 것을 바치고 싶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머리가 나쁜 게 아니라 기회가 적어서이다. 예미초등학교에 들렀습니다. 한 학년이 10명도 안됩니다. "선배님 공부 열심히 하겠습니다"라는 글을 보고 왜 그리 마음 아팠는지 모릅니다.

 

영어공부 하나는 도와주어야지 했던 것이 많은 분들의 노력으로 전국 영어 경진대회를 휩쓰는 모습에 얼마나 감격했는지 모릅니다. 어렵게, 어렵게 돈을 만들어 관내 중학생들을 연세대학교에 보내 공부를 시킬 때 "가난해도, 시골이라고 기죽지 말고 살아라"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내 자식들의 학교보다 수십배 더 많이 표도 없는 아이들 에게 일일 교사를 하고 태영평정 학교를 다녔습니다. 이제 관내 교육계는 전국적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성공을 보고 끝을 맺어야 하는데…. 참 마음 아픕니다.

 

3. 연탄국회의원을 하고 나선 더 자신을 채찍질 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연탄 배달을 할 때 왜 이리 독거노인은 많고, 거의 방치된 아이들은 많은지…. 지역아동센터에 들러선 많은 감동도 받았습니다. 철암, 정선, 영월에서 어려운집 아이들을 방과 후에 공부 가르치고 저녁밥까지 먹여 보내는 선생님들 급료도 올려드려야 하는데….

 

한 할머니가 며느리는 집을 나가고, 아들은 돈벌러가고 손주 키우기가 너무 어려워 장날에 손주를 길거리에 두고 갔습니다. 누군가 좋은 사람이 데려다 키워주길 바랬겠죠. 그런데 그 아이는 기억력이 있었던지 경찰을 통해 집을 찾아 왔습니다. 그 할머니를 어찌 처벌할 수 있겠습니까?

 

문제는 그 아이가 "다음에 돈을 많이 벌면 총을 사서 할머니를 쏴 죽이겠다"고 했다는 얘기를 듣고는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4. 어르신 여러분 건강하세요

 

철암 경로당에 들렀을 때가 생각납니다. 85세쯤 되신 할머니셨는데 내가 늙고 죽는 것은 괜찮은데 62살 먹은 아들이 자꾸 늙어 가는 걸 보면 "세월이 너무 아깝다"라는 얘기를 듣고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얼마 전 영월 문화예술회관에서 워낭소리라는 영화를 보고 마음속으로 많이들 울었을 것입니다. 경로당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해 참으로 죄송합니다.

 

말로만 하는 정치를 끝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내 지역구에서 일자리, 교육, 노인복지의 성공사례가 전국의 견학 코스가 되게 할 포부가 있었습니다. 지지고볶고 싸우는 정치가 아니라, 국민들은 어떻게 사는지, 서민의 꿈은 무엇인지 살피는 정치를 저는 만들고 싶었습니다. '말'이 아닌 '일의 결과'로 말하는 정치의 문을 열고 싶었습니다.

 

2018년 동계올림픽을 유치하고 싶었습니다. 2017년 내 나이 53살에는 의미 있는 일을 하고, 2018년 2월 남북이 동시 개최하는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날 가장 행복한 눈물을 흘리고 싶었습니다.

 

전 세계가 감동하는 날, 장애인 올림픽경기가 가장 성공한 올림픽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남북이 하나 되는 전기를 만들고, 강원도가 다시 태어나는 날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틈바구니에 치이는 강원도가 아니라 전 국민이 가장 사랑하는 강원도가 됐으면 했습니다.

 

이제는 그 모든 꿈을 접으려 합니다…. 장성 주공아파트 재건축, 상동온천 개발, 고한에서 상동까지 터널, 생태공원, 경로당, 학교 등등 다 못한 숙제를 생각하면 마음이 천근입니다.

 

10월달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절대 당에 휘둘리지 말고 가난을 아는 사람, 교육을 살릴 사람, 경로당을 지킬 사람, 무엇보다 마을회관에서 여러분과 울고 웃을 진실한 사람을 만나시길 기원 드립니다. 꼭.

 

재판에서 국회의원의 기득권을 모두 버리고 평범한 사람으로 진실을 가려내겠습니다. 여러분이 사랑했던 젊은이가 그렇게 막 살지는 않았다는 것을 밝히도록 하겠습니다. 꺾여서 죽는 길을 택하지 부정하게 살지는 않을 것입니다. 빈 들에서, 외롭지만 태백산 주목처럼 견뎌낼 것입니다.

 

상동 대한중석 사옥처럼, 함백 쌍다리 사택처럼, 철암장성 사옥처럼, 미탄 골짜기, 마차처럼, 산의 등줄기 벗겨진 영월 쌍용 산처럼 초라해 지더라도 여러분의 사랑 잊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제게 주셨던 분에 넘치는 사랑 절대로 잊지 않을 것입니다.

 

산 좋고 ,물 좋은 강원도처럼 살아가겠습니다. 물처럼 항상 흘러서 썩지 않고, 웅덩이가 있으면 웅덩이 다 채운 뒤 흘러가는 기다림도 알고, 쏟아질 때 당당한 물처럼 살아가겠습니다. 산처럼 살아가겠습니다. 언제나 변함없이 여러분의 가르침 잊지 않고 살아가겠습니다.


태그:#박연차 리스트 파문, #이광재, #박연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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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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