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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국가인권위원회를 취재차 들렀다가 행사장 입구에 놓여있는 책자 한권을 가방에 넣고 온 적이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행하는 <인권>-'사람답게 사는 세상이야기' 라는 격월간지 1.2월호였다.

 

기자도 지난 2년 남짓 한 지방자치단체에서 발행하는 홍보지 제작에 관여한 바 있어 국가기관인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행하는 이 책자에 자연스럽게 손길이 갔다.

 

취재 후 이동하던 전철 내에서 책자를 앞부분 부터 꼼꼼히 챙겨서 읽었다. 결론부터 먼저 말한다면 내용이 무척 알차고 읽을 거리가 많았다.

 

2009년 1,2월호로 통권 54호째인 이 책자는 목차의 제목부터 남달랐다.

 

20꼭지 남짓의 글 제목...'콩고 난민 안토니의 꿈'

 

'미아를 위한 이정표', '콩고 난민 아이 안토니의 꿈', '전국대회 1등이라도 장애인은 안돼' 등등 총 20꼭지의 글 제목은 단박에 내 시선을 사로 잡았다.

 

글 내용도 알찼다. 세계의 창 섹션에 실린 송태엽의 글은 특히 도드라져 보였다. 일간지나 심지어 인터넷 매체 그리고 그 흔한 각종 잡지에서조차 볼 수 없던 내용의 글이었다. 

 

글은 '너 점심은 먹고 왔니?'라며, 그가 '난민 인정 취재'를 위해 방문한 우간다 호이마(Hoima) 지역의 창괄리(Kyangwali) 난민 정착촌의 한 아이에게 묻는 질문으로 시작해 그가 이곳과 또 다른 난민정착촌 한 곳을 방문해 직접 보고 느낀 바를 적어놓은 거였다. 

 

글에서는 이 같은 질문으로 시작해 안토니(가명 9세) 가족의 수난사를 소상하게 밝히고 있었다. 콩고 출신 안토니 가족이 어떤 과정을 통해서 이곳 우간다까지 흘러 들어왔는지에 대해서였다.

 

'안토니 가족은 콩고민주공화국 키부주에 살다 2주 전 이곳 정착촌으로 들어왔다. 북 키부를 장악한 로랑 응쿤다의 투치족 반군을 피해 한달 반 동안 정글을 헤매다 정착촌에 들어왔다'며 그 과정을 묘사했다.

 

난민정착촌 생활에 대해서도 묘사되어 있었다. '창괄리의 난민촌 아이들은 에이피스(Aphids) 라는 모래진드기 기생충에 감염돼 있었다. 진흙바닥에 살면서 아이들의 맨발바닥을 파고들어 성충이 되면 허벅지를 뚫고 나오는 벌레다'면서 콩고의 풍부한 천연자원인 고무 생산에도 불구하고 정작 이들의 발에는 허름한 신발 한 컬레 없는 현실을 적었다.

 

글은 계속해서 캠프 생활의 현실에 대해서도 적고 있었다. '하루 배급량은 1인당 곡물 500g, 식용유 35g, 소금 5g 뿐이다. 다른 생필품은 절약한 식량을 내다팔아서 산다'며 정착난민촌의 삶을 전하기도 했다. 

 

글에서 송태엽은 이들의 생활상을 접하고 돌아온 뒤 "나는 뚜렷한 대상도 없이 분노했고 돌아와서 그 분노를 기사에 담았다. 하지만 아프리카는 한국인의 관심 밖인 머나먼 대륙이었다. 내 기사는 우물속에 떨어진 돌멩이처럼 한바탕 작은 출렁임으로 그치고 말았고 그 후는 망각이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계속해서 "난민촌의 가난과 절망 앞에서 느꼈던 정신적 충격이 시나브로 소멸되고 아프리카는 내게서 점차 멀어자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알렉으로부터 소식이 왔다. 아직도 임시숙소에 있다고 했다"며 취재 후기를 적어 내려갔다.

 

이후 그가 이들 가족의 안위가 걱정되어 UNHCR 한국사무소에 연락해 창괄리 현지 직원과 연결돼 확인해 보니 안토니 가족이 무사히 정착했음을 알 수 있어 가슴을 쓸어 내렸다며 그 후일담을 적어 내려갔다.

 

글은 이 같은 내용을 담고 있어 앞에서도 말했듯 유력매체 신문기사나 수많은 인터넷매체 또는 그 흔한 잡지에서도 볼 수 없었던 내용을 담고 있었다. 쉬운 내용도 아니고 현지에서 겪지 않았다면 쓸 수 없는 글이어서 도대체 글쓴이가 누구일까 의문이 들 수밖에.  

 

글 말미 송태엽의 소개글에서 그가 <YTN>기자로 UNHCR(유엔난민기구)과 한국언론재단이 공동기획한 동아프리카 3개국 난민촌 현장취재 후 적은 후일담 글이라는 것을 보고 나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인상 깊게 읽은 격월간지 '인권' 말미에 써있는 글은

 

전철 안 40여 분 남직 시간동안 50쪽에 불과한 이 책자에 푹 빠져 읽었지만 미처 그 내용을 다 읽지는 못했다. 사무실로 돌아와서도 나머지 내용이 궁금해 들여다 볼 수밖에 없었다.

 

책 중간쯤에 배치한 화보도 신선했다. '시선' 이라는 섹션에 배치된 글. 사진 조우혜의 '어느 누구에게도 남의 권리를 파괴할 목적으로 자기 권리를 사용할 권리는 없다'는 제목의 7컷 짜리 화보였다. 제목은 다름 아닌 세계인권선언 제30조를 그대로 빌려온 거였다.

 

그가 이스라엘 현지에서 찍은 사진이 화보 맨 앞을 장식하고 있었다. 다름아닌 지난 1월 9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행정수도인 라말라 인근 칼란디아 검문소에서 일어난 시위 현장에서 팔레스타인 소년이 검문소를 지키고 있는 이스라엘 군인을 향해 이스라엘 국기를 태워 보이고 있는 장면이었다.

 

 

화보는 계속해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갈등을 전하고 있었다. 특히 1월 17일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찍은 사진과 그 밑에 '3대종교가 공존하는 예루살렘의 올드시티지만 이 지역은 이스라엘 군 관할이며 골목 중간중간에 실탄 장전을 한 총을 든 군인들이 보초를 서고 있다. 이슬람 3대 성지 중 하나인 알악사(Al-Aqsa)사원이 이곳에 자리잡고 있다'는 설명을 해놓았다.     

 

사진에서는 실탄이 장전된 총을 든 이스라엘 군인과 그 옆을 무심하게 지나쳐 가는 한 소녀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나머지 사진들도 흔하게 볼 수 있는 사진들은 아니었다. 글을 쓴 이의 노력과 현지의 실상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사진들이었던 것.

 

격월간지 '인권' 1-2월호는 50쪽에서 그 내용이 끝이 났다. 하지만 마지막 부분에서 기자의 시선을 끄는 말이 있었다. 기자 내심으로 이 책자를 정기구독하고픈 마음이 생겨 정기구독 신청하는 곳을 찾던 중이었기 때문이다.

 

"독자들께 알려드립니다. 예산절감 및 발행부수 조정으로 2009년 1월 1일부터 개인 구독 신청이 중지됩니다"며 널리 양해를 구하고 있었던 것.

 

MB정권 들어 격월간지 '인권' 예산 22% 삭감

 

지난 2003년 창간되어 이번호로 통권 54호째를 맞은 격월간지 <인권>은 심하게 몸살을 앓고 있는 듯 했다. 국가인권위원회 담당자는 "올해 예산이 전년도에 비해 22% 삭감되어 어쩔 수 없이 발행부수를 줄일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2008년도 3만 1000부를 발행했는데 2009년 3.4월호부터는 월 2만 2000부로 축소 발행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개인구독 신청을 중지시켰다"며 양해를 구했기 때문이다.

 

과연 예산액이 얼마나 되기에 이런 좋은 책자를 축소시켜나가는 것일까?  참고로 기자가 2년 남짓 제작에 관여했던 한 지방자치단체의 홍보지 예산도 1억 수천만원 이었다. 규모가 조금 큰 수원시의 경우에는 그 예산만 5억 원에 가깝다는 소리를 들은 바 있기에 국가인권위원회 예산규모가 더욱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국가인권위원회 이 담당자의 답변은 기자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격월간 <인권> 발행 예산이 1억 7천만원이라는 답변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지난해 예산액 대비 22% 삭감되어 올해 예산이 1억 7천만원이라는 것.

 

고개를 갸우뚱거릴 수밖에 없었다. 인구수 수십만 단위의 지방자치단체들도 홍보지 예산이 연간 1~2억원 수준인데 국가기관인 국가인권위원회의 예산규모가 1억 7천만원이라면 동 위원회가 갖는 위상에는 걸맞지 않는 듯 했기 때문이다.

 

홍보예산의 경우 예산심의 과정에서 가장 만만하게 받아들여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예산절감이라는 말만 나오면 가장 먼저 예산을 덜어내는게 바로 홍보 예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가인권위원회라는 기관에서 이런 정도의 양질의 격월간지를 만들어 낸다면 그건 충분히 그 이상의 예산 지원이 이루어지더라도 전혀 아깝지 않을 듯 했다.

 

MB정권 들어 축소되어가는 '대한민국 인권' 지표의 후퇴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듯 해, 책을 덮은 뒤에도 그 씁쓸함을 더해가는 것 같다. 국가인권위원회 인원축소 뿐 아니라 '인권'그 자체가 축소되고 있는 그 상징적 의미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국가인권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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