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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위기 여파로 일자리에 비상이 걸렸다. 사상 유래없는 취업대란으로 일자리에 대한 불안감이 극에 달했다. 이런 가운데 비정규직은 정규직보다 우선적으로 감원 대상이 되는 한편, 인턴들을 채용하며 비정규직 일자리를 줄이는 등 잠재적 실업의 공포에 떨고 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취업대란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비정규직의 실태와 고민, 해법에 대해 몇 차례에 걸쳐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말]
국민체육진흥공단과 공단노조는 1월 14일 오후,  올림픽회관 14층 회의실에서 김주훈 이사장과 주정돈 노조 위원장 등 노사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경제위기 극복 동참 및 일자리 창출을 위한 '노사 공동 선언' 서명식을 가졌다.
 국민체육진흥공단과 공단노조는 1월 14일 오후, 올림픽회관 14층 회의실에서 김주훈 이사장과 주정돈 노조 위원장 등 노사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경제위기 극복 동참 및 일자리 창출을 위한 '노사 공동 선언' 서명식을 가졌다.
ⓒ 국민체육진흥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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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체육진흥공단은 지난 1월 14일 임직원 연봉의 2%를 반납해 행정인턴 66명을 채용하기로 노사 합의를 했다. 기획재정부는 정원의 4%(33명)로 인턴을 신규채용하라고 지침을 내렸는데, 체육진흥공단은 2배로 채용 인원을 늘린 것이다. 이는 일자리 창출을 위한 노사의 고통분담 사례로 알려졌다.

그러나 약 보름 전인 2008년 12월 30일 체육진흥공단은 경륜본부와 경정본부 매표소에서 일하던 일용직 발매원 14명에 대해 '계약해지'를 통보했다. 공단 측은 "D등급을 세 번 받으면 무조건 재계약이 해지된다, 본인이 요구하면 평가 결과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발매원들은 "비정규직 인원을 감축하려는 부당해고이며, 노조활동에 적극적인 조합원을 자르는 노조탄압"이라고 맞서고 있다.

공단은 2007년 말에 비정규노조 결성 4일만에 노조간부 6명을 해고했다가 서울지방노동위로부터 '부당해고' 판정을 받고 지난해 9월 복직시킨 바 있다. 세 달만에 다시 이뤄진 이번 해고에는 조합원 9명이 포함됐다.

체육공단 "D등급 평가에 따라 재계약 해지"

지난 24일 공공서비스노조연맹 사무실에서 만난 해고자 김아무개(48)씨와 전아무개(50)씨는 "억울해서 이대로는 못 물러선다"고 입을 모았다. 모두 노조 창립 초기부터 활동해온 조합원들이다.

전씨는 지난해 4월 인사위원회에서 견책 징계를 받았다. 동료에게 일본출장을 가지 말라고 하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는데 그 직원이 사측에 이를 조사해달라고 한 것이다. 개인적인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징계결과를 받아들였고, 그걸로 일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측은 이를 근거로 전씨를 해고시켰다.

그는 계약해지 통지서를 받으면서 자신의 해고사유를 알았다. 8년째 근무하면서 친절상(2006년)·우수사원상(2007년)도 받았던 전씨로서는 예상도 못했던 일이다. 그는 요새 해고의 부당성을 알리기 위해 표창장을 가지고 다닌다. 

김씨는 계약해지 통지서조차 받지 못하다가 자신만 재계약이 안 됐더라는 동료의 전화를 받았다. 회사 측에 물어본 뒤에야 그는 자신이 세 번 연속 D등급을 받은 사실을 알았다. 여러 차례 시도 끝에 받은 근무평가서는 두 줄짜리 표였는데, 문서양식조차 제대로 갖추지 않고 있었다. 구체적 평가기준이나 근거도 없고 전체 등수도 없을 뿐더러 이름과 사번도 나와있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등급평가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7년 동안 지각 결근도 한 번 없었고, 돈을 잃은 고객이 쌍욕을 해도 분쟁이 생긴 적 한번 없었다는 것. 김씨는 "평가서를 달라고 하니까 사측이 그때서야 조작해서 평가서를 만든 것 아니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내 새끼 같은 청년실업자들... 그래도 인턴은 반대"

국민체육진흥공단 비정규직 노동자인 발매원들이 지난해 1월 오전 국민체육진흥공단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국민체육진흥공단 비정규직 노동자인 발매원들이 지난해 1월 오전 국민체육진흥공단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 오마이뉴스 선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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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자 노조지부장은 이번 해고에 대해서 "사기업에서도 경제 살린다고 일자리 만드는데, 국민 세금으로 만든 공기업이 앞장서서 노동자를 자르고 있다"고 비판했다. 공단은 정규직 일자리도 줄이고 있는 상황. 지난해 12월 공단은 105명을 구조조정하기로 했고, 최근 일반노조와 인원감축에 대해 합의했다.

이에 대해 공단 측은 "정규직에 대해 명예퇴직 신청을 받고 있고, 이후 희망퇴직도 실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한 비정규직은 구조조정 대상이 아니고 다만 근무평가 결과에 따라 계약을 해지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역설적인 것은 구조조정을 결정하고 발매원들의 재계약을 해지한지 얼마 안 돼서, 공단이 행정인턴 66명을 채용했다는 점. 정병찬 홍보실장은 "인턴사원은 국가적 일자리 창출대책 차원이고 구조조정은 공기업 선진화 대책에 따른 결정이어서, 두 가지는 별도의 문제"라고 말했다.

매표소에 앉아 있는 발매원들은 사무직인 행정인턴을 마주칠 일이 별로 없지만, 중장년 여성인 이들에게 인턴은 자식 같다. 두 해고자도 그 또래 자식들을 둔 엄마다. 이들은 "정부 눈밖에 날까봐 인턴을 뽑은 것 아니냐, 비정규직인 우리는 자르고 인턴을 늘리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두 사람에게 "자녀가 행정인턴 하겠다면 어떻게 하겠냐"고 물었더니 거의 동시에 "말린다"는 답이 나왔다. 차라리 막노동을 하면서 인생공부를 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다.

"취직 안 된 대학생들이 내 새끼 같다"는 김씨는 "행정인턴은 아무것도 안 하고 왔다갔다 하기만 하더라"고 전했다. 그는 김씨는 아이들에게 "공부 안 하면 엄마처럼 열심히 일해도 잘린다, 사회가 녹록하지 않다. 엄마처럼 안 되려면 공부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무기계약직 전환? 인원감축? '갈팡질팡' 공기업

해고자들은 자신들의 싸움이 다른 일하는 아주머니들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해고자들이 물러서면 회사가 올해 더 많은 발매원을 해고할 것이라는 책임감이 있었다. 또 노조가 백기를 들면 시급제나 외주화가 실시될 것이라는 위기감도 느끼고 있었다.

애초 발매원들이 노조를 조직한 것은 고용안정을 악화시키는 시급제나 외주화를 막기 위해서다. 공단은 2007년 4월 정부에 제출한 비정규직 대책보고서에서 "향후 경주 종사 업무 전체를 외주화할 계획"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김광식 노사협력팀장은 "최근 경정 분야에서 시급제 노동자가 8명 늘어났을 뿐이고, 시급제 도입이나 외주화는 현재 계획이 없다"고 강조했다.

반면 노조 쪽은 "이미 지난해 5월부터 노조가 없는 부산 경륜공단은 공식 채용공고를 통해 시급제를 뽑고 있다"면서 "발매원 자연감소와 부당해고로 부족해진 일손이 시급제 노동자로 채워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박인자 지부장은 "시급제는 고용형태도 일용직보다 불안정한데다가, 4대보험·연차·퇴직금도 보장받지 못하는 저질 일자리"라고 주장했다. 

앞서 체육진흥공단은 정부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에 따라 지난해 10월, 상용직 비정규노동자 283명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했다. 그러나 일용직 발매원들에게는 남의 나라 얘기. 공단이 정부에 제출한 대책에서 이들은 빠져있다.

그나마 상용직 대상의 무기계약직 전환도 일단 중단된 상태다. 공단 측은 지난 1월 30여 명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려 했으나, 문화관광부와 지식경제부로부터 보류하라는 구두 연락을 받았다.

김광식 팀장은 "공기업 선진화 차원에서 정원을 감축해야 하는데 비정규직을 전환할 수 없지 않냐"면서 "공기업이다 보니까 정부 지침을 성실히 이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차라리 7월 고용대란 나는 게 낫다"

최근 정부가 기간제 기한을 4년까지 연장하는 비정규직 보호법 개정안을 내놓으면서, 정규직 전환의 꿈은 더 멀어졌다.

서울 올림픽 공원에 위치한 국민체육진흥공단의 모습.
 서울 올림픽 공원에 위치한 국민체육진흥공단의 모습.
ⓒ 오마이뉴스 선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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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2년 이상 계약한 기간제 노동자들이 오는 7월 법에 따라 정규직으로 전환되지 못하고 대량해고될 것"이라는 논리를 내세우지만, 정작 정규직 전환 지원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정부 여당의 일자리 창출 관련 추경예산안 3조5천억원에는 정규직 전환 지원금은 들어있지 않다. 기획재정부 역시 "정규직 전환금은 일자리 자체와 직접 관련이 없다"면서 관련 예산 투입에 부정적 태도다.

해고자 전씨는 "비정규직보호법 개정한다는데, 가슴이 철렁하더라"고 말했다. 정부 주장대로 7월에 비정규직 고용대란이 나더라도 '제대로 깨지고 확 바꾸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이런 식이면 어차피 4년 뒤에 잘리는데, 불안의 시간만 길어지기 때문이다.

박 지부장은 "7월 전에 발매원들이 대량 해고될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면서 "그러나 비정규직보호법이 개정되면 무기계약직 전환 가능성은 완전히 날아간다"고 덧붙였다.


태그:#비정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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