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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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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전국초중등학교에서 일제히 교과학습 진단평가(일제고사)를 실시합니다. 처음에는 10일에 치르려 했다가 지난 2월 교과부가 발표한 일제고사 결과가 일부 지역에서 성적 조작으로 밝혀지면서 전면재조사를 실시한 다음 치르기로 해서 31일에 보기로 한 것이죠.

안병만 교과부장관은 어느 자리에서 이번 진단평가는 국가가 주관하는 것이 아니고, 각 시도교육청별로 실시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합니다. 실제로 진단평가는 국가수준 평가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런데 전국 시도교육청이 교과부가 제공하는 같은 문제로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일제히 평가를 하면서 국가가 주관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누가 봐도 말이 되지 않습니다. 말만 국가가 주관하지 않는다고 하지, 실제로는 각 시도 교육청이 교과부 눈치를 보면서 교과부가 시키는 대로 하는 국가수준 일제고사입니다.

진단평가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과부 장관은 물론이고, 각 시도교육청에서는 진단평가에 대한 홍보를 강화하면서, '진단평가는 반드시 치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누가 진단평가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나요? 아무도 그런 말 한 적 없습니다.

학년 초 진단평가 당연히 해야 합니다. 아니 그동안에도 늘 진단평가 해왔습니다. 문제는 그동안 학급별로 교사들이 늘 해오던 진단평가를 전국에 있는 학교가 똑같은 문제지로 같은 날 일제고사로 본다는 데 있습니다. 그것도 교육과정에서조차 문제가 많다고 하지 말라는 선다형 지필 검사로 하는 것 말이지요.

'각 시도교육청이 드리는 글'과 학생들에게 일제고사를 홍보하는 글이 두 개의 팝업창에 떠 있습니다.
▲ 서울시 교육청 홈페이지 첫 화면 모습 '각 시도교육청이 드리는 글'과 학생들에게 일제고사를 홍보하는 글이 두 개의 팝업창에 떠 있습니다.
ⓒ 이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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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시도교육청에서는 이번 일제고사 진단평가가 아주 중요하다는 내용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알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일제고사가 갖고 있는 문제는 바로 각 시도교육청에서 알리는 내용 속에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볼까요?

◎ 진단평가란 무엇인가요?
→ 학년초에 어떤 과목이 어떤 영역이 부족한지를 정확하게 진단하기 위한 평가입니다.

가장 먼저 진단 평가 시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위 답에 진단평가는 분명 '학년초'에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3월 31일이 과연 '학년초'인가요? 게다가 평가는 3월 31일에 해도 결과는 4월 중순이 되어야 통보된다고 합니다. 4월 중순에 결과가 나오는 진단평가가 진단평가로서 과연 제 역할을 할 수나 있나요? 공문 속 붙임자료 Q&A 속에는 '올해는 지난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를 전면 재조사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3월 말에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는 교육청 스스로도 시기에 문제가 있음을 알고도 일제고사를 몰아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 진단 평가는 왜 하나요?
→ 아파서 병원에 가면 치료하기 전에 엑스레이도 찍고 청진기로 진찰을 해 보는 등 검사를 해야 처방을 받을 수 있지요. 진단평가를 통해서 잘하는 과목은 더욱 잘 하게, 부족한 과목은 보충할 방법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래요, 몸이 어딘가 아프면 병원에 가서 이런저런 검사를 해서 아픈 원인을 밝혀내서 치료를 받게 됩니다. 또 건강한 사람도 일부러 병원에 찾아가 종합검진을 받아서 혹시 자신의 건강에 문제가 없는지 미리 확인해 보기도 합니다.

그런데 진단 평가를 병원에서 하는 진단으로 견주어 중요하다고 말했는데, 그럼 병원에서 건강상태를 진단할 때 일제고사처럼 전국에 있는 모든 사람을 선다형 지필 검사 한가지로 건강 상태를 진단하나요? 그건 절대 아닙니다.

병원에서 한 사람의 건강상태를 정확하게 진단하려면, 문진표를 작성하기도 하지만, 문진표만으로 그 사람을 진단하지 않습니다. 문진표보다도 진단하려는 사람을 직접 만나서 얼굴색도 살펴보고 눈꺼풀도 뒤집어 보고, 말하는 목소리도 들어보고, 때로는 걸음걸이도 살펴보고, 앉은 자세도 보고, 입 속도 들여다보고, 배도 눌러보고, 몸에 청진기를 대서 소리를 들어보고 맥을 짚어보기도 합니다.

피검사도 해 보고, 엑스레이도 찍어보고, 내시경도 해보고, 초음파 진단도 해 보고, MRA도 찍고 해서 그 사람의 건강을 정확히 진단합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진단해봐도 잘못된 진단이 나온 경우가 종종 있다는군요.

그런데 전국 시도교육청에서는 전국에서 오직 한가지뿐인 선다형 지필 검사만으로 전국 아이들의 교과학습 정도를 진단하려는 무모함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공교육에서 하는 모든 교육활동은 이 교육과정에 따라 실시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초등교육을 잘 알려면 교사들은 물론이고 학부모들도 교육과정에 대해 잘 알아야 합니다.
▲ '제7차(왼쪽)'와 '2007년 개정(오른쪽)' 초등학교 교육과정 해설 공교육에서 하는 모든 교육활동은 이 교육과정에 따라 실시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초등교육을 잘 알려면 교사들은 물론이고 학부모들도 교육과정에 대해 잘 알아야 합니다.
ⓒ 이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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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정에 나타난 선다형 지필 검사의 문제점

이런 선다형 지필 검사 평가가 좋지 않다는 것은 이미 교육과정에서 밝혀놓고 있습니다.

다. 학교에서 실시하는 평가활동은 다음과 같은 사항을 고려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1) 평가는 모든 학생들이 교육 목표를 성공적으로 달성하기 위한 교육의 과정으로 실시한다...
 (3) 교과의 평가는 선다형 일변도의 지필 검사를 지양하고, 서술형 주관식 평가와 표현 및 태도의 관찰 평가가 조화롭게 이루어지도록 한다.
 ....
학교 현장에서는 선다형 일변도의 지필 검사 위주의 평가가 계속 이루어져왔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교과서 밖에서 출제하면 안된다고 하거나, 가르친 교사가 스스로 출제하여 학생의 학습 성취 정도를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시중에서 판매되는 문제를 공동으로 채택하여 점수 위주, 서열식 상대평가를 하는 비정상적인 것이 오히려 정상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기현상도 있었다.
 ...
학교는 교육대행업체가 제작한 평가지의 활용을 지양하고, 선다형 일변도의 지필 검사에서 서술형 주관식 평가로 전환하여야 한다. 이와 같은 일은, 이제까지 학교 교육에서 선다형 객관식의 지필검사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평가의 역기능 현상을 줄이고, 평가의 적극적 기능을 살리기 위한 방향 제시라고 할 수 있다.  (제7차교육과정 초등학교 교육과정 해설-총론, 169-171쪽)

제7차 교육과정의 주요한 맥을 그대로 이어가면서 부분 개정을 한 '2007년 개정교육과정' 총론에서는 위 내용과 더불어 다음과 같은 말이 덧붙여져 있습니다.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평가는 직접 가르친 교사가 제작한 평가지를 활용하여 선다형 일변도의 지필 검사에서 서술형 주관식 평가로 전환하여야 한다.(2007년 개정교육과정 초등학교 교육과정 해설-총론, 179쪽)

병원에서 하는 건강 진단 역시, 치료하려는 의사가 치료목적에 맞게 환자를 진단한 뒤에 진단한 결과로 치료를 하는 것처럼, 학교에서 해야 할 진단평가 역시, 다른 사람이 진단하는 것보다는 가르치려는 사람이 가르칠 대상을 직접 진단하는 것이 제대로 진단할 수 있고, 또 진단 결과를 활용할 수 있게 마련입니다.

교육과정은 전국의 공교육교사들이 따라야 할 법입니다. 공교육 교사들은 교육과정에 정해놓은 범위 안에서만 교육활동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교과부와 각 시도 교육청은 스스로 법을 어기고 있습니다. 교육과정에 분명 전국에 있는 모든 학교 학생들을 한 날 한 시에 환경과 특성은 무시한 채, 교육과정에서조차
'비정상적'이고 '역기능 현상'이 일어나니 '지양하라'고 한 똑같은 선다형 지필 검사로 진단 평가를 일제히 보라고 강요하면서 법을 스스로 무시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 2008년에 서울시교육청이 초등교사들에게 평가전문성 신장 직무연수를 하면서 만든 교재 '교과별 평가 문항 개발의 실제'에 보면 '선다형 객관식 일변도 평가의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열 가지나 늘어놓고 있습니다.

- 높은 수준의 지적 능력을 재지 못한다.
- 쓰기 능력보다는 읽기 능력을 너무나 과도하게 강조한다. 
- 특히 선다형 평가는 학생들로 하여금 잘못된 답지 내용을 정답으로 잘못 알게 함으로써 오도된 학습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 사실 위주의 단편적인 내용에 대해서만 평가할 가능성이 있다.
- 추측 행위가 가능하기 때문에 평가의 결과는 언제나 실제의 능력보다 과장되어 나타난다.
- 교육 목표를 지적 영역에만, 지적 영역 중에서도 가장 낮은 하등 정신 능력의 함양에 국한시킴으로써, 교육의 목표를 호도하게 된다.
- 객관식 일변도의 평가는 순응형, 동조형 인간상을 조형할 우려가 크다.
- 교수 학습 상황에서 사제간 인간관계를 파괴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 객관식 일변도의 평가는 왜곡된 학습 방법의 고착화를 유도하게 된다.
- 학생들에게 학습의 과정을 쉽고 용이한 것으로 잘못 인식하게 할 뿐만 아니라 학업 성적 및 자신에 대한 능력도 잘못 인식하게 만드는 폐단을 초래하게 된다.

그러면서 '선다형 객관식 일변도의 평가 방식에서 벗어나 다양한 평가를 실시한다'라고 바람직한 평가 방향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평가에 대해 말하는 그 어떤 교육 관련 책에도 선다형 지필 평가가 좋은 점이 많으니, 선다형 지필 평가 위주로 평가를 하라는 곳은 한 군데도 없습니다. 오직 교과부와 각 시도교육청만 그러고 있습니다.

병원에서 진단 시기를 놓쳐서 치료를 못하고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지거나, 직접 사람을 살펴보기도 하고, 온갖 첨단 과학적 방법을 다 동원해서 건강 진단을 해도 진단을 잘못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때로는 잘못된 진단으로 잘못된 치료를 하는 바람에 오히려 건강 진단을 하기 전보다 건강이 나빠진 일도 주변에서 많이 봅니다.

그러나 교과부나 교육청에서는 누가 봐도 문제 많은 일제고사를, 스스로 내세우고 있는 바람직한 평가방법과 평가원칙을 스스로 무시하면까지 '무조건' 일제고사를 '보라면 봐!'라고만 합니다. 그리고 다른 생각을 말하면 징계하겠다고만 합니다.

우리는 진단 평가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과정과 평가원칙에도 나와 있는 것처럼 선다형 지필검사식 일제고사로 보는 진단평가가 문제가 많기 때문에 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일 뿐입니다.

덧붙이는 글 | 교과부와 시도교육청은 스스로도 모순을 알고 있는 일제고사를 왜 고집을 부리고 실시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번에 일제고사 진단평가에 대한 문제점을 계속 짚어보겠습니다.



태그:#일제고사, #진단평가, #교육과학부, #선다형지필검사, #초등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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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만에 독립한 프리랜서 초등교사. 일놀이공부연구소 대표, 경기마을교육공동체 일놀이공부꿈의학교장, 서울특별시교육청 시민감사관(학사), 교육연구자, 농부, 작가, 강사. 단독저서, '서울형혁신학교 이야기' 외 열세 권, 공저 '혁신학교, 한국 교육의 미래를 열다.'외 이십여 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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