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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겐 아주 멋진 친구가 있다. 나이는 나보다 네 살 정도 어리지만, 그 친구는 언제나 나에게 기쁨과 희망을 줬다. 때론 슬픔과 아쉬움을 줄 때도 있었지만, 그 녀석은 언제 그랬냐는 듯 또다시 힘차게 일어난다.

그 녀석은 매년 4월이면 어김없이 나를 찾아온다. 그리고 6개월 동안 나를 설레게 한다. 단 한 번도 이 약속을 저버린 적이 없는 '의리파'다. 나의 '20년지기 친구'는 바로 '야구'다. 야구란 녀석은 꽤 유명한 친구다. 연일 뉴스와 신문은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난 친구의 소식을 듣고 열광하고 환호한다.

그러나 환호 뒤에는 내가 모르는 친구의 다른 모습이 있었다. 그 이면엔 아픔과 좌절도 있었고, 가슴 벅찬 감동도 있었다. 내가 몰랐던 친구의 뒷모습을 보여준 책이 있다. 바로 <야구의 추억-가슴 뛰는 그라운드의 영웅들>(김은식 지음·이상 펴냄, 이하 <야구의 추억>)이다.

기록 너머에 있는 야구의 진짜 매력

<야구의 추억> 증보판
 <야구의 추억> 증보판
ⓒ 이상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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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야구를 '기록의 스포츠'라고 한다. 타율이나 홈런 개수는 강타자의 척도이고, 평균자책점이나 다승으로 투수의 순위를 정한다.

기록이 좋으면 좋은 선수, 안 좋으면 나쁜 선수다. 이승엽의 홈런 개수에 열광하고, 송진우가 쌓아 놓은 위대한 기록에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야구의 추억>(김은식 지음, 이상미디어 펴냄)은 다른 이야기를 한다.  

"한국 프로야구의 숨은그림찾기, 야구의 진짜 매력은 기록 너머에 있다"

<아구의 추억> 겉표지에 실린 문구다. 김은식 작가는 기록이 아닌 '사람'에 집중해 그들이 만들어낸 숱한 드라마들을 끄집어낸다.

1994년 한국시리즈에서 1차전에서 투혼을 불사르며 141개의 공을 던졌지만 끝내기 홈런으로 눈물을 흘렸던 태평양 돌핀스의 김홍집 이야기, 1993년 막강한 전력의 해태 타이거즈, 그중에서도 최강 에이스 선동열을 상대로 뚝심 있는 181개의 공을 던졌던 삼성 라이온즈 박충식의 이야기, 그라운드에서 쓰려져 아직도 병상에 누워 있는 '돌아오지 않는 2루 주자' 임수혁 이야기 등 야구팬의 기억 저편에 숨어 있던 드라마 같은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철저히 인물에 집중했기에 그 감동은 더하다. 그 중에는 누구나 알 만한 스타 선수도 있고, 상대적으로 많은 업적을 쌓지 못하고 사라진 선수도 있지만, <야구의 추억> 안에서 그들은 모두 주인공이다.

단순히 그가 어떤 기록을 세웠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야구의 추억>은 선수들이 그 자리에 서기까지 얼마나 좌절했는지, 그 자리에서 추락하면서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또 그것을 어떻게 극복했는지에 집중한다.

사실 옛날 선수들을 이야기하는 것은 자칫 고리타분하고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여기에 저자의 능력이 최대한 발휘된다. 김은식 작가는 이야기를 풀어내는 능력이 탁월하다. 흥미로운 선수들의 이야기는 마치 재밌는 소설을 보듯 술술 읽힌다.

인터넷에 다 있는 내용, 뭐 하러 사서 보냐고?

<야구의 추억>을 집필한 김은식 작가
 <야구의 추억>을 집필한 김은식 작가
ⓒ 안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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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의 추억>은 김은식 작가가 2006년 5월부터 2009년 1월까지 <오마이뉴스>에 연재했던 내용을 책으로 담은 것이다. 사연 많고 굴곡 많은 야구선수 100명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이미 1편 <그의 141구는 아직도 내 마음을 날고 있다>과 2편 <돌아오지 않는 2루 주자>가 출간된 상태다. 이번 <야구의 추억>은 3편이 아니라 증보판이다. 큰 감동을 줬던 61명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인터넷 신문의 연재물이 세 권의 책으로 나왔다. 이에 대해 저자는 "그저 인터넷에서 읽어도 충분할 글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책으로 사서 읽어준 독자들 덕분"이라고 밝혔다.

맞는 말이다. 인터넷에 다 있는 내용을, 뭐 하러 돈 주고 사서 보나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야구의 추억은 인터넷에서 느낄 수 없는 다른 특별한 것들이 있다.

일단 <오마이뉴스>에 실리지 않는 새로운 글들이 실렸다. '한국 프로야구의 이방인들'에서는 장훈 등 재일교포 선수들과 우즈·호세 등 외국인 선수 이야기를 들려준다. 한국 선수들만 다뤘던 저자가 외국인 선수의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가는지 지켜보는 것도 이 책을 보는 묘미 중 하나다.

한국 프로야구의 탄생 설화(?)도 담겨 있다. 고교야구 인기와 프로 출범의 상관관계, 연고지 지정 배경 등 흥미로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인천 야구의 한(恨)을 담은 '슈퍼스타와 라이더스'도 재밌는 꼭지다.

무엇보다도 '야구의 추억'은 삭막한 컴퓨터 화면보다는 '활자'로 읽어야 더 가치 있는 콘텐츠다. 굳이 컴퓨터 전원을 켜고 인터넷을 연결하지 않아도 된다. 생각날 때마다 언제든 꺼내 볼 수 있다.

야구팬들을 위한 '추억의 앨범'

한국 프로야구는 1982년에 출범했다. 민망한 일도 많았다. 10승 투수 겸 타점왕이 탄생하기도 했고, 한 시즌에 혼자서 혼자 30승을 '삼킨' 투수도 있었다. 그로부터 28년의 세월이 흘렀고, 이제 한국 프로야구는 세계적인 수준으로 올라섰다. 2006년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 '퍼펙트 4강',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2009년 제2회 WBC 준우승이 이를 증명한다.

<야구의 추억>에선 한국 야구가 '민망한 야구'에서 '세계적인 야구'가 되기까지 30여년 동안 선수들이 만들어낸 숱한 감동의 드라마가 펼쳐진다. 어렴풋이 남아 있는 기억의 조각을 하나하나 찾다 보면 '세계에서 가장 매력적인 한국야구'와 마주하게 될 것이다. 오랜 친구와의 소중한 시간들을 담아 놓은 '추억의 앨범'을 꺼내 보는 듯한 아련한 기분을 말이다.


야구의 추억 - 가슴 뛰는 그라운드의 영웅들

김은식 지음, 이상(2009)


태그:#야구의 추억, #김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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