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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 병무청에 따르면 2001년 이후 연평균 650여 명이 병역을 거부했다. 대체복무제를 도입하지 않는 이상 병역거부자들은 감옥에 갈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병무청에 따르면 2001년 이후 연평균 650여 명이 병역을 거부했다. 대체복무제를 도입하지 않는 이상 병역거부자들은 감옥에 갈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 전쟁없는세상·www.withoutwar.org

병무청에 따르면 2001년 이후 연평균 650여 명이 병역을 거부했다. 평화인권연대는 2008년 10월 31일 현재 병역거부자 403명이 수감 중이라고 밝혔다. 수감 생활을 하고 있는 병역거부자 대다수가 70여 년간 병역거부를 해 온 여호와의증인 신도다.

하지만 지난해 촛불정국에서 "무고한 시민을 무력으로 진압할 수 없다"며 병역거부를 선언한 이길준씨 등 여호와의 증인 신도가 아닌 사람도 4명 있다. 지난해 11월 병역거부를 선언한 장애인활동가 권순욱(29)씨와 최근 병역거부를 선언한 한의사 은국(29)씨 등 4명은 아직 재판 중이다.

대체복무제를 도입하지 않은 이상, 병역거부자들은 '총을 들지 않겠다'는 양심의 자유를 위해 감옥 생활을 택할 수밖에 없다. 출소 후 전과자로 찍힌 낙인은 한국 사회에서 결코 평범할 수 없다. '병역거부자'라는 이름 역시 아직은 우리 사회에서 자유롭게 살아가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다.

병역거부자가 경험한 감옥 이야기. 출소 후 전과자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듣기 위해 병역거부를 선언하고 수감 생활을 마친 세 젊은이를 망원동 전쟁없는세상 사무실에서 만났다.

2007년 9월 출소해 현재 귀농운동본부에서 일하고 있는 고동주(30)씨, 2007년 10월 출소해 수감 중이거나 재판 중인 병역거부자를 지원하는 단체 전쟁없는세상 책임활동가 이용석(30)씨. 2008년 2월 출소해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에서 활동하는 경수(29)씨가 그들이다. 전쟁없는세상 활동가로 일하고 있는 여옥(29)씨도 함께했다.

내가 병역거부한 이유

고동주 : 대학시절 가톨릭학생회에서 생태 농활하며 생명과 환경에 관심을 가졌다. 이라크 전쟁이 일어났을 때 군대가 전쟁을 막을 수 있을지 의심했다. 김선일씨가 죽고 많은 시민이 파병 철회를 요구했다. 국민으로서 죄책감을 느꼈다. 종교계 청년들이 명동에서 모여 故 김선일씨를 추모하며 순례했다. 미국 대사관 근처에서 연행됐다. 유치장에서 파병과 전쟁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아마 그때 병역거부를 해야겠다는 결심이 확실히 섰던 거 같다.

이용석 : 오태양씨가 병역거부 선언하기 전 인권단체 사람들과 평화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공부했다. 병역거부가 여호와의증인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오태양씨 병역거부 선언 이후 함께 공부하던 사람들과 오씨를 도왔다. 병역거부 운동에 참여했기 때문에 나는 물론 주변에서도 자연스럽게 병역거부할 거라고 생각했다.

경수 : 고등학교 자퇴 후 대안 교육을 고민하며 두발제한 철폐운동, 선거권 하향화 운동 등 청소년 운동을 벌였다. 당시 활동하던 모임이 발전해 지금은 민들레사랑방이라는 대안 학교가 됐다. 반전운동하는 친구들이 있었는데 '효순이·미선이' 사건이 터지면서 함께 활동했다. 오태양씨가 병역거부한 소식을 듣고 최정민씨(평화인권연대)와 이석태 변호사(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등을 만났다. 주변 사람들은 아직 어리다며 시간을 두고 고민하라고 조언했다. 이라크 전쟁이 터졌을 때 주변에서 '인간방패'로 많이들 갔다. 나는 팔레스타인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무렵에 팔레스타인평화연대 모임을 시작했다. 전부터 종교에 관심이 많았다. 예수라는 인물을 알고 1년 정도 교회를 찾았다. 팔레스타인 여행 중 교회에 다녀야겠다는 결심을 했고 병역거부에 대해서도 확신이 섰다.

감옥 생활 "불합리한 것 너무 많아 건들 수 없어", "총만 안 들었지 군대와 같은 곳"

이용석 : 학생운동 하며 유치장은 가봤지만 구치소는 처음이었다. 경험이 전혀 없었지만 방 사람들과 잘 지내고 잘 적응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했다. 구속될 걸 알고 있어서 마음의 준비나 실질적인 준비를 할 수 있었다. 먼저 들어가 있던 친구가 편지로 조언도 해줬다.

고동주 가톨릭 신앙인으로 자신의 신앙 양심을 지키기 위해 병역거부한 고동주 씨(30). 미결수일 때 종교집회에 참석하지 못하게 하는 구치소의 부조리를 경험하고 분개했던 그는 현재 귀농운동본부에서 일하고 있다.
고동주가톨릭 신앙인으로 자신의 신앙 양심을 지키기 위해 병역거부한 고동주 씨(30). 미결수일 때 종교집회에 참석하지 못하게 하는 구치소의 부조리를 경험하고 분개했던 그는 현재 귀농운동본부에서 일하고 있다. ⓒ 뉴스앤조이
좁은 공간에서 많은 사람이 적은 물자를 나눠쓴다. 방을 대·중·소로 나눈다. 대방은 10명이 5평 정도에서 생활한다. 3.7평에 10명을 집어넣는 곳도 있다. 군대랑 비슷하다. 예를 들어 따듯한 물이 배급되면 누가 더 많이 쓸지 민감하다. 넉넉하지 않기 때문이다. '잔밥' 많은 사람이 군대 고참 같은 위치다.

고동주 : 나는 계속 대방만 썼다. 10~12명이 함께 지냈다. 10명이 누우면 차렷 자세로 잘 수 있다. 10명 넘으면 새우잠을 자야 한다. 앞사람이 빨리 나가고 신입이 빨리 들어오길 바랄 수밖에 없다.

경수 : 구치소에서는 24시간 불을 켠다. 책을 읽을 수도 없고 잠을 잘 수도 없는 조도(照度)다. 대부분 숙면을 취하지 못한다. 가수면 상태에서 끊임없이 꿈을 꿨다. 조금만 움직여도 사람들은 민감하다. 코 골고 이 가는 것 때문에 싸움이 많이 난다.

이용석 : 한 번도 안 깨고 푹 잔 적이 없었다.

경수 : 사람들과 몸이 엉키는 게 가장 불편했다. 처음에 갔을 때 겨울이었는데 다들 두꺼운 이불 갖고 있었다. 어떻게 움직이더라도 다른 사람과 부딪힐 수밖에 없다. 미안하기도 하고 낯설고 불편했다.

고동주 : 수감자들 사이에는 계급이 있어야 질서가 잡힌다는 생각이 강하다. 처음에 미결수 방에 들어갔다. 방 규칙이 너무 빡빡해서 신입이 모든 걸 다한다. 예를 들어 수감자들은 평상시 편한 옷을 입다가 점검할 때 관복을 차려입는다. 점검하기 전에 종이 울리는데 신입은 그 시간을 잘 기억하고 있다가 점검하기 몇 분 전에 고참들 번호대로 관복을 꺼내놓아야 했다. 목욕하기 전에도 목욕 물품을 다 챙겼다.

아침에 서열 4위 정도까지는 9시 전까지 만화책을 본다. 나머지 사람들은 책을 못 보게 한다. 구치소 규정이 아니라 방 규칙이다. 문제를 제기하니까 왜 질서를 깨뜨리느냐고 반문했다.

이용석 : 설거지나 신발 정리 등 공동생활에 필요한 일은 대부분 막내가 한다.

고동주 : 같은 방에서 생활하는 수감자 중에는 50대에서 2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섞여 있다. 서열은 나이와 상관없이 방에 먼저 들어 온 순서대로 정해진다. 나이가 많아도 늦게 들어오면 막내가 하는 일 다해야 한다.

이용석 : 나이를 따지면 어정쩡해진다. 방 질서를 무시하고 나만 편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가끔 싸움을 일으킨다. 불합리한 구조가 많다. 병역거부자라면 대단한 신념을 지닌 사람처럼 바라보지만 당장 편안함을 위해 타협하고 눈감은 일이 많았다. 불합리한 것이 너무 많아 건들기 어려웠다. 대추리 집회 때 연행된 일로 수감 생활 중 재판받으러 구치소를 네 곳이나 옮겨다녔다. 옮기다 보니까 어떤 걸 하면 방 사람들이 싫어하고 좋아하는지 요령이 생겼다. 조용히 살다가 빨리 나오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수 : 군대도 그렇겠지만 감옥 안에서 권력 문제가 훨씬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서열별로 하는 일이 정해져 있어 그 자체를 바꾸기란 정말 어렵다. 군대보다 힘든 점은 고참들은 대부분 형이 길다는 거다. 서열 올라가는 데 한계가 있다. 눈치를 안 볼 수 없는 구조다.

고동주 : 구치소 안에도 종교집회가 있다. 정말 참석하고 싶었다. 미결수일 때는 종교집회 못 간다. 이유는 장소가 좁아서 기결수들만으로 꽉 차기 때문이다. 구치소 관습이다. 국가인권위원회도 미결수들은 무죄추정의원칙에 따라 죄인이 아니기 때문에 인권 침해 요소를 최소화해 종교 자유를 보장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미결수 인권이 기결수보다 못한 게 현실이다. 집회 참석하게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공사해서 집회 장소가 넓어지면 가게 해주겠다'고 하다가 미결수 기간이 끝나서 취사장에서 일했다. 이번에는 '잔밥'에서 밀렸다. '잔밥'이 되면 가게 해주겠다고 했다.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서 진정하겠다며 소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 원래 종교집회 통제는 교도관이 해야 하는데 재소자들끼리 관리한다. 기독교, 불교, 천주교는 집회가 매주 있다. 여호와의증인 집회는 한 달에 한 번 있다.

이용석 : 종교집회 간다고 일할 사람이 없는 게 아니다. 서열이 높은 사람들은 논다. 총만 안 들었지 부조리한 모습은 군대와 같다.

여호와의증인 신도 없으면 교도소 안 돌아간다?

경수 : 수감자들은 모두 출역한다. 나는 50여 명과 함께 취사장에서 일했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같은 방을 쓴다. 서열에 따라 방에 들어가는데 누구랑 같은 방을 쓰느냐에 따라 생활이 달라진다.

이용석 병역거부하기 전부터 병역거부운동을 펼친 이용석 씨(30). 현재 '전쟁없는세상'의 책임활동가로 일한다.
이용석병역거부하기 전부터 병역거부운동을 펼친 이용석 씨(30). 현재 '전쟁없는세상'의 책임활동가로 일한다. ⓒ 뉴스앤조이
이용석 : 직원 사무실 청소를 했다. 출소하기 전 방에서 나만 빼고 다 여호와의 증인이었다. 영치금 관리나 물품 관리, 편지 배달이나 구매 배달 등 구치소나 교도소 내에서 부정이나 비리가 많이 일어나는 일은 대부분 병역거부자가 한다. 직원들과 같이 일하는 작업은 전통적으로 여호와의증인 신도들이 해 왔다. 감옥에서는 우리를 보통 여호와의증인 신도라고 생각한다.

고동주 : 재소자들은 다 이발기로 머리를 깎지만 구치소나 교도소 안에 직원들을 위한 이발소가 따로 있다. 공짜다. 주로 안마를 받는다. 일반 재소자에게는 직원 이발을 안 시킨다. 여호와의증인 신도들에게 이발 기술을 가르쳐서 맡긴다.

경수 : 병역거부자들 사이에서는 우스개로 여호와의증인 신도가 없으면 교도소 안 돌아간다고 말하기도 한다. 처음엔 병역거부자들에게 힘든 일 시키다가 고생 좀 했다 싶으면 편한 데로 옮겨준다. 내가 있었던 성동구치소에는 여호와의증인 신도가 100명 넘게 있었다. 나는 취사장에서 옮길 때가 됐는데 여호와의증인 신도들이 너무 많아 옮길 수 없었다. 사무실 청소나 물품 관리 등 기존에 여호와의증인 신도들이 전통적으로 해오던 일들은 나름대로 커뮤니티가 형성돼 있어서 직원들에게 입김을 넣기도 한다.

기독교인이라는 게 알려져서 여호와의증인 신도들 사이에서 내가 자기들에게 선교할지 모른다는 소문도 돌았다. 대응하기 위해 여호와의증인 책을 많이 읽었다.

이용석 : 실제로 여호와의증인 신도들이 전도나 선교를 심하게 하는 건 아니다. 대부분 직원 이발소나 구매 배달 등에 몰려 있기 때문에 다른 재소자들 만날 기회가 없다.

고동주 : 여호와의증인 신도들을 관심 갖고 지켜봤다. 하루는 선교 연습을 한다며 나에게 선교 상대가 돼 달라고 했다. 나중에 보니 나를 선교한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자기들끼리 모르는 사람에게 선교하듯 연습을 한다고 들었다.

경수 : 언제가 여호와의증인 신도인 친구에게 '성경 다 읽어봤느냐'고 물어봤다. 안 읽어봤는데 읽었다고 하는 친구들이 대부분이다. 성경에 대해 토론하다가 안 되겠다 싶으면 구치소에 있는 다른 친구를 데려온다. 여호와의증인 신도들에게 수감 생활은 공부하는 시기인 거 같다.

이용석 : 나이 든 친구일수록 공부 열심히 하고 젊은 친구들은 노는 것 좋아한다. 평범하다.

고동주 : 복역 중 사이가 안 좋았던 여호와의증인 신도 친구가 있다. 나보다 나이가 어렸지만, 먼저 들어왔기 때문에 어느 정도 대접해줬지만 가끔 충돌할 때가 있었다. 정직하고 성경 지식도 해박하지만 재소자 사이의 질서나 부조리를 깨뜨리려 하지 않는다. 권위를 내세울 때도 있었고 보수적이었다.

이용석 : 대체복무 반대하는 사람들이 '대체복무자들이 다 여호와의증인되면 어떡하나' 걱정한다. 농담이지만 대체복무자들이 다 여호와의증인 신도가 되면 나라에서 좋아할 거다. 그들은 질서나 법을 안 어긴다. 너무 안 어긴다.

경수 : 여호와의증인 신도들은 병역거부를 중립이라고 말한다. 중립은 인간 세상 어느 쪽에도 서지 않겠다는 뜻이다. 자기는 여호와의증인 신도가 아닌데 부모님 때문에 들어왔다며 효도했다는 애들도 있었다.

이용석 : 여호와의증인 쪽에서 사회적으로 병역거부 운동을 하진 않지만 물심양면으로 도와준다. 가끔 만날 기회가 있다. 나이 든 사람들은 점잖고 예의 바르다. 젊은 친구들은 여호와의증인 신도라고 해도 보통 20대랑 비슷하다. TV에서 젊은 여가수들이나 예쁜 여배우가 나오면 눈을 떼지 못한다.

병역거부자에 대한 재소자들의 시선

이용석 : 교도소나 구치소에서 남의 죄명에 대해 예의상 이야기하지 않는다. 불문율이다. 그런데 눈치 없이 물어보고 시비 거는 사람들이 있다.

고동주 : 서로 죄명을 모르는 게 원칙이다.

이용석 : 병역거부자이기 때문에 수감 생활 중 피해보는 것은 없다. 오히려 병역거부자는 죄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교도관들이 많다.

경수 : 성동구치소는 여호와의증인 신도가 많아서 재소자들이 가석방 순서에서 밀릴 때가 잦았다. 매달 말이면 누가 가석방될지가 이슈다. 서로 형량이나 죄명, 사례 등을 비교한다. 자기가 나갈 차례인데 못 나가게 되면 여호와의증인에게 화풀이하기도 있다. 편한 일자리는 여호와의증인이 다 차지하고 있다며 미워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용석 : 병역거부자에게는 전쟁없는세상이나 민가협, 인권운동사랑방 등에서 우편물이 온다. 시민단체와 연관돼 있다는 생각에 재소자나 교도관들이 함부로 못 한다.

경수 : 사람이 많아서 말 안 하면 잘 몰랐다. 그보다 스스로 병역거부자이기 때문에 내부에서 사고를 치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다. '병역거부자 욕보이지 말자'는 생각이 약점이 된다. 간혹 누군가 인신공격을 해도 착한 척했다. 일도 정말 열심히 했다. 고참이 뭐라고 해도 더 열심히 하는 모습 보여줘서 그들을 감동시키려고 했다. 그 강박관념 때문에 6개월은 고생했다. 6개월 지나서 후회했다. '내 잘못이 아니다. 나는 이보다 더 열심히 할 수 없다'라는 생각이 들어 태도를 바꿨다. 사람들이 내 변한 모습에 적응을 못 해 문제가 좀 있었다.

이용석 : 나는 자기 맡은 책임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고동주 : 방 사람 열 명 중 한 명은 시비를 건다. 대부분 스스로 애국심이 투철하다든지 군대에서 고생했다는 사람들이다.

경수 : 처음 석 달 정도는 웃지를 못했다. 면회 왔을 때 사람들이 경직됐다고 말했다.

병역거부, 비주류로 살겠다고 결심하기

이용석 : 평범하게 직장생활해야 하는 사람들은 병역거부를 결심하는 단계에서 많이 포기한다. 병역거부하는 사람들은 남들처럼 살기를 포기한 사람들이다. 상황이 안 되는 사람들은 시작도 못 한다.

경수 '병역거부자 욕보이지 말자'는 생각에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는 경수 씨. 기독교인임이 알려져 여호와의증인들과 성경에 대한 토론도 많이 했다고 한다.
경수'병역거부자 욕보이지 말자'는 생각에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는 경수 씨. 기독교인임이 알려져 여호와의증인들과 성경에 대한 토론도 많이 했다고 한다. ⓒ 뉴스앤조이
경수 : 병역거부 선언할 때 친구들이 '넌 이제 일방통행이다'라고 얘기했다. 내가 어떻게 선택하고 어떤 삶을 살지 모르는데 선택권이 제한된다는 게 가장 싫었다. 징역살이보다 더 두려웠던 부분이다.

여옥 : 김훈태 씨 같은 경우 초등학교 교사였는데 병역거부했다. 출소 후 지금은 과천자유학교라는 대안 학교에서 일한다. 병역거부를 하면 공직 진출이 거의 불가능하다. 병역거부자 중 일반 직장에 취업한 사람은 출판사에서 일한 송인욱 씨가 유일하다.

이용석 : 군대 안 간 사람에 대한 차별, 강제 조항은 없어졌지만 관습적으로 남아있다. 일을 구할 때 병역거부 문제 삼지 않는 일을 찾아서 구한다.

경수 : 아르바이트를 구할 때 이력서 내야 하면 애초에 거른다. 편의점에서 석 달 아르바이트 하다가 주인과 밥 먹으면서 병역거부할 생각이라고 말하니까 주인이 그만두라고 했다. 그때 생긴 상처가 아직 있다.

이용석 : 병역거부자들 법적으로는 군 면제다. 사람들이 면제 사유 물어보곤 한다.

고동주 : 빨간줄이 그어졌기 때문이다.

이용석 : 1년 6개월 이상 실형을 선고받은 사람들은 군대에서 안 받아준다.

고동주 : 우리 같은 경우 거짓말할 수도 있지만 여호와의증인들은 취직할 때 면접에서 거짓말 안 한다. 이력서 화려한 사람 많다. 서류 전형 1차, 2차까지 통과하고 면접에서 병역거부 사실을 말하고 떨어진 사람들 많다고 한다. 여호와의증인들은 주로 자영업을 한다고 들었다.

이용석 : 구속되기 전부터 전쟁없는세상에서 활동했다. 출소 후에도 바로 전쟁없는세상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일을 구하며 차별을 직접 경험한 일은 없다. 생활비는 간단한 아르바이트로 마련한다. 이력서 써야 하는 일 말고 주변 사람들 통해 알음알음 구해 일한다.

고동주 : 나도 일반 기업에 취직하지 않았다. 천주교인권위원회에서 일했고 지금은 귀농운동본부에서 일한다. 일반 직장에 들어갈 시도는 해보지 않았다. 귀찮은 일들이 생길 거 같고 이력서에 내밀 자격증이나 학력도 없다.

여옥 : 김훈태 씨가 그런 이야기 했다. 만약 자기가 사면복권돼서 학교로 돌아갔더라도 공교육 시스템에 적응 못 했을 거라고. 병역거부자에 대한 편견 때문이다.

이용석 : 병역거부 결심은 사회 주류로 살지 않겠다는 거다.

경수 : 병역거부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총체적인 선택이다. 대부분 평화나 생명 문제에 관심이 있다. 기존 국가 시스템을 거부하고 대안적인 삶을 살고 싶은 사람들이다.

이용석 : 대부분 주류에 편입하려는 시도 자체를 안 한다.

여옥 : 병역거부할 때 자신이 이야기한 이유 그대로 살아내려 한다.

병역거부자 ○○○, 관계에 '벽'이 되기도

경수 : 사회가 병역거부 문제 하나만으로 삶을 옥죄지 않는다. 하나 거부하기 시작하면 총체적인 거부로 이어진다.

이용석 : 병역거부자라는 이름이 오히려 감옥이 될 때도 있다. 병역거부를 반대하는 사람뿐 아니라 지지하는 사람들도 나를 병역거부자로만 본다. 병역거부는 나를 설명하는 수많은 수식어 중 하나다. 나의 정체성이 다른 사람들에 의해 규정된다. 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착한 병역거부자가 아니다. 병역거부자를 바라보는 고정관념이 달갑지 않다.

고동주 : 병역거부자에 대한 사회의 편견이다. 주로 '감옥에 1년 넘게 다녀왔더라. 대단하다. 신념이 강할 거다' 등 투사 인상의 수식어가 붙는다. 굉장히 부담스럽다. 나는 한편으로는 편하게 살고 싶은 나약한 사람이다.

경수 : 내가 기독교인이긴 하지만 최근 본의 아니게 기독교 쪽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부담을 많이 느꼈다. 그쪽에서 나를 병역거부자로 통칭한다. 스트레스다. 나에게 다른 가능성이나 가치들이 있는데 늘 병역거부자로 소개한다. 병역거부자로 사람들을 만나는 게 아닌데 병역거부에 대해 설명할 게 너무 많이 생긴다.

고동주 : 가톨릭 쪽에는 극소수라서 소개하는 게 의미 있기 때문에 부담스러워도 그렇게 소개하지 말아달라고는 못한다.

경수 : 원래 하고 싶던 일이 지역·환경운동이다. 사람들을 많이 만나야 하는 일인데 병역거부가 벽으로 작용해 스트레스 받는다. 어떤 식으로 나만의 운동을 만들어갈까 고민할 때 자주 한계를 느낀다.

여옥 : 병역거부자들 역시 어떻게 하면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을지 고민하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병역거부는 고민의 한 과정일 뿐이다. 특별하거나 다른 사람이란 생각이 들지 않는다.

고마운 가족, 친구들

이용석 : 초창기 병역거부자들은 부모님과 갈등이 많았다고 한다. 군 복역 중 병역거부를 선언한 강철민 씨나 이길준 씨의 부모님은 더 충격이 크셨을 거다. 우리 부모님은 내가 병역거부 활동해 온 것을 알고 계셔서 비교적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셨다. 하지만 수감 생활을 하는 것은 반대하셨다. 대체복무제 도입될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셨다.

고동주 : 감사하게도 나 역시 부모님과 생각을 공유할 수 있었다. 평소 부모님의 생각이 자유로운 편이시고 가톨릭 신앙이 깊으셔서 신앙을 이유로 병역거부하겠다고 얘기했을 때 이해하셨다. 물론 걱정을 많이 하셨지만 불화가 생기지는 않았다. 대신 친척들은 아직도 이해를 못 한다. 지금도 명절이 참 싫다. 그분들 눈에는 내가 제대로 된 직장을 다니는 것도 아니어서 개인 사업하시는 분 만나면 밑에 들어와 일하라고 하신다. 부모님께는 늘 감사하다.

경수 : 부모님과 갈등은 병역거부 전에 이미 치렀다. 대학 안 가겠다며 고3 때 자퇴하면서 크게 다퉜다. 병역거부할 때는 처음으로 아버지랑 술을 한 잔 마셨다. '알아서 하라'는 포기 수준의 말씀을 하셨다. 어머니는 끝까지 반대하셨다. 면회 오셔서도 늘 우셨다. 병역거부 이후 동네 사람들을 잘 안 만난다. 만나서 말이 길어지면 군대 이야기가 나올 테고···. 눈인사만 한다.

고등학교 자퇴할 때는 자퇴 경력 남으면 우리 사회에서 못 산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이제는 세상이 바뀌어서 대안 학교가 많이 생겼다. 병역거부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고동주 : 친구 중에 대체복무제 도입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대체복무제를 넘어 무기나 군수물자, 경제정의 같은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이 다른 경우가 많다.

경수 : 병역거부나 대체복무제를 반대하는 것은 잘 모르기 때문이다. 조금만 관심을 갖고 살펴보면 생각이 바뀐다. 군사주의가 나쁘다는 것, 자랑할 만한 게 아니란 것은 모두가 느끼는 바일 거다.

고동주 : 나이 든 옛날 활동가 중에는 병역거부를 이해 못 하는 사람도 있다. 내가 병역거부할 때 천주교 쪽 사회운동 진영에 도움을 요청하고, 천주교 인권위에서 변호사 선임하는 것에 대해 위쪽에서 논란이 있었다고 한다. 정의구현사제단에서도 이해 못 하는 사람이 있었다고 들었다. 그러나 이제 보수 사회단체 말고는 병역거부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이용석 : 병역거부나 대체복무제는 우리 사회에서 상식적인 문제가 됐다. 대신 삶에서 묻어나는 군사주의나 위계질서적인 모습은 변하지 않는다. 술을 강요하거나 나이에 따라 호칭을 정하는 문제 등은 쉽게 변하지 않을 것 같다.

병역거부, 고민하고 고민하고 또 고민하라.

여옥 전쟁없는세상 활동가로 일하고 있는 여옥 씨는 군대에 가는 이들을 향해 "군대 가기 전 군대가 어떤 곳인지 고민해보라"고 부탁했다.
여옥전쟁없는세상 활동가로 일하고 있는 여옥 씨는 군대에 가는 이들을 향해 "군대 가기 전 군대가 어떤 곳인지 고민해보라"고 부탁했다. ⓒ 뉴스앤조이
이용석 : 2008년 이후 병역거부한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러다 국방부가 대체복무제를 안 할 것처럼 발표하니까 기다리던 사람들이 포기하고 병역거부를 선언하는 것 같다.

경수 : 최근 만나는 사람들이 병역거부하려는 사람에게 어떻게 이야기할지 물어본다. 잘 모르겠다. 아주 친하지 않으면 말리고 아주 친하면 도와준다는 게 지금까지 정리된 생각이다. 대신 책임질 수 없는 문제다.

이용석 : 전쟁없는세상에 병역거부 상담이 들어오면 처음에는 무조건 말린다. 병역거부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 양심이나 신념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 않고 감옥에 대해서도 정보나 생각 없이 오는 사람들이 많다. 병역거부자 중에는 감옥 생활이 너무 힘들어서 번복한 사람도 있다. 그렇게 되면 개인에게는 큰 상처다.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고 그래도 하겠다는 사람은 돕는다. 우리는 도와주는 것뿐이다. 병역거부로 겪을 어려움에 대해 자기가 판단하고 책임진다.

여옥 : 병역거부자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 군대가 아닌 감옥을 택한다. 병역거부자가 더 늘어나면 대체복무제가 더 빨리 도입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고동주 : 병역거부를 하지 않더라도 군대에 대해 성찰하고 나면 군대 안에서 부조리한 문화를 답습하지 않고 더 나은 생활을 할 수 있을 거다. 가톨릭학생회 후배들과 이야기하는 시간이 있었다. 병역거부하라고 말하지 않았다. 군대 가기 전 신앙인으로서 자신에게 군대가 어떤 의미인지 고민하면 군 생활이 다를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경수 : 병역거부를 해야 하냐, 아니냐가 아니라 병역거부자를 인정해야 하느냐의 문제다. 병역거부보다 군사주의 폐해를 강조해야 한다. 우리나라 남자라면 누구나 한 번씩은 군대에 대해 고민한다. 고민이 사람을 깊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한다. 허투루 고민하지 않고 진지하게 고민하길 바란다.

여옥 : 전쟁없는세상에서 굳이 병역거부자를 늘리려 하지 않는 것은 감옥에 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 군대에 가는 것은 옳은가. 대부분 사람이 군대를 다녀온 이후 군사주의 문화에 물든다. 군대 가기 전 군대가 어떤 곳인지 고민해봤으면 좋겠다.

이용석 : 병역거부자, 특별한 사람 아니다. 내면의 소리에 민감하고 마음 아픈 것 참지 못하는 사람들일 뿐이다. 고도로 의식화된 사람들이 병역거부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학생운동하는 사람들은 거의 병역거부하지 않는다. 평범하지만 솔직하고 마음이 여린 사람들이 한다. 군대 갈 거냐 병역거부할 거냐가 아니라 어떻게 살 거냐의 문제다. 병역거부자들은 입영영장을 계기로 어떻게 살아갈지 심각하게 고민한다. 병역거부를 하든 군대에 가든 간에 끊임없이 고민하며 사는 게 중요하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뉴스앤조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병역거부자#감옥#고동주#이용석#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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