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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일상생활 16시간 중 평균 8시간 20분 디지털미디어에 의존.'

지난달 26일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이 발표한 연구 결과다. 보통 한국인은 하루의 반을 디지털기기와 함께 보낸다. 그도 그럴 것이,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많은 사람들이 귀에 이어폰을 꽂고 있다. DMB 기능이 있는 휴대폰이나 PMP를 들고 있는 사람도 꼭 있다. 학교에서든 회사에서든 인터넷은 필수다.

디지털기기와 한국인은 이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디지털기기는 한국인의 생활에 얼마나 밀접하게 침투해 있을까. 디지털기기와 친한 한 대학생의 하루를 동행해봤다.

노트북은 필수품, 귀엔 항상 이어폰

 그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컴퓨터를 켠 뒤 'CNN 뉴스'를 청취했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컴퓨터를 켠 뒤 'CNN 뉴스'를 청취했다. ⓒ 고두환

새벽 6시 30분, 어김없이 요란한 휴대폰 모닝콜이 전승령(대학생, 26)씨의 단잠을 깨운다.

"탁상시계도 써 봤는데, 하루 종일 제 옆에 있는 건 휴대폰이잖아요. 탁상시계를 휴대하기도 그렇고…."

일어나자마자 컴퓨터를 켰다. 지난 달 매형이 공부하라며 건네 준 'CNN 뉴스' CD를 집어넣은 뒤 열심히 한 마디씩 따라하며 학교 갈 채비를 했다. 토스터기에 빵을 굽고, 한 입 베어 물면서 영어를 한 마디 더 들으려고 신경을 곤두세웠다. 한 시간 쯤 지났을까 가방을 챙기는 전씨는 노트북을 가장 먼저 챙겼다.

"개강하고 나선 노트북 놓고 학교에 간 적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그는 노트북, PSP, MP3 플레이어, 디지털카메라, 그리고 휴대폰을 챙겨서 자취방을 나섰다.

학교까진 1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어젯밤 '취업 안 되어서 걱정'이라는 친구의 문자를 받은 탓일까? 이 시간도 그냥 허비할 수 없었다.

"보통 학교에 갈 때는 팝송을 들어요. 뉴스를 듣자니 너무 딱딱하고, 가요를 듣자니 시간이 아까운 것 같아 적정한 타협점을 찾은 셈이죠."

오전 8시,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바로 도서관 한 쪽에 자리를 잡았다. 가방에서 노트북과 헤드폰을 꺼낸 뒤 중국어 동영상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지난해 중국에서 어학연수를 할 때만 하더라도 중국어에 대한 자신감이 충만했건만, 돌아온 지 며칠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자꾸만 중국어가 머릿속을 빠져나가는 것만 같단다. 주변을 둘러보니 여러 학생들이 그와 같이 동영상 강의를 듣는데 여념이 없었다.

오전 8시 50분, 어느덧 강의 시작 10분 전이다. 전공수업인 '국제경제론'은 학생들이 준비해온 프레젠테이션으로 발제를 시작한 후, 토론 형태로 진행되는 수업이다. 프레젠테이션을 선호하니 발제 자료는 파워포인트로 준비하게 되고, 그런 탓에 그는 지난주에 10시간이나 파워포인트 프로그램을 붙잡고 있었다.

시끌벅적한 강의실 수업보단 원격 강의가 좋아

 학교 내 잔디밭, 도서관이 답답하거나 상쾌한 공기가 그리워지면 그는 잔디밭 내 벤치에서 동영상 강의를 듣곤 한다. 동영상으로 듣는 강의기에 가능한 일이다.
학교 내 잔디밭, 도서관이 답답하거나 상쾌한 공기가 그리워지면 그는 잔디밭 내 벤치에서 동영상 강의를 듣곤 한다. 동영상으로 듣는 강의기에 가능한 일이다. ⓒ 고두환

꼬리에 꼬리를 무는 험난한(?) 발제 수업이 끝나니 어느새 낮 12시, 지난해 디지털기기를 많이 사용하다 얻은 '안구건조증' 탓에 눈이 금세 침침해졌다. 조용히 화장실에 가서 안약 몇 방울을 넣고 밥을 먹으러 식당으로 향했다.

"언젠가부터 혼자서 밥 먹는 게 편하더라고요. 물론 친한 친구들이랑은 항상 밥을 같이 먹는데 그렇게 친하지 않은 사람들이랑 밥 먹고 어울리는 게 많이 불편했어요. 특히 오늘 수업은 대부분 모르는 사람들이랑 들었거든요. 그럼 혼자 빨리 먹고 다른 일을 해요."

그는 혼자서 치즈 돈가스 한 그릇을 5분 만에 해치웠다. 식당에서 나오는 길, 옆에 우두커니 서있는 컴퓨터에 그가 손을 갖다 댔다. 생각해보니 이메일 체크를 하지 못했다. 이번 달 휴대폰 요금이 7만 원이라는 충격적인 고지서가 메일함에 도착해 있었다.

"한 달 생활비가 40만 원인데, 휴대폰 요금에 전기세, 인터넷 사용료 내면 거의 15만 원이에요. 디지털기기 사용비가 식비랑 비슷하게 쓰는 것 같아요."

충격도 잠시, 미니홈피로 일촌 파도타기를 하고, 포털사이트에 올라온 실시간 뉴스 몇 건을 보니 어느새 30분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오후 1시, 오늘은 그가 중국어를 공부하는 학생들과 함께 스터디를 하기로 한 날이다. 5명 남짓의 학생들이 함께 중국어 관련 동영상 및 프레젠테이션을 본다. 초창기에 짜놓은 커리큘럼대로다. 스터디 내내 빔 프로젝터와 노트북은 그들 앞에 유유히 빛을 밝히고 있었다.

 식당 옆 컴퓨터, 캠퍼스 곳곳에 위치한 이런 컴퓨터들을 학생들은 많이 이용했다. 대부분 메일 확인과 실시간 뉴스를 확인한다.
식당 옆 컴퓨터, 캠퍼스 곳곳에 위치한 이런 컴퓨터들을 학생들은 많이 이용했다. 대부분 메일 확인과 실시간 뉴스를 확인한다. ⓒ 고두환

오후 3시, 중국어 스터디가 끝나고 그는 잔디밭에 잠깐 걸어 나갔다. 몇 분 거닐다가 벤치에 앉았다. 무료한 기분에 휴대폰 DMB TV를 켰다. TV에선 KBS2TV <상상플러스>가 재방송 중이었다. 오늘은 제법 웃긴 탁재훈, 혼자 키득거리다보니 어느새 20분이 훌쩍 지났다.

과제 준비를 위해 도서관으로 향했다. 자료관으로 가서 필요한 책과 논문 몇 편을 살펴보니 어느새 오후 5시가 훌쩍 넘어버렸다.

서서히 출출해지는 그였지만 이대로 집으로 발걸음을 돌릴 순 없었다. 도서관 한 쪽에 자리를 잡고 그는 다시 노트북을 꺼내서 원격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시험만 강의실에서 보고 수업은 인터넷으로 듣는 원격강의, 지난주에 의문점이 생겨 질문을 게시판에 올려놓으니 어느새 교수님의 답글이 올라와 있다.

"강의실 찾아서 캠퍼스 헤매는 것도 지겹고, 항상 사람 많고 시끌벅적한 강의실이 나와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이상하게 수업에 잘 집중도 되지 않았고요. 그래서 기회가 되면 이렇게 원격강의 형태로 수강신청을 해요."

그는 원격강의 내내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지 않으며, 한 쪽에 펴놓은 노트에 부지런히 필기를 하고 있었다.

하루의 마무리는 'PSP' 게임

전씨의 디지털기기 보유현황 및 유지비
* 노트북, 데스크톱 컴퓨터, MP3 플레이어, 전자사전, 디지털카메라, 외장형하드, 휴대폰, PSP
- 구입 당시 가격으로 치면 약 400만 원 지출

* 월 용돈 40만원 중 디지털기기 사용료 15만 원 내역
-핸드폰 사용료 7만 원
-인터넷 사용료 3만5천 원(디지털 TV포함)
-프린트 비용(학교 도서관) 5천 원
-자취방 전기세 1만5천 원
-안구건조증(디지털기기 사용 과다로 인한 병) 안약 값 5천 원
-인터넷 동영상 강의료 및 기타 사용료  2만 원
저녁 7시, 저녁 먹을 시간이 됐다. 자취방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가는 길에는 MP3 이어폰이 그와 함께 동행했다. 아무도 반겨주지 않는 자취방에 들어가서 불을 켜고 대충 밥을 차려먹고 샤워를 하고나니 어느덧 시간은 저녁 8시다. 그는 다시 책상 위에 노트북을 펼쳐놓고, 인터넷 선을 연결했다.

"집에 돌아오면 몇 개 언론 사이트를 돌아다니면서 뉴스를 봐요. 그 다음엔 메일을 체크하고, 학교 홈페이지, 미니홈피, 취업 관련 사이트 등 몇 군데를 돌아다니다보면 1시간이 훌쩍 지나가요."

밤 9시, 그는 아침에 본 중국어 동영상 강의를 다시 한 번 반복해서 들었다. 1시간쯤 들었을까, 그 다음으론 다음 주 전공 발제 준비를 시작했다. 아까 도서관에서 찾은 자료와 필기내용을 프레젠테이션으로 옮기는 작업이다.

"방금 전에 친구가 메신저로 자료를 보내줬네요."

그렇게 정신없이 프레젠테이션을 만들다 보니 어느새 시간은 자정이다. 다시 한 번 눈의 빡빡함을 느낀 그는 눈에 안약 몇 방울을 투여한 뒤, 간단한 스트레칭을 하고 디지털 카메라를 잠시 켰다.

"너무 운동을 안 하는 것 같아서 친구들이랑 일주일에 한 번 볼링을 치러가요. 그 때 찍은 사진 좀 보려고요. 요즘 같은 때는 가끔 외롭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람을 만나는 일이 너무 없어서 그러나 봐요."

새벽 1시, 자기 전에 PSP 게임기를 켰다.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축구 게임 '위닝일레븐'을 즐기는 그는 토너먼트 경기를 제패하고 나서야 잠을 청했다. MP3로 팝송을 한 번 더 듣고, 휴대폰 알람시간을 재차 확인한 뒤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렇게 전승령씨의 하루는 저물었다. 그가 이날 디지털기기를 사용한 시간은 무려 15시간, 깨어 있는 시간의 대부분이었다. 헤어지기 전, 전승령씨가 남긴 말이다.

"제가 가장 인상 깊게 본 영화 <월-E>에요. 고도화된 문명 때문에 사람들은 걷지도 못하는 뚱보가 되죠. 문명이 계속 발전한다면 저렇게 되지 않을까 고민해봤죠. 디지털기기는 편리하고 유용해요. 하지만 주객이 전도되지 않도록, '내가 그것을 왜 사용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그가 오늘 집을 나서면서 휴대해서 나온 디지털 기기들, 노트북, 플레이스테이션, MP3 플레이어, 전자사전, 휴대폰.
그가 오늘 집을 나서면서 휴대해서 나온 디지털 기기들, 노트북, 플레이스테이션, MP3 플레이어, 전자사전, 휴대폰. ⓒ 고두환

[전승령씨 일문일답] "디지털기기는 내 삶의 좋은 동반자"
- 하루 간의 동행취재가 끝났다. 느낌이 어떤가?
"괜히 나한테 불이익이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웃음). 친구도 없고, 일종의 '오타쿠' 비슷하게 비춰지는 건 아닐까? 오늘따라 디지털기기를 많이 사용했고, 사람들도 안 만나는 날이었으니 말이다(웃음)."

- 중간 중간 안약 넣던데.
"안구건조증이다. 지난해 CCTV를 하루 종일 봐야 되는 아르바이트를 했고, 디지털기기를 사용하면서 눈이 침침하고 마르는 느낌이 들었다. 안과에 가보니 아니나 다를까 안구건조증이라고 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많이 걸린다는데, 항상 안약을 가지고 다니면서 눈에 뻐근한 느낌이 나면 넣어야 한다."

- 직접 듣는 강의보다 동영상 강의를 선호한다고 했다. 이유는?
"난 조용한 곳에서 혼자 앉아서 공부하는 것이 좋다. 대형 강의실에 많은 학생들과 수업을 들으면 왠지 정신없고 집중을 잘 못하곤 했다. 동영상 강의는 이런 나의 성향과 맞았다. 저렴한 가격으로 언제 어디서나 수준 높은 강의를 들을 수 있고, 언제나 강의를 다시 들으면서 복습할 수 있다는 게 큰 매력이다."

- 디지털기기를 많이 사용하게 된 계기는?
"사실 군대 가기 전엔 휴대폰을 제외한 디지털기기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내 경제력으론 구입도 어렵고 유지도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군대를 다녀와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제법 돈을 모으니 디지털기기를 하나둘씩 사 모으게 됐다. 사면 살수록 편리하고 재미있다. 생각해보면 경제력이 좀 생겨서 디지털기기를 많이 사용하게 된 게 아닌가 싶다."

- 디지털기기의 장점과 단점은?
"언제 어디서나 압축적이고 깊이 있게 공부와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좋은 동반자다. 단점은 안구건조증을 꼽을 수 있겠지만, 그것보다 더 큰 것은 사람을 자꾸 안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친하고 어울리는 사람들이 아닌 새롭고 약간은 불편한 자리에는 절대 나가지 않으려고 하는 경향이 디지털기기를 사용하고 나서 생긴 것 같다."


#디지털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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