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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프로그램이 가지는 영향력은 실로 대단하다. 매일 쏟아내는 수많은 뉴스와 인터넷 검색어를 보더라도, 황금시간대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것이 신인스타에겐 등용문, 기존 스타에겐 자신의 인지도를 재고한다는 말까지 돈다고 하니 국민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대단할 것이다.

 

예능프로그램은 대한민국 전체가 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이부터 할머니까지, 황금시간대, 그리고 가족들이 많이 모여있는 시간 때에 하는 예능프로그램은 그만큼 그 속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과 제작의도가 중요할 수밖에 없는 태생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예능프로그램은 재미있어야 한다. 그 자체가 시청자에게 냉철한 현실과 날카로운 대안을 모색한다기보단 배꼽빠지게 웃으면서도 훈훈함이 있어야한다. 그렇다면 MBC 일요일 밤, 황금시간대에 편성된 <우리결혼했어요(이하 우결)>는 과연 어떨까?

 

3월 29일(일) 방송을 살펴보자.

 

강인 - 이윤지 부부는 집들이를 맞이해 10명이 넘는 손님을 맞이하는데도 남편은 뒹굴거리고 아내는 고군분투하며 요리를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전진 - 이시영 부부 역시 남편이 저녁을 같이 먹자는 약속을 믿고 정성스레 밥을 준비해놓은 아내, 결국은 밥을 먹고 들어온 남편에게 서운한 감정이 드러나는 것을 보여준다. 신성록 - 김신영 부부는 중간에 갈비를 구어먹는 장면에서 준비하거나 굽는 것을 아내가 하는 것이 방영되고, 정형돈 - 태연 부부 역시 요리를 할 줄 모르는 아내가 2시간여를 혼자서 낑낑대며 저녁 준비하는 모습이 방영된다.

 

일단 이런 과정이 배꼽빠지게 웃기거나 훈훈한 모습이 엿보이진 않는 듯 싶다. 굳이 찾자면 전통적인 아내의 역할을 해내면서 그 속에 부부의 알콩달콩한 모습을 보여주는 정도라고 할까?

 

누군가는 이것이 리얼한 대한민국의 모습이라고 반문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들은 우리네 아버지 세대 사람들이 아닌 이삼십대의 젊은이들이다. 더군다나 리얼버라이어티를 표방한만큼 부부는 모두 연예인이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등장한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구태의연한 사고관 탓에 네 부부가 모두 위와 같은 동일한 모습이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시시때때로 부부의 속마음을 확인하는 인터뷰가 등장할 때 아내들은 이런 문제점에 대한 자신들의 속내를 드러내기도 하지만, 유야무야 프로그램은 진행되고, '아내의 자질'이라든가 '아내의 마음을 몰라주고' 등의 표현 등으로 제작진이 지닌 19세기식 구태의연한 부부관이 드러난다.

 

그러면서 집안에 물건을 고치거나 힘을 쓰는 일 등은 남편의 몫으로 돌리고, 그런 남편의 역할을 곧잘 해내는 김신영 아내나 남편에게 주눅들지 않는 이시영 아내 등의 역할을 통해 약간은 다른 아내의 모습을 표출하려 하지만 억지스러울 뿐이다. 근본적인 사고관이 변하지 않는 상태에서 자신의 개성을 지니고 있는 두 아내가 오히려 이상해보일 뿐이다.

 

그러면서 네 부부의 남편들은 항상 '아침', '저녁' 등을 해달라고 조르며 요리를 잘하는 아내를 부르짖고 있는 상황이 펼쳐진다. 아내들은 내심 못이기는 척 그들의 그런 요구를 수용한다.

 

그렇다면 남편들의 모습은 어떨까?

 

집들이 준비에 지친 이윤지 아내를 불러내는 강인 남편, 감기기운이 있는 것 갔다며 약을 건네고 아내는 감동한다. 여성스러운 아내가 되겠다고 선언한 김신영 아내에게 밥을 해달라고 항상 말하며 집안일에 손까딱하기 싫어하는 신성록 남편은 반지를 건네고, 정형돈은 이벤트나 감짝 연출에 집중한다.

 

동일한 직업을 가지고, 동일한 일을 함에도 불구하고 그저 섭섭한 마음을 달래줄 수 있는 어떤 장치를 만드는데 골몰하는 모습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런 부부의 모습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위와 같은 사고관이 네 부부 모두에게 보인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어른들이 아닌 아이들도 그대로 보고 의식한다는 것이다.

 

21세기에 방영되는 결혼이야기, 하지만 그 속에 엿보이는 결혼관은 아직도 19세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어쩌면 나만의 착각일까? 어쨌든 우결의 '결혼' 가치관은 지금 이시간에도 대한민국 국민들의 잠재의식에 저장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casto와 푸타파타의 세상바라보기(http://blog.daum.net/casto)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우리결혼했어요, #우결, #결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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