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 공연 취소로 인한 미국 현지 소송에서 비와 JYP가 패소했다. 그래서 비와 JYP가 건물까지 뺏기고 알거지가 되느냐 마느냐의 문제로 시끄러운데, 기필코 '비'를 쪽박 차게 만들겠다는 클릭엔터테인먼트(이하 클릭)나, 결단코 그럴 일은 없다는 '비'측의 논쟁은 소모적이다. 이번 사건의 쟁점은 결코 그들의 재산문제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번 소송으로 촉발된 '비'라는 콘텐츠를 통해 한국대중연예산업의 현실과 변화의 길이 무엇이며, 한국의 문화콘텐츠가 세계시장에서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를 알 수 있게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비'는 구해야 한다. 그 까닭은 그가 단지 '우리'이기 때문이며, 검증된 '콘텐츠'여서 아깝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럼 이제 왜 그를 구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자. 패소한 비, 죄가 없기 때문에 구해야 한다 그를 구해야 하는 첫 번째 이유는 그에겐 죄가 없기 때문이다. 지난 재판의 핵심은 실연자로서 '비'가 의도적으로 자신의 공연을 취소하여 현지기획사(클릭엔터테인먼트)에 피해를 주었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비'는 공연의 취소사실을 알고는 있었을 것이지만 취소와 관련해 아무런 권한을 행사할 수 없었음이 분명하다. '비'는 JYP의 소속가수로서 공연의 실연자이기는 하지만 계약과 계약의 이행, 취소 등에 관여할 권리는 없었다. 가수가 자신의 기획사를 직접 운영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국내의 어느 기획사도 가수와 기획사와의 계약관계에서 공연판권을 가수에게 양도하거나 가수의 임의대로 처리하는 경우는 없다. 물론 스타급 가수의 경우 기획사가 공연과 관련해 일정부분 의사를 확인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공연의 내용-연출부분과 제작부분-정도이지 그 이상은 아니다. 공연계약의 이행과 취소는 철저하게 판권을 가지고 있는 기획사, 하와이 공연의 경우 JYP-스타엠-레볼루션의 복잡한 과정에서의 마지막 단계인 스타엠과 레볼루션의 판단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레볼루션과 스타엠 그리고 클릭엔터테인먼트 모두가 분명히 인지하고 있는 사실일 것이다. 그런데 왜 클릭엔터테인먼트는 '비'와'JYP'를 고소하게 된 것일까? 클릭이 이 둘을 고소하게 된 배경은 두 가지로 예상이 된다. 첫째는 이미 사라져 버린 레볼루션과 다른 회사와의 합병으로 과실여부를 묻기가 모호해진 스타엠을 상대해봐야 실익이 없다는 판단을 했을 수 있다. 둘째는 당시 정황 때문에 클릭이 진심으로 '비'와 JYP를 취소의 원인으로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추측가능한 정황은, '비'나 JYP가 하와이 현지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애초의 구성안대로 공연시스템을 준비해야만 공연을 하겠다고 우겼다거나, 이들이 애초부터 무리한 테크니컬라이더(공연준비에 따른 일체의 시스템사양)를 전달했고, 스타엠과 레볼루션이 어느 정도 조율을 해 줄 것으로 알았는데 전혀 조율 없이 무리한(클릭 입장에서)요구를 했을 경우다. 실제로 이러한 경우는 이따금 일어난다. 가수들은 기획사의 계약여부와 상관없이 원하는(혹은 약속한) 시스템이 갖추어지지 못했을 때 문제를 제기하고, 심할 땐 공연자체를 취소해 버리는 경우가 없지는 않다는 말이다. 그러나 설사 무대에 올라가지 않았다하더라도 그건 가수의 책임이 아니라 기획사의 책임이다. 하와이 공연의 경우 그렇다 하더라도 클릭과 레볼루션 그리고 스타엠의 문제일 뿐이다. 쉽게 말해 '비'의 꼬장으로 공연을 못했다 해도, 클릭은 레볼루션, 스타엠과 다투어야 하고 스타엠이 JYP와 JYP가 '비'와 다툴 문제라는 것이다. 결국 어떤 경우든 클릭이 비와 JYP에게 법적인 문제를 제기할 근거는 희박하다. 따라서 이번 소송은 결국 클릭의 현실적인 판단('비'와 'JYP'를 물고 늘어지는 편이 낫겠다는)으로 읽힌다. '비', 한국 제작시스템서 일궈낸 최초 콘텐츠 한국의 음악 산업에 있어서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춘 콘텐츠는 단연, SM 소속의 '보아'와 '비'다(의견이 분분한 그들의 예술적 성취에 대해서는 논외로 하자). 그러나 '보아'의 경우 엄밀한 의미에서 소위 '우리' 것이라 할 수는 없다. 익히 알려진 대로 그녀는 철저하게 일본의 시스템과 토대 위에서 성장한, '제작대행' 형식으로 만들어진 콘텐츠다. 이 말은 그녀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은 그녀의 성공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으며, 한국의 연예산업은 그녀의 일본시장석권과 세계시장 진출에 전혀 이바지한 것이 없다는 의미도 된다(굳이 의미를 찾자면 될성부른 나무를 알아본 SM 이수만 이사의 혜안 정도랄까). 반면 비의 경우 그것이 어떤 방법이든, 철저하게 한국연예시스템에서 일구어낸 최초의 아시아권 성공 콘텐츠이며 세계시장 진출 콘텐츠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여기에는 눈물 나는 '비' 개인의 노력도 있었겠지만(개인의 노력은 '보아'도 있었을 것이고) 한국의 시스템에서도 이러한 콘텐츠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 '비의 성공은 이제 겨우 15년 정도 된 한국문화산업의 비약적 발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그를 통해 한국의 대중문화콘텐츠가 아시아와 세계시장에서 어떻게 하면 성공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게 되었다. '비'의 안무와, 음악, 패션은 하나의 스타일로 세계시장의 취향을 가늠할 수 있게 해 주었고, 그의 소속사 JYP의 PR과 마케팅 그리고 기획은 경쟁업체들의 참고서 역할을 분명히 했다. 더구나 '비'는 완결된 형태의 콘텐츠가 아니라 여전히 성장하고 있는 중이라는 점에서 더욱 중요하다. 수많은 후발업체들과 아시아 시장, 세계시장을 노리는 콘텐츠들에게 '비'의 궤적은 아주 소중한 데이터가 될 것이다. '비' 통해 한국 연예산업 변화 모색할 수 있다 우리 연예산업이 취약한 근본적 원인은, 문화다양성의 결여와 방송중심의 기형적 구조, 그리고 연예투기자본의 횡행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문화적 요구들과 이를 바탕으로 한 다양한 창작물들의 생산, 그리고 소비가 이루어져야 한다. 또 방송중심에서 벗어나 오프라인과 인터넷 혹은 또 다른 플랫폼을 통해 연예산업의 기제가 다각화 되어야 하며 이를 통해 연예사업의 수익만으로도 충분한 수익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 그럼 이 모든 것을 충족하기 위한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일단 연예투기자본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역설적이게도 충분한 수익을 낼 수 있는 안정적인 콘텐츠, 혹은 스타 콘텐츠가 있어야 한다. 방송중심의 기형적 구조에서 벗어나려면 방송보다 더 큰 연예권력이 필요하다. 오늘날 우리의 연예산업은 철저히 방송에 종속된 지 오래다. 음악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여 좋은 음악이 방송에 소개되는 것이 아니라 방송에 소개된 음악이 좋은 음악이 되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방송보다 훨씬 영향력 있는 긍정적인 '권력'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오늘날 한국에서 이러한 문화콘텐츠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투기자본에 휩쓸리지 않으며 방송에 연연하지 않고 특정한 분야에서 성공을 거둔 경우는, 대중음악에 있어서는 '서태지'가 유일한 경우라 할 수 있을 것이다(방송을 이용하는 것과 종속되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비'에게 거는 기대가 여기에 있다. 이미 스타 콘텐츠인 그가 연예활동만으로 충분한 수익을 창출하여 연예투기자본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스스로의 영향력을 토대로 방송에 연연하지 않으며, 결국 자신이 선택한 부문에서 성공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는 결코 '비' 혼자만의 성공이 아니다. 서태지의 성공과 비의 성공이 장기하의 성공으로 이어지고 그렇게 하나씩 확대되어 나간다면 왜곡된 우리 연예산업의 구조가 새로워질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 분명히 밝히거니와 오늘 '비'의 위기는 단지 소송을 당해 재산을 잃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비록 어이없는 소송으로 촉발된 사태이지만, 이를 계기로 한국연예산업이 현실과 미래, 그리고 문화콘텐츠로서의 '비'를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이다. 누가 뭐라 해도 21세기는 이미 문화콘텐츠의 시대이다. 우리가 '비'를 살려야 하는 이유는 그래서 더욱 분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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