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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 조직축소가 현실로 다가온 30일, 영화인 41명이 반대 성명을 냈다. 국가인권위 '인권영화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영화감독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정부는 이날 오후 국무회의를 열고 국가인권위 인원을 21% 감축하는 내용의 직제 개정령안을 통과시켰고, 국가인권위는 이에 맞서 오전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청구심판과 대통령령 효력정지가처분신청을 냈다. 긴급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인권영화 감독들도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영화인 성명을 추진한 김태용 감독은 "성명이 급하게 진행했는데도 인권영화에 참여했던 감독들이 100% 흔쾌히 참여해주셨다"고 전했다. 정치적 입장을 떠나 보편적 인권의 가치에 동의한 만큼 부담이 크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영화 만드는 사람 인권 없네? 그래도 자부심"

성명 동참 인권영화 프로젝트 감독은 누구?

박광수 박찬욱 임순례 박진표 여균동 정재은 (<여섯개의 시선>) 류승완 정지우 장진 김동원 박경희 (<다섯개의 시선>) 홍기선 정윤철 김곡 김선 김현필 노동석 이미연 (<세번째 시선>) 이현승 방은진 김태용 전계수 윤성호 (<시선1318>) 박재동 이성강 이애림 권오성 유진희 박윤경 김준 이진석 정연주 장형윤 (<별별이야기>) 정민영 박용제 이홍수 이홍민 권미정 홍덕표 류정우 안동희 (<별별이야기 2>)


<오마이뉴스>는 이날 성명에 동참한 몇몇 영화감독들에게 급히 전화를 걸어 두 가지를 물어보았다. "인권영화는 다른 영화와 무엇이 다른가(Q1.)" "국가인권위원회는 왜 유지되어야 하나(Q2.)" 하는 것이다.

영화감독들은 "인권영화 프로젝트를 만들면서 사회 공동체 일원으로서 자부심을 느꼈다"고 설명했다.

워낙 영화 제작비가 빠듯해서 배우나 스태프들이 최소한의 인건비만 받는 상황이었고, 현장에서는 "영화 만드는 사람의 인권은 없냐"는 농담도 나왔다고 한다. 그러나 애초 인권영화라는 취지를 믿고 동참한 것이기 때문에 불만은 없었다. 박찬욱 감독(<여섯개의 시선> 중 '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은 자신의 돈을 들여서까지 영화를 완성했다고 한다.

김태용 감독은 "'사업이 방만하다,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행정안전부 논리대로라면 인권영화도 중단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현재 첫 장편 인권영화 <날아라 펭귄> 후반작업 중인 임순례 감독은 "이 영화가 국가인권위에서 만드는 마지막 인권영화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한 감독들은 국가인권위 축소가 한국의 인권상황을 악화시킨다고 우려했다.

전계수 감독은 "경제위기가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국가인권위가 할 일은 더 늘어날 것이 뻔하고, 이명박정부가 잘되기 위해서라도 국가인권위가 축소되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윤성호 감독 역시 "국가인권위는 행안부에 종속된 기관이 아니지 않냐"면서 "대통령에게도 독립적으로 (비판 등을) 말할 기구인데 조직축소는 행정적으로도 불합리하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국가인권위원회 조직축소를 반대하는 영화감독들의 답변이다.

인권 옴니버스 영화 <여섯개의 시선> 중 임순례 감독의 '그녀의 무게' 한 장면.
 인권 옴니버스 영화 <여섯개의 시선> 중 임순례 감독의 '그녀의 무게' 한 장면.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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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빠듯한 예산, 이제 인권영화 못 만드나"

임순례 감독 <와이키키 브라더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여섯개의 시선> 중 '그녀의 무게', 현재 장편 인권영화 <날아라 펭귄> 후반작업 중

A1. "나는 첫 인권영화 프로젝트인 <여섯개의 시선>에 참여했고, 올해는 천 장편 인권영화인 <날아라 펭귄>을 만들고 있어서 다른 사람들보다 더 관련이 있다. <여섯개의 시선>을 처음 만들 때는 첫 기획이라서 감독들도 책무감을 갖고 있었고, 관객들도 신선하게 반응했다. 사실 처음부터 지금까지 국가인권위가 주는 제작비는 터무니없이 적다. '만드는 사람 인권은 생각 안 하냐'고 농담할 정도로 실비 수준이다. 스태프에게도 최소 인건비밖에 못 주고 제작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부터 다른 스태프와 배우들까지 '영화하는 사람으로서 국민의 구성원으로서 할 수 있는 '재능 기부'라고 생각했다. 공동체 일원으로서 같은 것을 나눌 수 있다는 자부심도 있었다. <날아라 펭귄>도 바쁜 배우들이 다른 작품이 (일정에) 걸려 있는데도 흔쾌히 동참했다.

영화를 찍으면 사회적 소수자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직접 출연하든 그 사람 이야기를 다루든. 영화 찍으면서 의식이 많이 바뀌게 된다. 영화 찍고 나서도 그 관계가 굉장히 좋았던 경험이 있다."

A2. "이명박정부 시작되자마자 (국가인권위 독립성 훼손 논란 등) 얘기가 있지 않았나. 지금 만드는 내 영화가 국가인권위에서 만드는 마지막 영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예산이 축소돼서 <날아라 펭귄>이 실 제작비에서 마이너스가 났지만 어떻게든 꾸려가는 상황인데, 여기서 더 축소되면 현실적으로 영화 제작이 어렵다. 인권상황이 개선돼서 영화 만들 필요가 없다면 얼마나 좋겠나. 더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인권영화도 만들 수 없고 인권위 활동도 축소되는 상황이 굉장히 안타깝다.

정치적 부담은 전혀 없다. 이 정부가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우선순위가 국가인권위 축소인지 분개만 하고 있었는데, 서명에 동참하라고 연락을 주셔서 감사했다. 영화 한두 편 더 만드느냐 아니냐가 아니라, 국가인권위가 이 사회에서 억울한 사람들의 마지막 보루였는데. 이걸 축소하고 손발 묶어놓아서야 되겠나."

인권 옴니버스 영화 <시선 1318> 중에서 김태용 감독의 '달리는 차은이' 한 장면.
 인권 옴니버스 영화 <시선 1318> 중에서 김태용 감독의 '달리는 차은이' 한 장면.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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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의 측면에서 영화를 고민하게 됐다"

김태용 감독 <여고괴담2> <가족의탄생>
<시선1318 중> 중 '달리는 차은이'

A1. "인권영화 프로젝트는 그동안 수천명의 영화인들이 그 취지에 동감해서 거의 무상으로 동참해온 작업이다. 인권영화에 참여하면서 인권 문제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 영화 안에서도 수많은 요소가 있다. 장애인, 여성, 이주노동자…. 이런 문제를 인권을 통해서 들여다보기가 쉽지는 않다. 상업영화를 하다보면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서 드라마를 강하게 만들려고 노력하는데, 예전에는 넘어가던 영화적 요소에 대해서도 '인권의 측면에서 이게 맞는 건가' 고민하게 됐다. 멀리 있던 인권을 생활 속 언어로 가져온 계기가 됐다.

영화를 본 사람들이 큰 의미의 '사회적 인권인식 향상'보다는 일상 속에서 느낀 인권문제에 대해 실천적 감상을 말하는데 그 때마다 기분이 좋더라. 상업영화와는 다른 방식으로 소통할 수 있는 좋은 경험이었다."

A2. "이번에 국가인권위 사업이 방만해서 축소된다는 논리라면 인권영화 작업도 '방만하다'고 볼 수 있겠다 싶었다. (조직축소가) 국무회의를 통과해도, 헌법재판소에도 (권한쟁의청구심판 및 효력정지가처분신청이) 올라가 있다. 인권은 법률이나 정치이기도 하지만 사회적 합의의 문제이기도 하다. 사회적 합의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인권 옴니버스영화 <시선 1318> 중 전계수 감독의 '유 앤 미' 한 장면.
 인권 옴니버스영화 <시선 1318> 중 전계수 감독의 '유 앤 미' 한 장면.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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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정부 잘 되려면 국가인권위 필요하다"

전계수 감독 <삼거리극장>
<시선 1318> 중에서 '유 앤 미'

A1. "인권영화 시리즈를 제안받은 것은 영광이었다. 영화라는 매체도 사회적 책임도 있는데, 돈이 많이 드는 예술인 것에 비해 그 값을 못한 것도 사실이다. 영화 통해서 발언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좋았다. 그리고, 인권영화 프로젝트라고 해서 프로파간다 식 영화는 만들고 싶지 않았고 상업영화 안에서 할 수 없었던 영화언어를 실험할 기회도 됐다. 흥행에 대한 부담이 적어서 연출자로서도 새로운 영화적 시도를 해볼 수 있었다.

그리고 사실 인권은 굉장히 많은 차원에 작동하는 것이지만, 제가 특별한 의식을 갖고 관심가진 주제는 아니었다. 인권영화를 하면서 인권이 무엇인지 많은 생각 하게 됐다. 인권에 대한 전통적인 개념은 협소해서 '차별 반대'로만 정의하는 경우가 많은데, 넓게 생각하려고 했다. 자기 삶을 선택할 권리를 제한당하는 부분에 초점을 맞춰서 작업했다."

A2. "충무로 상업영화도 제작 기회가 줄어들지만, 사회적 차원에서 인권영화 제작기회가 줄어드는 것도 안타깝다. 그렇지만 인권영화가 줄어들까봐 (국가인권위 축소 반대) 서명을 한 것은 아니고, 이게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 국가인권위 활동이 10년도 안 됐고 인권 이슈들은 갈수록 많아질 것이다. 경제상황 안 좋아질수록 고통받는 사람들 많아지는데 이 사람들의 목소리를 빼앗는 일이라서 서명에 참여했다. 이명박정부가 진짜 잘되려면 이런 차원에서의 완충장치 필요한데 너무 답답하다. 정치적 부담? (이런 일로 압박할 정도로) 그렇게 야만적 사회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인권 옴니버스영화 <시선 1318> 중에서 윤성호 감독의 '청소년 드라마의 이해와 실제' 한 장면.
 인권 옴니버스영화 <시선 1318> 중에서 윤성호 감독의 '청소년 드라마의 이해와 실제' 한 장면.
ⓒ 전주국제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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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회에서 문화적 식견 있는 분들은 다 국가인권위 축소 반대"

윤성호 감독 <은하해방전선> <소년, 소년을 만나다>
<시선 1318> 중 '청소년 드라마의 이해와 실제'
  
A1. "인권영화는 흥행이 목적이 아니라서 서사나 형식에서 실험을 할 수 있다. 인권영화 프로젝트의 모든 작품이 다 의미 있다고 할 순 없겠지만, 옴니버스의 다양한 형식이 담겨 있다. 사실 제 영화는 이전 작품보다 좀 말랑말랑해졌다고 보일 수 있다. 저쪽에서 '좌파 10년' 같은 소리를 하니까 국가인권위도 편향성 안 보이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더 강하게 이슈 파이팅하기보다는 합의될만한 주제를 건드린다. 그래서 더 세게 못 나가는 것이 아쉬웠는데, 이번에 관객들에게 영화를 보여주면서 부드러운 문제제기에 마음을 여는 분들도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말을 거는 전략도 괜찮은 것 같다.

저는 청소년 인권 분야를 제안받았는데, 원래 큰 관심이 없었다. 솔직히 요즘 청소년들이 시시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드라마를 짜면서 청소년 문제야말로 한국 상황의 종합판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청소년이 아니라 이 나라가 시시한 거였다. 일제고사 해직교사들 문제에 청소년들이 먼저 의견 개진하는 모습을 보면서 (청소년이 시시하다는) 내 판단이 앞서 나갔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

A2. "국가인권위는 행안부에 종속된 기관이 아니지 않나. 대통령에게도 독립적으로 (비판 등을) 말할 기구인데 이번 조직축소는 행정적으로 불합리하다. 대내외적으로 활동도 인정받고 있는데, 다른 위원회는 출범시키면서 국가인권위는 왜 축소하나.

영화감독들은 다들 예술가이고 (작업 때문에) 잠수 타는 분들도 계시니까 갑자기 서명하기가 쉽지는 않다. 그런데도 다들 흔쾌히 서명한 것을 보면, 이 사회에서 문화적 식견이 있는 분들 사이에선 이 문제에 대한 합의가 이뤄졌다고 봐도 될 것이다."

인권 옴니버스 영화 <세번째 시선> 중에서 정윤철 감독의 '잠수왕 무하마드'
 인권 옴니버스 영화 <세번째 시선> 중에서 정윤철 감독의 '잠수왕 무하마드'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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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정권이든 진보정권이든 국가인귄위는 유지돼야 한다"

정윤철 감독 <말아톤><좋지 아니한가><슈퍼맨이었던 사나이>
<세번째 시선> 중 '잠수왕 무하마드'

A1. "인권영화 프로젝트는 민간자본으로는 도저히 찍을 수 없는 성격의 영화들이다. 독립영화에서도 이런 주제로 지속적으로 만들어지기도 힘들다. 어떻게 보면 2억~3억원은 저예산 장편 독립영화 한 편 값인데 이 돈으로 영화감독들이 다양한 색깔의 인권영화를 찍는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이것이 단순히 극장 상영에 그치는 게 아니라 교육 현장에서 상영되고, 장기적으로 10년 후나 20년 후에도 쓰일 시청각 자료로 인권 관련 콘텐츠를 쌓아간다는 측면에서 좋았다.

내가 찍은 주제는 외국인노동자 문제였는데, 인권영화를 찍기 전까지는 여기에 대해 막연하게만 알고 있었다. 영화 찍느라 외국인 노동자를 실제로 만나고 취재하면서 구체적으로 알게 됐다. 영화 찍고 나서도 관심이 생겼다. 저나 스태프들에게 인권에 대한 관심이 남아 있다."

A2. "보수적인 정권이기 때문에 자기들 뜻이 있겠지만, 국가인권위는 정권을 보수가 잡든 진보가 잡든 휴머니즘의 차원에서 인간 존엄성의 입장에서 유지돼야 한다. 정치적 입장으로 좌지우지될 일이 아니다. 사람에 대한 애정 측면에서 생각할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인권영화도 감독들이 그런 측면에서 참여해서 자기 돈까지 투자하면서 찍었던 것이다. 난 제작비를 다 썼는데, 박찬욱 감독은 자기 돈을 500만원 정도 들였다고 하더라."


태그:#국가인권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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