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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의 첫 장면은 자못 살벌했다. 기세등등한 경찰 수사관이 탁자를 탁탁 치며 농민 용의자들에게 으르렁거리는 모습이 그랬다. 그러나 분위기는 순식간에 돌변했다. 취조를 받는 농민들의 코믹한 행동과 사투리 때문이었다.

 

무대는 전라도와 경상도, 그리고 충청도, 3도의 경계지점에 있는 삼도봉 마을, 이 삼도봉에 있는 양곡창고에는 수입미국산 쌀이 저장되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양곡창고에서 대가리, 대갈빼기, 대그빡이 없는 토막난 시체가 발견된 것이다. 방화살인 사건이었다.

 

현장에서 체포된 용의자는 3명, 겉으로 보기에는 살인사건과는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순박해 보이는 농민들이었다. 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특수수사요원이 현장에 파견되어 이들에 대한 수사를 하는 과정이 연극의 주류를 이룬다.

 

미국산 수입쌀을 보관하고 있는 양곡창고에서 벌어진 방화 살인사건 현장에서 체포된 세 명의 농민들은 자신들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상황을 재연한다.

 

용의자들은 전라도 후갈면 나갈리 출신의 소문난 농민운동가 갈필용, 경상도 골통면 억수리 출신의 순진한 농촌 노총각 배일천, 그리고 충청도 금떡음떡 마을 출신의 11년 경력의 마을 이장 노상술.

 

 

연극의 전반부는 이들 농민 용의자들이 자신들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사건을 재연하는 과정이 펼쳐진다. 그런데 사건을 재연하는 전라, 경상, 충청 3도 출신 주인공들이 특유의 진한 사투리와 해프닝으로 이끌어가는 모습이 관객들에게 웃음보를 터뜨리게 하고 있었다.

 

그런데 연극이 후반부로 넘어가면서 관객들의 표정은 서서히 굳어지고 숙연해지기 시작한다. 전반부에 웃기는 캐릭터로 각인되었던 주인공들의 인간적인 삶의 아픔과 비극이 결코 그냥 웃어넘기기엔 너무 가슴 아픈 현실로 다가오기 때문이었다.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아 30년을 살아온 집이 무허가 판정을 받아 낙담한 아내가 아들까지 버리고 가출해 버리는 딱한 처지에 빠진 충청도 출신 11년 마을 이장 주태백이 노상술의 처지가 그랬다.

 

국제결혼 사기범들에게 말려들어 베트남 처녀로 위장한 꽃뱀에게 거액을 사기당하고 노모로부터 지청구 먹는 경상도 출신 노총각 배일천이도 딱하기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가장 큰 비극의 주인공은 전라도 출신 농민운동가 갈필용, 그는 쌀수입 반대 데모에 참가했다가 시위진압 전경인 아들과 상봉한다. 그러나 그와 아들이 만나고 있는 동안 그의 눈앞에서 아들이 다른 전경이 휘두른 곤봉에 뒷머리를 맞아 사망하는 일을 당하고 만다.

 

갈필용은 먼저 별세한 아내가 아들을 데려갔다며 원망하는 독백을 늘어놓는다. 그때 그의 앞에 환영으로 나타난 아내와 아들을 보며 반가워한다. 그러나 곧 사라져버리는 아들과 아내를 그리며 다시 실의에 빠지는 갈필용, 그는 불합리하고 더러운 이 세상을 이제 그만 떠나 아들과 아내 곁으로 가고 싶다며 꺼이꺼이 운다.

 

그의 슬픈 가족사를 보며 이 시대가 만든 시대적 비극이 가슴 뭉클한 슬픔으로 다가와 어느새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리고 있었다. 연극은 결국 미제사건으로 종결되며 용의자들이 하나둘 감방에서 풀려나는 것으로 끝난다.

 

극중 인물 중 강원도 출신 소작농이며 단순 무식하고, 분별없이 설쳐대던 김창출의 역할도 상당히 돋보이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었다. 파파프로덕션이 연극열전2와 손잡고 동숭아트센터 소극장에 올린 삼도봉 美(아름다울 미) 스토리는 美스토리가 아니라 米(쌀 미)스토리였다.

 

 

연극은 처음부터 끝까지 전라, 경상, 충청, 강원도의 토속 사투리와 해학이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냈지만, 그 배꼽 빠지는 웃음 속에 시대적인 아픔과 소외되고 어려움에 처한 농민들의 실정을 담아내고자 노력한 연출자의 의도가 관객들에게 진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연극의 전체적인 구성이 조금은 억지스러움이 있고, 극 전개와 흐름이 원활하지 못한 것 같은 아쉬움이 있었지만, 극 전체에 흐르는 해학과 시대적 풍자가 강한 이미지로 다가오는 인상 깊은 연극이었다. 김신후가 쓰고 고선웅이 연출한 '삼도봉 미 스토리'는 지난 2월 20일부터 공연 중이며, 마지막 공연 날자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공연기간: 2008년 2월 10일 ~ OPEN RUN

공연시간: 화~금 8시/주말 3시,6시/월요일은 공연 없음

공연장소: 혜화동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소극장

공연문의: 연극열전 (02)766-6007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유포토뉴스에도 송고했습니다


태그:#삼도봉 이 스토리, #동숭 아트센터, #이승철, #소극장, #연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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