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슬림 국가 이란을 찾은 건 이슬람교라는 종교에 끌려서가 아니고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이 좋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난 볼거리라고는 모스크가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종교국가를 가면서 정작 이슬람교에 대해서는 참 무지했습니다.
사실 대한민국 사람이 이슬람교를 제대로 접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아마도 대부분 사람은 간혹 뉴스에서 메카를 순례하기 위해 모여드는 무슬림의 광신적인 모습이나 보면서, 아니면 테러와 관련한 무슨 무장단체 정도의 뉴스로 이슬람교를 접하는 게 전부일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뉴스에서는 분명 편파적인 면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티벳인들도 라싸 순례를 평생의 업으로 삼으며 오체투지를 하며 라싸로 갑니다. 그들에 대해 우리는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봤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종교적인 민족이라고 하면서 좋게 보았지요.
그런데 이상하게 메카에 모여든 무슬림에 대해서는 이렇게 고운 시선으로 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이유는 방송보도에 있다고 봅니다. 방송에서 메카에 모여든 이슬람교도에 관한 보도를 할 때는 꼭 그들이 거기 모여서 폭동이라도 일으킬 것처럼 감정을 많이 넣어서 보도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슬람교 하면, 광신적인 테러리스트로 생각하게 만들었지요.
흔히 텔레비전을 바보상자라고 하는데 이는 텔레비전이 사람을 바보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바보처럼 방송보도를 여과 없이 받아들였고, 그래서 이슬람교에 대해서는 유별나게 왜곡된 시선을 갖게 됐는지도 모릅니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이란 여행 나흘째 아르다빌에 있는 사피에딘의 묘를 찾아 이란의 수피주의에 대해서 들었을 때는 참 뜻밖이었습니다. 이슬람교에 이런 종파도 있구나, 하고 적이 놀랐습니다. 그리고 이전에 갖고 있던 이슬람교에 대한 생각도 이 수피즘이라는 종파에 대해서 알게 되면서 많이 부드러워졌습니다.
수피즘은 흔히 신비주의 이슬람교라고도 합니다. 신과 인간의 이원체계를 뭉그러뜨리고 신과 인간의 완전한 합일된 체험을 가장 중요시하지요. 수피즘의 창시자는 메블리나 루미라는 아프가니스탄 사람인데 그가 죽기 전에 한 말, "나는 신을 찾기 위해 여러 곳을 돌아다녀 보았지만 어디서도 찾지 못하였는데 내 마음속을 들여다보니 그분이 거기에 계셨다"에서 알 수 있듯이 수피즘은 내면에 이미 신이 존재한다는 명제 하에 수행을 통해 신을 구하는 종교입니다. '내 마음이 부처'라는 불교의 메시지와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깊게 들어갔을 때는 모든 종교가 하는 말이 다 유사하지 않을까요.
수피즘을 처음 경험하게 한 장본인인 사피에딘의 묘를 찾은 날은 여행 4일째입니다. 이 날은 함께 여행 간 일행들과 함께 봉고버스를 대절해서 대전 찍고 광주 돌고 식의 패키지 스타일 여행을 했습니다.
우리를 태우러 온 봉고버스 기사는 28살짜리 총각인데 얌전해 보이는 인상이었습니다. 얌전하다는 표현보다는 순진해 보인다는 게 어울리겠군요. 그런데 그는 자신보다 더 부끄럼을 타는 21살짜리 친구를 데려왔습니다.
얌전한 두 청년이 운전하는 봉고버스를 타고 아르다빌 시내에 있는 수피즘 성자 사피에딘의 묘로 향했습니다. 묘로 간다고 해서 우리나라 왕릉처럼 거대한 무덤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더군요. 이란에서 어느 지역을 가든 꼭 들리는 곳이 모스크인데 모스크를 연상시키는 화려하면서도 규모가 있는 건물이었습니다.
사피에딘의 묘에는 모스크처럼 돔이 있고, 첨탑이 있고, 안마당이 있으며, 성자 사피에딘의 관이 안치돼있고, 생전에 봤던 책이며, 그릇이며 이런 게 전시 돼 있는 꽤 넓은 방이 있었습니다.
입장료 300원을 내고 들어갔습니다. 안마당에는 아직 눈이 덜 녹았고, 바닥은 살얼음이 살짝 얼어서 좀 미끄러웠습니다. 우리 집 애들은 눈을 뭉쳐서 서로 던지기도 하고 얼음 위에서 미끄럼을 즐겼는데 스케이트장 같다고 좋아했습니다.
안마당에서 사진 몇 장을 찍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더니 히잡을 쓴 퉁퉁한 아줌마가 앉아서 표를 받고 있었습니다. 작은 책상을 앞에 놓고 표를 받는 아줌마의 표정에 여유가 있었습니다. 말이 통한다면 사피에딘에 대해서도 물어보고 자세한 설명을 들었으면 좋을 텐데 그럴 수 없는 게 아쉬웠습니다.
넓은 방 안으로 들어가니까 좀 어둑어둑한 구석에 노인 한 명이 앉아 있었습니다. 관리인인 듯 했습니다. 전시물을 손으로 만진다거나 훼손되는 걸 감시하는 모양입니다. 2500년 된 유적지이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피사르가데가 길가에 그냥 방치된 모양으로 서있는 걸 감안하면 우리가 오늘 찾은 이곳이 엄청난 대접을 받고 있는 걸 알 수가 있습니다.
정말 건물 안에 묘가 있었습니다. 대리석관 안에 시신이 들어있는 모양입니다. 그 대리석이 바로 묘인 것입니다. 하페즈의 무덤에 갔을 때도 관이 덩그러니 밖에 나와 있고 거기서 사람들이 관을 껴안기도 하고 입을 맞추고 하는 걸 봤는데 여기 사피에딘의 묘도 사디나 하페즈의 묘처럼 관이 밖으로 나와 있었습니다.
우리 일행 말고도 관람객이 끊이지 않고 들어왔습니다. 그들이 관에 손을 얹고 예를 표하는 걸 보고 나도 그렇게 했는데 차가운 대리석 촉감에 정신이 번쩍 나더군요.
작은 애는 이 건물에서 마음에 드는 장소를 하나 찾아냈습니다. 성자가 기도했던 기도실인데 굉장히 작은 방이었습니다. 눕는 건 불가능하고 오직 앉아서 명상만 할 수 있을 정도로 작은 방이었는데 작은 애는 그 방에 들어가 기도하는 시늉을 하며 재미있어 했습니다. 나도 사실 그 방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런 방에서라면 명상이 잘 될 것 같았습니다.
전체적으로 조명이 어두워서 그런지 이 건물 안으로 들어왔을 때 이상한 평화와 고요가 느껴졌습니다. 어쩌면 관 안에 누워있는 성자 사피에딘이 이룩한 평화가 공간에 가득 차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피에딘의 묘에는 그릇들도 많았습니다. 웬 성자가 그릇은 이렇게 많이 갖고 있나 했더니 사피에딘 가문이 사파비 왕조의 조상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명문가인 것이지요. 그래서 그릇도 많았을 것입니다.
사피에딘의 묘에서 한 시간 정도 머물렀던 것 같습니다. 내가 종교성향이 강한 사람이어서 그런지 난 이곳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잠시 지나가는 바람일지는 모르지만 한순간 마음을 흔들리게 했던 그 평화로운 느낌이 좋았습니다.